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0)
괴담 호텔 탈출기 820화(819/836)
820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9)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관측소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호텔에서 보낸 알림.
당연하게도, 관측소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 갑자기 뭐야?”
“무슨 일이죠?”
“으앗! 진철 형하고 송이 누나, 미로까지 아까 자러 갔는데 -”
“당장 깨워! 갑자기 난리잖아?”
혼란스러운 분위기도 길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현자의 조언 : 3」
.
..
…
처음으로 든 생각은 주변이 건조하다는 것.
대기 중에 수분이 하나도 없어서 입안이 바짝 마를 정도였다.
게다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거셌다.
“으읏! 모래바람이… 다, 다들 거기 있어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송이 목소리.
동료 위치 정보를 확인하니, 다들 근처에 있었다.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신성한 태양부터 소환하자.
— 화르르!
“자,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곧, 모두가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조금 춥네.”
“으! 모래 먼지가 너무 거슬려요. 바람도 강하고.”
“험피, 이쪽에서 바람 좀 막아줘.”
— 꾸르륵!
그리고 잠시 침묵.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신성한 태양의 불빛만 바라보고 있다.
누가 보면 신성한 태양에 홀렸다고 오해할 만한 모습들.
실제로는,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상태에 가깝겠지.
상상도 못 한 타이밍에 갑자기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했으니까.
“하아암…!”
“미로!
“음, 미안.”
“하암!”
“…”
“죄송해요, 언니.”
심지어 몇몇 동료는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최소한의 상황 정리부터 하자.
“다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하실 겁니다.”
자연히 모여드는 동료들의 시선.
“세상이 갑자기 왜 망한 거야? 하시고 있겠죠.”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말 직전에 알레프가 아리에게 말했습니다. 열차에 악마가 있다. 악마는 바꿔서는 안 되는 역사를 바꾸려 한다.”
“바꿔서는 안 되는 역사?”
“가장 거대한 나무도 처음에는 콩알만 한 씨앗이었다. 최초의 씨앗을 부수면, 거대한 나무도 허무하게 사라진다.”
“…”
“여기까지 들으면 느낌 오시나요?”
과연, 상현 형이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악마’라는 존재가 시간 여행 열차를 이용해서 역사를 바꾼 겁니까?”
“그렇죠. 그래서 문명이 무너진 것 같네요.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
“그래, 송이가 들었던 비유가 좋겠네. 포크죠.”
“포크?”
“인류 역사를 한 권의 책이라 칩시다. 악마가 열반 열차라는 포크를 들고 책을 찔렀어요. 그래서 1,976페이지와 2,021페이지가 한꺼번에 찢어진 겁니다. 아리랑 할아버지가 있던 시간대가 모두 무너졌거든요.”
은솔 누나가 한숨쉬며 말했다.
“휴우. 전에도 그랬지만, 그놈의 시간 이야기는 알아듣기 어렵네. 상현 씨는 이해가 되세요?”
“양자역학처럼 생각 중입니다.”
“예?”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우주의 법칙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
“…”
“이해하기 쉬운 주제로 갑시다. 가인 군, 그래서 요원님과 아리 양은 죽은 겁니까?”
이 부분이 특이했다.
“할아버지는 죽었습니다. 망원경으로 봤는데, 말 그대로 숨 한번 못 쉬고 모래 먼지처럼 흩어졌죠.”
“할아버지는? 그건 마치…”
미로가 상현 형이 하려던 말을 대신 했다.
“아리는 살아있어?”
“그런 것 같네. 동료 위치 정보에 위치가 나와.”
“어디 있는데?”
“서울역. 종말 직전에 있던 위치 그대로야. 참고로 우리는 인천에 있다고 나와.”
송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왜 아리만 살아있는 거죠?”
“…”
“할아버지는 먼지처럼 흩어졌다면서요? 왜 아리는 살아있어요?”
“글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네.”
그럴듯한 가설이 떠오르긴 했지만, 섣불리 결론 내리기엔 이르다.
“우선, 시나리오 이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 역시 손가락을 뻗어 상태창을 조작하려는 시점.
— 쿠궁!
갑자기 대지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엇! 으앗!”
“이런! 설마 지진이냐?”
“이 기운 대체 뭐야? 무슨, 세상을 삼킬 것 같은…!”
— 고오오오…!
처음에는 땅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낮고 거대한 굉음이었다.
어느새 바람이 멈추었고, 가장 작은 벌레들조차 겁에 질려 땅속으로 숨었다.
하늘은 삽시간에 검푸른 구름으로 뒤덮였다.
거대한 존재가 현실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야는 진즉 흐려졌지만, 보이지 않는 악의가 모든 것을 짓누른 지 오래.
무자비한 존재가 창백한 하늘을 가득 채울 무렵,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저 존재를 알고 있다!
「조언 : 3 -> 2」
‘상대가 너를 알아볼 수 있으니, 주의하라.’
위기 알림을 보는 순간, ‘설마’ 했던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존재.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
태고 문명의 후예.
현세의 인류를 원수로 여기는 자.
뒤틀린 왕자.
영혼 수확자.
달의 악마, 에밀리오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에밀리오를 보았다.
에밀리오는 나를 보았다.
당장이라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순간.
…
기이하게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올빼미가 ‘주의하라’고 했을 뿐, 숨으라거나 도망가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호텔이 우리를 시작과 동시에 몰살당하는 판에 던질 리 없으니까?
이것들도 일리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에밀리오를 안다.
지금달의 악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보였다.
뇌를 후벼 파는듯한 고통과 함께 시작된 대화, 아니 일방적 소통.
「구원자」
「연구원」
「마법사」
「선생님」
「배신자」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시간은 지금이 아닌 것 같네요.」
「다음 기회에.」
「그때는 방해자가 없었으면.」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계시길.」
— 스아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을 때, 하늘을 가득 메웠던 악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에밀리오가 지구를 떠난 것이다.
*
다시 고요해진 세상.
— 털썩!
동료들이 잠깐 사이에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은솔 누나였다.
“방금저거, 달이었지?”
“그렇네요.”
“가인아, 나 진짜 303호 시작된 후로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아.”
“…”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는 방은 처음이야. 방금은 대체 뭐야? 달이 왜 나타났고, 왜 사라졌어?”
“…”
“우릴 살려준 이유는 또 뭐고?”
이 부분은 상현 형이 답했다.
“굳이 따지면, 죽일 이유가 없지요. 은솔 양, 달의 악마는 가인 군에게 제법 호의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OK! 그건 이해했어. 근데, 저게 왜 갑자기 나타난 거야?”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303호 전반의 상황이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달과 관련한 이야기는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나타난 이유는 간단하죠. 303호 루프는 현실과 가깝잖아요? 이 시점의 달은, 음, 수확 직전의 과일과 같죠. 다 익은 상태입니다.”
송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방금 표현 살짝 이상하네요. 각성 직전도 아니고, 수확 직전의 과일이라니.”
“… 각성 직전이라고 할게. 어쨌든, 이 시대의 달은 301호, 302호와 다릅니다. 힘이 아주 강해요. 조건만 맞으면 지금처럼 깨어나죠.”
“조건이라면?”
“충분한 시간이 흘렀고, 봉인이 파괴될 것. 둘 중 하나만 충족되어도 깨어납니다.”
누나가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아니야? 303호 루프는 호텔 바깥보다 몇 단계 전 루프잖아. 이 시기엔 2070년 이후에 깨어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시간상으로는 40년에서 50년은 남은 것 아니냐는 지적.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된 거죠. 봉인 파괴.”
“…”
“잊지 마세요. 206호처럼, 현실에서도인류의 영적 질량 자체가 달을 억누르는 봉인 중 하나였습니다. 가장 큰 무게추가 사라지자 달이깨어난 겁니다.”
달의 각성이 제법 충격이었는지, 진철 형이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깨어난 건 그렇다 치고, 왜 사라진 거냐?”
이거야말로 아주 쉬운 질문이다.
“도망간 겁니다.”
“뭐?”
“지금 상황, 에밀리오의 시선으로 보시길.”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손을 뻗어 주변을 가리켰다.
곧, 형이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 달의 악마가 보기엔눈 감았다 뜨니까 세상이 망했구나. 갑자기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온 세상이 모래성처럼 사라졌어.”
“그렇죠.”
“정체불명의 위대한 자가 지구에 개입 중이라고 판단한 거야. 맞지?”
“그러니까 지체없이 도망간 겁니다.”
관리국이 보는 달은 파멸의 왕이요, 흉측한 마신이나 다름없다.
위대한 자의 시선에선 어떨까?
301호, 이스의 왕과 그 권속이 지구를 점령했을 때, 달은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302호, 여명의 아들은 본체를 현실에 불러내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어렵지 않게 달을 봉인했다.
에밀리오는 진실로 위대한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
격차가 크진 않다.
지금 시점의 에밀리오라면위대한 자와의 격차는 딱 한걸음 못 미치는 정도.
하지만, 그 한걸음은 신과 신이 아닌 자의 차이였다.
에밀리오에게 억겁의 세월이 주어진다 해도 쉬이 좁힐 수 없는 차이이기도 했다.
…
그건 그렇고, 303호에서 에밀리오를 어떻게 이용할 수 없을까?
이 정도 생각 중일 때,상현 형이 입을 열었다.
“가인 군.”
“네.”
“방금 가인 군의 말을 곱씹다가 든 생각입니다만…”
“말하시죠.”
“달이 지금 깨어난 건 봉인이 약해져서라고 하셨죠?”
“네.”
“인류의 영적 질량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아까 이야기하신 내용, 최초의 씨앗 이야기를 합치니까 드는 생각인데…”
“…”
“혹시, 지금 지구에 ‘인간’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겁니까? 설마?”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손가락을 뻗었다.
「시나리오 이해 : 무인 행성으로 변한 지구.
호텔 파티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