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36)
괴담 호텔 탈출기 836화(835/836)
836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21)
— 김묵성
박현민의 입에서 나온 ‘시간 여행자를 죽여라. 당사자는 물론, 그 힘과 의무를 승계한 후계자들도 모조리!’라는 문장이 시작이었을까?
기억의 회복은 갑작스러웠다.
— 파아앗!
*
호텔에 오기 전의 기억.
— 쿵!
“요원, 최소한 노크는 하고 -”
“개새끼야!”
“시작부터 과격하군. 무슨 일 있나?”
“무, 무슨 일 있냐고? 이, 이 버러지 같은 놈이 -”
나와 함께 수호를 체포한 알파 팀 팀장은 내게 약속했지.
‘추가로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은 만큼, 처분하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수호가 죽지 않게끔 조치하겠다고.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
‘내가 책임지겠네.’
팀장 선에서 막을 수 없는 사람이 수호를 처분하려고 하면, 내 이름을 대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 혹시 김수호가 처분되었기 때문인가?”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관리국 한국지부의 총책임자, 박현민의 명령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 과거의 나는 수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 파아앗!
다음 장면.
나는 차마 박현민을 죽이지 못했고, 무장한 직원들에 의해 제압당한 상태였다.
과거의 나는절망에 휩싸인 채 박현민에게 호소했다.
“제발!현민아, 뭐라도 알려다오. 내 경력이 몇 년이냐?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모를 것 같냐?”
“…”
“내가 네 목숨을 몇 번 구했냐? 10번도 넘었다! 14년 전, 빌어먹을 두꺼비가 널 삼키려 했을 때 일은 기억하지?”
박현민은 혈관 속에 피 대신 얼음이 흐르는 사람이다.
오직, 그런 부류의 인간만 관리국이라는 끔찍한 조직의 수뇌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자네가 격리 개체, 바포메트의 입에서 날 끄집어냈지.”
“그런데,그런데, 어떻게 네 놈이!”
“후우… 모두 물러가라.”
그도 어떤 의미에선 사람이었다.
“… 설명해 주겠네. 가능한 선에서는.”
과거의 박현민이 했던 설명은 조금 전에 들은 것보다 디테일이 매우 부족했다.
당시의 나는 ‘진실한 마음’이 없었으니, 박현민 역시 내게 별다른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있었다.
하진성은 시간 여행자이며,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테러리스트다.
하수연은 시간 여행자의 딸이며, 그녀 역시 아버지와 유사한 일을 했다.
정황상, 시간 여행과 관련한 초능력이 유전되는 것 같다.
따라서 하진성의 직계 혈족을 처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 파아앗!
*
회상이 끝났다.
지금 얻어낸 정보로 회복할 수 있는 기억은 이 정도인 모양이다.
“요원, 내 말 이해했나?”
“…”
“요원?”
“… 그래. 이해했다.”
‘진실한 마음’의 힘으로 한국지부장이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아냈다.
또한, 눈 앞의 남자의 한계 역시 알았다.
“그러면 -”
“됐다.”
“뭐?”
“됐다고. 조금 쉬겠다. 한동안 휴가인 셈 치지.”
나는 박현민이 모르는 사실을 안다.
시간 여행의 비밀은 하진성의 초능력 따위가 아니라 열반 열차라는 사실.
수연이는 장인어른께 초능력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탑승권을 물려받았다는 사실.
두 사람은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박현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이 차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박현민의 다음 말은 아마도, 내 기분을 읽고 한 말이리라.
그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까.
“요원, 미안하네.”
“…”
“내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현민이라면, 한국지부 총책임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진성과 하수연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하지만, 의도적이고 아니고 따위가 관리국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뭐가 미안하지?”
“음?”
“미안하다는 건 잘못을 했을 때 쓰는 표현이지. 자네 생각엔 자네가 잘못했나?”
“…”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혼돈 재해에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용서 없이 민간인을 죽여왔던 과거의 나 말이다.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라 믿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하며 여러 번의 삶을 살아왔다.
“내 기분 맞출 생각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게.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다른 결정을 내릴 텐가?”
죄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도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타락했다 또는 타락할 위험성이 있다. 그게 전부다.
관리국의 눈으로 보면 하진성은 당연히 죽어야 한다.
하수연은 말할 것도 없고, 김수호도 예외가 아니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생매장당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관리국은 언제나 일관적이었다.
그 일관적인 논리가 하진성, 하수연에 이어서 김수호, 나아가서 ‘나’에게 돌아오고 있을 뿐.
“가보겠네.”
“… 요원.”
“더 할 말이 있나?”
“이대로 자네가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글쎄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따라서 자네가 나가는 대로 김수호를 처분하라고 지시할 생각이네.”
“… 협박이라도 하는 건가?”
“협박, 협박… 묵성아,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너도 알잖아.”
“…”
“그냥, 그런 거야. 이게 내게 주어진 일이다. 이게 우리가 해온 방식이다.”
“…”
“이래서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 평생.”
“그거 하나는 참 다행이군. 넌 평생 혼자 살다가 식인 두꺼비 아가리에 들어가는 게 딱 어울린다.”
— 철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원 김묵성일까?
아니면, 하수연의 남편이자 김수호의 아버지일까?
…
— 띠리링!
— 뭐야? 어떻게 됐어? 시간대여기에 누구 있냐고? 진철이랑 – 아, 진철이면 충분해?
— 띠리링!
— 할아버님? 어떻게 되셨어요? 기억은 되찾으셨나요?
— 그러니까, 미로를 도와서 수호 씨를 빼내라는 거죠? 알겠습니다.
답은 나와 있는 문제였다.
나는, 냉혹한 요원이 되느니 비겁한 아버지가 되겠다.
*
— 관측소
“정말이지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하진성과 하수연은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흉측한 결과를 유도한 건 열차죠.”
“…”
“시간 여행 능력은 무슨 혈족 계승 초능력이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가 탑승권을 딸에게 상속해 준 것뿐이지.”
관리국에 대한 상당한 적대감이 담긴 김상현의 평가.
차진철이 조심스레 반박했다.
“형님, 방금 언급하신 내용 대부분은 우리니까 아는 겁니다. 관리국은 모릅니다.”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관리국은 혼돈 재해를 막는 집단 아닙니까? 그런데, 되려 김수호의 타락을 본인들이 유도했다니!”
“…”
“본인들이 타락시킨 후, 타락했으니 처분한다? 이게 말이 되는 -”
“… 형님, 관리국이 말하는 ‘타락’은 굉장히 넓은 의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혼돈 재해를 유발할 개연성이 높기만 해도 타락했다고 칩니다.”
즉, 관리국이 보기에 김수호는 하수연의 아들로 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타락했다는 소리다.
이를 이해한 김상현이 입을 딱 벌렸다.
“아니, 그게 진짜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무죄 추정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한가인은 순간적으로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노력해야 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웃음을 터트리기엔 너무나 심각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관리국’과 ‘무죄 추정’은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두 개념이 아닌가.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형님, 일이 터지기를 기다리면 대부분 너무 늦습니다.”
가인이 생각하기에, 이런 건 정말 답이 없는 문제였다.
비판하는 김상현도 옹호하는 차진철도 이해가 가는 상황.
그래서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더 중요한 이야기 말이다.
“잘못 가리기는 이쯤 합시다. 그보다 한 가지가 궁금하군요.”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시선이 가인에게 쏠렸다.
“하씨 부녀는 아무것도 몰랐겠지만, 열차는 나비효과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왜 저런 명령을 내린 걸까요?”
열반 열차는 왜 나비효과로 대량 학살을 일으키고 있는가.
엘레나가 조심스레 답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아리도 열차의 의뢰를 받았잖아요?”
“그렇죠.”
“… 그러면, 아리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죽게 한 건가요?”
주변이 조용해졌다.
엘레나가 멍한 표정으로 가인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열차는 대체 왜 저러는 거죠? 왜, 왜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있어요?”
그때, 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이다?”
“조언 쓰신 거죠?”
“정원사들이 남긴 기록을 다시 생각해 보라네요.”
“정원사들이라면 -”
직후, 가인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 훌륭한 정원사라면, 가위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정원사들이 남긴 기록 아닙니까?”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살릴 방도가 없다. 가위질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인류는 오염되었다.”
*
— 김묵성
미로와 은솔이에게 연락해 수호를 빼낼 것을 부탁한 후,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기하게도, 본능이 답을 찾아냈다.
‘아버지라면’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것처럼 말이다.
— 딩동!
— 누구, 어머! 아버님, 오셨군요!
본능적으로 찾아온 아들의 집.
빠르게 커피 한 잔을 내오는 며느리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버님,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
“수호 씨는 어떻게 됐나요? 괜찮은 거죠?”
“수호는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니, 걱정 말거라. 그보다, 얘야. 너와 민성이가 위험하다.”
“예? 저와 미, 민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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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 김수호의 아들도 처분해야 하나?’
“민성이는 지금 어디 있지?”
“하, 학교에 있어요.”
“당장 데려와야 한다.”
“바로 통화 -”
“전화는 안 돼. 듣는다. 네가 직접 가서 데려와라. 그리고, 이 번호로 연락해. 내 이름 말하면 너희를 숨겨줄 거다.”
긴장했음을 역력히 드러내는 여인, 박세연에게 단호히 말했다.
“지금 당장 움직이거라. 바로!”
“알, 알겠습니다.”
곧, 아들의 집에 나 혼자 남았다.
거실을 서성이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깨달은 사실.
그러니까…
“예전엔 순서가 좀 달랐군.”
요번에는 박현민과 한바탕 벌이는 게 먼저였고, 그다음에 아들의 집에 왔지.
실제로는 아들의 집에 온 게 먼저였다.
이유야 짐작이 간다.
아들이 타락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겠지.
— 덜그럭! 덜컥!
아들의 집을 거칠게 뒤졌다.
서랍장을 마구 열어봤고, 옷장은 물론 서재까지 마구 헤집었다.
그러던 중, 자연스레 떠오른 오래전의 기억.
“…”
수호 녀석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의 일.
녀석은 날 닮아서 키가 훤칠하고 체격이 당당했는데, 덕분에 여자애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의 고등학생이 여자애들에게 인기까지 좋다?
이 상황에서 공부를 잘하기란 쉽지 않지. 가인이가 특이한 경우라고 본다.
덕분에 수호 녀석의 성적은 엉망진창이었다.
성적표를 받아보면 수나 우는커녕, 미나 양이 일상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려니 했다.
몸 건강하고 착하게 크면 됐지, 공부야 대학 가서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적표에 ‘가양가가양가가수’ 이 지랄이 난 것은 좀 심하지 않냐?
심지어 딱 하나 있는 수는 체육이었다.
딱 한 번 참지 못하고 크게 혼냈다.
이게 사람 새끼가 받을 수 있는 성적이 맞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 시험에서 수호 녀석이 보인 대응은 단순했다.
“고 녀석, 성적표를 책상 밑에 숨겼었지.”
— 덜컥!
설마 하는 마음에 서재 책상을 들어 올리니, 그 밑에 얇은 봉투가 있었다.
“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고등학교 때 ‘가가가가가양가수’ 성적표를 숨겼던 위치 그대로잖아?
이놈은 뭐 이렇게 발전이 없냐.
— 펄럭!
봉투 속에 들어있는 얇은 종이.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품어왔던 많은 의문을 단박에 해소해 주는 물건이었다.
‘거짓말 하지 마… 돌아가신 어머니께 들었어. 당신이잖아. 당신, 당신이… 할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를 죽였고 이제는 나까지 죽이려는 거잖아… 한 번도 우릴 살려줄 생각 없었잖아!’
나는 모르고, 수호와 아내가 공유했던 정체 모를 비밀.
‘할아버지가 호텔에 오기 전에 열반 열차에 탑승한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 기억을 잊으신 거죠.’
아리 뿐만이 아니라 나도 열차에 탔다는 가인이의 판단.
‘탑승권은 훨씬 일찍 받았어요.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으니, 너도 그러길 바란다. 인생이 막막하다 싶을 때 탑승권이 널 도와줄 게다.’
하진성이 하수연에게 상속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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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열차 승차권
출발 : —
도착 : —
승차자 :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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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는 열차표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은 아직 열차표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
하진성은 열차의 의뢰를 최소 수십 번 이상 처리한 후에야 표를 얻었다. 아내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첫 번째 회차에서 아리, 알레프가 만났던 아내는 열차의 ‘첫 의뢰’를 끝내고 돌아온 시점이었던 것.
이후에도 열차의 일을 여러 번 수행했다.
어쩌면 나와 결혼한 후에도 열차의 의뢰를 받았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얻은 보상.
“…”
하수연만 열차표를 상속받은 게 아니다.
김수호도 하수연에게 열차표를 상속받았다.
당연히, 표를 받을 때 아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리고, 그 티켓이 내 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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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열차 승차권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
도착 :
승차자 : 김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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