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3)
괴담 호텔 탈출기 823화(822/836)
823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리, 은솔 누나, 여기에 송이와 페로, 험프티덤프티까지.
세 사람과 두 괴물 모두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동료들이 느끼기엔, 내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즉흥적인 판단을 내려 파티를 쪼갠 상황이리라.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
동료들은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 가인아, 왜 내리지 않은 거야?”
“잠깐만요.”
설명을 시작하기 직전, 확인차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3 -> 2」
‘뭔가 깨닫기는 했는데, 살짝 애매합니다. 깨달음을 엮을 실이 필요합니다.’
「악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답변.
조언에 맞춰서 생각해 보니,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파편화된 지식이 자연스럽게 엮이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도 알려줘야겠지.
“고민의 시작은 열차표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보셨겠지만, 제 표에는 목적지가 빈칸이었거든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게 이상하긴 했지.”
“열차에서 ‘당신은 내리지 않는 게 좋다’고 알려준 느낌이었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료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겨우 그거 하나 믿고 파티를 쪼갠 거야?’ 하는 생각이 들려왔다.
물론, 열차표는 의문의 시작일 뿐이다.
“다음으로 의아했던 건 승객이 없는 열차 상태였습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직원이 살짝 우회적으로 알려줬죠.”
누나가 바로 답했다.
“승객들끼리 서로 싸운 것 같아. 그러다가 다 죽은 거지. 열차는 시체를 치웠고.”
“이상하지 않아요?”
“뭐?”
“아리 시점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열차 승객들은 대부분 지성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아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듣고 보니 이상하네. 승객들은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지성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어떻게 싸워?”
“그냥 싸운 것도 아니야. 생존자가 한 명도 없어서 열차 칸이 텅 빌 정도로 싸웠어. 이상하지?”
“그렇네.”
싸움에도 지성이 필요한 법이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내가 도달한 결론은 간단했다.
“승객들 스스로 싸운 게 아니야. 누군가 승객들을 조종한 거지.”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승객들을 조종했다? 나와 알레프의 마음을 건드려서 열차에서 내리게 한 것처럼?”
“그렇지.”
송이가 질문했다.
“악마라는 존재는 왜 승객들까지 해쳤을까요?”
이쯤에서 아까 전, 올빼미의 조언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악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악마의 입장?”
“알레프의 견해에 따르면, 악마에겐 나름의 심오한 목적이 있다고 해. 인류 종말은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뭘까?”
새벽에 아리와 했던 이야기가 나오자 아리가 움찔했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어. 알레프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하나 있지.”
송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인류의 멸종… 아니, 그래서 악마가 열차 내부 사람도 다 죽였다고요?”
기다렸다는 듯 희미한 환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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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1. 악마에게는 나름의 목적이 있습니다.
– 한 번쯤 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2. 목적 달성을 위해선 인류의 멸종이 필요합니다. 바깥사람들은 물론, 열차 내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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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중간 과정, 인류 멸종.
이 부분을 조금 더 깊게 고민해 보자.
“악마는 기원전 7만년대의 역사를 바꿔서 거의 모든 사람을 죽였어. 또, 열차 내부의 승객들도 죽였지. 하지만, 여전히 생존자가 있어.”
누나가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 설마, 우리 말하는 거야?”
“아리와 알레프부터 말해 봅시다. 왜 두 사람은 소멸하지 않았을까요?”
“신기하긴 했어. 할아버님은 즉각 사라지셨는데, 아리는 아무 일 없었으니까.”
김묵성은 소멸했는데, 아리는 아무 일 없는 이유.
두 사람의 차이점.
짐작은 했지만, 확신을 얻고 싶어 두 번째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2 -> 1」
‘아리와 묵성의 판정이 다른 이유, 몸 때문입니까?’
「그렇다. 인과 독립성의 존부를 따질 때는 영혼과 육체 둘 다 고려해야 한다.」
“아리와 알레프가 시간 여행 열차를 이용한 역사 바꾸기 공격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 두 사람이 발생한 인과는 303호와 완전히 독립적이기 때문이야.”
인과 독립성.
“두 사람의 영혼은 모두 303호에서 시작하지 않았어. 알레프는 아주 오래전의 세상이고, 아리는 호텔이지.”
송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잖아요? 할아버지도 회귀자니까 음, 최초의 삶은 303호 루프보다 이전이었을 텐데.”
“영혼은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303호에서 만들어졌어.”
회귀자에게도 생물학적인 부모는 계속해서 존재한다.
은솔 누나의 아버지나 호텔에 오기 전의 나를 생각하면 된다.
“이래서 할아버지는 버틸 수 없었어. 303호에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었으니까. 몸의 인과가 붕괴한 거지.”
누나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네 말대로면, 알레프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네. 영혼도 몸도 303호 루프와 독립적이니까. 맞지?”
“네.”
“지금 우리가 멀쩡한 이유도 알레프랑 똑같구나. 영혼도 몸도 303호 출신이 아니니까.”
누나 말대로 김아리, 김묵성을 제외한 동료는 알레프와 똑같은 상황이다.
영혼도, 육신도 303호 출신이 아니다.
우리의 인과는 303호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아리는? 그러고 보면, 아리는 회귀할 때 어떤 식으로 시작해?”
아리가 다소 멍한 표정으로 ‘출생의 비밀’을 말했다.
“… 바다에서 떠올라.”
“매번?”
“매번.”
“낳아주신 부모님은 한 번도 없던 거야?”
“한 번도 없었어.”
아리는 시작부터 호텔에 의해 창조된 존재.
시작부터 자연적인 탄생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리는 이후의 삶에서도 항상 바다에서 떠오르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마치, 호텔 프로스페리티에서 탈출하던 순간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처럼.
이쯤에서 아리가 본격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나랑 알레프가 악마의 공격을 버텨낸 이유는 이해했어. 그런데, 이게 어떻다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악마는 인류를 멸종시키려 해. 열차 바깥은 물론, 내부 승객도 예외는 없지.”
“…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악마의 입장에서 보자. 세상에는 회귀자가 있고, 회귀자의 상위 호환 격인 참가자도 있어.”
“…”
“이런 예외적인 존재 중 아리 너 같은 존재가 하나뿐일까?”
“뭐, 더 있겠지. 호텔이 존재하는 이상 불가능이란 없는 세상이니까.”
아리, 알레프, 그리고 우리처럼 영혼과 육체 모두가 303호의 인과에서 독립된 존재.
이들은 악마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다.
호텔이 존재하는 우주인데, 저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리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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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1. 악마의 반대편에는 생존자가 있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모두 303호의 인과에서 독립된 자는 악마의 역사 뒤틀기를 견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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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303호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수없이 반복됐을지도 몰라.”
“…”
“악마는 기원전 7만 년으로 가서 인류를 없애고, 너처럼 특이한 인과로 인해 살아남은 자는 -”
“다시 열차 타고 인류를 복구하고?”
“세상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하면, 악마와 그 상대편에 있는 존재가 계속해서 역사를 썼다 고쳤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거야.”
“악마는 지우고, 상대방은 다시 쓰고…”
“악마는 다시 지우고, 또 다른 상대방이 또다시 쓰고.”
어느새 조용해진 동료들.
“이 싸움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지웠다 썼다를 반복해서는 이길 수 없어. 악마가 아무리 지워도, 누군가 다시 쓰니까. 아무리 써도, 악마가 다시 지우니까.”
마침내, 내 말을 이해한 아리가 답했다.
“필기도구를 빼앗아야겠구나.”
“지우개, 펜. 이걸 독점해야 해. 이래야 끝나는 싸움이야.”
“열차를 점령해야 끝나는 싸움이었어.”
“그거야. 열차 바깥 싸움은 사이드에 불과해. 악마는 지금도 이곳에 있을 거야. 여기서 싸움을 끝내야 해.”
대화가 끝날 무렵, 송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빠, 제 생각에는요…”
“음?”
“지금 오빠가 말한 게 303호의 해결 조건 같아요. 필기도구를 우리가 독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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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조건]1. 열반 열차를 독점하세요.
– 단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열차를 영원히 독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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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출발하죠. 앞칸으로 갑시다.”
*
— 쩌억!
“으읏! 바닥에 이거 뭐야?”
“진흙 웅덩이 같아요. 험피, 그거 삼키면 안 돼!”
앞칸으로 갈수록 열차 칸 내부가 원시적인 풍경으로 변해간다.
처음 탑승한 칸은 2020년대 열차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이었다.
매끈한 금속 벽면과 차가운 푸른빛 조명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좌석마다 스크린 비슷한 것까지 탑재되어 있었지.
다음 칸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랐다.
여전히 현대적인 요소가 남아있지만, 어디선가 낡은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벽은 금속이지만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조명은 조금씩 깜빡거리며 불안정해졌다.
좌석은 더 이상 최첨단 기술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낡고 바랜 직물로 덮여 있었다.
또 몇 칸 더 나아가니, 이제는 숫제 금속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금속 벽이 있어야 할 장소엔 나무판자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었고, 틈새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차내 조명은 전구는커녕, 오래된 촛불을 연상케 하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이미 열차보다는 마차에 가까워진 모습.
거기서 또 몇 칸 더 나아간 게 지금이다.
이제는 마차라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았고, 허름한 목재 가옥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것에 가까웠다.
이쯤에서 아리가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알레프가 이럴 거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더 심하네.”
알레프가 했던 이야기.
‘더 앞칸으로 이동하면 원시적인 열차 칸이 나옵니다.’
‘증기기관 수준의 열차 칸도 있더군요.’
“더 앞으로 가야 해?”
“아마도. 아직 악마는커녕 사람 비슷한 것도 본 적 없잖아.”
은솔 누나가 말없이 다음 열차 칸으로 향하는 문을 잡는 순간.
— 덜컹!
승객 여러분, 다음 칸부터는 보호벽이 없습니다. 주의하십시오.
… 불길하기 짝이 없는 안내방송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