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26)
괴담 호텔 탈출기 826화(825/836)
826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5)
— 김아리
체감상 열반 열차에서 반나절 가까이 보낸 시점.
끊임없는 싸움 끝에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예컨대, 알레프가 ‘악마’라고 칭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명칭.
“본인들 스스로는 ‘정원사’라고 하네.”
“훌륭한 정원사라면, 가위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까 아리 네가 해석한 문구였지.”
“단순한 비유는 아니었던 셈이지.”
관리국에서 침묵하는 자 위치까지 오르면서 수없이 깨달은 사실.
직원과 요원들은 좋든 싫든 사람을 수없이 죽이게 된다.
하지만, 살인은 영혼이 얼어붙은 냉혈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며, 모든 구성원이 냉혈한일 수도 없다.
결국, 통계상 70% 이상의 직원들은 재직하는 동안 우울증 내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이와 같은 일을 억제하기 위해 관리국은 내부 구성원을 끊임없이 교육한다.
너희는 살인자가 아니라 인류의 수호자다.
너희는 무고한 자를 죽인 게 아니라 감염자를 처분하여 다른 사람을 살린 것이다.
열차에서 형성된 ‘정원사’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친 것 같다.
훌륭한 정원사라면, 가위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살릴 방도가 없다. 가위질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모두 구성원의 죄책감을 걷어내기 위한 논리다.
그때, 제압한 정원사 한 명의 머리를 뒤지던 페로 가인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왔다.
“치매 환자의 뇌를 뒤지는 느낌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다음 칸에 정원사의 수장이 있는 것 같아.”
“…”
“정원사의 수장은 인간의 정신을 뒤흔들 수 있다고 해.”
“그 힘으로 나와 알레프를 열차에서 내리게 한 건가?”
“아마도. 싸울 준비 하자.”
*
— 덜컹!
마침내 도착한 정원사의 본거지.
문이 열리는 순간, 처음으로 느낀 것은 두통과 잡음이었다.
— 지지직!
누군가 내 머릿속에 바늘 한 뭉치를 집어넣은 듯한 격렬한 통증.
동시에, 사방에서 날 바라보는 시선이 나타났다.
두통을 견디며 외쳤다.
“내가 상대할 테니, 넌 앞으로 -”
말하다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어깨 위는 이미 가벼웠고 페로 가인은 진즉 저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인아, 동료를 버리고 전진하는 판단이 인간적으로 너무 빠른 거 아니야?
— 철컥!
원시적인 지구 여기저기서 몸을 일으키는 낡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
행색은 허술하기 그지없었지만, 손에 들린 무기만큼은 허술하지 않았다.
최소 수십 정의 무기가 내 쪽을 향한다.
익숙한 총도 있었지만, 또 어떤 무기는 겉으로 봐서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렵다.
여러 시대의 관리국이 직원들을 투입하며 제공했던 무기들!
— 스아아…!
부등변다면체의 검붉은 위광이 빛을 발한다.
보이지 않는 격벽이 주변을 둘러치며 여러 시대의 무기가 발하는 공세를 막아낸다.
통상적인 화기라면, 부등변다면체의 공간 단절을 뚫을 수 없다.
개인 화기 수준의 화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찌르릉!
통상적이지 않은 무기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 파동이 일대를 휩쓰는데, 원리는커녕 위력도 알 도리가 없다.
“으읏!”
괴이한 무기보다 더 희한한 건 정원사들 그 자체였다.
사격 타이밍과 내 반격을 회피하는 움직임, 여기에 아까부터 날 향하는 시선의 실체.
시선은 여럿이었지만, 또한 단 하나의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이쯤에서 정원사의 수장이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렇듯, 극도의 긴장 속에서 최소 수십 명의 정원사 집단과 싸우던 시점.
— 털썩!
싸움이 갑작스레 끝났다.
혼몽한 정신을 부여잡은 채 나와 싸우던 정원사들이 갑자기 전기가 끊긴 로봇처럼 쓰러졌기 때문이다.
페로 – 가인이 정원사의 수장을 쓰러트렸다.
*
페로 가인의 소감은 간단했다.
“희한한 녀석이네.”
목소리에 거창한 승리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인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 상대는 이겼다고 기뻐할 정도가 아니었던 것.
“어땠는데?”
“아리 너도 싸우면서 뭔가 느끼지 않았어?”
“… 정원사들이 마치 로봇 같다고 느꼈어.”
“정확해. 조금 전에 너와 싸운 녀석들은 사실상 생체 로봇이야. 정원사의 수장이 부리는 유닛이지.”
“그러면, 돌 위에 누워 있는 이 남자가 수장의 본체야?”
“아니야. 굳이 따지면, 조금 성능 좋은 유닛에 불과해.”
“본체는 어디 있는데?”
다음 말은 다소 기이하게 느껴졌다.
“본체 같은 건 없어.”
“뭐?”
“정원사의 수장은 육체를 버리고 정신체만 남은 존재야.”
“…”
“그냥, 정원사들의 정신을 이리저리 오가는 녀석이지.”
“… 신기하네.”
이쯤 되니 정원사의 수장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뭐, 이 정도는 되는 존재니까 출신이 다른 여러 사람을 통솔하는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때, 페로 가인이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중에 골치 아프겠는데.”
“나중에?”
“탈출 후 2회차 말이야.”
“…”
“2회차에선 너,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진행해야 해.”
“그렇지.”
“너랑 알레프 둘이 이 녀석을 상대하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본인은 정원사의 수장을 쉽게 제압했지만, 너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
솔직히, 살짝 자존심 상하는 말이네.
물론,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니 가인이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했다.
정원사의 수장은 망령처럼 여러 개체의 정신을 옮겨 다니는 존재.
가인이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화신의 서가 상대 능력의 압도적인 상위호환 그 자체니까.
나에게도 쉬울까?
“2회차 이야기는 나가서 하자. 우선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지.”
페로 – 가인이 부리를 까딱였다.
“좋아. 이 녀석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
“…”
“육신이 없는 정신체야. 그래서, 열반 열차를 오래 탈 때 생기는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어.”
“지능이 멀쩡했다는 거야?”
“적어도 부하들보다는 멀쩡했어. 애초에, 그걸 위해 몸을 버린 것 같네.”
“으음…”
“완전히 멀쩡한 건 아니야. 기억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어.”
장기간 탑승하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열반 열차의 특성.
정원사의 수장은 육신을 버리는 대가로 정신의 온전함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었다.
그 말은, 수장을 제압한 가인이가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녀석들의 목적은 두 가지야.”
“두 가지?”
“첫째, 오염된 인류 정화.”
“다음은?”
“둘째, 열차의 루프 이동을 막는 것.”
1회차 초기 직원이 알레프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열차가 고장이 나 있어서 루프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고장의 원인은 정원사였을까?
“정원사들이 열차를 고장 낸 거야?”
“아마도.”
“왜?”
“… 이들은 인류가 오염되어 있다고 판단 중이야.”
“설마, 오염된 인류가 열차를 타고 다른 루프에 가는 걸 막는 건가?”
“그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
“한 가지? 다른 이유도 있어?”
— 딱!
페로 가인이 고민에 빠진 듯 부리를 이리저리 뒤트는 모습.
정원사의 수장에게 얻은 정보를 분석 중인 모양이다.
다시 부리가 열리기까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엘디스트.”
“엘디스트?”
“엘디스트가 온다고 해.”
“그게 뭔 소리야?”
“일단 들어봐. 엘디스트가 오고 있다. 가장 오래된 목소리만 엘디스트를 막을 수 있다.”
“…”
“이 생각이 수장의 머릿속에 가득해.”
“…”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 엘디스트라는건 다른 루프에서 오는 일종의 침입자 같아.”
“으음…”
“정원사들은 음, ‘가장 오래된 목소리’의 도움을 받아서 엘디스트를 막고 있던 거지.”
알듯 모를 듯한 이야기들.
침묵 속에서 한 가지 불안함을 느꼈다.
“탈출 알림이 뜨지 않네.”
“…”
“아까 세웠던 가설대로라면, 지금쯤 탈출 알림이 나와야 하지 않아?”
페로 가인이 담담히 말했다.
“우리가 추측한 탈출의 두 가지 조건. 첫째, 기원전 7만년대에 내려서 위기에 처한 원시인들을 구한다. 둘째, 열반 열차의 정원사를 전부 죽인다.”
“…”
“두 번째 목적은 이뤘어. 더 이상 정원사는 없어.”
“설마, 상현이 쪽이 실패한 거야?”
우리는 목적을 달성했는데 탈출 판정이 뜨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동료들이 실패한 걸까?
“그럴 리 없어.”
페로 가인이 부정했다.
“막연히 동료들을 믿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악마, 정원사의 무력을 봐.”
“…”
“기원전 7만년대에 투입된 정원사가 몇 명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많아 봐야 미래 무기를 가진 직원 십수 명 정도.”
“으음… 그 정도면 엘레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겠네.”
“게다가, 그쪽에 승엽이가 있어. 갑작스러운 기습에 몰살당할 확률도 낮아.”
우리는 목적을 이루었다.
전력으로 미뤄볼 때, 동료들도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최초의 가설이 틀린 거야. 탈출을 위한 조건이 둘이 아니야.”
조건이 더 있다.
“그러면?”
“앞으로 더 가자. 엘디스트, 오래된 목소리. 뭐 하는 놈들인지 얼굴은 한번 봐야지.”
— 덜컹!
*
앞칸으로 갈수록 주변 풍경은 점점 태고의 지구에 가까워졌다.
시작은 21세기였고, 기원전 7만 년 시점에서 여러 동료가 내렸지.
이후에는 기원전 30만 년, 100만 년, 1,000만 년 하다가 기어이 억 단위의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다.
앞칸으로 갈수록 보호벽을 비롯한 열차 구성물이 사라지는 이유도 짐작이 간다.
몇천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열차는커녕 ‘탈 것’ 내지는 ‘주거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가 아닐까?
“아리야, 이 주변은 어느 시대일까?”
표현 자체가 특이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 주변’은 공간적 위치 표현인데, ‘어느 시대’는 시간적 위치 표현.
일반적으로 이런 문장은 쓸 일이 없다.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시기가 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적 위치 변화가 시간적 위치 변화로 이어지는 열반 열차에서나 쓸 수 있는 표현이지.
“페름기?”
“…”
“실루리아기나 오르도비스기일지도.”
“…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지구과학 시간에 졸았어?”
“공룡시대라면 알아.”
“가인이 너, 방금 완전 미로 같았어.”
“너무 심한 말인데. 강남역에서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실루리아기가 무슨 단어인지 물어보면 몇 명이나 답할까?”
“중요한 건 강남역이 아니야.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거지. 생각해 보면, 104호에서 공부도 내가 더 잘했어.”
“나도 너처럼 고등학교 100번 다니면 너보다 나았을걸.”
“네가 나보다 고등학교 여러 번 다녔을 것 같은데.”
— 딱!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간다 싶었는지, 페로 가인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대충 10억 년 전 지구 환경은 인간이 맨몸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지 않아?”
“명왕 누대의 지구는 지표 전체가 화산지대였다고 해.”
“더 앞칸 환경은 위험할 수 있겠는데. 보호벽이 없어서 하는 말이야.”
“… 부등변다면체로 격벽을 설치하면서 이동하자.”
“지금은 그런 식으로 갈 수 있지.”
“뭐?”
가인의 다음 지적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호텔에 오기 전의 너는 이 구간을 어떻게 넘어갔을까? 부등변다면체가 없었잖아. 혹시 못 넘어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