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0)
89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Re (2)
– 한가인
저택에 들어오는 순간 빙의의 위협이 시작될텐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고민.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말했다.
“이번엔 수녀님 팔찌가 있으니 어떻게든 저항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아직은 타락 초기 아닙니까? 그런 거창한 능력은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빠, 아니 한 부제님. 말투 들으면 들을수록 어색하네요.”
“서로 익숙해집시다. 팔찌는 정신 계통 힘 중 가장 급이 높은 편 아닙니까? 빙의를 풀 수는 없을까요?
“팔찌로 빙의를 알아채는 것까진 가능하겠지만, 빙의를 풀긴 어려울 것 같아요.”
“어째서입니까?”
왜 어렵다는 걸까?
우리가 팔찌를 얻은지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팔찌의 원리나 한계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이해한 사람은 송이 혼자 뿐이었다.
송이 수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팔찌를 얻을 때 호텔에서 머릿속에 넣어준 ‘외계적인 지식’을 우리에게 번역해주려는 듯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팔찌는 오컬트적인 물건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인’ 물건이에요.
팔찌의 힘의 근원은 초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걸 과학의 힘으로 가공했거든요.
인간의 과학이 아닐 뿐이지. 빙의는 완전히 오컬트 쪽이고.
그렇다고 오컬트적인 일에 전혀 저항을 못한다는건 또 아니에요.
빙의를 예로 들면 방어는 가능한데, 쫓아내는건 무리라는 이야기에요.”
오컬트나 외계인의 초과학이나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설명을 듣는 원시인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송이 수녀의 말 자체는 이해했다.
팔찌의 힘은 빙의를 인지하고, 방어하는 것까지가 한계. 이미 빙의한 경우 쫓아낼 수는 없다.
*
저택에 도착해서 추기경과 은솔 신도와 만나자마자 송이 수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저었다. 빙의된 사람은 없다는 의미. 확인한 후,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우리가 알아낸 사실. 실종 사건, 이세현의 평판, 아리와 승엽이의 소재 등을 전달했다.
“뭔가 알아낸 점이 있으십니까?”
추기경의 입이 열렸다.
“없다. 너희도 대화해보면 알게 될 게다. 이세현, 그놈 만만치 않다. 다 알고 간 게 아니면 나도 깜빡 넘어갈 것 같더라.”
나보다도 역할에 깊이 빠져든 분위기로 이은솔 신도가 입을 열었다.
“대화로는 도저히 파고들 수 없었습니다. 마을의 실종 사건은 본인도 걱정 중이라면서 대책을 취하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도저히 빈틈이 없었습니다. 이세현의 아들, ‘이시우’도 저택에 있습니다.”
은솔 신도는 대화를 이어갔다.
“본인도 아들 때문에 실종 사건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서 가정교사와 함께 가정교육을 했는데, 최근엔 불안해서 교사도 부르지 못하고 있다네요.”
고민하던 중, 진철 사제가 입을 열었다.
“들어오기 전에 들은 바로는 이 저택 지하에 심상찮은 책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리가 첫 번째 시도에서 얻은 정보였죠. 지하에 정체불명의 책이 있고, 그걸 펴면 악마를 만난다. 다만 시간이 뒤로 돌아갔으니 지금도 적용될지는 불확실합니다.”
“내가 건축은 잘 모르지만, 지하의 그런 광대한 공간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겠냐? 내 생각엔 이 저택을 건설할 때 같이 지하 공간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설득력 있다. 건축을 잘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지하 공간은 시간이 뒤로 돌아간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있을 것 같다.
추기경이 의견을 냈다.
“일단 저녁 식사하면서 더 알아낼 게 있는지 확인해보고, 밤에 저택 지하로 다 함께 잠입하자.”
*
– 한가인
저녁 식사 시간.
이세현과 대화를 시작한 이후, 나는 추기경이 말했던 ‘나도 깜빡 넘어갈 것 같더라’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때 매니저에게 말했지요. 언제까지 월급쟁이 인생, 10만 원 20만 원에 떨면서 살 생각이냐?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으려면 도전할 때는 도전해야 하는 게 아니겠냐?”
“그렇게 설득하고 사업을 확장하신 겁니까?”
“하하! 그런 말 몇 마디로 설득이 되겠습니까? 중요한 점은 말 몇 마디가 아닌 비전입니다. 이게 또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변화를 고려하자면—”
이 아저씨는 정말 화술이 뛰어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잘나서 돈을 잘 벌었다는 자기 자랑인데도 무척 재밌었다.
… 이거 무슨 초자연적인 힘은 아니겠지?
아닌 것 같다. 그냥 화술이 뛰어난 사람이다.
묵성 추기경이 주도해서 한차례 흐름을 끊고, 이은솔 신도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는 압박을 넣었다.
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압박에 전혀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은 채로 몇 가지 의혹을 해명했다.
오컬트적인 물건을 수집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실제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들며 단순히 예술품을 수집하는 취미의 일종이라 밝혔다.
수상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업차 만난 외국인을 누군가 오해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가장 피곤했던 점은 ‘엘레나’가 대놓고 거짓말 탐지 능력을 썼는데도 그의 거짓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위기를 끊을 필요성을 느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추기경이 탁자를 ‘탁’ 쳤다.
“이세현 군. 내 솔직히 몇 가지 묻겠네.”
“추기경께서 저를 의심하시는 듯 해서 두렵습니다. 모두 솔직히 밝히겠습니다.”
“‘화신의 서’에 대해 아는 점이 있나? 설령 이름은 모르더라도 정체불명의 이상한 책을 얻은 적이 있다면 솔직히 말하게. 또, 실종 사건에 대해 우리에게 숨기는 건 있나?”
“모두 전혀 모릅니다.”
엘레나를 돌아봤다. 고개를 젓는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
머리가 복잡해졌다.
잠시 식탁에 침묵이 감도는 사이, 소년 한 명이 다가왔다.
“이세현 군. 저쪽은 아들인가?”
“어? 다들 죄송합니다. 시우야? 무슨 일이니?”
이세현은 아들에게 다가가서 달래기 시작했다.
외견은 중학생 정도? 흔히 말하는 병약 소년 같은 느낌이다. 나름대로 미남 축에 속한 아빠를 둬서인지 본인도 나름대로 귀여운 축이었다.
아무래도 아들이 어딘가 아픈 모양인지, 이세현은 사과하며 식사를 이르게 마치고 일어선 후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세현이 사라진 후 우리끼리 대화를 더 이어갔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대화로 뭘 캐내긴 어려울 듯합니다.”
추기경이 답했다.
“나도 그렇게 본다. 엘레나 수녀. 그의 말에 한 점 거짓이 없었는가?”
“네. 그가 보여준 물건은 평범한 예술품이고, 만난 외국인들도 사업차 만났습니다. 마도서나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철 형이 의견을 냈다.
“뭔가 거짓말 탐지 능력에 저항하는 힘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도 입을 열었다.
“상황이 혼란스럽긴 한데, 일단 엘레나 수녀의 거짓말 탐지는 이제 아낍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짓말 탐지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낭비해선 안 됩니다.”
추기경이 질문했다.
“엘레나 수녀. 거짓말 탐지의 힘은 어느 정도 남았나?”
“2분? 3분? 거의 다 썼습니다.”
“부제 말대로 아껴두게. 대화로 더 알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 밤 저택 지하로 가보도록 하지.”
멀찍이서 이세현이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깐 대화창을 통해 말없이 대화한 끝에 작전을 짰다.
‘비장의 수’를 준비한 나와 송이 수녀 둘만 지하를 내려가고, 나머지는 위에 남기로 했다.
마도서는 정신 공격과 관련된 강력한 힘을 가진 물건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악마가 빙의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 정신적인 저항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접근이 위험하다.
*
— 뻐꾹!
뻐꾸기시계의 소리와 함께 방 밖으로 나섰다. 다른 사람들과 눈짓 교환을 한 후, 서재 쪽으로 향했다.
벽 어딘가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여는 레버가 있다고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레버를 내린 후, 나와 송이 수녀가 계단으로 들어섰다.
.
.
.
조명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에 손전등은 미리 준비했지만, 탁한 공기까진 어쩔 수 없다. 딱히 악취가 풍기는 건 아니지만,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30분 이상 걸어 내려갔다. 대체 지하 몇 M일까?
멀찍이 튼튼한 철제문이 나타났다.
대화창을 썼다.
*
한가인 : 문 발견. 진입할 것.
유송이 : 아직 특이한 점 발견 못함
*
—끼익!
철제문을 열고 들어섰다.
…
푸르게 빛나는 기묘한 책.
송이 수녀와 서로를 한 번씩 돌아본 후, 그녀가 나에게 정신 보호를 걸었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한 ‘비장의 수’
팔찌와 내 필터를 중첩해서 현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신 저항력을 얻은 채로 책에 다가섰다.
“자넬 걱정해서 하는 이야긴데, 섣불리 손대지 않는 게 좋을걸?”
!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자, 손전등의 각도를 피해서 방 한편에 숨어있던 ‘이세현’이 나타났다.
“너! 위에 있는 게 아니었어?”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자네들이 온 길만 있는 줄 알았나? 이 장소는 자네들 생각보다 넓지.”
“아까 분명히 거짓말 탐지를 써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을 얻었는데! 무슨 수를 썼지?”
“거짓말 탐지? 아하! 아까 그 아름다운 수녀분의 눈동자가 빛나길래 무슨 신통력인가 했더니, 그런 능력이었나?
딱히 별수를 쓰진 않았다네. 그때의 ‘나’는 항상 진실한 대답을 했을 뿐.”
이세현과 대화 도중, 대화창이 활성화됐다.
*
유송이 : 이 사람! 인간 아님!
한가인 : 대체 무슨 말?
유송이 : 팔찌도 쓰기 어려움! 당장 도망!
김묵성 : 대체 뭐냐? 당장 내려갈 테니 피해!
*
이 지하 통로는 좁고 길다. 동료들이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료들이 내려오는 걸 눈치챘나? 남자는 천천히 일어서서 마도서를 낚아채더니, 여유로운 투로 이야기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공격할 생각이라면 어둠 속에서 기습하지 않았겠나?”
맞는 말이긴 하다. 애초에, 우리는 그가 숨어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니, 기습했으면 꼼짝 못 하고 당했겠지.
“오히려, 왜 기습하지 않는지 의아할 지경인데?”
“기습해서 내가 자네들을 죽이면? 위에 내려오는 친구들도 다 죽여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다 죽였다고 치자. 그러면 교황청에선 이제 군대를 보내겠지. 그것까지 다 죽일 자신이 없다네.”
송이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이 대화의 목적이 뭐죠?”
“난 자네들 모두에게 명확한 증거를 보여줄 생각이거든.”
“명확한 증거?”
남자는 이 정도면 다 말해줬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까딱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쇠사슬이 튀어나와 나와 송이를 벽에 속박했다.
그것 뿐.
남자는 딱히 우리를 더 괴롭힐 생각은 없는 듯했다.
우릴 죽일 생각도 없고, 위에서 추기경, 사제 등이 내려오는 걸 알면서도 도망갈 생각조차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
15분 정도 흘렀을까?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진철 형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너 이 자식! 인질이라도 잡을 생각이냐?”
묵성 어르신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총을 꺼내서 –
—탕!
나와 송이에게 쐈다!
총의 각도를 보고 ‘이세현’이 놀라서 무슨 수를 쓰자, 총알이 튕겨 나갔다.
아니? 저 할배 진짜 미쳤어?
“다들 미안하다. 편히 보내주마. 우리가 이놈을 죽여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니, 인질이 잡혀있으면 구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보통 아니야?
다짜고짜 인질부터 쏴서 죽인다고? 러시아식 구출이야?
황당하다는 생각은 나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허허…. 당신들 교황청은 참 대단들 하시군. 나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는데, 인질부터 죽일 생각이신가? 애초에 딱히 인질도 아닌데 말이지.”
그 말과 함께 나와 송이가 풀려나왔다.
추기경은 멋쩍은 태도를 보였다.
“아? 인질 아니었어?”
“당신들이 이렇게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데 인질을 잡는 게 의미가 있나? 그저 목격자나 잔뜩 만들 생각이었을 뿐.”
목격자?
엑소시스트 팀이 다 모인 걸 찬찬히 둘러본 후, 이세현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다들 똑똑히 봐두시오. 난 당신들 같은 무식한 놈들과 힘겨루기할 생각이 없으니, 난 갑니다.”
—푹!
쇠사슬이 한순간에 이세현의 머리를 으깼다. 동시에, 푸르게 빛나던 마도서가 휘리릭 회전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게 뭐야 대체?
모두가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순간 –
모두에게 알림이 떴다.
/당신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하에 이런저런 내용이 많았지만, 솔직히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뭔 갑자기 탈출이야?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모두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묵성 추기 – 아, 이제 나왔으니 아니지.
묵성 할아버지가 황당해 하면서 대답했다.
“야! 대체 지금 뭔 상황인지 이해 가는 사람 있냐?”
… 저 할배가 아까 나랑 송이가 붙잡힌 걸 보자마자 총으로 쏘려고 했지.
은솔 누나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일단, 테이블로 가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상황을 정리해 봐요.”
테이블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크게 세 가지 의문이 생긴 상황이다.
1. 이세현에게 거짓말 탐지가 왜 통하지 않았지?
2. 그는 왜 갑자기 자살한 거지?
3. 그가 자살했다고 탈출이 뜬 이유는 또 뭐지?
… 일단 한가지는 깨달았다.
조언을 쓰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조언을 쓸 때와 다르다.
지금 우리는 뭔가를 알아냈는데, 그 정보들을 제대로 엮지 못하는 상황.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지혜’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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