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85)
괴담 호텔 탈출기 885화(884/886)
885화 – 세 번째 탈출, 회의, 304호 진입 (4)
— 차진철
회의 시작 1시간 만에 빈자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묵성 요원에 이어서 엘레나가 창백한 표정으로 사라진 것.
그나마 다행인 점.
엘레나는 묵성 요원처럼 무슨 페널티를 받은 건 아니다.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쉬러 갔을 뿐.
은솔 누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레나는 어떻게 됐어?”
송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일단 105호에 들어갔어요. 계속 환청을 듣는 것 같네요.”
“환청이라니… 이건 다음 방 관련 기억 회복이라 봐야겠네.”
자신의 방을 앞둔 참가자는 오래된 기억이 돌아오곤 한다.
앞서 몇몇 동료들이 그러했듯, 엘레나 역시 같은 현상을 겪는 모양이네.
자연스레 동료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형은 어때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가인이.
“으음…”
아리가 끼어들었다.
“아까 엘레나랑 대화해 봤는데, 환청을 듣기 전부터 머리 아프다고 했어. 전조증상이었던 셈이지. 넌 어때? 머리 아프진 않아?”
“전혀.”
“머리를 한번 때려보는 건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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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야. 그래도 박치기는 해봐.”
박치기하면 기억이 돌아오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동료들의 기대감 섞인 시선을 보고 있으니 미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다들 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흠! 다들 나랑 엘레나가 같은 방이라고 확신하는군요.”
은솔 누님이 무슨 말이냐는 듯 내 쪽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 네 어머니가 엘레나를 TV에서 봤다며.”
“그건 그렇습니다.”
“서로를 본 적이 있다. 같은 루프를 공유한다. 이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어. 아리랑 묵성이가 좋은 예시지.”
그때, 가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본인이 엘레나랑 다른 방이라고 생각하나요?”
“확신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거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했다.
“알렉산드르 바실리에프(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 기억하지?”
“엘레나가 살아온 루프의 러시아 독재자죠. 엘레나의 아버님, 미하일 이바노프가 망명한 원인이고.”
“모르는 사람이다.”
“… 예?”
가인이가 입을 반쯤 벌렸고,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모르는 사람이야. 알렉산드르 바실리에프? 러시아 독재자? 진짜 그런 이름 처음 듣는다.”
“모, 몰라요? 아예?”
“어. 아예 몰라.”
“형이 아는 러시아 독재자 이름은 뭐죠?”
“언젠가부터 호텔에 오기 전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자는 아니었다. 알렉산드르 어쩌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인이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형, 호텔에 오기 전에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갑자기 대학?
“말해줘도 모를걸. 루프마다 대학은 다 다르잖냐.”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나요?”
“… 경기도에 있었어.”
“그러면 수능은? 8등급 정도 받으신 건가?”
“야! 8등급으로 경기도 대학을 어떻게 가냐!”
“우! 가인 형 우! 사람 무시한다 우!”
수능 보면 필시 7등급 아래로 나올 승엽이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니 불쾌함이 가중되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런 게 뭔데?”
“제 말은, 진철 형이 세계 정세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가능성을 고려 -”
“야 인마! 수능 좀 못 봤다고 미국 중국 러시아 지도자 이름을 모를 것 같냐?”
“그런가요?”
‘그런가요?’ 하는 대답이 은근히 더 짜증 났다.
마치, ‘수능 성적이 낮으면 지능이 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간 느낌!
아리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풉! 가인이 얘 미묘하게 너무한 말하네. 그 정도 상식은 누구나 있지. 봐, 승엽아.”
“네?”
“네 루프에서 러시아 대통령 이름 뭐야?”
“…”
“승엽아? 그, 멋진 신세계 내부 설정이라도 괜찮아.”
“…”
“뭐야? 진짜 모를 수도 있는 건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는 아리.
건너편의 가인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승엽이에게 질문했다.
“야스오의 패시브와 네 가지 스킬 말해봐.”
“… 낭인의 길, 강철 폭풍, 바람 장막, 질풍검, 최후의 숨결.”
“야스오 명대사는?”
“… 죽음은 바람과 같지. 늘 내 곁에 있으니.”
“형, 봤죠?”
“뭘 봤다는 거야?”
“미국, 러시아 대통령 이름은 모르지만, 야스오 스킬은 전부 외우는 사람도 엄연히 존재 -”
“그건 승엽이가 이상한 거지! 애초에 얘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크질 않았잖아!”
황당한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아리는 진지하게 미로에게 묻고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 이름 알아?”
“… 난 호텔 오기 전에 어렸어.”
“설마, 진짜 몰라?”
“그런 거 몰라도 사는 데 문제없어.”
“미국의 주가 몇 개인지는 알아?”
“…”
“인도와 중국 중 어느 나라가 미국에 가까운지 알 — ”
“상식 퀴즈 내지 마!”
이 와중에 정신줄을 잡은 사람은 상현 형님이었다.
“진철 군의 말은 이해했습니다. 어머님이 TV에서 엘레나를 본 건 사실인데, 본인이 아는 상식과 엘레나 양의 상식에 차이가 있다는 소리군요.”
“그렇죠.”
“으음… 나와 승엽 군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상식이 달라도 같은 루프일 수 있습니다.”
“그건 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중이고.”
— 탁!
탁자를 ‘탁’ 치는 소리와 함께 가인이가 화이트보드 앞에 다가갔다.
“그러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차원에서 따로따로 생각해 보죠. 엘레나 관련 정보부터 – 아, 엘레나의 어머니 성함 기억하는 분?”
“모르겠어.”
“나도.”
1. 가족은 아버지(미하일), 어머니(?), 언니(나탈리아)까지 3인.
2. 독재자, 알렉산드르 바실리에프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세계 각국을 떠돌아다님.
3. 알렉산드르는 TV, 영화 등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감시하는 능력이 있다.
“더 있나요?”
“이 정도 같아. 으음, 304호에 가기 전에 엘레나가 후원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앞서의 동료들과 달리, 엘레나는 304호 전에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다.
303호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른 방으로 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후원자를 만났다면, 적절한 능력을 주거나 최소한 이러이러한 부분을 조심하라는 경고 정도는 들었을 테니.
“진철 형 쪽으로 넘어가죠.”
1. 어머니와 함께 사는 중.
2. 수능은 8등급보다 높음.
“야! 언어는 3등급 받았거든?”
“중요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걸 왜 굳이 적냐?”
“다음 번호로 넘어가죠.”
3. 격투기 선수 출신. 실전 경험 존재.
9판 정도 했다.
구체적인 전적은…
패배가 더 많았다고만 해두자.
4. 패배를 거듭하며 우울증에 시달림. 승리에 대한 갈망이 강했을 것.
이것도 사실이다.
“더 없나요?”
“… 글쎄, 모르겠다.”
가인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적다가 느꼈는데, 초자연적인 무언가와 연결할 부분이 없네요. 특별한 기억은 없으세요?”
“전혀. 전에도 말했지만, 난 호텔에 오기 전에 초자연적인 일을 겪은 기억이 없어.”
“전혀요?”
“전혀. 혼돈 재해 같은 건 뉴스에서나 봤다.”
그때, 아리가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네 말대로면, 오래된 루프 출신일 확률이 높겠어.”
“뭐?”
“혼돈 재해를 현실에서 겪지 못했다. 아직 혼돈의 위세가 잠잠한 시기라는 뜻.”
“…”
“송이처럼 문만 열면 머리 셋 달린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이었으면 -”
“그,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 개판 5분 전 세상이었으면, 진철이 너도 기괴한 경험을 했겠지. 냉장고를 열었더니 어제 산 스테이크가 살아있는 소로 변하는 경험 정도는 했을 거야.”
이쯤에서 가인이가 한 줄 추가했다.
5. 혼돈 재해가 흔치 않은 세상을 살아왔다.
“적다가 느낀 건데, 확실히 엘레나의 이야기와 접점이 없네요.”
“…”
“진짜 다른 방인가? 형 어머님이 TV에서 엘레나를 봤다는 건 어떻게 된 거죠?”
“그러게.”
아리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 본 거 아니야? 내 말은, 진철이가 직접 본 건 아니잖아. 그렇지?”
“어.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야.”
“네 어머니 말씀은 엘레나라는 이름의 금발 미녀를 봤다. 딱 이 정도 아니었어?”
“눈동자가 초록색이라 신기했다는 말도 하셨어.”
“…”
여기서 아리가 멈칫했다.
TV에 나온 배우, 이름은 엘레나, 금발 미녀.
여기까진 비슷한 조합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녹색 눈동자까지 더해진다면?
“동명이인은 아닐 것 같네.”
“그래서 나도 동명이인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잖냐.”
그때쯤, 가인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금 조언 썼습니다.”
“뭐라고 하냐?”
“구체적인 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다음 방 내용을 알려줄 리는 없죠. 다만, 구체적인 기억 회복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네요.”
구체적인 기억 회복 여부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 말에 몇몇 동료들이 반응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송이야, 너랑 나는 딱히 대단한 전조증상은 없었어. 그렇지?”
“맞아요.”
상현 형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니 그렇군요. 파트너라고 해서 같은 타이밍에 기억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나랑 승엽 군만 해도 그랬지요.”
이쯤에서 가인이가 으쓱했다.
“결국, 이런 건 호텔 맘이란 소리네요. 딱히 고정된 규칙은 없다는 건가. 그러면, 회의는 이쯤 하고 자러 갑시다. 제대로 된 정보는 304호에 들어가야 나올 테니까요.”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료들.
…
105호로 돌아가기 전, 갑자기 떠오른 생각.
지혜의 후원자는 ‘구체적인 기억’의 회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
기억이라는 게 꼭 구체적인 정보의 집합만 있는 건 아니다.
과거의 충동, 과거의 갈망 – 이런 것도 일종의 기억이다.
만약, 내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 충동이나 갈망이라면…
내게도 변화는 발생 중일지도 모른다.
단지, 엘레나처럼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아닐 뿐.
*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끝내자마자 304호의 문을 열었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대기실에서 우리는 즉각 두 가지 정보를 알아차렸다.
“명부 1번은 엘레나고, 2번은 진철 형입니다. 역시 두 사람이 같은 방이었네요.”
나와 엘레나가 같은 방이 맞다.
어제 회의 때 밝혀진 두 사람의 ‘이질적인 기억’은그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리고…
“가인아, 방 제목 뭐야?”
가인이가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게 방 제목을 알렸다.
“저주의 방, 304호의 제목은 ‘파우스트’입니다.”
304호 – 저주의 방, ‘파우스트’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