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4)
93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Re (6)
* 세 번째 시도
– 한가인
조언을 들은 후, 빠르게 작전을 짜서 파티를 둘로 나눴다.
먼저 진철 사제를 중심으로 악마에게 돌격하는 ‘자폭 파티’.
구성원은 별의 주인인 진철 사제, 형에게 정신 보호를 걸어줄 송이, 마찬가지로 빙의에 저항할 수 있는 나 이렇게 셋.
총과 종은 내가 들었다.
다음으로 전투에 기여하기 어려우므로 차 타고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탈출 파티’.
적이 인간이 아니고, 빙의 능력에 저항할 수 없다면 접근 자체가 위험하다.
따라서 엘레나 수녀와 추기경 둘은 탈출하기로 했다.
각자의 길을 떠나기 직전, 엘레나 수녀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다들…. 죄송합니다. 나가서 봬요.”
진철 사제는 위로하듯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나가서 봅시다.”
악마에게 돌격하는 시점에서 ‘자폭 파티’ 전원이 각오했다.
살 가능성은 없다. 우린 전원 죽는다.
*
– 차진철
흐읍. 흐읍.
심호흡을 거듭했다. 저택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적수와 싸우러 나갈 일이 있었나?
호텔 밖에서 격투가로서 성공하는 것을 꿈꾸던 시절, 도저히 이길 수 없던 다른 격투가들이 떠오른다.
한때는 내 필생의 경쟁자라 느꼈고, 열정이 식은 후로는 영원히 넘을 수 없을 벽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고작 인간들이었다.
이제부터 싸우게 될 악마가 손가락 한 번만 튕겨도 다 죽을 존재들에 불과하다.
뭔가 큰물에서 놀게 된 기분이 든다.
미친 사람처럼 들릴까 봐 동료들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호텔에 들어온 후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이 감각!
과거, ‘고작해야’ 인간 사이의 격투에 목매달았던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긴장 풀자.
나는 인간을 초월한 축복을 얻었고, 마왕을 상대할만한 보물도 얻었다.
저택으로 걸어갈수록 그야말로 지옥이 된 세계가 보였다.
인근의 사람들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죽어있다.
도저히 더 볼 생각이 들지 않아 고개를 돌렸는데, 가인이는 그 와중에 가까이 가서 구경하더니 날카로운 촉수가 땅에서 솟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시체를 보면 알아낼 정보들이 있긴 하겠지만, 참 비위도 좋구나.
—쿵! —쿵!
저택 근처까지 다가가자, 믿을 수 없이 거대한 ‘고치’가 보였다. 고치에서 진동만으로 땅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 저게 대체 뭐냐?”
“사제님. 제 눈엔 -”
“야! 야! 이제 컨셉 잡는 것 그만하자. 이제 눈치 볼 사람도 없다.”
“그 말이 맞네요. 제 눈엔 엄청나게 큰 살덩어리처럼 보입니다.”
“악마가 바로 나오진 않았네? 저 살덩어리를 부수면 되는 건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서 검은 촉수들이 마구 솟아났다.
뭘 반응할 틈도 없이 촉수들이 내 몸을 휘감더니 조이기 시작했고, 전력을 다해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인간이 맞긴 한 거냐? 곰도 이렇게 힘이 세진 못할 터인데…. 그래봐야 소용없다.”
어디선가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본 ‘골룸’같이 생긴 생물이 나타나더니, 가볍게 손짓으로 수십 개의 촉수를 더 불러냈다.
“이 씨발 새끼가 진짜!”
—타아앙!
거칠게 울려 퍼지는 소리.
빈말로도 맑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친 금속음이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촉수들이 순식간에 시든 오징어처럼 허약해졌다.
골룸 같은 놈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늦었다 병신아!
쾅!
폭탄이 터지는듯한 폭음과 함께 내 몸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대체! 그 종은 무슨!”
“성인의 종이다! 씹새끼야! 이제 넌 죽었다!”
골룸 놈의 어깨에 내 팔이 닿자마자 놈의 어깨가 말 그대로 으스러졌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귓가를 찌른다. 이제, 펀치 한 번이면 이놈 대가리를 –
“그 몸! 참으로 탐나는구나!”
갑자기 놈의 눈이 시뻘게지더니 내 의식이 순식간에 – 아무 일 생기지 않았다.
“뭐 하냐 병신아? 내가 등신도 아니고 네 빙의에 당하겠냐?”
물론 내가 뭘 한 건 아니야. 송이가 아마 뭘 했겠지.
아까부터 미친 듯이 종을 치던 가인이가 내 뒤로 다가왔다.
뭔지 몰라도 아마 저 종을 치는 동안엔 이 골룸이 별 힘을 못 쓰는 듯하다.
다 좋은데, 종소리는 진짜 구리네.
딱히 뭘 더 알아낼 건 없겠지? 알아낼 게 있다고 해도 더 시간 끌 틈이 없다.
아까부터 건너편의 고치에서 아주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뒤지거라.”
놈의 대가리를 터트리기 직전.
놈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유언을 남겼다.
“소용없다. 곧 신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다. 이윽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리라.”
—퍼억!
“참. 놈을 이렇게 쉽게 죽일 줄은 몰랐다.”
가인이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 종이 통하는군요. 종을 울리는 동안엔 빙의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빙의는 송이가 막아준 거 아니었나?”
송이가 대답했다.
“오빠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타겟을 못했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허. 내가 또 실수할 뻔했네. 하지만 종의 성능을 알아낸 건 큰 수확이다.”
“대적자를 죽였는데도 해결이 뜨진 않네요.”
송이의 의문에 가인이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미 늦었다는 의미겠지. 악마가 이미 태어난 다음에 대적자를 죽여봐야 뒷북 아닐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미 저 악마의 고치가 소환된 시점에서, 이 골룸 놈은 제 역할을 다했다.
저 고치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쿵! —쿵!
거대한 고치. 저택이 있던 장소에 저택을 붕괴시키며 나타난 고치는 크기만으로 범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거의 무슨 빌딩 같은 크기.
… 이제, 별을 쓸 때가 됐구나.
다가온 송이의 팔찌가 번쩍였다.
“다들 물러서라.”
내 말과 함께 송이와 가인이가 멀찍이 떨어졌다.
이계의 별을 소환했다.
–파아아아앗!
압도적인 기파가 별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사파리에서 여러 차례 연습했지만, 쓸 때마다 느껴지는 두려움만큼은 억제할 수 없다.
세상을 뒤트는 이계의 힘. 생물과 비생물을 넘어서서, 삼라만상 전체를 비웃는 이계의 권세.
별의 파동이 고치에 닿는 순간 이변이 시작됐다.
—고오오오오!
분노로 가득 찬 울음소리가 고치에서 터져 나온다. 태어나지 못한 신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빚어낸 고치로부터 거대한 손들이 솟아 나왔다.
—쾅!
순식간에 뻗어 나온 손들이 날 붙잡으려는 걸 피하고, 또 피했다.
손이 늘어나고 또 늘어났다. 마침내 손 하나가 내 몸을 통째로 움켜쥐는 순간!
아예 별을 그 손에 쑤셔 박자 손이 기괴한 광물과 액체로 변하면서 녹아버렸다.
—아아아악!
고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서 고치가 세로로 갈라졌다.
산처럼 거대한 나방이 고치에서 튀어나왔다.
… 이것이 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
– 한가인
뛰고 또 뛰었다.
고치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솟아 나온 손들이 진철 형을 죽이려다가 별에 녹아내리는 순간만 해도 설마 별의 힘으로 끝장을 보나? 했다.
평생 저런 장면은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다.
빌딩보다도 거대한 고치가 세로로 갈라지더니, 그 고치조차 작아 보이는 산처럼 거대한 나방이 튀어나왔다!
진철 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방이 튀어나오는 순간 죽었겠지?
움직이는 산과 같은 그 거체를 보는 순간 알았다.
저런 놈이 태어난 시점에서 세상은 끝이다. 그 어떤 병기도 저놈에겐 무용하리라.
나방이 날아다니면 분진이 떨어지는 법.
산처럼 거대한 나방이 날갯짓을 한번 하자, 세상 전체에 희뿌연 가루들이 떨어졌다.
아아…
이 광경은 우리에겐 지옥의 한 장면이나, 누군가에겐 신세계의 시작이겠구나.
가루 하나하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생명들이 태어났다.
나방의 날갯짓 한 번에 수천의 생명이 태어나고, 세계 전체가 활력으로 가득 찼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물들이 온 사방에서 태어나고, 공기부터 대지까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왜 저 존재가 ‘악마’가 아니라 ‘신’인지 이해했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사람의 신’이 아니었을 뿐.
… 세상 전체를 뒤덮은 가루를 나라고 피할 수 있었겠는가?
내 몸을 덮은 가루들이 나를 무언가 ‘다른 존재’로 바꿔가기 시작한다.
이걸로 끝인가?
넋이 나간 채로 나방을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날개. 날개 한쪽의 모양이 이상하다.
—삐이이이잇! 쾅!!!
신세계를 창조하던 나방이 갑자기 허공에서 비틀거리더니, 대지로 추락했다.
모양이 뒤틀린 날개를 이리저리 더듬는가 싶더니, 나방은 결국 자신의 날개를 찢어버렸다.
…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이은솔
장관이네.
재벌 집에서 태어나서, 나름대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신기한 구경도 많이 하면서 한세상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텔에 들어온 후에야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는지 알았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동료들이 다들 악신의 제단을 부순다 어쩐다고 하면서 마을과 뒷산을 싸돌아다니는 사이.
난 이세현하고 차나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본 장면이 이런 광경들.
갑자기 저택이 붕괴한 후 빌딩만 한 고치가 생겼다.
고치가 쪼개지더니 산만한 나방이 튀어나왔다.
나방이 세상을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이계 버전 천지창조가 시작됐다.
와! 신기해!
이쯤 되니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뭐 무섭다 이런 생각도 안 들었다.
그러다가 나방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뭐 하는 거지? 갑자기 나방은 자기 날개를 유심히 살폈다.
나도 같이 보다 보니, 그제야 날개 하나가 이상하게 생긴 걸 깨달았다.
색깔도 좀 기괴하고 이상한 촉수 같은 것이 마구 돋아나 있다.
이 먼 거리에서도 보이는 걸 보니, 아마 실제 저 촉수의 크기는 거의 건물만 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날개에 돋아난 건물만 한 촉수를 살피던 산만 한 덩치의 나방은, 고심 끝에 ‘불량품 날개’를 뜯어내더니 –
다시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
이거 ‘탈출’이네.
뭔지 몰라도 내 동료들이 잘 활약해서 고치에서 나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는걸’ 막은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 몸의 일부가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방이 자기 몸을 다시 만들려고 고치로 들어갈 테니, ‘현재의 위험’에선 벗어났다는 판정이구나.
이 속도라면 조만간 나방은 고치로 들어가고, 탈출 판정이 뜨겠지.
그 전에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오라버니. 제게 정말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이 모든 광경을 ‘하늘에서’ 구경 중이던 이세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뭐라고?”
“오늘 전 참 신기한 일을 많이 겪었답니다. 물론 저 나방이 제일 신기하긴 한데, 그 전에 있던 일도 이상하죠?”
저택이 뒤흔들린다 싶더니, 갑자기 오라버니는 날 끌고 ‘뭔가’를 했다.
정신 차렸을 때, 나와 오빠는 하늘을 나는 이상한 생물의 배 안에서 세상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난 널 살리려고 한 일이다!”
“그건 저도 알아요. 오빠는 절 위하려고 했겠죠.”
“그걸 알면서 엑소시스트들을 데려와?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역시 알고 있었구나.
괜찮다. 차근차근 대화하면 된다. 그간 느끼기에, 이세현은 악인이 아니었다.
“저택에서 그간 수상한 일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까요. 심지어 지금 일도 기이하기 짝이 없죠.
아직도 제게 숨기실 생각인가요? 아니면 절 입막음이라도 하실 생각인가요?”
“무슨…. 대체 무슨 말이냐! 입막음이라니. 난…. 난 도대체 모르겠어!
나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저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나타날 줄은 정말 몰랐다.”
침착하게 관찰했다. 명백히 느껴지는 ‘죄책감’. 이 남자는 ‘뭔가’를 안다.
알지만, 전부 다 알던 건 아니다. 최소한 지금처럼 세상 전체가 파멸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음이 분명하다.
“시우는…. 시우는 어디 있는 거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쯤에서 끊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 남자는 지금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려 하고 있다.
다가가서 이세현의 손을 잡았다.
“오빠. 진정하세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으흐흐…. 은솔아. 정신 차리거라. 저 밖을 봐! 이제 모든 게 망했다! 시우도 죽은 게 틀림없다…. 아아! 하느님!”
“오빠. 본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던 비밀인데. 교황청은 시간을 돌릴 수 있어요.”
넋이 나간 채로 주저앉아있던 이세현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교황청은 시간을 돌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게 말해주세요. 오빠는 뭔가 알고 있잖아요?”
102호에 진입한 첫날.
우리는 이세현을 나름대로 조사한 끝에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지.
실수였다.
그는 분명 ‘마도서’나 ‘실종 사태’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방의 비밀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자가 아니었다!
넋이 나간 채로 내 말을 듣던 이세현은 내 표정을 살폈다.
멸망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명백히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내 분위기를 살피던 이세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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