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66)
괴담 호텔 탈출기 866화(865/866)
866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36)
— 김아리
마침내 자각한 최초의 소원.
환상이 깨어지고,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생각했다.
현실의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으응…”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는 소년, 조슈아.
상의 한 구석에 나타난 ‘열반 열차 차장 대리’라고 적힌 이름표.
깨달았다.
지금은 윈스턴을 처치하고 열차에 돌아온 지 1시간 정도 흐른 시점.
알레프는 이미 시작의 땅을 향해 떠났고, 조슈아는 깨어나기 직전이야.
현실의 나는 차장 대리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다음 전개는…
“으윽, 누나?”
“…조슈아.”
“여, 여긴 어딘가요?”
이제는 더없이 생생한 기억들이 알려준 앞으로 벌어질 일들.
1번 : 나와 조슈아는 1~2년에 걸쳐 열차의 의뢰를 수행하게 된다.
목적은 조슈아의 영혼을 성장시켜 진실한 왕족으로 만들어 내는 것. 왕족이 된 조슈아는 즉시 열차의 차장으로 임명된다.
2번 : 차장이 된 조슈아와 함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억겁에 걸쳐 무수한 세상을 무너트리고,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3번 : 기나긴 여정 끝에 ‘반고의 영역’에 도착한다.
“…”
본능적으로 깨달은 사실.
2번으로 넘어가면, 절대로 열차를 막을 수 없어.
조슈아가 차장이 되는 즉시 ‘열반 열차의 설정이 초기화됩니다.’라는 알림이 뜬다.
이때부터 열차는 사실상 절대 무적의 존재.
나는 당연히 막을 수 없고, 동료들을 다 데려와도 불가능.
2번 구간의 열차는 제약이 풀린 위대한 자나 다름없다!
절대 무적의 열차를 상대하는 방법은 둘이다.
3번 구간, 반고의 영역까지 가서 열차가 정지한 후에 일을 벌이거나…
“지금이니?”
1번 구간!
아직 윈스턴이 열차에 걸어둔 제약이 남아있는 지금이다.
여기서 더 진행하면 안 돼.
더 진행해서 열차가 전능한 힘을 회복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열차는 계속 고장 난 상태여야 한다.
조슈아는 차장이 되어선 안 된다!
“누나?”
— 덥석!
즉각 조슈아에게 외쳤다.
“내려달라고 해. 당장!”
“예?”
“네 부탁은 거절하지 못할 거야. 당장, 근처의 안전한 도시에 내려달라고 해!”
.
..
…
— 덜컹!
곧 열차가 정차합니다.
*
내렸다.
예상대로 열차는 조슈아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어.
생각해 보면, 굳이 조슈아가 아니라 내 요청이어도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아.
열차는 ‘아직’ 대부분의 권한이 윈스턴에 의해 봉인 당한 상태니까.
“누나, 여, 여긴 어디죠?”
“…”
“아빠는 어디 있어요?”
“… 미안.”
“예?”
“아니야.”
조슈아, 미안한데 나도 모르겠어.
열차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널 데리고 내리긴 했는데…
여기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애초에, 이렇게 내려도 되는 걸까?
1회차 때 세상이 멸망한 이유는 열차 내의 정원사 때문이다.
그들이 2회차 들어 잠잠한 이유는 나와 알레프를 경계해서일 텐데…
나랑 알레프가 둘 다 사라지면, 걔네가 또 일 벌이는 것 아니야?
“…”
모르겠다.
정말, 여기서부터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조슈아와 함께 멍하니 길가를 서성이던 시점.
“저기요!”
뜬금없이 모자를 쓴 청년 한 명이 나타났다.
“김아리 님, 조슈아 님, 맞으시죠?”
“어, 제가 조슈아 맞아요.”
“아 다행이다. 오전 내내 찾았거든요.”
“오전 내내 저랑 누나를 찾았다고요?”
“예. 편지 심부름을 받았거든요.”
청년은 조슈아에게 편지를 건넨 후, 내 쪽을 두어 번 힐끔거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사라졌다.
“으윽! 누나! 저 이 편지 못읽겠어요.”
“이리 줘봐.”
편지는 친절하게도 한글로 쓰여있었다.
정말이지, 이 편지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차장 대리, 갑작스레 열차를 떠나서 놀랐습니다.
행동이 많이 달라지셨군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찾으신 듯합니다.
“하!”
“누나?”
열차가 벌써 내 상태를 파악했어.
끔찍할 정도로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 귀신같아.
차장 대리, 갑자기 열차를 떠나봐야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조슈아 님을 데리고 돌아오시지요.
약속 장소 : —
— 지이익!
“내 행동, 여기까지 읽었어? 하! 여기까지 읽었으면 약속 장소를 적지도 않았겠지.”
“누, 누나?”
“조슈아, 가자. 일단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어.”
*
저녁 무렵의 일.
강가 근처의 적당한 음식점에 앉아 조슈아가 먹을만한 음식을 주문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던 중, 조슈아가 살짝 겁먹은 목소리를 내었다.
“누, 누나.”
“응?”
“돈 있으세요? 저기, 직원이 아까부터 우리 쪽을 보고 있는뎅…”
돈? 당연히 없지.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쓰는 돈이 나한테 있으면 더 이상하지.
“신경 쓰지 마.”
“아, 돈 있으시구나!”
안 낼 건데?
내가 세상을 몇 번을 지켰는데, 밥 한번 공짜로 먹는 게 잘못이야?
당당하게 앉아있으니, 직원이 나타났다.
“손님, 여기 브루스케타(Bruschetta)와 라자냐입니다. 또, 잘 익힌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가 준비되었으니 행복한 식사 -”
“뭐, 뭐야? 이렇게 많이 시키지 않았는데?”
빵이랑 라자냐만 시켰는데, 뜬금없이 송아지 고기 요리는 뭐야?
직원이 빙그레 웃었다.
“저쪽 신사분이 계산하셨습니다.”
“…”
“참, 신사분이 편지 하나를 전해달라 하시더군요.”
— 펄럭!
차장 대리, 아무리 그래도 식당에선 돈을 내셔야지요.
명색이 전직 요원이신데, 25,000 리라(₤)가 없어서 좀도둑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게다가, 조슈아 님은 성장기 소년이십니다.
식사 때 적절한 단백질 보충은 있어야겠죠.
“우와! 잘 먹겠습니다!”
“… 잘 먹으렴.”
슬슬 돌아오시지요.
돈도 없고, 힘도 없고, 계획도 없는 분이 밖에 나가봐야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
이런 식의 편지가 끊임없이 전달되었다.
예컨대, 세 번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차장 대리는 열차를 증오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기억 때문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는 감정적인 판단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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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요원입니다. 합리적으로 상황을 보십시오.
열차가 당신을 해치려 한 적이 있습니까?
늦은 밤, 이탈리아 소도시의 호텔에서 발견한 네 번째 편지의 내용은 조금 직설적이었다.
— 꿀꺽!
이제 당신은 열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또, 열차는 ‘여러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압니다. 이 국면의 해결이지요.
열차의 목적과 여러분의 목적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열차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도 아니고, 여러분의 패배가 열차의 승리도 아닙니다.
같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십시오.
“…”
열차의 목적.
자세히는 동료들과 이야기해 봐야겠지만, 열차의 목적은 곧 반고의 목적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루프의 인류를 모조리 반고의 배 속에 집어넣는 게 아닐까?
열차는 이것이 참가자의 목적과 모순이 없다고 한다.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이해했다.
열차가 바라는 건 참가자의 파멸이 아니었어.
“해결을 바라는구나.”
놈이 바라는 건 303호의 해결이다.
열반 열차가 바라는 형태의 해결!
그래서!
“하아암! 누나.”
“…”
“내일은 어떻게 해요?”
“… 다른 도시로 가자.”
— 꿀꺽!
열차의 뜻에 동참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열차가 바라는 해결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인류에게 큰 해악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음, 또 걸어야 해요?”
“차 타고 가자. 크게 힘든 일은 없 -”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신 순간.
— 팅!
“으엇! 아, 아리 누나?”
전신이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물컵은 바닥을 굴렀고, 순식간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 의식을 잃기 직전, 컵의 뒷면에 적혀있던 자그마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차장 대리, 당신은 열차를 증오하는군요.
그래서 말이 통하질 않는 듯합니다.
이것 참, 사람을 대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말이 통하는 분을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쉬시길.
“으아악! 누나! 누, 눈코입에서 피가 – 꺄아악!”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김묵성
.
..
…
기나긴 꿈의 끝.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앞에 있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장년인이었다.
현실의 나는 하진성을 총으로 쏜 직후였던 것.
“그래, 그렇군요…”
진성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이게 내 업보인가…”
삽시간에 차가워지는 하진성.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들이 속삭인다.
그는 내 동료였고, 또한 장인이라고.
하진성을 죽인 사람은 정말로 나였다!
뜨겁다.
머리가, 머리가 정말로 뜨겁게 느껴졌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던 과거의 삶.
깨달음을 빙자한 허무한 마력에 휘둘렸던 과거의 나!
전신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렸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나는…
“… 열차.”
“엘디스트 님!”
“열차!”
“엘디스트 님, 괜찮 — ”
“아니다! 알레프, 나는 엘디스트가 아니다! 나는 -”
분노를 토해내려는 순간.
— 덜컹!
어느새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의 직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했는데, 이쪽 분도 기억을 되찾으셨군요.”
“너…!”
“당신과 당신의 동료는 거의 비슷한 시점에 기억을 회복하셨습니다. 물론, 천상의 기준입니다만.”
“…”
너무 화가 나니 도리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억겁의 세월 동안 겪어온 고통을 생각하니, 직원을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색을 느꼈는지, 직원이 가볍게 한숨 쉬었다.
“후우… 이쪽 분은 더 심하시군.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으려나?”
“뭐라고?”
“사실, 열차는 여러분을 위한 제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 여러분을 위한 제안?”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길 말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겠군요.”
“…”
“이것 참,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열차는 여러분이 왜 이리 분노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시지요. 당신이 겪은 과거의 일이란, 결국 지나간 일입니다. 신경 써봐야 의미 없습니다.”
“…”
“앞으로를 생각하셔야지요.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열차가 딱히 잘못한 건 없음을 깨달으실 겁니다. 우리는 -”
“이 미친 새끼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자, 직원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진정하시길. 합리적으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여러분의 과도한 감정입니다.”
“너…!”
“그래서 말인데, 당신을 위한 제안도 있습니다.”
“…”
“아내 분을 사랑하시지요? 원하신다면, 아내 분과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을 1,000번이고 10,000번이고 반복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
“숫자가 부족하시다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대화지요. 열차와 여러분은 함께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
이해했다. 이해하고 말았다.
저 흉측한 존재가 진정으로 ‘사람이 아닌 존재’임을 이해하고 말았다!
그래서, 저런 끔찍한 존재의 손에 세상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전의를 다지는 순간.
“… 안타깝군요. 나는 당신들 이전에도 참가자를 상대했습니다. 여러 차례 승리했습니다만, 바뀌질 않더군요. 참가자를 쓰러트려 봐야 다음 참가자가 올 뿐.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뭐?”
“이 상황을 끝내길 바랍니다. 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끝내고, 다시 천국을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직원이 빙그레 웃었다.
— 우르릉!
대지가 뒤집히는 강렬한 충격.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당신도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나야겠습니다. 저 하늘 위에 계신 분, ‘작고 어린 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