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4)
괴담 호텔 탈출기 824화(823/836)
824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3)
— 김상현
열차에서 내린 직후, 처음 느낀 것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추위였다.
시간상으로는 기원전 7만 년, 플라이스토세의 빙하기가 진행 중인 시기.
이 시대의 지구 평균 기온은 현대보다 4~8°C 이상 낮았고, 북반구 고위도는 빙하로 덮여 있었다.
지구 자체가 훨씬 추웠던 시기인데, 위치는 심지어 히말라야다.
동료들은 대체로 튼튼한 활동복을 입은 상태였지만, 지옥 같은 추위를 견디기엔 충분치 못했다.
삽시간에 동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 상황.
최대한 빨리 모닥불부터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203호의 경험 덕에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 타닥!
멍한 표정으로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료들.
나라도 뭔가 말을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승엽 군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 네.”
“미로 양, 엘레나 양. 두 분 다 괜찮습니까?”
“응.”
“네…”
“조금만 기다립시다. 진철 군이 일대를 탐색 중이니, 곧 뭔가를 찾아낼 겁니다.”
미로 양이 낮게 중얼거렸다.
“진철이 대단해. 이렇게 추운데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네.”
“용기의 축복이 이럴 때는 참 유용하네. 나도 음, 포르투나 모드로 변신하면…!”
“안 됩니다.”
“바보야! 변신은 악마와 싸울 때를 대비해서 아껴야지. 멍청하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승엽 군의 반응이 역설적으로 지금 얼마나 추운지 알려주었다.
너무 추워서 화낼 기운도 없는 것이다.
침묵하던 엘레나 양이 입을 열었다.
“… 선생님, 가인 씨는 왜 파티를 쪼갰을까요?”
“…”
“너무 갑작스레 나뉘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설마, 내리면 안 됐던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이미 내린 사람은 할 일 하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내려서 할 일도 있고, 열차에서 할 일도 있나 봅니다.”
“으으…”
“자세한 이야기는 호텔에서 물어봅시다. 지금은 우리 일에 충실할 때입니다.”
솔직한 생각.
열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파티를 나눈 것.
너무나 아무 설명 없이 이루어진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파티를 나눈 사람이 가인 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만이 훨씬 컸겠지.
나눈 사람이 가인 군이니까 다들 ‘뭔가 신기한 이유가 있겠거니~’ 할 뿐.
다른 한 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타인과 하나하나 상의해 가며 결정하는 건 범속한 자의 일 처리가 아닐까?
통찰을 얻어 현재와 과거,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자가 타인과 상의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동료들이 토론해서 내린 결정보다 내 즉흥적인 결정이 더 뛰어나다면, 후자를 택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위와 같은 논법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A의 즉흥적인 판단이 나머지의 심사숙고보다 뛰어나다면, A와 나머지를 ‘동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이렇듯, 쓸데없는 생각으로 두어 시간을 보낸 시점.
— 자박!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다들 괜찮습니까? 좀 추운 것 같긴 한데.”
남극에서도 반팔 티를 입고 걸어 다닐 것 같은 사람, 차진철이 마음에도 없을 것 같은 춥다 소리를 하며 나타났다.
“왔군요.”
“진철 씨, 우리는 괜찮아요.”
“형, 뭔가 찾았어요?”
평소보다 다섯 배는 듬직해 보이는 차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대에서 내려다보니까 불빛도 있고, 발자국도 여럿 있더군요. 출발합시다.”
*
— 김아리
— 덜컹!
승객 여러분, 다음 칸부터는 보호벽이 없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듣기만 해도 수상쩍은 안내방송이 나온 후, 가인이가 침착하게 맨 앞으로 움직였다.
“모두 내 뒤로.”
“조언 남았어?”
“하나 남았어.”
하나 남았다고 하니 솔직히 불안하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오빠, 보호벽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다음 칸에 가보면 알겠지.”
어쨌든, 악마를 만나려면 계속해서 전진하긴 해야 한다.
— 끼익!
가인이 말대로 다음 칸에 도착하자마자 안내방송의 의미를 이해했다.
점차 원시적으로 변해가던 열차 칸이 기어이 그냥 자연환경에 가깝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열차에요?”
“보호벽이 없다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예 인위적인 구조물이 없다시피 한데?”
끝없이 이어진 회색 동굴 같은 영역.
열차의 형태는 사실상 사라졌다.
“어디로 가죠?”
“바닥에 홈이 패어 있네.”
“저건 철로? 쭉 따라가면 되는 건가?”
은솔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점, 가인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 누가 있는데? 아리야, 보여?”
전방에 무언가가 보이긴 했다.
마침내 그놈의 악마인가 뭔가가 나온 걸까?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가까이 가야겠어. 조심해.”
몇 걸음 더 나아갔을 때, 송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이네요. 그냥 승객 같은데요?”
가인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풀려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정신이 거의 무너진 상태야.”
내가 보기에도 그냥 승객 같았다.
하지만, 악마가 다른 승객은 전부 죽였는데 저 사람만 남겼다는 게 이상한 –
— 딸깍!
버튼을 누르는 듯한 작은 소리.
설마, 승객을 이용한 부비트랩 –
— 쾅! 우르릉!
직후,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졌다!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사방에서 느껴지는 굉음과 진동.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가득 메웠고, 전신을 쥐어짜는 듯한 압력이 몰아쳤다.
인간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혼돈체도 한 줌 재가 될 법한 굉장한 폭발.
무방비하게 폭발에 휩쓸렸다면 여기서 전멸이었겠지.
다행히도,우리가 보통 파티는 아니었다.
“쿨럭! 다들 괜찮아?”
“으읏… 괘, 괜찮아. 아리야! 폭탄 터진 것 맞지?”
“아마도. 미리 설치해 뒀나 봐. 은솔이는?”
“괘, 괜찮아… 다리를 좀 다치긴 했는데, 이 정도야 뭐.”
이런 황당한 몰살을 막기 위해 있는 게 가인이의 위기 알림이다.
조금 전, 가인이는 버튼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신성한 태양을 소환했지.
“다들 나 따라오세요!”
거칠게 외치며 전방을 향해 움직이는 가인이.
폭발 때문에 일어난 흙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신성한 태양의 불빛을 쫓으니 따라갈 만했다.
어느새, 가인이는 마도서를 소환한 채 추레한 몰골의 노인을 붙잡고 있었다.
“이 사람이 폭탄 터트린 거죠?”
“맞아.”
어둡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동굴.
바위벽에는 녹슨 물 자국이 번져 있고, 발밑에는 폭발의 흔적인 부서진 돌조각들이 널려 있다.
그 가운데, 신성한 태양의 빛 아래에서 비참한 모습의 노인이 누워 있었다.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는 옷, 이곳저곳에 새겨진 깊은 상처.
가만두어도 오래 살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많이 다쳤네요?”
“폭발의 영향에서 본인도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네.”
송이와 은솔이는 노인을 가여워하는 듯했다.
그럴 만 한 게, 노인의 정신 상태가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눈빛을 봐. 본인이 폭탄을 설치한 것 같진 않아.”
“악마가 승객 하나를 부비트랩으로 이용했을지도.”
“으으… 끔찍하네.”
정말이지 악마같은 전술이라고 생각할 무렵.
침착하게 노인의 머리맡에 앉아있던 가인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였다.
“이, 이게 무슨!”
“뭐야? 뭔가 알아냈어?”
마도서를 소환한 시점에서 가인이가 뭔가 하고 있을 줄은 알았어.
분명 노인의 몸에 빙의해서 쓸모 있는 정보를 찾고 있었겠지.
그런데, 저 표정의 의미는 뭘까?
“오빠? 왜 그래요?”
다음 말은 당황스러웠다.
“이놈이 악마야!”
“예?”
“이 녀석과 이 녀석이 속한 집단 자체가 악마라고!”
“무, 무슨 소리야?”
그때, 아까부터 미묘하게 머리 한구석을 간질이던 의문 하나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악마는 왜 알레프가 2년 차 신입 요원 수준으로 퇴화할 때까지 직접 나서지 않았을까?
정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 정도로 약해지기 전엔 알레프를 당해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가인이가 노인에게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어내며 말했다.
“악마는 이 녀석을 포함한 인간 집단, 아주 오래된 관리국 유사 집단 소속 같아.”
“‘같아’라니? 표현이 왜 불확실해?”
“누나, 이 녀석 머릿속이 정확하지 않아요. 알레프가 말했죠? 열차에 오래 있으면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설마 악마들도?”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인지능력이 떨어졌어요. 각종 약물로 저항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 이런!”
“뭐, 뭔가 또 알아냈어?’
가인이가 황급히 노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우리도 바로 거들었다.
한 겹, 두 겹 옷을 벗기자 떨어지는 종이 뭉치들.
“뭐야?”
“뭔가 적혀 있긴 한데, 못 읽겠어요. 이런 문자도 있었나요?”
당황한 표정을 짓는 송이와 달리, 내 눈에는 읽혔다.
“… 일반적인 언어가 아니야.”
“뭐?”
“관리국에서 쓰는 암호야. 굉장히 오래전에 썼던 암호.”
“이게 다 암호라고?”
“그래. 기록으로 남긴 거야.”
“설마, 계속해서 기억이 사라지니까?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을 종이에 적어서 가지고 다녔구나!”
가인이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여기에 적힌 건 본인들이 열차에 온 이유, 사명, 목적 이런 건가?”
“…”
“노인의 머리에는 정상적인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어. 이 종이 뭉치들이 진짜야. 아리야, 뭔가 내용을 -”
“다들 조용히 해봐. 엄청나게 오래전에 쓰던 형태라고!”
그야말로 내 온 정신을 집중해서 쪽지를 해석했다.
그렇게 얻어낸 첫 문단.
열반 열차는 최초의 구원이다.
영겁의 고통에서 해방되길 갈망한 선조들의 꿈이다.
비록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지만, 그 뜻은 실로 숭고한 것.
천국으로 향하는 열차를 망쳐 파멸을 부른 자들.
죄인에게 영원한 저주 있으라.
아아… 대자대비한 분, 우리는 왜 이리 일찍 태어났단 말입니까?
부디, 다음 삶은 천국에서 시작하게 하소서.
“해석한 부분부터 읽을게. 열반 열차는 — ”
— 쿵!
갑자기 시작된 요란한 진동.
“으읏! 무슨 -”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출발합니다.
보호 벽이 없는 칸의 승객 여러분,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경고, 보호벽이 없으니 승객 여러분은 주의하시라.
가인이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아니, 뭘 주의하라는 거야? 조언이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
그때, 나는 가인이의 얼굴을 보며 열차의 경고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불과 몇 초 사이에 20대 청년과 같았던 가인이가 환갑노인처럼 변했으니까!
“꺄아악!”
“헉, 허어억! 가, 갑자기 몸이…”
가인이가, 송이가, 은솔이가…
하나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간다.
오직, 나만 멀쩡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조금 전까지 청년이었던 노인의 입에서 들려오는 중얼거림.
“생물학적인 불멸이 필요한 영역인가…”
— 펄럭!
마도서가 펼쳐졌다.
— 삐이익!
그리고, 불멸의 앵무새가 비명 질렀다.
— 덜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