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43)
괴담 호텔 탈출기 943화(943/945)
943화 – 304호, 저주의 방 – ‘파우스트’ (34)
— 관측소, 김상현
304호의 두 주연, 차진철과 엘레나.
정황상, 두 사람 다 최초의 소원을 자각한 것 같다.
가인 군이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철 형은 확실히 소원을 깨달았어요. 본인이 깨달았다면서 이것저것 설명 중이니까.”
“엘레나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겠죠. 당장은 여유가 없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여기까지 말한 후, 가인 군이 화이트보드에 현 상황을 간단히 적시했다.
1. 관리국의 알렉산드르 암살 시도 실패
2. 알렉산드르가 마왕 가인 회수 시도
3. 마왕 가인이 이제 막 각성한 상황(New!)
“… New는 뭡니까?”
“지금 막 각성했다는 표시? 어쨌든, 3번까지 진행된 것 같네요.”
“아직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이라 보십니까?”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일정 시점 이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판이 터지기 직전이다?
해결보다는 탈출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지.
“글쎄, 아직 다 망한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내가 인물 단위로 정리해 봤다.
“304호의 악당이라면 결국 알렉산드르와 마왕 가인 아닙니까.”
“그렇죠.”
“알렉산드르의 초마법은 은솔 양의 피리라면 저항할 수 있어 보이고.”
“트라우마 구현은 확실히 막을 것 같네요. 드림랜드는 좀 까다로우려나?”
그렇다 해도 304호 내부의 동료들이 절대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마왕 가인, 이쪽이 문제군요. 혼자서 군대를 상대하는 수준이니.”
“…”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마왕 가인에 대한 의문을 언급했다.
“진철 군의 말에 따르면, 마왕 가인의 능력은당신과 거의 똑같다고 합니다.”
“으음…”
“그에게는 마도서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의외로 이 부분은 쉽게 답이 돌아왔다.
“그 부분은 간단합니다. 목적지가 같아서죠.”
“마왕 가인과 천상 가인의 목적지가 같다?”
이 대목에서 눈앞의 가인 군이 살짝 당황했다.
“천상 가인? 설마 제 이야기인가요?”
“천상에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형도 마찬가지인데.”
“나도 천상 상현이라고 하죠.”
“… 천상 승엽이가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아했겠네요.”
가인 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우주에는 ‘특이점의 이치’라는 거대한 진리의 산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영혼 결집의 이치’라고도 하겠죠.”
특이점의 이치라는 거대한 진리가 있다.
“그 끝에 거하는 위대한 자는 303호에서 확인했죠. 반고.”
진리의 산 정상에 반고의 옥좌가 있다.
“태어나지 못한 자와 마왕. 서로 다른 등산객이고, 출발지도 달랐습니다.”
태어나지 못한 자와 마왕 가인.
위대한 자의 불완전한 자식과 욕심 많은 인간.
서로 다른 존재고, 출발점도 달랐다.
“하지만, 같은 산을 오르고 있으니 때가 되면 만납니다. 지금이 만난 거죠.”
여기까지 깨닫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호텔이 당신에게 내린 마도서는 등산객을 위한 안내 책자였던 셈이군요.”
“비슷하죠.”
“신성한 태양은?”
가인 군이 진중한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화신의 서와 신성한 태양. 때로는 서로 전혀 다른 힘처럼 양쪽에서 균형을 유지했지만…”
칠흑처럼 검은 화신의 서.
하늘의 빛처럼 하얀 신성한 태양.
“목적지가 태극이라면, 결국 둘 다 그림의 일부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한 후, 내 나름대로 간단히 표현했다.
“요컨대, 신성한 태양은 다른 등산로를 오른 선배가 ‘이렇게도 갈 수 있다!’라며 적은 다른 안내 책자입니까?”
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하하! 대충 그런 셈 치죠. 그나저나, 진철 형이 악마에게 들었다는 말이 신기하네요.”
진철 군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오래전에 죄수를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 관계가 있어서인지 죄수는 묘하게 차진철에게 친절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갇혀있었다. 날 때부터 시작과 끝을 알았으니, 내 운명이 감옥에 있음을 알았다…”
“…”
“목표는 하나. 모든 일은 감옥에서 나가기 위한 열쇠를 만드는 과정이다. 대충 이렇게 끝났지요.”
“감옥은 딱 봐도 호텔인데, 희한합니다.”
죄수의 말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지점.
“진철 군과 처음 만났을 때 그 말을 했다는데, 처음 만난 시점이라면 아주아주 오래전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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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말로는 거의 700년 전이라고 하죠.”
“그때 진철 군은 참가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죄수도 죄수가 아니었고.”
태어날 때부터 갇혀있었다는 죄수.
하지만, 그 말을 할 당시엔 죄수가 아니었다.
약간의 혼란을 겪을 무렵, 가인 군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세 개를 다 쓰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고?”
“어, 후원자가 그리 말했습니까?”
“… 시간의 단면만 인지하는 자와 전체를 보는 자의 차이.”
“음?”
“위대한 자에게 ‘언젠가 속박당할 미래’란 지금 속박당한 것과 차이가 없다.”
“…”
“당신에게 100만 년의 수명이 있음을 알았다. 첫 100년은 자유롭고 행복하겠지만, 이후 99만 9,900년을 감옥에 갇혀서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임을 알았다.”
“…”
“그렇다면, 첫 100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겠느냐.”
조언 3개를 전부 소모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은 모양이다.
조언의 내용은 위대한 자의 현 상황을 묘사한 듯한데, 알듯 말 듯했다.
이쯤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4호 진행 이야기로 돌아가죠.”
“…”
“단순하게 생각하면, 시나리오에서 대체할 수 없는 조각이 보입니다.”
“마왕 가인?”
역시, 가인 군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놈을 죽이면 만사형통 아닙니까?”
“…”
“알렉산드르의 계획은 마왕 없이는 불가능입니다. 마왕 본인도 흉악한 놈이고.”
“…”
“문제는, 마왕이 이미 각성한 상태라 꽤 위협적인 —”
설명을 계속하려는 순간.
“으악! 형! 빨리 와봐요!”
망원경 쪽에서 승엽 군의 고함이 들려왔다.
즉시 무언가 직감한 듯, 가인 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제 자제할 필요가 없겠구나.”
“무슨 소립니까?”
자제?
“다들 ‘최초의 소원’을 자각한답시고 참는 중이었잖아요. 이젠 그럴 필요 없네.”
*
.
..
…
— 마왕(?)
— 부우웅…!
서울 밤하늘 아래, 한강을 끼고 이동 중인 차.
“좋아, 나탈리아 경.”
“…”
“그쪽 스승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상황 자체는 단순하다.
마법사가 날 확보하기 위해 제자를 보냈는데, 도착했을 때는 내가 이미 각성한 상태였다.
나탈리아의 부하들은 몰살당했고, 그녀 혼자 살아남은 상황.
그래서 엘레나의 언니라는 이 아가씨는 아까부터 상당한 경계심을 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나탈리아가 굳은 표정을 짓더니, 운전 중인 엘레나에게 말했다.
“엘레나, 10분 더 직진한 후에 3차선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마왕인 너와는 대화할 생각 없고, 동생인 엘레나에게만 말하겠다는 태도다.
“그것참, 유치하게 구네.”
“날 인질로 잡아도 소용없을 겁니다.”
“인질? 아, 내가 널 도구 삼아 알렉산드르를 협박할까봐?”
“스승님께서는 —”
인질로 잡을 생각도 없고, 통할 리도 없다.
애초에 알렉산드르 그 정신 나간 놈은 꿈을 이루면 모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고 믿잖아.
인질이 통하겠어?
내가 나탈리아를 죽여도 목표만 이루면 제자가 부활한다고 믿을 놈인데, 인질이 통하겠냐고.
“이거 참 답답한 아가씨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무렵, 갑자기 운전석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뭔가 어렵네.”
나탈리아의 답답한 소리를 듣다가 엘레나의 목소리를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깨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엘레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편이었다.
한번은 날 배신했던 가영이보다도 훨씬 더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그녀와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뭐가 어려워? 뭔가 생각 중이야?”
엘레나가 계속해서 묘한 소리를 했다.
“정답을 모르겠어. 선택지가 이것저것 있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네.”
“그럴 때는 확실한 오답부터 지워.”
“오답부터 지운다…”
“오답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 중 정답이 있겠지.”
그 말에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오답부터 지워야겠네.”
근데, 아까부터 무슨 고민 중인 거야?
“뭔가 깨달은 듯하니 다행인데, 무슨 고민이라도 생겼어?”
엘레나가 갑자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안전벨트.”
“응?”
“두 사람 다 안 하고 있네요. 뒷좌석이어도 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를 —”
— 덜컹! 끼이익!
무언가 확 꺾이는 소리.
차 바퀴가 갑자기 도로를 긁는 소리.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일이었으니, 대응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었다.
— 끼이익! 쿵!
— 콰지직!
“꺄아악! 에, 엘레나! 미쳤어!”
엘레나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딱 가드레일이 없는 위치에서 꺾었으니, 실수도 아니고 명백한 고의.
당연히 차는 도로 밖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크으…!”
뒤늦게 ‘동화의 법’을 사용해 엘레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뭐야?”
묘한 황금빛이 엘레나의 몸에서 감돈다 싶더니, 동화의 빛을 막아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뭐야! 무슨 초능력인데?
— 콰직! 쿵!
“크악!”
전신이 차체와 마구 부딪힌다!
엄청난 격통과 함께 일순간 의식이 흐릿해졌다.
.
..
…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이게… 무슨…”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
엘레나가 꿈틀거리는 나탈리아의 손을 잡고 속삭인다.
“언니는 조금 더 자도록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탈리아의 팔이 시커멓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순식간에 의식을 잃는 나탈리아.
곧, 엘레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약점도 그 사람과 똑같네.”
“… 약점?”
“육체적으로 너무 허약해. 그냥 인간.”
“무, 무슨 소리를 —”
“안전벨트를 했어야죠. 그런 것 치고는 나도 꽤 아프긴 하지만.”
즉각 동화의 법을 사용했다.
시작의 땅에서 얻은 지고한 이치, 그 힘을 빌려 엘레나를 제압하려 했는데…!
“세 사람의 소원이 그대를 일으켰다. 그대 또한 계약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 화르르!
세 개의 불꽃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는 곧, 나를 일으킨 세 개의 계약을 상징하는 것.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세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나는 당신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내게 돌려줄 차례.”
거부할 수 없는 요구.
“엘레나…”
이쯤에서 아름다운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렉산드르가 했던 대로 따라 했는데, 통하네.”
“…”
“여기서부터가 문제야. 어떻게 해야 해결일까?”
“…”
“정답을 모르겠어. 하지만…”
엘레나가 빙그레 웃었다.
“우선, 오답부터 지워야겠지.”
새하얀 섬섬옥수가 다가오는 걸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저것’은 다른 사람이다.
항상 내 편을 들어주었던 천사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힘도, 결단력도, 사고방식도 – 그냥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이, 끔찍한 악마 놈이 —”
끔찍하게 사악한 존재가 엘레나의 몸을 빼앗았구나.
“네 존재 자체가 확실한 오답이야.”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근데, 여기서부터 어떻게 하죠? 설마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