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44)
괴담 호텔 탈출기 944화(944/945)
944화 – 304호, 저주의 방 – ‘파우스트’ (35)
— 이은솔
— 후우웅!
오늘따라 제법 거친 바람이 서울 도심에서 몰아쳤다.
사방에서 휘날리는 먼지 덕에 시야가 어지러웠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 때문에 앞이 컴컴하네.”
“…”
“마치, 우리 미래처럼.”
아리가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나저나, 엘레나는 왜 이리 늦어?”
옆자리의 진철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재촉하지 마라. 늦는 이유가 있겠지.”
“맞 – 우걱! – 아. 곧 – 벌컥 – 온다고 —”
“미로, 좀 삼키고 이야기해.”
최근 계속 같이 다녔던 나와 아리는 물론이고 미로와 진철이까지 합류한 상태.
여기에 엘레나까지 도착하면, 304호 내부 인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 띵!
“어, 왔다!”
엘레나가 도착했다.
아리는 왜 이리 늦었냐고 한마디 할 기세였는데, 걸어오는 엘레나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다쳤네?”
“엘레나, 무슨 일입니까?”
“모야? 왜 붕대로 칭칭 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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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요. 당일은 괜찮았는데, 다음 날부터 몸 여기저기가 엄청 아팠네요.”
304호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단은 의례적인 축하라도 할까?
“자, 모두 박수!”
“…”
모두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이 상황에서 박수칠 기분이 나냐는 분위기다.
“다들 왜 그래? 진철이랑 엘레나가 최초의 소원을 각성했다며.”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긴 해요.”
“축하해야지. 또, 엘레나가 마왕 가인도 처단했다며?”
아리가 가볍게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게 문제지.”
오늘, 304호 내부의 모든 동료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
“마왕 가인을 처단했는데 아무런 알림이 없네.”
마왕을 처단했는데 호텔에서 아무런 알림을 보내지 않았다.
해결도, 탈출도, 실패도 아니라는 것.
“이상한 일이야. 진철이랑 엘레나의 기억을 모아보면, 종말의 원인은 명백히 마왕 가인 쪽에 있었으니깐.”
지금은 두 사람이 최초의 소원을 각성하고 이틀이 흐른 시점.
당연히 소원 및 기억의 내용은 모두에게 알려진 상태다.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알렉산드르의 초마법은 마왕 가인 없이는 실현할 수 없어.”
알렉산드르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번째 초마법, ‘구원’은 마왕 가인이라는 강력한 재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진철이가 의문을 제기했다.
“혹시 그 전제가 틀린 것 아니냐?”
“전제가 틀렸다?”
“마왕 가인 없이도 초마법 시전이 가능한 거야. 대체할 수 있는 재료가 있는 거지.”
“…”
“이렇게 생각하면, 마왕 가인이 죽어도 해결이라고 볼 수 없 —”
솔직히 진철이의 의견은 말이 안 된다 싶어서 반박했다.
“알렉산드르는 마왕 가인 확보하자고 러시아에서 벗어나서 관리국 아가리에 직접 들어왔어.”
“끄응… 그랬지요.”
“목숨을 건 도박이었지. 네 말대로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별거 아닌 재료를 얻기 위해 대마법사가 목숨을 걸었네.”
“아으, 그러면 이쪽은 아닙니까?”
“그쪽은 아니야.”
알렉산드르는 마왕 가인의 확보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수백 년 이상 구른 대마법사가 보기에 마왕 가인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뜻.
엘레나가 기억을 더듬는 중인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확인된 종말 시나리오. 알렉산드르와 마왕 가인의 힘이 모이면 ‘시작의 땅’과 현실을 연결할 수 있다. 그 시점에서 종말.”
“으음…”
“알렉산드르가 이기면 그대로 끝. 우주에서 혼돈의 포식자들이 몰려와 지구를 집어삼킨다.”
“새삼스럽지만, 알렉산드르는 정신이 나간 놈이네.”
“마왕 가인이 이겨도 해피엔딩은 아닐 거야. 그쪽도 선한 존재는 아니니, 온 세상 사람을 잡아먹지 않을까?”
아리가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앞에 ‘마왕’ 두 글자를 빼도 돼.”
“…”
“그냥 가인이가 이겨도 원래 해피엔딩은 아니잖아. 그렇지?”
마지막 말은 천장에 대고 했다.
아마, 머나먼 하늘 위의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동료에게 한 말이겠지.
“아~ 모르겠네. 지금까지 파악한 대로라면, 마왕 가인이 죽은 시점에서 해결 맞는 것 같은데.”
“그러게.”
엘레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후, 미로 쪽을 보았다.
“미로야. 혹시 가인 씨 소환해 봤어?”
아까부터 케이크만 깨작이던 미로가 간단히 답했다.
“응. 어제 소환했고 시나리오 이해 확인도 했어.”
“오! 가인 씨의 시나리오 이해라면 분명!”
기대감 가득한 엘레나의 눈동자.
반면, 나와 아리는 가볍게 한숨 쉬었다.
이미 미로에게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왕 가인을 쓰러트린 호텔 파티, 마침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다.”
“다음 페이즈?”
“이로써 304호의 가장 끔찍한 진실에 도전하게 되는데!”
“도전하게 되는데?”
“되는데!”
“되는데? 다음은 뭐야?”
“이게 끝이야.”
“…”
“…”
“장난 아니지?”
“장난 아니야.”
“하아…”
엘레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크게 한숨 쉬었다.
미로가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그, 가인이가 한동안 부르지 말래.”
“…”
“근거가 부족해서 다음 내용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날 소환하는 건 내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이렇게 말했어.”
뭐랄까, 이럴 때는 가인이가 묘하게 얄밉네.
아리가 잠시 고민한 후, 갑자기 엘레나 쪽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랑 진철이 소원 내용 말이야.”
여기서 엘레나가 움찔했다.
“왜?”
“진철이 소원은 듣고 바로 이해했어. 물론, 진짜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어처구니없다는 말에 어색하게 웃는 진철이.
“어처구니없을 것까지야…”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이건 용기의 축복인가?”
“아마도.”
“시원하게 놀다 가겠습니다. 그래서 유산으로는 위대한 자의 ‘장난감’을 받았고?”
“그렇겠지.”
“황당하긴 한데, 대충 축복과 유산이 나오긴 해.”
“…”
“근데, 엘레나는 모르겠어.”
이 부분은 나도 궁금하긴 했어.
“어, 어떤 부분이?”
“유산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아예 없잖아.”
“…”
“세상에 의로움이 없으니 의로움을 바랬다. 힘 있는 정의가 일어서길 바랐다.”
“…”
“축복하고는 아주 잘 연결되네. 그런데, 불길한 상상과는 연결고리가 없는걸.”
엘레나가 슬쩍 시선을 낮춘 채 중얼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 네 소원도 유산과는 무관하잖아.”
“그야, 내 유산들은 시련을 이겨낸 끝에 얻은 게 아니니까.”
오래된 피는 날 때부터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리 소원의 결과가 아니라 괴담 미로 소원의 결과라고 봐야겠지.
부등변다면체는 티켓 교환으로 얻었다.
이쪽 역시 아리 개인의 활약 내지는 선택이었다고 보긴 어려워.
이렇게 보면, 아리의 소원이 유산과 무관한 건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엘레나는 아니지 않나?
“뭐, 내 쪽도 가인 씨가 선택 과정에 영향을 끼쳤으니깐…”
“그렇긴 한데 —”
“자, 자. 이 이야기는 이쯤 하자.”
이쯤에서 아리 어깨를 툭 쳤다.
아리의 보석 같은 감홍색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고, 나는 가벼운 윙크로 화답했다.
침묵 속에서 눈으로 이런 대화가 오간 것 같다.
‘이거, 딱 봐도 소원 하나 숨긴 거 아니야?’
‘밝히기 싫은가 보지. 넘어가.’
결국, 아리가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내심, 이 정도 생각은 했다.
엘레나가 동료들에게 숨기려 하는 소원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호텔이 보기에 그 소원은 ‘불길한 상상’에 가깝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런 느낌으로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던 시점.
— 덜컹!
갑자기 진철이가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뭐야?”
“…!”
대답도 없이 눈만 크게 뜬 모습.
엄청나게 충격받은 모습인데,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인데?”
“저, 저곳!”
넋 나간 듯 창밖을 가리키는 모습.
“어떻게, 어, 어떻게 이 장소에…!”
“이 장소? 여기 방송국 근처 커피숍이잖아.”
— 쨍그랑!
이쯤에서 엘레나도 충격에 빠져서 커피잔을 떨어트렸다.
“어머나.”
다들 왜 이러냐는 듯 바깥을 내다본 아리도 삽시간에 얼어붙었지.
“으! 다들 왜 그러는데!”
결국, 나도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창밖을 보았다.
“아.”
창밖에는 충격적인 광경이 있었다.
진철이와 엘레나가 기겁하고, 아리가 얼어붙을 만한 광경.
… 아으! 왜 이리 먼지가 많아?
… 좀 참아봐. 애도 아니고 참!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 참아보라니깐!
커피숍 창가 너머로 커플이 보였다.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외견의 커플.
제법 잘생기고 똑똑한 고등학생과 갈색 머리칼의 아리따운 미소녀가 있었다.
그제야 소환체 가인이가 언급한 ‘304호의 가장 끔찍한 진실의 정체’를 이해했다!
미로의 얼빠진 목소리에 모두의 감상이 담겼다.
“모야? 쟤 무, 무한 리스폰이야?”
*
뭐든지 처음 한 번이 어렵다.
두 번째부터는 처음보다는 훨씬 쉽지.
“어? 누구세요?”
“…”
“으억! 뭐야? 당신들 누구 —”
아리가 망을 보는 사이, 진철이가 다짜고짜 가영이와 가인이를 납치했다.
“미안하다. 일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혼란스럽긴 한데, 상황이 상황이라 —”
진철이도 참 대단하네.
이 와중에 두 사람에게 사과씩이나 해?
“아 쫌! 쓸데없는 소리 할래?”
아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두말없이 손을 휘저었다.
— 서걱!
숨 한번 내쉬기도 전에 목이 떨어진 두 사람.
“으윽! 그, 그래도 사정은 알려주는 게…”
“그게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가?”
‘또’ 가인이와 가영이를 죽였다.
이번에는 아무도 해결 알림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알림이 안떴어…”
아니네. 미로는 기대했구나.
“어떻게 해? 또또 죽여? 리스폰이 멈출 때까지?”
“…”
“아리야, 어떻게 해?”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아리가 또 한번 죽여보자며. 가인이는 죽여도 된다며.”
논란이 될 만한 발언에 아리가 펄쩍 뛰었다.
“무, 무슨 소리! 나는 오답을 한 번 더 제거하자고 조심스레 제안했을 뿐이야. 결정은 은솔이가 내렸지.”
갑자기 나?
어이가 없긴 한데,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
그때, 진철이가 낮게 중얼거렸다.
“얘네, 진짜 인간이 아니구나.”
사람이 둘이나 죽었는데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실눈을 뜬 채 진철이 쪽을 보니, 잔혹한 시체 따위는 없었다.
그냥 흔적 자체가 없었다.
가인이와 가영이의 몸이 붕괴하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진짜 인형이야. 위대한 자가 권능을 써서 창조한 존재인가?”
이 점은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면, 또 만들 수 있다는 소리네.”
“…”
“죄수는 마왕 가인을 죽여도 죽여도 또 만들 수 있어.”
“…”
“세상에…”
모두가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부디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이 나약한 세상은 단 한 명의 가인이를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나이다.
가엾은 세상에 무거운 짐을 끊임없이 올리지 말아주세요.
“타겟을 바꾸자.”
“타겟?”
“마왕 가인은 죽여도 소용없어. 어차피 인형이고, 계약이 존재하니 끊임없이 발생해.”
“…”
“알렉산드르 쪽을 쓸어야 해. 그쪽으로 가자.”
이쯤에서 어렴풋이 직감했다.
다른 모든 저주의 방이 그러했듯, 304호도 진짜 쉽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