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31)
괴담 호텔 탈출기 831화(830/836)
831화 – 첫 번째 탈출, 회의 그리고 재진입 (4)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로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새벽 3시경, 약속대로 모두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 회의를 위해 모였다.
모이자마자 송이가 하품하며 말했다.
“하아암…! 오빠, 조언 리필 됐어요?”
“물론이지.”
[조언 : 3]날짜가 넘어가야 조언 횟수가 리필된다는 사실.
회의를 두 번에 걸쳐서 나눠서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흔치 않게도 미로가 제일 먼저입을 열었다.
“으음, 아리는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어쩌고. 묵성이는 축복 적극적으로 쓰고, 유산 의미 어쩌고 하고. 맞지?”
복잡 다양한 이야기를 ‘어쩌고’로 퉁치는 미로의 표현력에 감탄이 나왔다.
“… 비슷하네.”
은솔 누나도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풋! 맞지, 맞아. 아리랑 할아버님이랑 두 사람 다 어쩌고 잘하면 돼.”
“두 가지 이야기만 더 하고 끝내면 됩니다. 해결에 실패하면 어떻게 탈출할지, 인원 배분은 어떻게 나눌지죠.”
“그대로 적을게.”
새벽 회의 안건
1. 탈출 루트 확보
2. 인원 배분
“첫 회차에서 확인한 탈출 조건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번, 기원전 7만년대에 내려서 위기에 처한 원시인을 구한다. 2번, 원시인을 해치려 하는 정원사 무리를 처리한다. 3번, 엘디스트를 저지한다.”
아리가 입을 열었다.
“1, 2번은 어렵지 않았어.”
아리 말대로 1, 2번은 어렵지 않다.
1번, 원시인 구조는 드론 몇 대만 파괴하면 끝나는 일이었어.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드론보다는 빙하기의 가혹한 환경이 차라리 더 문제였다고 한다.
2번, 정원사 무리 처단은 솔직히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하려면 상당히 피곤한 일이긴 하지.
가장 큰 문제는 3번이다.
“엘디스트 저지를 위해선 오래된 목소리가 필요하고, 오래된 목소리란 곧 태고 문명의 생존자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존재는… 매우 드물죠.”
그냥 드문 정도가 아니야.
호텔에서 겪어온 모든 인물 중 위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딱 둘이다.
에이디아, 에밀리오.
상현 형이 슬쩍 손을 들었다.
“마침, 그중 한 명이 303호에 있군요.”
“…”
“게다가,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본 장면이 달의 탈출 아닙니까?”
“그랬죠.”
“호텔이 우리에게 준 힌트였을까요? 가인 군,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하자마자 모두의 눈앞에서 달이 탈출했다.
이게 달과 합일한 에밀리오의 영혼을 얻어내라는 호텔의 힌트였을까?
그럴듯하면서도 황당했다.
“달이 도망칠 때 이게 호텔의 힌트라는 식으로 생각한 분 있습니까?”
당연하게도 모두가 고개를 저었고, 할아버지가 코웃음 쳤다.
“그것 참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힌트인데? 일이 다 끝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라니!”
뭐, 호텔식 힌트가 대부분 그런 식이긴 하지.
상현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호텔 하는 일이 대부분 이런 식이니 놀랄 것도 없습니다. 어쨌든, 호텔이 우리에게 충고한 셈입니다. 에밀리오의 영혼을 확보해라. 그래야 엘디스트를 상대할 수 있다.”
“…”
“가인 군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현 형이 계속 ‘가인 군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게 살짝 부담스럽네.
이해는 한다.
정말 303호 진행에 에밀리오를 끌어들여야 한다면,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명이니까.
다른 사람은 아예 의미가 없다.
“어제부터 여러 가지 생각은 했습니다만, 어렵네요.”
모두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다.
“아시다시피, 달과 합일한 에밀리오는 대단히 잔혹한 성정입니다.”
“… 그렇지요.”
“저보고 선생님, 선생님 하는 말에 의미 부여할 필요 없습니다.”
에밀리오는 내게 공손한 편이다.
문제는, 입으로만 공손하고 실제로는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즉각 죽이려 든다는 것.
엘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음, 가인 씨가 에밀리오와 협상하다가 일이 잘 안 풀리면 어쩌죠?”
“…”
“에밀리오가 가인 씨를 죽이려 하면, 상대할 수 있나요?”
“달의 중심부에 도착만 한다면 가능합니다.”
에밀리오는 세 번째 문장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현실에서 이미 확인한 일이다.
“어머, 그래요?”
“그런데, 우리끼리는 중심부에 갈 방법이 없죠.”
“…”
“달의 표면을 파괴해 줄 다른 방주들도 없고, 내부에서 함께 싸워줄 선대 지혜도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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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지혜의 부재가 정말 큽니다. 현실적으로 음, 그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우리 중에선 없어요.”
“그렇네요.”
아리가 이 대화를 요약했다.
“에밀리오의 심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심장에 도착할 수가 없다. 못 이긴다는 소리네.”
“그렇지.”
“그러면, 말로 그 녀석을 구슬릴 수 있겠어?”
“…”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조언이겠지.
[조언 : 3 -> 2]‘에밀리오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언이 필요합니다.’
[협상의 핵심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문구.
하지만, 이 말을 들으니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협상의 핵심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올빼미가 그렇게 말했어?”
“그래. 에밀리오가 무엇을 원하는가. 이 부분을 고민하라는 소리네.”
은솔 누나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달의 악마가 원하는 건 복수 아니야?”
“복수…”
“방주의 역사는 반역의 역사였어. 오래된 문명 출신은 이후 문명의 인간을 증오하기 마련이니까.”
“복수도 맞는데, 하나 더 있죠.”
에밀리오의 두 번째 욕망.
“성장.”
“…”
“에밀리오는 끊임없이 분열하는 자기 자신을 추스르는 데 거의 모든 힘을 쏟고 있어요. 그나마도 왕관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지만, 한계에 가까웠습니다.”
에밀리오가 바라는 것.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내게 알아내려 했던 것.
내가 에밀리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
“화신의 서를 가지고 에밀리오와 협상하든지 해야겠네요.”
여기까지 들은 아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명심해. 그 녀석이 정말 성장하게 하면 안 돼.”
“물론이지. 위대한 자를 늘릴 필요는 없어.”
내가 할 일은 에밀리오를 끌어들이는 것이지, 에밀리오를 위대한 자로 각성시키는 게 아니다.
303호의 죄수를 하나 더 추가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때, 상현 형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안건과는 살짝 동떨어진 주제입니다만, 위대한 자 이야기가 나오니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다들, 303호의 구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03호의 구조.
“쉽게 말해, 누가 죄수고 누가 대적자냐는 소립니다. 엘디스트가 죄수입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게 쏠렸다.
엘디스트와 직접 맞선 사람은 나뿐이니까.
“…”
잠깐의 고민.
곧, 어렵지 않게 답이 나왔다.
“아닌 것 같네요.”
엄청나게 강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위대한 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책에 비유해 보죠. 엘디스트라는 책은 눈을 마주치니 내용이 읽히긴 했습니다. 단지,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감당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만약 엘디스트가 위대한 자였다면…”
“책을 펴자마자 죽었다?”
“그렇죠. 충돌 비슷한 게 성립하질 않았을 겁니다.”
지금껏 우리가 죄수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성공한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거의 유일한 사례가 301호의 죄수, 이스의 왕이었지.
그것도 솔직히 제대로 된 충돌은 아니었다.
당시 이스의 왕은 은솔 누나의 몸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힘의 손실이 있었으리라.
또, 천상에 도달한 이스의 왕은 과도한 무력행사를 자제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고작해야 몇 초 멈춘 게 전부다.
“엘디스트는 대적자라고 봐야겠군요.”
“그런데, 대적자라고 치면 또 엄청나게 강하긴 합니다.”
“3층 다른 방의 대적자랑 비교하면 어땠습니까? 이스의 대공이나 여덟 날개의 대천사와 비교해서 말입니다.”
“엘디스트가 훨씬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이쿠! 훨씬이라고 할 정도입니까?”
바로 그 순간, 아리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쩌면, 가인이 네 착각일지도 몰라.”
“착각?”
“… 꼭 엘디스트가 강해서는 아닐 수도 있지. 상성의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상성의 문제?
그 말을 들으니 ‘주’가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상대가 너를 손쉽게 무너트릴 수 있었던 이유를 고민하라. 이미 있었던 일이다.
엘디스트가 단순히 나보다 강한 게 전부였다면, 무슨 이유를 논할 필요가 없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주의 충고는 ‘힘 차이 이상으로 엘디스트가 나를 쉽게 압도하는 이유’가 존재함을 말한다.
이런 것을 보통 상성이라고 한다.
“상성의 문제라… 조금 더 고민해 볼게.”
잠시 침묵이 흐르는 시점.
상현 형이 다시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엘디스트는 대적자인 모양입니다. 그러면, 죄수는 대체 누굽니까?”
“…”
“열반 열차인가요? 그렇게 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위대하긴 합니다만…”
“나는 열반 열차가 죄수라고 봐.”
아리는 일관적으로 열반 열차를 죄수라고 주장해 왔지.
반면, 상현 형은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아리 양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생각할수록 조금 이상합니다.”
“어떤 부분이?”
“… 너무 주도성이 없지 않습니까?”
“주도성?”
“열차 주도적으로 뭔가 하지 못한다. 고장 난 것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승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승객이 난동을 부려도, 싸움을 벌여도 제압하지 못한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너무 배경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열차의 위대함을 봐. 루프 이동이 가능한 시점에서 이미 신이라고.”
“그건 또 그렇군요.”
열차는 죄수가 아니라기엔 너무 위대했고, 죄수라기엔 너무 배경 같은 존재다.
아리와 상현 형의 말을 듣던 중, 갑자기 알 듯 말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있는 느낌?
[조언 : 2 -> 1]‘열차를 위대한 자라고 볼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혹시 제가 떠올린 생각이 맞습니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일어서서 주변을 보라.]— 달칵!
“가인 군?”
“왜 그래?”
“…”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테이블 밑에 손을 넣으면, 허공에서 음식이 생겨나는 장소.
셀 수 없이 많은 세계가 기껏해야 방 하나로 취급받는 장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천상의 영역.
“… 열차는 호텔과 비슷합니다.”
“네?”
“아리가 언급한 초월성, 형이 말한 수동성. 둘 다 호텔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하죠. 호텔을 보세요. 위대한 자도 죄다 한 수 접을 만큼 초월적이지만, 그 자체가 위대한 자는 아닙니다.”
호텔은 위대한 자가 아니다.
위대한 자, 아니 그조차도 능가한 존재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열차는 위대한 작품입니다.”
아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가 만들었는데?”
“303호가 끝나기 전에 밝혀지겠지.”
잠시동안 이어진 고요한 침묵.
언제나 그렇듯, 은솔 누나가 우리를 다시금 현실로 끌어들였다.
“자, 자! 이런 이야기도 좋지만, 다들 잊지 마. 10시간 내로 저주의 방에 가야 하잖아? 인원 배분부터 이야기하자!”
.
..
…
회의가 끝날 무렵,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불령해탈은 어디로 간 거지?
어제저녁부터 설마 했는데, 이젠 사라졌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마침, 조언이 하나 남았네.
[조언 : 1 -> 0]‘불령해탈은 어떻게 된 겁니까?’
[손잡이에 가시가 있는 식칼이 목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겼을 뿐.]손잡이에 가시가 있는 식칼.
불령해탈은 가시가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결국 식칼이다.
그리고…
“목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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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오늘 회의에서 우리가 뭔가 놓친 게 있을까?
A : ‘알레프’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는 점이 우려됩니다.
그는 왜 열차에 있으며, 시작의 땅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또, 정원사와 적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적의 적은 동지라는 개념,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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