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2)
91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Re (4)
* 6시간 전
– 김아리
세 번째 시도가 시작되기 전, 회의하면서 했던 생각이 있다.
호텔은 왜 우리를 ‘엑소시스트 팀’과 ‘마을 팀’으로 나눴을까?
단순히 외형이 어려서일 리가 없다. 어차피 호텔이 원한다면 참가자의 신체 나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니까.
나와 박승엽. ‘마을 팀’에게도 분명 무언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뭔가 조사라도 해보려면, 일단 집을 나가긴 해야 할 텐데….
“어머! 아리야. 엄마가 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잖니!”
살짝 집 밖으로 나가려는 행동만 했는데, 바로 어디선가 나타난 ‘엄마’가 외출을 막았다.
벌써 아이가 4명째 실종된 상황. 아이가 있는 집은 이미 지금처럼 철통같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집에만 앉아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나?
—띵 동!
벨 소리와 함께 집에 아이들이 들어왔다.
실종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후, 마을에선 일종의 ‘공동 양육’ 비슷한 문화가 생겨났다.
어른이 아이를 지키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직업 활동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생겨난 현상.
오늘은 우리 집에서 근처의 아이들을 맡을 차례다.
“아리야!”
큰 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승엽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찾아왔다.
…
멍하니 앉아서 천장만 보다 보니, 어느샌가 애들끼리 잘 놀고 있다.
승엽이도 참 잘 노네. 쟤는 정신연령은 이미 중학생 아닌가? 초등학생들과 노는 중인데 전혀 위화감이 없다.
기다리고 있다 보니 문제의 소년, ‘이시우’가 나타났다.
“시우 오빠! 일루와!”
“시우 형! 나 이것 좀 고쳐줘~”
옆에서 보면 우습긴 한데, 그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저 꼬마도 동네 애들 사이에선 아주 인기인이었다. 동네 큰형이자 동네 큰오빠 같은 위치라 해야 할까?
보통 저 나이대가 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기 마련인데, 건강 문제로 가정교육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아이 중 나이가 제일 많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겠지.
어른들은 아마 저 소년에게 애들을 맡기는 느낌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를 지켜보던 어른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아리야! 이리 와서 같이 놀자.”
마치 동생들을 돌보는 오빠 같은 느낌으로 날 부른다. 계속 모른 체 하기도 그래서 근처로 갔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엔 진짜 못 참고 주먹 나갈뻔했다! 애새끼가 진짜 처맞으려고!
꾹 참았는데, 정작 못 참은 사람이 있었다.
—탁.
승엽이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시우의 손을 치웠다.
시우는 순간 당황했는지 어색하게 웃더니 다시 애들과 놀기 시작했다.
얘네 대체 뭐함? 승엽아? 이제 내가 다 쪽팔리려고 해.
20분 정도 지났을까? 시우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 낮잠 시간이야. 다들 코 자자.”
말투가 유치한 건 그렇다 치고, 낮잠 시간? 그런 걸 챙길 정도로 어린 애들은 아니지 않나?
!
드디어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우가 가볍게 손짓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단체로 졸려 하기 시작했다.
시우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매트릭스나 소파 위로 옮겼다.
기현상을 느낀 승엽이가 바로 내 쪽으로 왔다.
“아, 아리 누나 이거 대체 -”
“호칭.”
“아리야….”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알았어.”
승엽아, 걱정 마! 끽해야 죽는 것 말고 별일 있겠어?
대화창을 바로 키려는 순간 깨달았다.
거리가 너무 멀다.
분명 엑소시스트 팀은 저택에 들렀다가 이세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바로 차 타고 마을로 바로 온다고 한 것 같은데, 아직은 저택에 있는 모양이다.
대화창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시우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승엽이를 붙잡고 ‘뭔가’ 했다.
승엽이는 몽롱한 표정으로 시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저 흉내 내면 되겠지?
그 전에, 우선 약간의 흔적은 남기도록 하자.
*
… 이거 너무하네.
거의 두 시간은 걸었다. 아이들끼리 놀던 마을에서, 저택의 뒷산까지.
차 타면 얼마 안 걸렸던 것 같은데, 애들 걸음으로는 족히 두 시간은 걸렸다.
애들 체력으론 견디기 힘들 정도의 거리인데, 승엽이는 최면 비슷한 것에 걸렸고, 나도 걸린 흉내를 내는 중이라 불평 없이 걸어가야 했다.
계속 따라가는 게 맞나? 불안하다.
대화창이 계속 작동하지 않았다. 묵성이 죽었을 것 같진 않다. 이유가 짐작은 간다.
우리가 마을에 있었을 때는 묵성은 저택에 있었고, 우리가 마을을 지나쳐 저택 뒷산 쪽으로 출발한 후, 묵성은 마을로 간 것이다.
서로가 엇갈리며 계속 거리가 먼 상태니, 소통이 막힌 상황….
아무래도 ‘범인’이 지금 저 앞의 꼬마에게 빙의한 모양인데, 계속 따라가는 게 맞을까.
일단은 따라가자. 설령 죽을 때 죽더라도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실종된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겠지.
딱히 특별한 점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산의 중턱까지는 그렇게 느꼈다. 아이의 몸으로 산행 자체가 힘든 것과 별개로, 이 산이 다른 산과 특별히 다른지 모르겠다.
조금씩 들리고, 느껴진다. 산에 가득 찬 생명들. 산이 두려움과 고요의 장소인 건 인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중턱쯤에 도착한 후에야 처음으로 이상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거대한 문.
이런 문이 원래 있었나? 미래 시점에선 없던 것 같은데.
그때도 산 전체를 뒤지고 다닌 건 아니었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에서 뒤로 돌아서 내려가야 하나? 내려간다고 벗어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뒤로 물러서면 사실상 알아낸 게 전혀 없다.
결국 누군가는 저 안에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두려워 말자. 죽으면 밖에서 만날 뿐. 별일 아니다.
각오를 다지며 문 안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
– 김아리
나는 세탁기 속의 빨래, 쳇바퀴 속의 햄스터처럼 뒤집히는 세상 속에서 그대로 자빠졌다.
간신히 일어서서 주변을 돌아보자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보였다.
하늘에는 그 어떤 광원도 없다. 태양은 물론 달조차도 사라졌다.
그러나, 땅에 은은한 광원이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이 피어있고 그 꽃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세상 전체에 흐릿한 광원을 부여했다.
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지나쳐온 문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미 사라졌다.
“놀라지 마. 여긴 성운의 용의 세계. 주인은 죽었지만, 세계는 아직 잔해가 남았지.”
“성운의 용? 그게 대체 뭐지?”
“몰라도 돼. 선사의 시대에 이미 잠든 분이시니까. 그와 함께 이 세계도 무너지기 시작했지…”
그 말을 하며 소년은 감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깨어있는 걸 알았어?”
“그 정도도 몰랐을까?”
“… 날 데려온 이유가 뭐지?”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꽃밭 사이에 앉더니, 꽃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아름답지 않아? 이 꽃밭.”
“달맞이꽃처럼 생겼네. 진짜 빛을 내는 게 특이하지만.”
“지구의 꽃과는 비교할 수 없지. 하나하나가 영혼이 깃들었는걸?”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꽃밭에서 물러나며 물었다.
“이 꽃, 설마 사람을 죽여서 만든 거야?”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었지.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얻었어.”
슬슬 익숙한 느낌이다. 지구에서 미친놈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의도가 뭔지 물어나 보자.
“그래, 사람을 대량으로 죽여서 네 신이라도 부활시킬 생각이야?”
“내가 성운의 용을 부활시키려 한다 생각했구나. 착각이야. 어찌 나 따위가 죽은 신을 부활시킬까?
그저, 그분의 장자의 탄생을 완성하는 게 내 일이야. 그분은 지금도 어머니의 유해를 집어삼키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으시지.
하지만 부족해. 죽은 신의 유해를 먹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신이 태어나기엔 모자라.
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 넌 내가 대단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니야. 단순히 ‘이민’을 도왔을 뿐이지.”
“이민?”
“꽃이 된 사람들은 언젠가 새롭게 태어날 세계의 주민이 될 거야. 분명, 탁한 지구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빛난 운명을 얻겠지!”
잠깐의 대화로 느꼈다.
이 미친놈은 악마를 ‘태어나지 않은 신’이라 믿으며, 인신 공양을 이세계로 이주시키는 과정이라 여긴다.
“나와 싸울 생각이구나.”
“설마 내가 설득이라도 될 줄 알았어?”
“너희는 보통 사람이 아니지?”
갑작스러운 질문. ‘보통 사람이 아니지?’ 무슨 의미일까?
“신기해. 오늘은 정말 신기한 날이야. 너랑 승엽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 너희의 영혼은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이 높아. 교황청의 엑소시스트도 아닌데, 대체 뭐지?”
…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우리야 대적자가 빙의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대적자가 보기엔 반대로 ‘우리가’ 갑자기 등장 인물들에게 빙의한 상황!
영혼 자체를 인지할 수 있는 존재다 보니, 격이 높은 참가자들의 혼을 보고 놀란 것이다.
교황청의 엑소시스트야 원래 특별한 존재들이니, 엑소시스트 팀을 만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겠지.
그런데, 나와 승엽이는 저 놈의 관점에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놀란 것이다.
“널 잡아 죽이려고 하늘에서 내려보냈다.”
“진짜야? 교황청이 섬기는 존재가 내려보낸 건가?”
미안. 아무 소리나 한 거야. 하늘은 아니고, 호텔이 보냈지.
더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래된 피를 끌어올렸다.
—타앗!
한순간에 10보 이상의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손끝에서 피어난 얼어붙은 기세가 상대의 상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소년이 뒤로 물러서며 이상한 소리를 외쳤다.
다음 순간, 사방에서 검은색 사슬이 튀어나와 얼음의 기운을 막은 후,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몸 전체를 나선으로 회전하며 사슬을 박차며 뛰었다. 허공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 쾅!
소년의 가슴팍에서 피가 튀었다.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시우가 주저앉았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무게를 실어서 상대를 무릎으로 찍으려던 순간,
다시금 땅에서 솟아 나온 사슬들이 내 다리를 결박했다.
주저 없이 내 다리를 잘랐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상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 강철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이 시우의 목을 뚫었다.
.
.
.
이겼나?
어차피 상대는 신체를 초월한 존재. 어차피 이 ‘시우’도 인형에 불과할 테니, 이걸로 끝일 리가 없다.
일단은 다리부터 붙이자. 최대한 ‘깔끔하게’ 뜯어냈으니 다시 붙일 수 있다. 다리를 붙이고 ‘오래된 피’의 힘으로 상처를 접합하던 도중.
“누나!”
진작 깨어나서 숨어있던 승엽이가 비명을 질렀다.
—쾅!
날카로운 사슬이 내 등을 후려쳤다.
고통을 참아내며 일어서자 건너편에 신비한 외형의 존재가 보였다.
남자아이 같다.
피부가 종이처럼 얇은지 밑의 핏줄과 내장의 움직임까지 설핏 드러날 정도다.
눈동자에는 검은자위 대신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광채를 내뿜는 무언가가 있고, 이목구비는 크고 또렷하다.
언뜻 보기엔 신비한 소년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과 다른 이질감에 불쾌한 골짜기를 보는 듯한 역함이 느껴진다.
저게 ‘범인’의 정체인가? 악마의 어미라는 ‘성운의 용’이 만들어낸 세계의 주민?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엄청나게 잘 싸우시네요. 진짜 지구의 신이 내린 천사라도 되시나요? 아름다운 아리 양?”
“닭살 돋는 소리는 하지 마. 난 네 생각보다 나이가 꽤 많거든.”
“그거 재밌네요. 저도 보기보다 나이가 꽤 많은데.”
“2차전이라고 달라질 것 같아?”
“인정합니다. 솔직히 제 힘 만으론 못 이기겠네요. 스스로 다리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다만, 이곳은 제 고향이니 절 가호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말과 함께 – 아득한 힘이 세상 전체에서 들끓었다. 악마가 힘을 넘치도록 내리기 시작했다!
즉시 주사기로 내 ‘암시’를 담은 피를 뽑아낸 후, 주사기를 승엽이에게 건넸다.
“뛰어.”
“네?”
“축복 쓰고, 그냥 뛰어. 뛰다 보면 바깥으로 나가게 될 거야.”
그간의 경험이 헛되진 않았구나. 승엽이는 내게 뭘 질문한다거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즉시 주사기를 든 채로 뛰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 아이도 비범한 영혼이 느껴지긴 합니다만, 결국 평범한 소년 아닙니까?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응.”
“그 대답을 들으니 궁금하군요. 근거가 뭡니까?”
“죽은 신의 무덤 따위가 아무렴 빈틈없이 완전할까? 어딘가 개구멍이 많겠지. 애초에 그러니까 너도 지구를 계속 오갈 수 있는 것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어디 있을 줄 알고 -”
“어디 있든지 그 애는 반드시 찾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소년은, 반드시 이 지옥 어딘가의 탈출구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까 –
너는 오늘 나와 끝을 보자.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