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7)
86화 – 파티타임 (8) – 진솔한 대화, 펜의 활용법, 작전 회의 (1)
파티 타임 3일 차 오후
– 엘레나
점심시간 내내 103호에 대한 송이의 ‘강의’를 듣다 보니 머리가 띵해졌다.
그래서인지 강의가 끝난 후엔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이 아리와 진솔한 대화를 해볼 적절한 시기다.
프런트 쪽으로 가자 아리가 다과 테이블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아리야!”
“엘레나 언니?”
아리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것 있지?
우물쭈물하자, 아리가 먼저 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으세요?”
그냥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
“첫날, 성소에서 축복을 강화했을 때, 가인 씨 말대로 ‘후원자’라고 하는 신비한 존재를 만났어.”
“어떤 분이셨나요?”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정원 같은 장소에 앉아계셨지. 그분은 널 알고 있는 것 같았어.”
흥미가 생겼는지 아리는 내 쪽으로 돌아섰다.
“저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
“뭐, 안 좋은 이야기라도 했나요?”
“이상한 말씀을 하셨지.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이야기.”
“…”
“아리, 네가 날 잘못된 방향으로 흔들고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걸 확인하려고 오셨군요.”
“그래.”
아리는 잠시 고민하듯이 서성거린 후 대답했다.
“그 말이 전부였나요?”
“그것 말고도 널 싫어하는 듯하셨어. 기억 나는 대로 말해볼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호텔의 극히 일부만 경험한 채로 운이 좋아 나갔음에도, 자신이 호텔과 축복에 대해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축복에 대해 지금 내가 쓰는 방향이 올바른 길이라고도 하셨지.”
아리는 그 후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도 옆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며 기다렸다.
20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아리가 말했다.
“언니는 축복을 강화한 후에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게 되셨다고 했지요?”
“내가 널 의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괜한 오해를 남겨둘 필요는 없겠죠. 지금 그 능력을 써주세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테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리를 의심하고 있다.
새롭게 얻은 ‘거짓말 탐지’ 능력은 거짓으로 가득 찬 호텔에서 대단히 유용한 능력이라 생각하지만,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쓰는 순간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어서 내가 뭔가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아리가 대놓고 거짓말 탐지 능력을 쓰라고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리가 대답을 시작했다.
“그분의 말씀을 요약하면, 제가 축복을 그릇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걸 바탕으로 언니의 마음을 흔들려고 했다는 거죠. 그 부분을 먼저 설명해 드릴게요.
전 1회차 때 엘레나가 아닌 다른 ‘정의’의 주인을 봤어요. 그녀는 엘레나와 달리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능력을 자유롭게 휘둘렀죠.
대상이 사악한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사악한 행동을 인지해야 한다는 식의 제약은 전혀 없었어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의 사고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 같은 성격이었거든요.
요약하면 ‘내가 곧 정의다’. 날 기분 나쁘게 하면 누구든지 악이다.
축복의 제약이란 사람 스스로 만들어낼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를 보며 알았습니다.
이후, 같은 축복을 가진 엘레나가 마치 형법과 유사한 제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확신했죠.
그래서 101호 다섯 번째 시도 직전에 언니에게 이런저런 ‘설득’을 했죠.
무슨 설득인지는 기억하실 거예요. 우선 여기까지 제 말에 거짓이 있었나요?”
“전혀 못 느꼈어.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거짓말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언니’와 ‘엘레나’라는 호칭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종종 하는 말인데 아리는 이상할 정도로 이런 호칭이 제멋대로다.
마치 ‘자기 나이’를 헷갈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드세요?”
“조금 놀랐어. 알았다 해도 내가 따라 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마음대로 옳고 그름을 재단해서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건 내가 가장 혐오하는 사고방식이거든. 또….”
“왜 이 사실을 숨겼냐?”
“… 왜 축복에 대한 사실을 내게 숨긴 거야?”
“이걸 알면 언니가 그 사람처럼 변해갈까 봐 걱정스러웠거든요.
축복을 강화하기 위해, ‘내가 곧 정의다’라고 자신을 설득하면 어쩌냐는 걱정. 신념이란 때로는 필요에 따라 바뀌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젠 숨기지 않고 말해줬구나.”
“이젠 축복에 대한 제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엘레나도 그 사실을 아셨으니까요.
축복의 ‘사악한 가능성’을 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으시겠죠.
다음으로, 후원자가 말했다는 ‘올바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부분을 말씀드릴게요.”
축복의 ‘올바른 가능성’.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후원자분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봤어요.
확실히 엘레나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제약만 만든 건 아니에요. 강력한 장점들도 만들었죠.”
“강력한 장점?”
“예컨대, 집행 도중에는 정신 공격에 면역을 얻는다는 부분. 과거의 ‘정의’는 그런 힘이 없었어요.
제가 암시를 걸면 쉽게 통했죠. 하지만 언니는 집행 도중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저항력을 얻어요.
어째서일까?
답은 엘레나의 믿음에 있죠. ‘정의란 특정한 개인의 뜻에 흔들려선 안 되는 법’.
그래서 축복을 사용하는 본인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지만, 타인도 흔들 수 없는 거죠.
또, ‘보이지 않는 적조차 타격할 수 있다’. 이 점도 과거의 ‘정의’에겐 불가능했던 부분.
어째서?
‘법은 원래 상대가 숨어도 찾아서 집행해야 하는 것이니까’ 뭐 이런 이치겠죠?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장점이 있을 거에요.”
아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정의를 쓸 때의 나는 저주나 세뇌, 최면 등으로부터 면역을 얻고, 차에 가만히 앉아서 보이지 않는 적에게도 집행을 내릴 수 있었다.
아리는 이런 능력은 ‘전대 정의’에겐 없었던 힘이라고 한다. 이런 장점들이 후원자가 말한 ‘올바른 가능성’일까?
후원자는 비판적이긴 했지만, 아리는 확실히 축복에 대한 이해도가 나보다 높다.
“아리 생각엔 또 어떤 장점이 있을 것 같아?”
“제가 언급한 두 가지 장점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세요. 모두 엘레나의 믿음이 가진 한가지 특징에서 비롯되었죠.”
“한가지 특징?”
“엘레나는 ‘집행의 주체’를 엘레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무언가 형이상학적인 존재. 절대적인 정의의 표상. 이상적인 법.
이런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무언가야말로 ‘올바른 정의’라고 믿죠.
만일 엘레나의 축복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다면, 그 ‘형이상학적 정의의 화신’을 실체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무적의 소환수?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를 무슨 수로 쓰러트릴 수 있겠어요?
물론, 이 모든 건 제 상상이랍니다.”
무적의 소환수라니…. 갑자기 장르가 달라진 것 같다.
내 축복이 강해지더라도 그런 식은 아닐 것 같은데. 하지만, 아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중, 아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까진 후원자의 주장을 제가 받아들인 부분이고, 이젠 좀 다른 관점을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다른 관점의 이야기. 후원자의 말을 반박하려는 걸까?
“말해줘.”
“축복에 대한 이해. 호텔에 대한 이해. 이런 부분에 대해선 후원자의 말이 상당 부분 맞을 거예요.
후원자의 말대로 저는 호텔을 극히 일부만 경험한 채로 운으로 탈출했으니까요.
하지만 엘레나. 명심하세요. 관리국에는 오랜 격언이 있죠. 사람의 편은 언제나 사람뿐인 법.
후원자가 정말 당신의 ‘탈출’을 바랄까요?”
아리는 그것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쯤, 내 ‘거짓말 탐지’의 시간도 끝났다.
방으로 돌아오며 아리의 마지막 말을 생각했다.
후원자는 정말 내 탈출을 바랄까? 아니라면, 그들은 내게 뭘 바라는 걸까?
*
파티 타임 4일 차 오후
– 한가인
드디어 끝나간다!
뭐가? 이 피곤한 파티타임이!
파티 타임이 시작하자마자 날 쫓아다니면서 신체 단련이 어쩌고 하던 노망난 인간은 첫날부터 등산시켰다.
거기까진 OK. 하루 정도 등산은 나쁘지 않았고, 예상 못한 성과를 얻기도 했으니 만족한다.
하지만, 첫날 등산에서 예상 못한 ‘기념품’을 얻은 건 노망난 인간의 기세를 더욱 올리게 만들고 말았다!
둘째 날 오전 내내 근육통에 시달리고, 오후엔 사파리에서 공룡에게 맞아 죽은 것만으로도 서러웠다.
셋째 날이 되자 어르신은 내게 오전 내내 공원에서 달리기를 시켰고, 오후엔 헬스장까지 데려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오늘, 4일 차 오전까지 날 괴롭히지 않았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승엽이와 송이는 어느 순간 풀려났고 노망난 어르신은 나만 쫓아다녔다. 나머지 사람들은 혹시나 자기들까지 얽힐까 봐 어르신의 눈만 봐도 도망갔다.
어르신을 막을만한 유일한 사람인 진철 형은 사파리에 한번 간 후로는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누나에게 부탁해서 진짜 고성능 카메라를 한 대 구하더니, 미친 듯이 공룡 사진, 신석기 시대의 이상한 동물 사진을 연달아 찍느라 사파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오늘. 파티 타임 4일째 되는 날 점심 무렵.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야! 야! 한가인 이 미친놈아!”
응 안 들려~
“야! 이 자식아! 이거 안 지워?”
무슨 일 있음?
“… 오빠?”
복도를 걷던 송이가 날 바라보았다.
“응. 송이야. 잘 지내니?”
“혹시, 할아버지의 눈에 뭔가 하신 건가요? 아까부터 눈을 비비시던데?”
“내가 기념품 상점에서 얻은 펜 성능이 아주 좋더라고! 할아버지 눈을 칠해드렸지.”
“…”
“괜찮아. 저주의 방 갈 때는 지워 드릴 거야.”
송이는 말문이 막혀있다가 결국 그냥 지나갔다.
햐! 기념품 상점에서 얻은 내 펜!
처음엔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했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퍽!
내 목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손’만 날아와서 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으악! 악! 할아버지! 이 손 못 놔요?”
“너야말로 내 눈에 칠한 것 지워라!”
아니, 이 노망난 인간은 대체 뭘 먹고 이렇게 힘이 세지? 내가 양손으로 어르신의 ‘공중 부양 손’을 붙들고 뜯어내는데도 어찌나 힘이 센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붙들고 굴러다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굴러다니는 나.
이 모든 광경을 지나가던 은솔 누나가 보더니 갑자기 투명해진 후 사라졌다.
*
– 한가인
파티 타임 4일 차 저녁 시간
약속된 회의 시간. 105호의 식탁에 다 함께 모였다.
사파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진철 형도 이때가 되자 돌아왔고, 오자마자 내 머리를 쳐다봤다.
“… 가인아?”
“…”
“벌써 원형 탈모가 올 나이는 아닌데 머리가 왜….”
“…”
“할아버님이 가인 오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대요.”
“대체 왜? 아니, 할배는 또 어디 있는 거냐?”
“할아버님은 오후 내내 눈이 안 보이셔서 벽에 계속 부딪히다가 지금 아프다고 누우셨어요.”
“대체 내가 사파리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거냐?”
한숨을 쉬던 은솔 누나가 회의를 시작했다.
“자! 자! 이쯤 하고, 이제 회의나 시작하자. 이미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일은 서로 ‘절대’ 터치하지 말고 각자 쉬기로 했어. 그러니까, 다음에 어느 방에 갈지 회의도 오늘 하는 거야.”
나와 할아버지, 나아가서 모두의 ‘합의’.
마지막 날은 서로 건드리지 말고 쉬자.
그 합의 때문에 회의도 오늘 시작했다. 은솔 누나가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세 장소가 남았어. 102호 ‘공포의 저택’, 104호 ‘호텔고’, 107호 ‘관문의 방’. 어디로 가야 할지는 다들 짐작하지? 적어도 이 셋 중에선 102호가 가장 낫겠지.
호텔고는 가인이에게 생긴 기이한 현상이 해명되기 전엔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아 보이고, 관문의 방은 가장 어려울 테니까. 혹시 다른 생각 있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104호와 107호만 남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회의를 꽤 길게 할 것 같지만, 명백히 그 둘 보다 쉬워 보이는 102호가 남은 이상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
“102호에 대해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보자. 크게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 호텔랜드의 보상으로 받았던 ‘힌트’의 해석과 ‘탈출 방법’에 대한 고민.”
그때쯤, 방에 있던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
다들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의 눈은 물론이고 얼굴 여기저기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야! 한가인 이 새끼야! 안 지우냐?”
그럴 수는 없지.
내 뽑힌 머리카락은 그대로인데! 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뜯겼다고! 저주의 방에 들어가기 전엔 지워드릴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진짜 유용한 도구를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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