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2)
괴담 호텔 탈출기 822화(821/836)
822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이른 시간, 누군가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 봐.”
“으음… 무슨 일이야?”
아리였다.
첫 문장은 다소 급작스러웠다.
“기억이 안 나.”
“…”
“최초의 소원은 물론, 오래전에 열차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나.”
“…”
“이게 무슨 뜻일까?”
첫 회차를 겪으며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을 전혀 떠올리지 못한 아리.
앞서 301호와 302호를 경험한 만큼, 이유는 짐작했다.
“전개가 달라졌나 보네.”
아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예전의 열차에 탔을 때는 내리지 않았나 봐.”
종말 전, 아리와 알레프의 대화에서 이미 지적된 사항.
아리는 열차에서 내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요번에 내가 내린 이유는 자의가 아니었다는 거야. 모종의 정신 공격이 있었어.”
“악마가 공격했겠지. 아마도.”
“호텔에 오기 전엔 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거야?”
아리의 의문은 간단하다.
최초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음은 전개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아마도, 아리가 과거에 열차를 탔을 때는 중간에 내리지 않았겠지.
한데, 이번에 아리가 내린 이유는 악마의 공격 때문이다.
과거에는 악마의 공격이 없었던 걸까?
“집중력의 문제일 수 있어.”
“집중력?”
“당시엔 빠릿빠릿한 요원 아리였으니까, 긴장한 상태로 온 사방을 주시했겠지.”
“…”
“정신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했을 거야.”
“이번엔?”
“나이가 들며 느리고 둔해진 아리라서 – 아얏!”
한 대 맞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 옆에 알레프가 있었잖아.”
“…”
“알레프를 과도하게 의식하느라 되려 다른 요소를 의식하지 않았을지도.”
“흐음… 일리 있네. 뭐, 나도 비슷한 생각 하긴 했는데.”
“이 이야기 하려고 깨웠어?”
“하나 더. 알레프랑 악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거든.”
“뭐라고 했는데?”
“그리 속 시원한 대화는 아니었어. 그 녀석의 기억이 불완전하기도 했고, 악마에 대해선 애초에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아리가 답했다.
“알아. 어쩌면, 구체적인 정보는 숨겼을 수도 있지.”
“…”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었어. 알레프의 말에 따르면, 몇 번인가는 악마와 협상한 적도 있다고 해.”
“소통은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네.”
알레프는 악마와 협상한 적 있다.
“악마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 같대.”
“으음…”
“사악한 존재라 인간을 해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이런 개념은 아니었어.”
“악마가 추구하는 목적은 따로 있고, 그걸 이루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세상이 망하는 느낌인가?”
“그렇지.”
악마의 목적은 인류 종말이 아니다.
목적은 따로 있고, 그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파멸이 따라오는 것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깨웠어. 아직 이르니까 조금 더 자.”
*
오전, 첫 차 시간이 되자마자 모두가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 덜컹! 덜컹!
“열차가 곧 도착하겠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The train is approaching. Please step back.”
동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결의를 다지는 시점.
품속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진다 싶더니, 무슨 증강 현실 이미지 같은 게 나타났다.
————————————
[악마]1. 악마에게는 나름의 목적이 있습니다.
– 한 번쯤 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이게 뭐야?”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품속의 노트가 말해왔다.
‘위 문장은 당신이 얻은 정보고, 아래 문장은 정보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 물어본 적 없는데?
‘절 믿으시길. 이제부터 함께 가는 겁니다.’
“아니, 도와달라고 한 적 없다니까.”
‘우린 원 팀입니다. 흔들림 없이 천국까지 가는 거죠.’
진철 형이 무슨 일이냐는 듯 내 쪽을 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냐?”
“… 아닙니다. 이상한 잡음이 들려서요.”
‘주의하십시오. 차진철의 청각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새벽의 대화도 이 자가 엿들었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새벽에 아리랑 이야기할 때 진철 형이 몰래 들었다고?
… 이상한 생각 할 필요 없어.
자는데 옆에서 소곤소곤하니까 깼겠지.
이 정도는 그냥 속 시원히 말해 보자.
“새벽에 좀 시끄러웠죠?”
그 말에 진철 형이 멋쩍은 듯 웃었다.
“깨어있는 거 알았냐? 아, 중간부터 너랑 아리랑 말하는 게 들려가지고… 뭐, 별 내용 아니던데?”
“자는데 괜히 방해했네요.”
“야, 야! 열차 들어온다.”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첫째, 몇몇 동료의 신체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인데, 나랑 아리가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생각.
다행히 어젯밤의 대화는 정말 별것 아니었지만…
기밀을 요하는 대화를 나눌 일이 있다면, 더욱 신경 써야겠지.
둘째, 이 기이한 노트가 쓸데없이 유용하긴 하다는 생각.
‘쓸데없이와 유용하다는 양립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도착했어요!”
— 덜컹!
자연스럽게 모두의 앞에서 열린 문.
“그럼, 타면 되는 거지?”
미로가 용감하게 다가가려는 시점.
— 덥석!
“잠깐.”
아리가 미로를 붙잡으며 말했다.
“들어가서 어떻게 할 거야? 다들 생각해 봤어?”
상현 형이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제 이야기 끝낸 것 아닙니까? 태고의 시대로 가서 뒤틀린 역사를 다시 바로잡아야죠.”
“정확히 어느 시대로 갈 건데? 7만 년 전? 7만 2000년 전? 7만 4000년 전?”
상현 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직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절한 역에 내려달라고 부탁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흐음… 일리 있네. 시기 문제는 직원에게 부탁한다 치고, 문제가 하나 더 있어.”
간밤의 대화 덕에 아리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악마의 방해다.
“악마는 어떻게 할 거야? 태고의 역사를 뒤튼 존재. 인류를 멸종시킨 존재.”
상현 형이 답했다.
“싸워서 죽이든지 봉인하든지 해야겠지요. 태고의 시대에 있을 테니까요.”
이쯤에서 결정을 내렸다.
“악마도 막아야겠지. 목표 하나, 역사를 바로잡는다. 목표 둘, 악마를 막는다. 이 정도 생각하고 타자.”
“좋아.”
————————————
[목표 설정]1. 인류 멸종 사태를 바로잡는다.
2. 열반 열차의 악마를 막는다.
————————————
“… 쓸데없는 짓을.”
“왜 그래?”
“아니야.”
아까부터 어설픈 후원자가 하나 추가된 듯한 느낌.
기이할 정도로 호텔에 대해 잘 아는 존재.
미묘하게 지혜의 후원자를 연상케 하는 능력.
이쯤 되자 ‘불령해탈’이 본래 어떤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덜컹!
*
열차 내부 모습은 익숙했다.
천상에서 아리 시점으로 관측한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승객이 우리뿐이었다.
“어… 아리야?”
“…”
“아리야, 본래 다른 사람이 되게 많지 않았어?”
왜 아무도 없냐는 송이의 질문.
“그랬지.”
“지금은 왜 아무도 없는 거야? 우리뿐인데?”
“그러게.”
아리도 모르는 것 같다.
————————————
[열차]1. 종말 이후엔 승객이 아무도 없습니다.
————————————
미로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열차가 다 죽인 거 아니야?”
답변은 즉각 돌아왔다.
“손님, 오해입니다.”
분명 열차 칸 내엔 우리뿐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나타난 직원.
검푸른 튜닉, 50대 중반의 외견, 장신의 남성.
외모는 관측소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미 저에 대해 아시는 것 같으니, 자기소개를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요?”
“…”
“어린 손님의 오해는 바로잡지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승객을 해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열차는 승객을 해치지 않는다.
뒷받침하는 증거 따위는 없다.
열차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한 직원의 일방적 주장이 있을 뿐.
그렇지만, 이 말은 진실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 느낌조차도 위대한 자의 장난질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
[열차]1. 종말 이후엔 승객이 아무도 없습니다.
2. 열차는 승객을 해치지 않습니다.
– 물론, 그들의 주장입니다.
————————————
진철 형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러면, 다른 승객은 어디로 간 겁니까?”
직원의 답변은 간단했다.
“열차는 승객 간의 분쟁에 관여치 않습니다. 다만, 청소와 뒷정리는 해드리지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동문서답을? 내 질문은 -”
“… 진철아, 됐어.”
은솔 누나가 굳은 표정으로 형의 팔을 당겼다.
누나는 직원의 말을 이해한 것이다.
————————————
[열차]1. 종말 이후엔 승객이 아무도 없습니다.
– 승객들끼리 싸우며 서로를 해쳤다고 합니다.
2. 열차는 승객을 해치지 않습니다.
– 물론, 그들의 주장입니다.
————————————
승객들끼리 싸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보에는 생각보다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의문을 품은 시점,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손님 여러분, 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과거의 아리는 표 같은 게 어디 있냐며 황당해했지.
이번에는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아리를 관측하며 얻은 정보.
열차에 탑승하면, 표는 저절로 생긴다.
과연, 품속에 뻣뻣한 종이가 있었다.
“기원전 72,493년?”
“히말라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목적지가 같은 것 같다.
상현 형이 질문했다.
“구체적인 시간대와 위치군요. 이곳이 여러분이 우리를 보내려는 곳입니까?”
직원이 빙그레 웃었다.
“손님, 우리가 여러분을 보내는 게 아닙니다.”
“…”
“여러분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할 뿐입니다. 선택은 손님이 하시는 겁니다. 열차가 하는 게 아니지요.”
표현이야 어찌 됐든, 아까 상현 형의 추측이 맞았구나.
‘정확히 어느 시대로 갈 건데?’
‘직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절한 역에 내려달라고 부탁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승객은 ‘무엇을 하겠다’라는 목표만 명확히 세우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정확한 위치는 열차가 알아서 찾아서 안내해 준다.
서서히 상황이 정리되는 시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다들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옆에 있던 엘레나가 바로 표를 보여줬다.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
도착 : BC 72,493년, 히말라야
승차자 : 엘레나
“네.”
“…”
“왜 그러세요?”
“다들 엘레나랑 똑같나요?”
미로가 고개를 까딱이며 표를 보여줬다.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
도착 : BC 72,493년, 히말라야
승차자 : 미로
“응. 승차자 이름만 달라.”
“…”
“가인이는 어떤데?”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
도착 :
승차자 : 한가인
“어? 왜 도착지가 비어있어? 직원 씨 – 어라?”
“그새 사라졌군요.”
어느새 사라진 직원.
— 덜컹!
열차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아마도, 동료들의 도착지인 ‘BC 72,493년, 히말라야’를 향해 가고 있겠지.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은솔 누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태고의 역사를 복구하기. 이건 음, 대충 알겠어. 고대 히말라야에 가서 뭔가 하면 되겠지?”
“그렇죠.”
“그러면, 악마를 막는 건 어떻게 해?”
아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상현이가 말했잖아. 죽이든지 봉인하든지 해야지. 어디 있는지도 나왔네.”
“기원전 72,493년, 히말라야. 이 위치에 악마가 있는 건가?”
“거기서 원시인 무리를 죽이고 있든지 하겠지.”
— 덜컹!
곧 열차가 정차합니다.
“어엇! 벌써?”
“느려집니다! 곧 멈출 것 같네요.”
“다음 역에서 내리면 되는 거지?”
“그런 것 같아요. 음, 내려서…”
혼란스러워하는 엘레나를 보며 상현 형이 다짐하듯 말했다.
“내려서 사람들을 찾아봅시다. 아마, 악마에게 습격당하는 원시인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지켜내면 될 것 같습니다.”
기원전 72,493년, 악마에게 공격받는 원시인 무리를 구하면 된다는 게 상현 형의 생각.
그럴듯했다.
— 끼익!
문이 열렸다.
“자, 내립시다!”
동료들이 하나둘 내리는 시점.
나는…
돌처럼 굳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뭐해?”
“…”
“빨리 내려. 나 관측하면서 봤잖아? 안 내리면 열차가 곧 이 역 지나칠 거야.”
“…”
— 끼익!
“아앗! 닫힌다. 빨리 내려!”
“오빠! 문 닫혀요!”
“야, 야! 가인아, 문 닫히는 거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냥 내려야 해.”
아리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당황하며 내 쪽을 보는 상황.
이 순간이 되어서야 아까부터 고민했던 의문의 답을 얻었다!
“분리, 분리!”
“뭐? 무슨 —”
“가세요! 이미 내린 분은 할 일 하시고, 아직 안 내린 사람은 남고!”
“아니, 왜 갑자기 파티를 나누자는 —”
내린 사람 중 가장 믿음직해 보이는 상현 형에게 외쳤다.
“열심히 하세요! 믿을게요!”
“가, 가인 군!”
— 쿵!
문이 닫혔다.
내 결정 때문에 호텔 파티가 둘로 쪼개진 것이다.
“… 가인아, 왜 내리지 않은 거야?”
넋이 반쯤 나간 세 쌍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