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1)
괴담 호텔 탈출기 821화(820/836)
820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0)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목적지는 아리가 있는 서울역이다.
물론, ‘서울역’이라는 구체적인 건물이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향하는 길.
문명이 멀쩡했다면야 차 타고 1~2시간이지만, 걸어가면 반나절은 걸린다.
우리가 일반인은 아니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는 휴식 시간에 미로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가인아, 아리 위치는 그대로야?”
“계속 서울역이야.”
“꿈의 왕국은 여전히 쓸 수 없어?”
“응. 깨어있는 건 아닌데, 꿈을 꾸지 않네.”
“아니, 그러면 인천에서 서울까지 걸어가야 하는 거냐구!”
미로가 불평하자 승엽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걷긴 뭘 걸어? 가인 형이 널 한 손으로 들고 비행하는 거 봤는데.”
“쪼금 전에 걸었잖아!”
“10분?”
“야!”
송이가 살짝 끼어들었다.
“승엽아, 미로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마. 꽤 힘들 거야.”
흔치 않게도 미로 편을 드는 송이의 태도에 승엽이가 어이없어했다.
“누나는 험프티덤프티 타고 왔잖아요.”
“나도 힘들어.”
“누나가 아니라 저 괴물이 힘들죠.”
— 꾸르륵!
“아, 혓바닥 치워!”
괴물이라는 표현이 불쾌했는지, 험프티덤프티가 승엽이를 핥으려 했다.
— 휘이잉!
어수선한 휴식 시간.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으으… 조금 춥네요. 험피, 내 쪽으로 더 붙어.”
— 꾸르륵!
“난 추운 것보다 모래가 휘날리는 게 더 싫어. 왜 이렇게 기후가 이상한 거야?”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 같습니다. 그래서 추운 거고, 모래 먼지가 가득한 건 건물이 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이라…
지금 시기는 10월 말 정도인 건가?
그럴듯한 가설이 하나 떠올랐다.
“지금 시기는 종말 직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생각 중이었는지,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리를 관측해서 아는데, 종말 직전은 봄이었어. 8개월 이상 흐른 걸까?”
“연 단위일 수도 있죠.”
“그러면, 지금 아리 상태는…”
“동면 중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상현 형이었다.
“오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열차의 악마가 정확히 무슨 짓을 했을까?”
자연스레 형에게 쏠리는 동료들의 시선.
“여러분, 혹시 병목 현상이라는 개념 들어보셨습니까?”
몇몇 동료들이 답을 고민하는 듯했지만, 형은 바로 답을 던졌다.
“자연재해 등으로 특정 종이 멸종위기에 처한 후, 위기가 사라지자 살아남은 개체들이 번식하며 다시 수를 불린 상황을 말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몇몇 동료들.
“예를 들어봅시다. 1,000 마리의 토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활한 여우들이 998마리의 토끼를 잡아먹어 딱 2마리의 토끼만 살아남았지요. 이 상황에서 여우들이 전부 사라졌고, 2마리의 토끼가 열심히 번식해 다시 수를 불렸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까요?”
미로가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여우가 배가 아주 고팠나 봐…”
상현 형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 토끼라는 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좁아지게 됩니다.”
이쯤에서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2마리의 선조 토끼가 이후의 모든 토끼의 조상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여우라는 위기를 넘긴 후의 모든 토끼는 큰 틀에서 친척입니다.”
“으음…”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가? 예시에서 토끼에게 벌어진 일이 인류에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표정을 짓는 동료들을 보며 형이 설명을 이어갔다.
“약 7만 년 전, 인류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기후변화 내지는 자연재해로 추정하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여러 학자는 당시 인류의 수를 5,000명 이하, 심하면 1,000명 이하로 추측합니다.”
약 7만 년 전, 인간에게 있었던 병목 현상.
“이 때문에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른 생물종에 비해 매우 낮은 편입니다. 80억 인구의 유전적 다양성이 침팬지 한 무리보다 부족하고, 개, 고양이, 소와 같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지 듣자, 상현 형이 하려는 말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80억 인류 전체를 살해한다? 선악을 떠나서,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중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 여행 열차를 타고 7만 년 전으로 갈 수 있다면…”
“많아야 5,000명만 살해하면 되는 겁니다.”
“심지어 원시인 5,000명이네요.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우리 중 누구라도 가능한 숫자죠.”
80억 인류를 전부 죽이는 건 어렵다.
원시인 5,000명을 살해하는 건 훨씬 쉽다.
이것이 악마가 불러온 재해의 본질이다.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진철 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았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냐? 가인아, 시나리오 이해에 뭐라고 나왔다고?”
“무인 행성으로 변한 지구. 호텔 파티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라네요.”
“이해가 안 가네. 야,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희망을 어떻게 찾냐?”
“…”
“함부로 할 말 아니긴 한데, 여기서 끝나야 정상 아닌가? 그냥…”
“바로 우리 패배로 끝나야 정상이다?”
차마 이 말은 못하겠는지, 진철 형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 같은 생각 했으니까.”
진철 형의 말도 일리 있다.
나도 시나리오 이해를 보고 처음 떠올린 생각이 그거였으니까.
이미 인류가 다 사라졌다면서 희망은 무슨 희망이야?
여기서 우리 패배로 끝나야 정상 아닌가?
그때, 승엽이가 모기만 한 소리를 냈다.
“저기, 저기…”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 모습.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 중인지 짐작이 갔다.
“아까 의사 선생님이 토끼 비유를 들어서 생각난 건데…”
“…”
“우, 우리가…”
이쯤에서 송이가 나섰다.
“그만.”
“…”
“토끼 생산 계획은 절대 불가야.”
토끼 생산 계획.
돌려 말하는 듯하면서도 대단히 직설적인 표현이라 여러 동료가 흠칫했다.
솔직히, 나도 아까 ‘토끼 생산 계획’을 떠올리긴 했지.
가장 늦게 이해한 사람은 미로였는데, 이해하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얘, 얘는 진짜 뭔 소리 하는 거야!”
절대 안 된다.
언젠가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겠지.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고, 사랑의 결실을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장소가 ‘저주의 방’이어선 절대 안 된다! 절대로!
막말로 탈출 판정이 뜨면서 방이 리셋되면 어쩌려고?
“형, 생각 중인 계획이라면 있습니다.”
“오호! 그럴 것 같더라. 뭔데?”
“우선, 아리와 합류부터 해야겠네요. 자, 다시 출발!”
“… 설명하고 출발해도 되는 거 아니냐?”
*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서울역에 도착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종말 전 서울역이 존재했던 장소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가인아, 근처 어딘가에 아리가 있는 거지?”
“아마 지하에 있을 겁니다.”
상태창이 아리가 동면 중인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진 않았다.
별수 없이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아리가 잠든 장소를 찾는 상황.
괴이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게 뭘까요?”
엘레나의 의문에 상현 형이 나름대로 답했다.
“일종의 목조 주택처럼 보이는군요.”
“집이라기엔 어, 좀 다른 것 같은데… 꽤 크기도 하고요.”
“하나 확실한 건, 종말 이후에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종말 이전에 인류가 만들어 낸 건축물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므로 이 건축물은 종말 이후에 만들어진 것.
“아리가 만든 건가요?”
“아마도. 근처에 나무 등을 베어서 만든 것 같습니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건축물.
하지만, 아리 혼자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이기도 했다.
건축물의 규모를 보자 든 생각.
“지금, 종말 이후로 몇 달 지난 시점은 절대 아니군요.”
진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몇 년은 흐른 것 같은데.”
그때쯤, 송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 관 찾았어요! 페로가 찾았어요! 잘했어!”
*
아리를 깨우자마자 제일 처음 던진 질문은 간단했다.
“아리야, 지금 몇 년 지났어?”
한참 동안 어딘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리가 간단히 답했다.
“최소 2년.”
“최소?”
“잠들어 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네.”
“깨어있던 시간은 2년 조금 안 되었다는 뜻이지?”
“응.”
“그러면, 2년 만에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만든 거야?”
“혼자 만든 건 아니야.”
“음?”
“알레프랑 같이 만들었어.”
“…”
“알레프에게 유용한 도구가 많았지. 도움이 많이 됐어.”
“다행이네.”
태고의 인과가 무너지며 인류가 사라진 혼돈 재해.
알레프 역시 아리처럼 영향받지 않은 모양이다.
송이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아리야, 이 건물 대체 뭐야? 처음엔 황무지에서 혼자 버티려고 집을 지은 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기엔 너무 커서 -”
“기차역.”
“아?”
순간,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송이.
반면, 아리의 말에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눈을 크게 뜨는 동료들도 있었다.
“기차역! 아리 양, 설마 서울역을 다시 만든 겁니까?”
“어설프긴 하지? 그렇지만, 찾아보면 철로 비슷한 것도 보일 거야. 땅을 파서 만들었어.”
알레프와 함께 2년에 걸쳐 ‘유사 서울역’을 다시 만든 아리.
이쯤에서 은솔 누나가 손뼉을 쳤다.
— 짝!
“이거구나…! 이거였어! 인류가 멸종했다길래 뭘 어쩌라는 건가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상현 형.
“시간 여행 열차 때문에 세상이 망했으니, 시간 여행 열차의 힘으로 다시 복구하면 됩니다. 열차가 오는 시기가 언제라고 했죠?”
다음 열차가 오는 시기.
알레프가 아리에게 말해줬었지.
아리가 답했다.
“종말 시점에서 6년 후, 서울역.”
“하하! 이래서 아리 양과 알레프 군이 서울역을 다시 구현했군요!”
“그래, 그랬지…”
“제대로 된 기차역이라기엔 조금 부족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어느새 표정이 밝아진 은솔 누나도 동조했다.
“맞아요. 시간 여행 열차는 진짜 열차가 아니라 일종의 혼돈 재해니까요. 이렇게, 기차역 비슷하게 흉내만 내도 되겠죠.”
이렇듯, 방향성을 찾은 동료들이 기세를 올리는 시점.
아리에게서 기이할 정도로 우울한 분위기를 느꼈다.
— 툭!
“왜 그래?”
“…”
“이제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야? 조만간일 것 같은데.”
“… 마지막까지 날 도운 사람을 의심했던 게 씁쓸해서.”
마지막까지 아리를 도운 사람.
의미심장한 표현이라 느끼며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알레프는 어디 있어? 건축에 도움을 줬다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멀쩡했던 모양인데.”
“죽었어.”
삽시간에 조용해진 동료들.
상현 형이 조심스레 물었다.
“알레프 군은 어쩌다가 죽은 겁니까? 물론, 세상이 망했으니 급사할 만한 이유야 널렸겠습니다만…”
아리의 다음 대답은 우리를 더욱 조용하게 했다.
“자살.”
“…”
“참, 잊을 뻔했네.”
아리가 갑자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알레프가 죽기 전에 쓴 쪽지 같은 거야.”
“알레프의 유서?”
“유서… 뭐, 비슷하겠지. 내용은 되게 짧아. 그런데 읽을 수가 없었어. 봐봐.”
아리의 말대로 알레프의 유서에 적힌 글은 아주 짧았다.
“모르는 문자야. 아마, 아주 오래전에 썼던 문자가 아닐까?”
정체불명의 문자로 쓰인 알레프의 유언.
아리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아리 자신은 읽을 수 없었지만, 너라면 읽을 수 있지 않냐는 뜻이 담긴 시선.
“모르겠네.”
“… 정말?”
“응. 말했잖아? 오래전의 기억은 내게도 희미해. 이런 희한한 문자까지 읽는 건 무리야.”
“후유… 어쩔 수 없네. 그래, 이제 다 같이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
오늘 열차가 올 것 같진 않았기에 삼삼오오 흩어져 눈을 감는 동료들.
눈을 감기 직전, 알레프의 유언을 떠올렸다.
‘네가 부럽다.’
*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소리를 들었다.
“열차가 곧 도착하겠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The train is approaching. Please step back.”
열반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