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5)
괴담 호텔 탈출기 825화(824/836)
825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4)
— 김아리
혼란이 가라앉은 후, 어떻게든 상황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첫째, 열차 보호벽의 부재와 이로 인한 피해.
약 10분 전, 열차는 안내방송을 통해 다음 칸부터는 보호벽이 없으니 주의하라고 경고했지.
경고해 준 이유는 짐작이 간다.
직원이 말했듯, 열차는 기본적으로 승객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리라.
경고의 의미는 조금 전에 밝혀졌다.
보호벽은 열차의 시간 이동 과정에서 생기는 부하로부터 승객을 보호했는데, 이 보호가 사라진 것.
문제는 열차의 경고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
위험한 일이 생길 줄은 짐작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생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한 번은 당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사고였다.
피해는 극심하다.
열반 열차가 숨 한번 쉴 시간에 7만 년을 거슬러 왔음을 생각하자.
조금 전, 우리에게 가해진 시간 압력은 몇 년 분량일까? 수백 년?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이나 수십만 년일지도 모른다.
송이와 은솔이는 10초도 못 버티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가인이는…
“페로, 너 지금 가인이지?”
“삐이익!”
“…”
“아, 습관적으로 새 소리를 냈네. 나 맞아.”
도대체 사람에게 새 소리를 내는 습관이 왜 생기는 걸까?
어쨌든, 생존자가 나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페로 가인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조금 전의 일로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어.”
“음?”
“누나와 내 생물학적 수명은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송이도 마찬가지고.”
“엘릭서의 효험이 남아있진 않은가 보네.”
“302호가 끝날 때 사라졌을지도.”
“종말 이후에 엘릭서를 먹었다면 효력이 남아있었을까?”
“확실하진 않아. 중요한 건, 험프티덤프티의 육체도 붕괴했다는 거야.”
“…”
“저 녀석도 수명 한계는 있다는 뜻이지. 이 자리에 생물학적 불멸자는 딱 둘이었어.”
나와 페로를 말한다.
솔직히 험프티덤프티의 죽음은 나쁘지 않았다.
송이가 죽은 이상, 험프티덤프티를 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황은 나쁘지 않아.”
이 말에는 조금 당황했다.
뭐? 상황이 나쁘지 않아?
은솔이와 송이는 죽고, 가인이 본인도 육신을 잃으며 축복을 쓸 수 없게 됐을 텐데.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페로 가인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상대에 대해 알게 됐잖아?”
“… 악마?”
“악마의 정체는 태고의 절대악 따위가 아니었어. 그냥 인간이었지.”
악마의 정체는 관리국 직원들이었다.
“아마 관리국 직원들일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지.”
열반 열차에 관리국 직원들이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관리국은 민간인 실종 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차례 직원을 열차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레프의 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러 명하고 같이 탔는데, 들어오니 저 혼자였습니다.’
“직원들이 열차에 있는 이유까진 알겠어. 그런데, 다들 뭘 하는 거지?”
“…”
“민간인 실종을 막으라고 보냈잖아? 왜 뜬금없이 선사시대를 뒤틀어서 인류를 멸종시키려 하는 걸까?”
페로 가인이 날개를 으쓱하며 – 은근히 귀여웠다 – 답했다.
“거기까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지.”
“…”
“다시 말하지만, 악마들은 인간이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객관적인 상황은 좋지 않다.
은솔이와 송이는 죽었고, 가인이도 육신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관리국 직원에 불과하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지.
페로 가인의 말은 제법 위안이 됐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겠지만.
— 털썩!
페로 가인이 왼쪽 어깨 위에 앉았다.
“출발하자.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아.”
*
이후로도 비슷한 충돌이 몇 차례 발생했다.
악마에 속한 인간이 폭탄을 터트리거나, 괴이한 무기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추가적인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 한 번은 몰라서 당한 것에 불과하다.
또, 나와 페로는 시간 가속으로 인한 피해에도 면역이고.
패턴이 파악당한 상대는 열차를 헤맨 끝에 비참하게 영락한 추레한 몰골의 인간 무리에 불과했다.
“흐으으…!”
“이걸로 네 명째네. 왼쪽 옆구리 근처에 쪽지가 있을 거야. 뒤져봐.”
처음 만났던 사람처럼, 이후의 사람들도 몸 어딘가에 쪽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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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문자열을 바라보던 페로 가인이 질색했다.
“어이쿠! 이걸 어떻게 해독하는 거야?”
“…”
“뭔가 찾았어?”
“기다려 봐. 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까.”
“…”
“훌륭한 정원사라면, 가위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앵무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지?”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살릴 방도가 없다. 가위질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 정원사는 본인들을 말하는 건가?”
“…”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설마 인간 전체? 다른 내용을 말해봐.”
“문장이 지리멸렬해서 이해하긴 어려운데, 악마 무리도 우리처럼 앞칸으로 이동 중인 것 같아.”
악마 무리도 우리처럼 앞칸으로 이동 중이다.
이 말에 페로 가인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말했다.
“설마, 우리를 피해 도망가는 건가?”
“아마도… 쪽지에 본인이 희생하겠다는 문구가 있어.”
“한 명씩 떨어트려서 우리 발목을 잡는 식인가 보네. 다음은?”
“이 쪽지에선 더 이상의 해석은 불가능해.”
“…”
“해석이 어려운 문자열이 많아. 암호화 방식이 내가 모르는 형태거나, 일부러 의미 없는 난수를 섞었거나, 혹은…”
“작성자가 지능이 떨어져서 이상하게 적었거나.”
“그렇지.”
*
이후 약 5명 정도를 연이어 제압할 무렵, 페로 가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좋게 생각하자. 크게 보면 탈출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
탈출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말, 논리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생각해 보자.
인류가 소멸한 이유는 악마들이 선사시대의 역사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나와 가인이는 악마 무리 소속 인간을 하나둘 처치하고 있다.
동료들은 기원전 7만 년 시기에 내려서 원시인을 구하고 있다.
양쪽의 일이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종말의 인과가 사라지며 탈출 판정이 뜨겠지.
은솔이와 송이가 당한 후로는 큰 위기 없이 진행 중이다.
… 그래서 불안했다.
“아까 가인이 네가 했던 말이 맞았네.”
“…”
“우리 둘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말, 사실이었어.”
“…”
“악마들이 알레프가 기억을 잃으며 약해질 때까지 정면승부를 꺼렸던 이유. 지금도 우리와의 정면 대결을 피해 도망치는 이유. 간단해.”
“약해서지.”
“우리를 힘으로 이길 자신이 없어서야.”
1층을 진행하던 시기였다면 모를까, 반신 소리를 듣는 지금의 우리에게 악마 무리는 너무 쉬운 상대였다.
악마가 우리보다 나은 점은 열반 열차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것뿐.
이게 생각보다 강력한 장점임이 아까 전의 일로 밝혀졌지만, 힘의 격차를 메꿀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본래 열차가 죄수, 악마가 대적자라고 생각했어.”
“…”
“열차는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일종의 배경에 가까워.”
“이미 있었던 일이야.”
열차는 일종의 배경에 가깝지, 나서서 시나리오를 주도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죄수가 배경에 가까운 경우는 이미 있었지.
마지막까지 죄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101호나 결말 직전에 목소리만 들려준 102호가 좋은 예시.
따라서 열반 열차가 배경에 가까운 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야.
“열차는 그렇다 치고, 악마는 대적자라기엔 너무 약하지 않아?”
301호의 대적자였던 이스의 대공, 302호의 대적자였던 여덟 날개의 천사를 생각해 보자.
“악마의 정체가 직원 출신이라고 생각하면, 전투력이 부족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내 말은…”
“악마는 대적자가 아닌 것 같다?”
“대적자 내지는 죄수에 대응하는 존재는 따로 있는 것 같아.”
— 덜컹!
페로 가인이 의미심장한 표정 – 이런 표정을 앵무새의 몸으로 구현하는 게 신기했다 – 을 지으며 부리를 열었다.
“네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어.”
“말해봐.”
“악마 무리는 모두 같은 조직 출신이 아니야. 그렇지?”
악마의 정체가 오랜 세월 관리국 및 유사 집단이 파견해 온 직원의 집합이라면, 그렇다.
모두 같은 조직 출신일 수가 없다.
“아리 네가 해독한 내용이 명확한 증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303호 루프 사람들이 알만한 지식이 아니거든.”
아까 읽은 첫 문구가 뇌리를 스쳤다.
열반 열차는 최초의 구원이다.
영겁의 고통에서 해방되길 갈망한 선조들의 꿈이다.
“관리국, 이상 통제국, 이성의 결사, 기타 등등 조직 출신의 직원들이 열반 열차 내에서 만났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지.”
“…”
“서로 다른 조직 출신의 직원들인데, 지금은 마치 하나의 단일 집단처럼 행동 중이야. 이런 일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
“출신은 다르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지.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
“…”
“열차에 대적이 존재함을 깨달은 거야.”
열반 열차에는 대적이 있다.
서로 다른 조직 출신의 직원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한 존재가 있다.
“한 명은 아는데. 알레프.”
“…”
“너랑 나 둘 뿐이니까 솔직히 말할게. 관리국 직원들이 알레프의 실체를 알았다면, 다 같이 뭉치고도 남아.”
“… 아, 알레프는 아니지 않을까?”
이 말은 가인이 치고는 정말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다만, 내용에는 나도 내심 동의했다.
알레프를 대적자라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악마 무리가 나와 알레프를 열차에서 내리게 하는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려 했던 것.
알레프는 한참 뒤쪽 칸에 있었는데, 악마들은 계속해서 앞칸으로 나아가는 모습.
게다가, 대적자라기엔 너무 약하다는 건 알레프도 마찬가지다.
분명, 무언가 더 있다.
303호의 운명을 파멸로 몰아넣은 존재 말이다.
“아까부터 여러 쪽지를 해독하다가 느낀 건데, 단어 하나가 계속 반복되네.”
“무슨 단어인데?”
“오래된 목소리.”
“그게 전부야?”
“앞뒤의 다른 단어는 해석할 수 없었어. 굳이 따지면…”
“따지면?”
“무슨 스트?”
“애매하네. 앞으로 더 가자. 느낌상, 이제 곧 악마 무리의 수괴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가인아, 그 전에 하나.”
“응?”
“… 한 번만 더 가슴 위에 올라가면 깃털을 다 뽑아버릴 거야.”
“어이쿠! 이게 또 습관이라.”
*
— 김상현
지금까지 303호를 진행하며 느낀 것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대혼란’이다.
303호는 어려웠다.
저주의 방을 쉽다고 느낀 적이 없긴 하지만, 303호는 특히 그랬다.
301호의 공작이나 302호의 대천사들처럼 터무니없는 강적이 있진 않았다.
추후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은 힘의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다.
문제는, 방의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지금 우리가 겪은 일만 해도 그렇지.
기원전 7만 년, 빙하기의 히말라야산맥 인근에 도착.
차진철의 특출난 신체 능력 덕에 생존자를 찾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다.
이후, 공포에 질린 원시인들과 어떻게든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 문자는커녕, 언어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한 무리였다. – ‘끔찍한 새’가 원시인들을 학살 중임을 알았다.
여기까진 오히려 쉬웠지.
‘끔찍한 새’가 바로 악마이거나, 악마가 부리는 혼돈의 마수 같은 것일 줄 알았으니까.
“으으 추워라… 그나저나 선생님, 선사시대에 난데없이 드론이라니요?”
끔찍한 새의 정체는 어처구니없게도 드론이었다.
심지어 그리 대단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물건도 아니었다.
엘레나 양이 불길한 상상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수십 대를 격파했을 정도.
물론, 별거 아니라는 건 우리 기준이다.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이 느끼기엔 하늘에서 나타난 대악마처럼 보였으리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엘레나 양, 혼란스럽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총을 쏘는 드론을 발견한 순간부터 여러 사람의 머리에 스친 생각.
악마의 정체는 인간이다.
요원 경력이 있는 차진철의 견해에 따르면, 산맥 어딘가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찾았다! 다들 이쪽으로!”
“으앗! 이 사람, 완전 얼음덩이잖아? 서, 선생님!”
“상현 형님! 이 자식 응급 처치라도 해야겠습니다!”
드론을 통제하던 노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우릴 피해 다니며 고생하기도 했겠지만, 그걸 떠나서 원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느낌.
흐리멍덩한 눈빛을 보며 몸 전체를 마사지하던 시점.
노인이 갑자기 광인처럼 울부짖었다.
“아아…! 온다! 온다…!”
“무슨 소리를 -”
“엘디스트가 온다! 엘디스트가 온다!”
“노인장, 진정하십시오. 뭐가 온다는 겁니까?”
“… 엘디스트를 막을 수 있는 건 가장 오래된 목소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