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34)
괴담 호텔 탈출기 834화(833/836)
834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19)
— 관측소
첫 번째 의뢰
1. 인근의 인간 거주지로 이동하라. 약 700명의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을 찾아냈다면, 그곳이다.
2. 마을 중앙에는 통나무집이 있다. 지붕 위에 새하얀 십자가를 확인하라.
3. 새벽 2시경, 새하얀 십자가를 불태워라.
4. 십자가가 타오르면, 세 사람이 막기 위해 나타난다.
5. 가장 처음 나타난 자는 즉시 죽여라. 두 번째는 눈을 뽑은 후 놓아주고, 세 번째는 십자가에 매달아라.
다음 지시 사항은 보름달이 뜰 때 나타날 것.
— 탁!
가인이 화이트보드에서 펜을 떼었다.
“다 읽으셨나요?”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엘레나였다.
“이, 이게… 그러니까 열차가 아리에게 내린 의뢰인 거죠?”
“그렇습니다.”
“무슨 의미죠? 제 말은, 아무리 봐도 끔찍한 행동인데…”
“지금부터 우리끼리 이야기해 봐야죠.”
다음으로 김상현이 의견을 냈다.
“인구 700명이면 자그마한 시골 내지는 정착촌 수준일 겁니다. 지붕 위에 새하얀 십자가가 있는 통나무집은 마을의 교회겠지요.”
“그렇죠.”
“이런 작은 마을에서 교회 십자가를 불태운다? 마을 주민들이 막으러 올 겁니다. 당연하죠.”
“그리고, 아리랑 알레프에겐 마을 주민을 살해하는 의뢰가 주어졌네요.”
“… 지시 사항만 보면 악당 그 자체입니다.”
엘레나가 꺼림칙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키는 대로 따를까요?”
박승엽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따르지 않을까요? 어, 요원들은 사람을 막 퍽퍽 죽이니깐…”
듣고 있던 차진철이 반박했다.
“퍽퍽 죽인다니? 요원이 무슨 살인마냐? 군인처럼 생각해야지.”
“저 군대 안 가봤는데요.”
“내 말은,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야. 전쟁터에서 거리낌이 없이 적을 죽이던 군인들도 집에 오면 다 착한 아들이고 남편이잖냐.”
“음…”
“요원도 비슷하지. 네가 볼때는 아리나 할아버지가 살인마로 보였냐?”
“당연히 아니죠.”
“요원에게도 명분이 필요하다. 대상이 혼돈 재해에 휩쓸렸다. 오염을 제거해서 멀쩡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 이런 게 있어야 죄책감을 덜 수 있지. 그런데…”
가인이 슬쩍 끼어들었다.
“지금은 명분이 전혀 없네요.”
“그렇지. 열차의 의뢰 내용에 왜 죽여야 하는지 설명이 전혀 없어. 관리국과 다르다. 요원이라 해도 당황할 상황이라고.”
명분이 있다면, 요원은 거리낌 없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숙련된 군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무 설명 없이 죽이라고 하면 요원들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다.
차진철의 설명을 이해한 후, 가인은 생각했다.
‘현실에서 형이 요원 경력을 쌓은 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네. 관리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동료가 늘어난 셈이니까.’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김상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가인 군 생각은 어떻습니까?”
가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아무리 냉혹한 요원이라 해도 이유 없는 살인 명령에는 당황한다. 이 정도를 열차가 몰랐을까? 싶네요.”
“예?”
“올빼미의 조언에 따르면, 열반 열차는 ‘위대한 작품’입니다. 그런 대단한 존재가 인간의 심리를 모를까요?”
엘레나가 조심스레 답했다.
“아리와 알레프가 겪을 당황스러움까지도 열차의 의도다?”
“자, 이쯤 하고 다시 관측에 집중하겠습니다.”
곧, 회의 중이던 가인의 분신이 사라졌다.
*
— 김아리
열차에서 내리고 약 3시간이 흐른 시점, 몇 가지 정보를 알아냈다.
현재 시간대는 1442년, 장소는 독일의 Nordhafen이라는 마을이다.
마을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덕분에 경치가 그럴듯했다.
바닷가인 만큼 상당수 주민은 어부였다.
또, 의뢰문에 적힌 통나무집의 정체는 마을의 하나뿐인 교회였다.
“이게 맞습니까?”
“… 벌써 하늘이 어둡네. 12시쯤 되었으려나? 새벽 2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준비해.”
“준비요?”
“기름하고 성냥 말이야. 기름은 아까 봤어. 성냥은 아직이야?”
대충 구한 옷가지로 몸을 가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 외모는 주변의 시선을 과하게 끈다.
그래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하는 일은 알레프가 담당했다.
“보니까 오토 피셔? 그 사람이 이런저런 물건이 많은 것 같던데.”
의뢰 내용을 확인한 후, 알레프는 아까부터 난리였다.
“아, 선배님! 진짜 시키는 대로 하시려고요?”
솔직히, 나도 알레프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십자가를 불태워라.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눈을 뽑고, 누구는 불타는 십자가에 매달아라.
이런 흉측한 명령을 내리면서 아무런 설명도 없어.
의문 없이 따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하진성에게도 이런 식의 지시를 내렸을까?
“휴우… 알레프, 일단은 준비하자. 성냥은?”
“아까 오토에게 부탁해서 구했습니다.”
“다행이네. 새벽까지 기다리자. 어떻게 할지는 상황 보고 결정하는 쪽으로. 알겠지?”
“…”
“마을에서 뭐 특이한 이야기 들은 건 없어?”
“특이한 이야기보다는, 특이한 분위기를 느꼈죠.”
특이한 분위기.
“무슨 말이야?”
“편견이긴 합니다만, 보통 이런 작은 마을은 외지인을 꺼리지 않나요?”
“그렇지.”
“주민들이 굉장히 친절했습니다.”
“흐음…”
“돈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기름이나 성냥을 그냥 주더군요. 심지어 소시지와 맥주까지 얻어먹었습니다.”
“공짜로?”
“공짜로.”
“친절하긴 하네.”
“더 있습니다. 맥주 한잔하면서 한스라는 남자하고 살짝 친해졌는데, 잘 곳이 없으면 -”
여기서 잠시 알레프가 움찔거렸다.
“뭔데?”
“- 아내를 데리고 본인 집에 와서 하룻밤 자라고 하더군요.”
“풋!”
“아,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됐어.”
괴이할 정도로 친절한 주민들이라…
이것만으론 잘 모르겠네.
문득 떠오른 생각.
지금쯤 송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
늦은 밤, 새벽 2시.
마을 중앙의 교회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희뿌연 달빛이 섬광처럼 간간이 비칠 뿐이었다.
사악한 일이 벌어지기 딱 좋은 분위기.
알레프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정말 열차의 요구를 따를 건가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몇 번이고 불령해탈을 쓰고 싶었어.
가인이도 이런 느낌이 들 때 조언을 쓰는 거잖아?
하지만, 불령해탈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해.
호텔에 오기 전의 나에겐 불령해탈 같은 게 없었으니까.
조언을 구하면, 요원 김아리의 판단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불령해탈의 판단대로 행동할 것 같았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떠올리며 교회에 다가가던 시점.
— 후욱!
“음?”
“선배님?”
“무슨 소리지?”
“소리라뇨? 제게는 -”
— 지이익!
알레프가 조용해졌다.
그의 귀에도 괴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
— 그르르륵!
“…”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며 손짓하는 알레프.
— 덜컹!
교회라기엔 허름하고, 가정집이라기엔 거대한 통나무 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처음 인지한 것은 불길한 어둠, 코를 찌르는 악취 그리고 노랗게 빛나는 야수의 섬뜩한 눈동자였다.
“으헛!”
용기 있게 나선 것이 무색하게 당황하는 알레프.
직후,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알레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 지이익!
날카로운 발톱이 알레프의 옷가지를 찢는 소리.
즉각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던졌다.
— 우당탕!
“뒤에 있어!”
괴물의 형상은 흉측한 어류와 인간을 반반 뒤섞은 모양새였다.
우뚝 솟은 어깨는 사나운 짐승처럼 굽어 있었고, 쩍 벌린 입은 무슨 칠성장어를 연상케 했으니까.
무엇보다 피부 위에서 꿈틀거리는 굵은 혈관이 혐오스러웠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
‘오래된 피’가 힘을 발하니, 전신의 피가 끓어오름을 느낀다.
— 탕!
주저 없이 머리를 노리고 총을 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런 괴수물 클리셰 같은 상황이 생길 때마다 뭐랄까, 총은 왜 있는 건지 헛웃음 나오곤 해.
— 투쾅!
괴물의 몸이 꿈틀거린다 싶더니, 순식간에 내 쪽으로 날아든다.
최소한 힘과 속도만큼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있다.
굳이 따지면, 호텔에 들어온 초기 차진철과 비슷한 정도.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
솔직히, 그냥 힘이 세고 튼튼할 뿐 격이 높은 존재로 보이진 않아.
부등변다면체를 사용하면 한 호흡에 토막 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얍!”
괴물의 공격을 한 차례 피해내며 생각했다.
오래된 피의 힘만 써서 상대하자.
과거엔 부등변다면체가 없었으니, 당시에 없던 힘을 사용하면 전개가 달라질지도 몰라.
— 타닥!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
이런 괴물에게도 동료가 있는 걸까?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이 정도는 믿어도 되겠지.
심호흡하며 뒤로 물러서자야수가 그르렁대며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는지, 야수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조심스러웠다.
“크르릉!”
다시 시작된 싸움.
짐승 같은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온 야수가 커다란 발톱을 휘둘렀다.
— 서걱!
못해도 30년 이상 마을 주민들의 체중을 지탱해 왔을 통나무 의자가 장난감처럼 찢어지는 소리.
확실히, 힘 하나는 제법 강해 보이네.
— 쿵!
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달려오는 야수를 보며 떠오른 생각.
세상은 오래전부터 기괴했다.
이런 자그마한 어촌 마을조차 흉측한 마수를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관리국은 이 뒤틀린 세상을 나름대로 잘 지켜왔지.
“이얍!”
벼락같이 손을 휘저어 얼어붙은 냉기를 뿜어냈다.
시간으로 치면 0. x 초에 불과한 찰나, 야수의 왼쪽 다리가 굳으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 쿵!
그르륵!
그 순간.
— 파아앗!
오래전의 환영을 보았다.
싸움의 디테일은 달랐지만, 지금처럼 야수를 바닥에 쓰러트린 나.
바로 야수에게 달려가서, 총구를 입 속에 밀어 넣는 모습.
연이은 사격.
버티지 못하고 터지는 머리.
그래, 괴물 입 속은 부드러웠구나?
예전엔 어떻게 싸움을 끝냈는지 이해했다.
지금은…
이미 이 구간의 기억을 회복했으니, 굳이 그때처럼 괴물 가까이 접근할 필요는 없겠지.
부등변다면체의 불길한 위광이 그 힘을 드러냈다.
— 서걱!
간단히 끝난 싸움.
주변을 돌아보니, 알레프 쪽 싸움도 끝나가고 있었다.
괴물에게 두 명의 추종자 내지는 하수인이 있던 모양이다.
“이 자식!”
피범벅이 된 채 오른손의 기이한 무기를 작동시키려는 알레프.
슬쩍 어깨를 짚었다.
“이쯤 하자.”
“엇! 처리하셨습니까?”
“응. 무기 내려.”
“이 녀석 아직 살아있습니다.”
“알아.”
“아니, 이런 끔찍한 놈들을 살려두겠다고요?”
알레프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열차에서 내린 지 몇 시간은 흘렀는데, 아직은 인지능력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걸까?
“천장을 봐. 불타고 있네.”
“아, 제가 방화장 가동기를 처음 써봐서 조준이 -”
“불 지르는 도구인가 보지? 어쨌든, 그 덕에 십자가가 타고 있어.”
불타는 십자가.
그제야 알레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타는 십자가. 다음은 기억해?”
“… 처음 나타난 자는 즉시 죽여라.”
가장 처음 나타난 자 – 야수는 이미 죽었다.
“다음은?”
“두 번째는 눈을 뽑은 후 놓아줘라.”
“이 녀석, 눈이 다 녹았네.”
“…”
“방화장 가동기? 그 무기 때문인가 봐. 눈 뽑은 셈 치자. 마지막은?”
“… 세 번째는 십자가에 매달아라.”
“세 번째는 저 사람인가? 매달자.”
세 번째 추종자를 십자가에 매달 때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마을 한복판에서 이렇게 요란한 싸움을 벌이는데 모를 수가 없었겠지.
기이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아… 감사, 감사합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
우리를 무서워하거나 꺼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같이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고개를 조아릴 뿐.
알레프는 당당한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고 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이쯤에서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
Q : 지금, 이 상황, 대체 뭐야?
A :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의뢰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좋군요. 이제는 열차의 의뢰에 의문을 품지 않으시겠지요?
————————————
‘알고 보니’ 열반 열차의 의뢰는 15세기 독일 해안가 마을에 숨어든 괴물을 처단하는 일이었네.
‘알고 보니’ 우리는 요원의 직책에 걸맞은 정의로운 일을 한 셈이야.
‘알고 보니’ 하나를 죽이고, 하나는 눈을 뽑고, 하나는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었어.
알고 보니 결과가 좋았다.
열차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언뜻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 이해하셨지요?’
“선배님, 지금 눈치챘는데, 하늘 보이세요?”
“… 보름달이네.”
“오, 오오! 쪽지 내용이 바뀌기 시작 – 어라?”
“…”
“해가 뜨기 전에 Seewind 역마차 대기소에 가서 기다려라. 열차가 오면 다시 타라. 이게 전부네요. 그러면…”
첫 번째 의뢰가 끝났다.
이쯤 되니 알레프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정말 끝인가요?”
“…”
“열차는 음, 위기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구하라고 우릴 보낸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
어차피 질문 한 김에 하나 더 묻자.
————————————
Q : 하나는 알았어. 이건 우리가 의문을 가지지 않고 열차의 명령을 따르게 하려는 과정이야. 다른 목적은 없을까?
A : 아주 긴 낚싯대가 있습니다.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당신의 눈에는 어떤 물고기가 잡혔는지 보이지 않지요.포기하십시오. 물고기를 찾아내는 건 다른 동료의 역할 아니었습니까?
————————————
아주 긴 낚싯대.
내게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물고기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다른 동료의 역할이다.
“… 열차로 돌아가자.”
하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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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는 열차의 의뢰를 의심하지 않고 따르게 되겠지.
그 이상은 모르겠다.
그 이상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인 듯했다.
그래서, 동료를 믿었다.
송이가 뭔가 알아내지 않을까?
*
— 유송이
“…”
아리와 알레프가 Seewind 역마차 대기소로 출발한 시점.
나는 마을에 홀로 남아 생각에 빠졌다.
우선, 가장 말도 안 되는 점부터 체크하자.
하늘에 보름달이 왜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