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
81화 – 파티 타임 (3) – 축복의 성소 (2), 남은 사람들이 겪은 일.
– 엘레나
당황했다. ‘날 잘못된 방향으로 흔들려는 아이?’ 무슨 말이지?
“네?”
“호텔에 두 번째로 들어온 아이. 그 아이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호텔의 극히 일부만 경험한 채로 운이 좋아 나갔음에도, 자신이 호텔과 축복에 대해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지.”
… 아리 이야기인가? 후원자는 아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함부로 흔들리지 말라. 정의의 천칭은 그 기준이 올곧을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하는 것. 천칭을 마음대로 휘둘러서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런 강함은 곧 한계에 도달한다.”
아까부터 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
천칭을 마음대로 휘둘러서 강해진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일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잘 되었다. 그릇된 길을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음이라.”
그녀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신의 차를 다 마신 후, 여인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너에게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는 힘을 내리겠노라.”
…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생각했다.
이 대화에서 생긴 의문점들. 나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까?
아리에게 그냥 직접 물어보자.
아리와 한번 진솔한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
[엘레나 – 정의 -> ‘거짓말 탐지’를 얻었습니다.]*
– 김아리
철컥거리는 소리. 사무실 같은 풍광.
거대한 금고들이 가득 찬 공간.
처음으로 만난 나의 후원자는 양복을 입은 남성처럼 생겨있었다.
.
.
.
많은 대화를 했다. 떠나기 직전, 후원자가 나에게 한가지 경고하였다.
“‘지혜’의 성장이 제법 가파르다. 잊은 건 아니겠지? ‘네 축복’의 성장이 ‘지혜’에 역전되면, 그때 ‘지혜’의 주인은 네가 숨겨온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이번 ‘상식개변 미디어’에서의 소극적인 행동은 패착이라 생각하지 않나? ‘지혜’는 유산을 얻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활약하며 축복을 성장시켰다.
반면, 너는 사실상 전혀 기여도를 쌓지 못했지.”
“주의해야겠네요.”
그 경고를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지상으로 돌아왔다.
*
[김아리 –암시
-> ‘나침반’을 얻었습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축복의 성소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번쩍! 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자, 주변에서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어? 가인이 너는 어떻게 깨어났니?”
주변을 돌아봤다. 진철 형, 엘레나, 아리는 기절하듯이 잠들어 있었다.
예전처럼 축복을 강화하면 하루 동안 기절하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엔 강화하지 않았으니 바로 깨어났구나.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후원자’로부터 좀 더 기여도를 모은 후 ‘아주 강력한 강화’를 얻는 쪽이 어떠냐는 제안받아 수락했다는 말을 전했다.
은솔 누나에게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아주 강력한 강화? 시나리오 이해? 그것만 들어선 모르겠지만 뭔가 거창하긴 한데?”
“그래서 저도 아끼기로 했습니다.”
묵성 어르신도 고개를 까닥거렸다.
“재미있는데? 뭔가 대단한 도움이 될 능력 같다. 그건 그렇고, 너라도 바로 일어나서 다행이구나.”
“네?”
“세 사람. 날라야지. 네가 멧돼지 놈을 업어라.”
“…”
“뭐하냐? 설마 나보고 업으라는 건 아니겠지? 난 이제 걷기만 해도 무릎이 아픈 나이야!”
분명히 예전에 산에선 거의 날아다니셨던 것 같은데.
결국, 어르신이 아리를 업고, 은솔 누나와 송이가 번갈아서 엘레나를 업는 사이에 나는 진철 형을 절반은 업고 절반은 바닥에 끌면서 105호로 돌아갔다.
형이야 튼튼하니까 괜찮겠지.
이렇게 파티 타임 첫날 오전이 지나갔다.
*
105호에서의 점심시간.
평소와는 달리 차진철, 엘레나, 아리 세 사람이 빠지자 뭔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식사 도중 자연스럽게 일정 이야기가 나왔다.
“사파리는 내일 오후에나 가야겠죠?”
은솔 누나가 즉각 대답했다.
“그렇지. 유산을 연습하기 위한 장소라는데, 정작 연습할 당사자가 내일 오후나 되어야 깨어날 테니까.”
“그러면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전까지는 약간 붕 뜨네요.”
묵성 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붕 뜨다니? 가인이 네 일정은 아주 빡빡하지. 너랑 송이, 승엽이는 나와 함께 체력 좀 길러야겠다.”
… 뭔가 다른 핑계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4일 남짓 운동한다고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보다 호텔을 탐색하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무언가 더 숨겨져 있을 겁니다.”
“단련과 탐색을 왜 구분하는 게냐? 설마, 우리가 복도에서 맨몸운동이나 할 것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들어서 알겠지만, 호텔 지하엔 황당한 장소가 많지. 내가 주목한 장소는 ‘등산’과 ‘공원’이다.”
“예전에 ‘등산’은 은솔 누나가 가보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응. 문 열면 산이 나와. 한국에 많이 있는 동네 뒷산 같은 그런 산이 아니고, 진짜 무슨 백두산 같은 큰 산이 나와.”
“문 열면 산이라니. 세상에서 그렇게 이상한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조용! 조용! 그래서, 내 의견은 간단하다. 탐색과 단련을 대체 왜 구분한다는 말이냐?
그 광대한 산에 분명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운동도 할 겸, 산에 뭐가 있을지도 찾아보면 되는 것이지.”
진짜 핑계 없어? 동네 뒷산도 아니고 백두산 같은 곳을 오른다고?
송이가 핑계를 하나 찾아냈다.
“그렇게 위험한 산이면, 특수한 등산복이나 지팡이 같은 등산용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도 없이 지금 우리가 입은 평상복으로는 -”
“걱정하지 마! 수영장에 가면 수영복이 준비되어있는 호텔답게 등산에 들어가면 우리 체형에 딱 맞는 등산용품도 있으니까.”
누나의 경쾌한 대답과 동시에 세 사람의 날카로운 시선이 누나를 찔렀다.
찔렀다. 나는 눈빛으로 누나를 다섯 번 정도 찌른 후 대답했다.
“역시, 이미 경험해본 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누나도 같이 가서 좀 알려주세요. 그 거대한 산을 뒤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결국, 점심 식사 후에 축복을 강화한 세 사람을 제외한 다섯 명 전원이 산을 오르기로 했다.
*
“아! 하늘은 푸르고 공기도 맑다! 이렇게 좋은 장소가 있단 말이냐.”
“…”
4명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호텔 지하에서 ‘등산’이라고 적힌 방 내부로 들어서자, 은솔 누나의 말대로 산이 튀어나왔다.
저주의 방처럼 무슨 세계 하나가 통으로 형성된 느낌은 아니었다.
광대한 땅에 등산을 위한 산과, 등산용품 등이 준비된 방만 떡 하니 존재하는 기이한 구조.
그냥 마음 편히 생각하자.
어차피 언젠가는 숨겨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호텔을 최대한 뒤져야 할 것이 아닌가.
탐색하는 겸 운동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할아버지가 산에 가자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으면 아무도 산을 뒤지고 다닐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등산용품이 준비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딱 내 체형에 맞는 각종 등산복, 등산화, 지팡이, 배낭, 간단한 물과 에너지바까지 철저히 준비된 모습.
심지어 더 거창한 물품들도 보였지만, 그냥 배낭 하나만 챙겼다.
최대한 느릿느릿 챙기던 승엽이를 할아버지가 끌어냄과 동시에 등산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승엽이와 은솔 누나가 가장 처지기 시작했다.
승엽이는 할아버지가 종종 지적했듯이 뭘 잘 먹지도 않고 게임만 오래 해온 마른 체형이었다.
누나는 본인은 나름대로 헬스 정도는 했다고 주장하지만, 사무실에서 오래 일한 여성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의외로 송이는 그다지 불평 없이 잘 오르는 편이었다.
어르신은 말을 말자. 혼자서 정상까지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진행 속도에 의해 어르신, 나와 송이, 승엽이와 은솔 누나 3개 그룹으로 분리됐다.
“생각보다 잘 걷네? 등산 같은 것도 자주 한 거야?”
“집에서 개를 여러 마리 기르니까요. 산책을 열심히 해서가 아닐까요?”
호텔고에서 철인 3종을 할 때의 송이는 굉장히 뒤로 쳐졌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때는 정말 대충 했나보다.
“대체 할아버지는 왜 우릴 이런 곳으로 끌고 온 걸까?”
“말씀하시기로는 탐색도 할 겸, 체력도 기를 겸이라고 하신 것 같네요.”
“매일 고생 중인데, 무슨 고생을 새삼 더해서 체력을 기른다는 거야? 게다가 탐색할 장소는 다른 곳도 많은데 하필 이렇게 힘든 장소를 고르다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걷다 보니까 이 산에는 진짜 뭔가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송이 말을 듣고 주변을 돌아봤다.
확실히 이질적인 풍경. 그 어떤 괴물도 짐승도 없지만, 순수하게 산의 풍광만으로 이렇게 이질적일 수 있다니.
내가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나무들도 나름대로 유형이 있지 않던가?
침엽수, 활엽수 등 기후에 따라 자라는 나무들이 다르게 마련인데, 이 기묘한 산은 온갖 나무들이 섞여 있었다.
진짜 뭔가 있나?
뭔가 있을 만한 장소라면, 무조건 등산로만 따라서 걷기보다는 좀 더 주변을 살피면서 걸어야 하지 않을까?
등산로를 벗어나서 산 전체를 헤집고 다닐 생각까지는 없지만, 등산로 주변 정도는 살피면서 산을 오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혼자 산만 걷고 있으면 정말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송이랑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재밌는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는 재밌었다.
…
1시간이 흐른 후, 산은 적막으로 가득 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피곤한데 대체 무슨 대화는 대화. 그냥 땀방울을 흘리며 걸어가는 데 온 정신을 쓰느라 바빴다.
나와 송이도 결국은 속도 차이가 나면서 송이가 뒤로 사라져갔다.
앞으로 쭉쭉 나가던 할아버지가 페이스 조절이라도 했는지 슬쩍 나와 가까워졌다.
“땀 좀 뺐냐?”
“죽을 맛입니다.”
“가끔 이런 때도 필요하다.”
“가끔요? 여기 들어온 후로는 매일 죽을 맛입니다만….”
“저주의 방에선 몸이 힘들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진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잖냐. 말하자면 전쟁터이지.
나는 좀 여유롭게 땀을 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게다.”
“별 여유는 못 느끼고 있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걸으면서 저주의 방이니 관문의 방이니 시련이니 하는 생각은 좀 덜어내지 않았느냐?”
“…”
틀린 말은 아니다. 하도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잘 계시냐?”
그걸 시작으로 할아버지와 나는 일상 대화를 한참 이어 나갔다. 대화하다가 느꼈지만, 할아버지는 딱히 내 가족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이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느낌이다.
초현실성으로 가득 찬 기묘한 호텔에서,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그 자체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네요. 이런 이야기들. 오히려 밖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평범한 대화였을 텐데, 여기서 하니까 굉장히 특이한 대화 같아요.”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이기도 하지.”
긴장감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몸은 꽤 힘든 상황인데도….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 기묘한 감각.
멍하니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가, 주변의 특이한 나무들도 돌아보았다.
나무들 사이에서 방긋거리는 소녀가 날 쳐다보는 걸 보며 가볍게 손도 흔들었다.
…
?
아니, 이거 좀 힐링하는 시간 아니었어? 또 뭔데?
갑자기 이런 곳에 여자애가 왜 나타나?
화들짝 놀라서 나무들 쪽을 돌아봤다!
여자애는 여전히 방긋거리고 있고, 내 반응을 보고 어르신도 놀라서 그쪽을 살폈다.
나이는 대충 10대 중반? 복장은 험한 산에서 입고 있다기엔 믿기지 않는 기묘한 복장.
뭔가 동양 계통의 전통 복장 비슷하게 생겼는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누구냐!”
방긋거리던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뜬금없는 산속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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