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
8화 – 101호, 저주의 방 – ‘기묘한 가족’ (3)
8화
딱! 딱! 딱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닥!!!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소음 속에서, 진철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뭐람. 어머니가 자신을 노려보며 입을 딱딱거리는 소리다.
어릴 때부터, 진철이 뭔가 실수하거나 모자란 행동을 할때 어머니는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시기보다 그저 입에서 딱 소리 한번 내서 경고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행동은, 아들이 장성해서 30이 넘은 시점까지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소한 변화가 하나 있다면, 예전에는 정면에서 눈을 쳐다보면서 딱! 하셨던 것 같은데… 오늘은 물구나무를 선채로 소리를 내셨다.
팔은 안 아프신가? 저렇게 팔심이 좋은 분이던가?… 기억이 어딘가 가물가물 하다.
“아따 어머니, 그냥 좀 앉기라도 하세요. 내가 요번 면접은 진짜 잘 보고 왔다 말하지 않습니까.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으신가 몰라.”
“니가 말은 근 5년째 그렇게 했지. 이번엔 잘 봤다, 이번엔 별 일 없다. 그리고 5년동안 회사만 세번을 때려치웠다 이것아. 내가 이제는 내려놓고 죽을 날 받아놓고 산다마는, 아들놈 하나가 30이 넘도록 뭐 하나 해놓은 게 없으니 그게 무서워서 눈을 못 감는다 못감아!”
“아니, 눈을 감긴 왜감아요. 누가 들으면 어머니 한 80 90 되신줄 알겠네. 이제 환갑 좀 넘으신분이 참… 게다가 아까부터 물구나무 서서 말하시는 것 보면 아직 힘도 넘치시는 구만.”
“한마디도 안져… 덩치는 황소만한것이, 사내놈이면 좀 묵묵한 맛도 있어야 되는 디 어찌 한 마디도 질 생각을 안할까. 니가 어릴 때 그놈의 도장 다닌다 했을 적에 말리지 못한 것이 평생이 한이다 한!”
도장. 도장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 깊은곳에서 울컥 하는 느낌과 함께, 어머니 앞에서 감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말없이 돌아섰다.
어릴 때부터, 진철은 체육계의 꿈나무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남다른 체격과 발육을 보이는 그를 두고 씨름부에선 강호동의 후계자다, 축구부에선 박지성의 후계자다 하면서 온갖 TV의 스포츠스타의 후계자 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어린 진철이 가장 끌렸던 건 무엇보다 원초적인 스포츠였다.
그렇다, 인간이 갈고닦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것, 야성적인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서로의 주먹을 겨루는 것. 격투이다!
딱히 진철이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자평하려니 우습긴 하지만, 스스로 성격은 성실하고 착한 편이라 생각한다. 링 위에서 기술을 갈고닦은 상대와 한합을 나누는 모습을 그렸던 것이지, 어디 뒷골목에서 깡패짓이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천재는 수재가 되고, 수재는 범재가 된다. 진철 자신도 이에 해당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일반인의 세계에선 진철의 체격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192cm에 달하는 키, 골고루 발달된 근육.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위압감을 느끼며 물러서곤 했고, 이 때마다 진철은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격투의 세계는 체격만으로 되는 게 아님을 알았다. 더 정확히는, 일정 단계 이상으론 어차피 체격을 다 맞춘 반 초인들끼리 모이는 곳이 헤비급 격투의 세계. 하나같이 키는 190이 넘고 체중은 100kg 를 훌쩍 넘기는데, 근육덩이인 괴물들이 모이는 틈바구니에선 체격만으로 이길 수가 없다.
어째서 인가? 왜 나는 상대의 주먹에 반응을 못할까? 왜 스파링 때는 되던 동작이 실전에선 실패하지? 왜 내 페이크에는 상대가 속지 않고, 상대의 페이크는 번번히 당하는걸까.
한번 졌고, 두번 졌고, 세번 졌다. 패배가 다섯번이 연속되고야 알았다. 내 재능은, 이 수라도에서 버틸 정도가 아니구나. 바람 같은 주먹을 볼 수 있고, 0.5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두번의 페인트를 넣는 세상에 진철의 자리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게 늦었다. 나이는 30이 다되었고, 남은건 어디에도 쓸 곳이 없는 실패한 격투기 경력 뿐.
아니다. 사실은,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는 아니었다. 20대 후반이 재기할 수 없는 나이도 아니거니와, 단련된 신체는 그 자체만으로 먹고 살 길을 충분히 열만 했다. 같이 훈련하던 사람들중 누군가는 헬스장을 개업했다. 누군가는 경호업에 뛰어들었다. 누군가는 경찰이 되었다.
다들 재능이 부족해서 중도에 물러섰더라도, 상위 0.1%의 신체를 잘만 활용해서 잘 살았다. 문제는 진철의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던 것이리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경로로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전 동료들의 추천으로 회사에 취직한 다음에도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때려치웠고, 헬스장을 같이 운영하자는 제의를 받고도 번번히 거부했다. 그렇게 인맥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마음 속의 불길조차 꺼져갔을 때…
그때서야, 진철은 인생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우울한 상념들이다. 이런 생각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으면서도,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선다. 우선은 어머니께 사과를 드리자. 아버지가 빠르게 세상을 떠나신 후, 힘들게 방황하는 아들을 지탱하신 분이 아닌가. 그리고, 이번에 면접을 본 회사에는 정말 잘 참고 다녀보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철은 조금 당황했다.
익숙한 얼굴이 집에 와 있었다. 어릴 때 부터 10년 넘게 봐온 도장 관장님이 아닌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반쯤은 아버지 역할도 해준 각별한 분이셨다. 격투가의 꿈은 내려놓은 이후로도, 꽤나 오랜 시간 진철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데다가 요번에 면접을 본 헬스 관련 회사도 관장님 소개였다.
“아니, 박관장님 아니십니까?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어이고 진철아 빨리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려라. 이 분이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어!”
“하하, 그게 뭐 제가 대단해서 가져온 것이겠습니까? 나름대로, 진철이 이 친구 성실함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소개가 계속 오고 그런것이죠.”
“관장님? 소식이라는게 뭡니까?”
“요번에 부산에서 종합격투대회 한번 크게 연다. 이거 기회야? 지자체에서 돈은 꽤 많이 쓴 행사인데… 어쩌다 보니까 이거, xxx대회 일정하고 붙었네? 이러니까 네임드들은 부산 쪽 대회에는 참가를 못해. 무슨 말이냐? 잔챙이만 나오는데 상금도 그럴듯하고, 보는 눈도 많다 이거지. 이런 기회가 어딜 또 오겠냐?”
“하하… 관장님. 그,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솔직히 한물 갔어요. 잔챙이라는것도 의미 없죠. 저부터가 잔챙이인데…”
“어허, 이번 대회는 좀 다르다니까? 일본에서 점점 유행하는 스타일의 one man standing 룰이다.”
“원 맨 스탠딩? 그게 뭡니까?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이걸 처음들어? 일본에서 나온지만 10년은 됐는데 무슨 소리를… 대회장에서 한명만 살아남는거지. 너는 이런 쪽에 강하지 않니?”
무슨… 너무 당황스러웠다. 격투 경기에서 한명만 살아남는다니 이런게 있을수가 있나? 게다가 내가 그런 쪽에 강하다니? 대체 무슨 말도안되————————–
이해했다. 왜 이걸 까먹은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생때도 일본에선 원맨스탠딩 룰 대회가 흥행하지 않았던가?
다만 대회를 진행하다보니 일본에 등록된 격투가의 절반이 죽어서 대회가 한동안 쉬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래서 까먹었나보다. 내가 그런 쪽에 당한건 당연하지.
내가 누구인가? 나무 몽둥이 하나로 식인 원숭이를 패죽인 사람이 아닌가? 죽고 죽이는 극단의 폭력. 이런 경험을 괴물 상대로 해본 사람은 나 뿐이니, 내가 강한것이 당연하다.
마침내, 오랜 세월 기다려온 기회가 돌아왔다.
그런데, 대체 언제 식인 원숭이와 싸운걸까? 한국에 그런 게 있나?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어찌됐든 내가 원숭이를 때려죽인건 맞으니까.
——————- 깜빡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 뭐지, 관장님하고 대화를 하다가 잠깐 눈을 감았다 뜬것 같은데…
나는 어느샌가 경기장 가운데 서 있었고, 반대편에 덩치 큰 남자가 보였다. 대체 뭐지?
아하, 바로 이해했다. 오늘이 부산 원맨 스탠딩 격투대회 날이지. 참, 격투대회 당일인데, 심지어 경기장에 올라와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다니 나도 못 말릴 사람이다.
쿵쿵쿵쿵쿵쿵
상대가 곧이어 철퇴를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4미터? 3미터? 어느정도 다가오는가 싶더니, 허리춤의 철퇴가 바람같이 날아든다.
철퇴? 격투기에 이런게 왜 나오지? 아, 이게 요즘 유행이던가? 다행히 내 손에도 톤파가 있었기에 철퇴가 속도를 내기 전에 선제적으로 퉁겨냈다.
철퇴는 날붙이가 아니라 질량병기, 속도가 붙은 후에 방어하면, 막아내더라도 늦다. 충격만으로도 뼈가 부러지고 마는것.
그래서 달라붙으며 선제적으로 퉁겨내자, 상대가 당황했다. 철퇴에 속도가 붙을 간격을 주지 않는다면 내가 유리하지.
즉시, 톤파로 상대의 입을 내리찍었다. 이빨이 옥수수처럼 떨어진다. 둔탁한 충격이 다리에 가해짐을 느꼈다. 상대가 다리를 걷어찬 후 철퇴로도 내려친 것.
참을만 하다. 달라붙은 상태에선 어차피 제대로 속도가 붙질 못하니까.
침착하게 톤파를 상대의 입에 우겨넣고 손을 흔들었다. 처음엔 이빨, 나중엔 정체모를 살덩이들. 주먹을 더 밀어넣자, 상대의 목이 뚫려버렸다.
내 힘이 이렇게 셌던가? 톤파가 무슨 칼도 아니고, 뭉툭한 나무로 상대의 입에 넣어서 목 뒤로 뚫고 나온다고?
그런가보다 했다. 남자가, 격투기 선수가 힘 세면 좋은거지 의문 가질게 있는가!
물러서서 껄껄 웃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다음 사람이 나타났다. 도끼? 시건방진 무기다.
물론, 실력이 비슷하다면 도끼를 휘두르는 상대에게 톤파 따위를 가지고 가까이 갈 수는 없으리라.
‘실력이 비슷하다면’
딱 세보를 뛰어 20m 가까운 거리를 한순간에 좁히며 달려든다. 상대의 눈에 경악이 서리는 걸 본다.
놀란건가? 우스운 일이다. 나는 지금 호랑이처럼 빠르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말도 안되는 신체 능력을 얻은걸까.
원래부터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무슨 반응속도니 심리전이니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너무나 쉽게 세계 챔피언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별 문제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올라서면 될 일.
도끼를 휘두르기도 전에 내 손가락이 상대의 눈을 뚫었다. 안구를 뚫고, 뇌를 짓이기고, 상대의 두개골 앞면을 함몰시키며 파고든 손가락이 상대 두개골의 뒷면에 닿기까지 했다.
몇 명일까? 10명인가? 20명인가? 몇몇을 죽였는지 세기도 힘들 무렵 어느 샌가 경기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차진철! 차진철! 차진철!!!!!
헤아릴 수 없는 군중이 내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본다.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동안 마음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한순간에 풀림을 느낀다. 건너편에선, 어머니가 펑펑 울고 계셨다. 관장님은 당당한채 서계셨지만, 눈가가 붉어진게 뻔히 보인다.
아아… 이 순간을 얼마나 그렸던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다.
건너편에서 양복을 입은 장년의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하, 부산시장님이구나. 오늘 대회의 우승자에게 벨트를 건내주는건 부산시장님이 하시는구나. 살다가 내가 저런 사람 앞에서 우승씩이나 할날이 오다니… 감격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탕!!!!!!!
번개가 터지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번쩍 하더니, 가슴팍에서 화끈한 느낌이 든다.
대체 뭐지. 멍한 기분으로 시장을 쳐다보자, 시장의 손에 어느샌가 글록 한자루가 들려있는것이 보였다.
총탄이 가슴을 꿰뚫었음을 아는 순간, 몸이 허물어졌다.
이게 무엇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깨달음은 바로 찾아왔다.
아하! 이 경기장은 단 한사람만 서서 나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던가! 시장이 들어온 시점에서, 둘중에 하나는 죽어야 함이 당연한데. 방심한게 문제다. 바로 시장의 목을 꺾어야 했다…
의식이 흐려짐을 느꼈다. 긴 세월, 이루고픈 꿈을 이뤘기에 크게 아쉽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어머니를 한번 더 뵙고 싶었다.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 꿈! 그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망집! 결국 당신은 이루지 못할 꿈에 홀려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같던 관장님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살인 격투대회에 참가한 끝에 시장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주로부터 탈출하지도 못했고, 저주의 근원을 해결하지도 못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동료들을 기다리세요
…
…
…
…
동료 중 탈출 성공자 발생! 축하합니다! 탈출 성공자가 발생하여, 구성원 전원이 무사 귀환합니다./
차진철은 침전된 의식이 천천히 부유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