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65)
괴담 호텔 탈출기 865화(864/866)
865화 – 두 사람의 소원 (15) Fin
— 김아리
“아…”
생각이 굳었다. 전신이 얼어붙었다.
상식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절망감이 끓어오르자, 숨을 쉬기 힘들 정도!
“무슨 일이지?”
오래된 의문들이 단박에 풀리기 시작했다.
첫째, 열반 열차의 방식대로 정말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가?
정답은 당연히 ‘아니오’였다!
천국은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궁극의 사랑으로 빚어낸 영역.
사랑을 부정하는 이치로 궁극의 사랑에 닿겠다는 발상 자체가 당연히 모순이었던 것.
여기까지는 나 혼자서도 얻을 수 있었던 결론.
어쩌면, 왕족들도 중간중간 의문을 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동안은 누구도 다음 문장을 반박할 수 없었다.
둘째, 내가 찾아낼 수 있는 모순을 열차가 모를 수 있는가?
열반 열차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위대하며, 심지어 왕족들보다도 위대하다.
위대한 열차가 영겁에 걸쳐 도달한 결론이 바로 이곳이다.
필멸자인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의문을 열차가 놓쳤다고?
있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고, 왕족들이 보기에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모두가 열차가 내놓은 답을 반박하지 못했다.
열차는 너무 위대한 존재였으니까.
이 의문의 답.
모르고 이곳에 온 게 아니야.
알면서, 다 알면서 왕족을 데리고 이곳에 온 거야.
왕족은 열차에게 천국에 갈 것을 명하지 않았냐고?
열반 열차가 주인의 명령을 거스르는게 말이 되냐고?
하하! 열차는 주인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되려,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게 주인의 명령에 복종했지.
‘… 창조보다는 발굴에 가깝겠지.’
‘열차 기반 기술의 원천은 반고로 추정하네. 그 이상은 아는 자가 없지.’
단지, 주인의 정체가 왕족이 아니었을 뿐!
“죄인이여, 아까부터 넋이 나가 있구나. 천국의 빛을 보니 정신이라도 나갔느냐?”
“슬퍼서.”
“슬프다니? 오호라, 그대의 비참한 운명 때문인가?”
“…”
“허허, 힘없는 눈동자를 보니 조금 가엾구나. 좋아, 이제라도 반성한다면 -”
“내가 슬픈 건, 당신이 왕족의 수장이기 때문이야.”
“뭐?”
“인간의 고점이란 겨우 이 정도인 걸까… 부처님 손바닥 위의 돌 원숭이만도 못하구나.”
“무슨 소리를 -”
— 고오오오…!
아아…
아득한 성천의 소리가 들려온다.
반고가 고대해 온 최후의 만찬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 스아아…!
신비로운 파동이 일대를 휩쓴다.
곧 모두가 끔찍할 정도로 강한 영적 인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엇! 이, 이 힘은 대체 – 아, 아이온 님!”
“탈리모어! 이런, 무슨 일이냐!”
지평선 너머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영광.
모두가 천국의 증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무언가.
지금은 거대한 아귀의 목젖과도 같이 느껴졌다.
“부, 분명 천국의 영광일 텐데! 이 상황은 이상한 -”
“으아악!”
이쯤 되자 왕족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의 일은 아무리 봐도 ‘구원’과는 다르게 느껴졌겠지.
“커허억! 아이온 님! 어떻게 된 -”
“피해라!”
모두가 정신없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자유를 얻었는데, 그 어떤 왕족도 날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다들 참 재빠르기도 하지.”
인간의 몸을 잃고 제관을 쓴 황금의 형상으로 변한 왕족들.
인간 육신의 나약함을 극복해서인지, 왕족들의 도주 속도는 참으로 빨랐다.
비행기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어지간한 우주 비행체를 압도할 정도.
이 정도면 단순히 비행하기만 해도 그 여파로 어지간한 나라가 붕괴하겠지.
새삼스럽지만, 왕족들은 정말이지 대단한 강자였다.
…
아무 의미 없다.
빛은 1초에 30만km를 이동하지만, 이렇게 빨라도 블랙홀을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상대는 인류의 블랙홀과 같다.
아무리 빨라도, 무슨 수를 써도 도주할 수 없는 존재.
반고는 사람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던 황금 왕족들이 하나같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끌려간다.
이 기막힌 풍경 속에서 딱 한 사람은 끌려가지 않았으니, 나였다.
반고의 인력은 내게 미치지 않았다.
마치, 세상 모든 인간이 ‘아리’와 ‘아리가 아닌 인간’으로 나뉜 것처럼.
넋 나간 듯 가만 서서 대파멸의 순간을 감상하는 순간.
— 덥석!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았다.
설마 조슈아?
“크윽! 나, 날 붙잡아라!”
아니구나.
하긴, 조슈아는 왕족 중에선 가장 약한 축일 거야.
태고 문명에서 힘을 쌓을 기회도 없었고, 열차에서도 언젠가부터는 잠만 잤으니까.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는 가장 강한 자일 수밖에 없다.
“… 아이온.”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당당하고 오만했던 황금의 왕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는 천국에 가려고 했는데… 모두와 약속했는데…!”
“…”
“왜… 왜 이곳에 반고가 있지? 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눈앞에 있는 자는 공포에 질린 나약한 인간뿐이었다.
“제발 살려다오!”
“내가?”
“가능하다… 너는, 네 혼은 반고에 속해있지 않다. 그래서 반고도 널 삼키지 않아!”
아까부터 나만 멀쩡한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이런 거였어?
“하, 합일…! 합일하면 된다!”
“…”
“내, 내 영체는 단일체가 아니다!”
“…”
“724명의 왕족, 4,812명의 1급 시민, 28,933명의 2급 시민, 그리고 109,530명의 3급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
“그래서?”
“여기에 네 영혼까지 합일하면 버, 버틸 수 있다! 틀림없어, 그게 인류의 마지막 희망 -”
“인류의 희망?”
“그렇다!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그러니, 개인감정을 버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판단 -”
— 고오오오…!
아득한 성천의 소리가 들려온다.
황금왕의 영체가 마치 어시장 좌판 위에 올라간 생선처럼 펄떡이기 시작했다.
아이온에게는 그 어떤 여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영겁에 걸쳐 쌓아온 힘은, 반고의 인력을 버텨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이온.”
“내, 내게 결집의 파편이 있으니, 그대가 호응하면-”
“폐하, 아까 내려주신 귀한 가르침,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종의 존속은 그 무엇보다 중대한 가치라면서요?”
“그대…!”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아니죠. ‘내가’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지. 죄송하지만, 지금 폐하는 저까지 위기에 빠트리시고 있네요.”
꿈틀거리는 노란 생선의 머리통을 잡았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인류를 위해서.”
“제, 제발! 안 된다!”
“돼.”
— 퉁!
실처럼 나약한 아이온의 힘을 끊어내는 순간.
“으아아아악!”
“매몰비용 슛!”
대우주의 마지막 왕족이 저 멀리 날아갔다.
이제, 우주 전체에 단 한 명의 인간만 남았다.
.
..
…
외롭기 그지없는 공허한 평원을 거닐며 생각했다.
세상에는 의미가 없다고.
“흐… 하핫!”
웃음이 나왔다. 또, 눈물이 나왔다.
이게 대체 뭘까?
자기들만 살겠다고 이후 시대 전체를 희생한 왕족들.
그렇게까지 하면서 천국을 꿈꾸었는데, 모두 망상에 불과했다.
다 함께 우주의 시작과 함께 태어났다는 마신의 뱃속으로 다이빙했을 뿐.
왕족의 꿈은 의미가 없었다.
그 꿈을 위해 짓밟힌 억겁의 고통조차 의미가 없었다.
자신들이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문명의 지도자라 자부했던 왕족들.
하지만, 세상에는 최초의 왕족이 태어나기도 전에 깔려있던 레일이 있었던 것.
세상에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이때가 되어서야 열반자의 깨달음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 고오오오…!
저 멀리서 빛이 다가온다.
나도 끝까지 버틸 수는 없는 걸까?
“…”
모르겠다.
그 어떤 이성과 논리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릎 꿇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절망 앞에 선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아버지.
이게 정녕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요?
세상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을 말, 제가 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세상을 쓰레기같이 만드셨나요.
혹시 본인이 창조한 게 아니라면, 좀 괜찮게 바꿔보실 생각은 없었나요?
이미 바꾸는 중이시라면, 언제쯤 끝나는 거죠?
보여주세요.
당신이 준비한 정답을 보여주세요.
적어도, 저런 아귀 배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좋은 결말을…
부디, 제게 당신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힘을 주소서.
여기까지 떠올린 순간.
“빨리하시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노인이 있었다.
폭풍우가 치던 날, 내 앞에 나타났던 사람.
내게 사슴의 뿔이 되어보라고 했던 사람.
“이런! 반고, 반고가…! 여기까지 침범할 수 있다고?”
“…”
“빨리 끝내게. 시간이 촉박해. 빨리 끝내고 이탈해야 -”
이 순간의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노인이 누구인지, 지금 내가 어떤 현상을 겪고 있는지.
그래서, 다음 소원을 빌었다.
호텔에서 태어났기에 빌 수 있는 소원.
호텔의 시련에서 가장 어려운 요소가 무엇인지 알기에 빌 수 있는 소원!
“…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했다.
미로가 호텔에서 처절히 실패했던 이유를 생각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몸소 가르쳐준 큰 교훈.
호텔의 시련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건 무슨 유산이고 축복이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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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제게 훌륭한 파티를 내려주시길!”
“뭐?”
“싸우지도 않고, 똑똑하고, 힘도 좋고, 잠재력도 짱짱하고 -”
“아니, 이, 이런 소원이 가능할 리가 -”
“나와 함께 결말에 닿을 수 있는 최고의 파티를!”
노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호텔에서 태어났기에 가능한 소원이로구나. 혼은 좀 날 것 같지만…”
— 우르릉!
천둥소리를 들었다.
“… 그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파아앗!
환상의 끝.
마침내 돌아온 최초의 기억들.
소원의 각성과 함께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 내가 다 했네.”
이 파티, 그냥 내가 다 했는데?
얘들아, 너희들 나 없으면 진짜 어쩔뻔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