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45)
괴담 호텔 탈출기 945화(945/945)
945화 – 304호, 저주의 방 – ‘파우스트’ (36)
— 이은솔
종말의 양대 축은 알렉산드르와 마왕 가인이다.
문제는 마왕 가인이 끊임없이 부활하는 존재라는 것.
이를 깨달은 후, 우리의 계획은 알렉산드르 처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우리끼리 1차 회의를 끝낸 후, 미로에게 가인이를 소환하게 해서 의견을 물었다.
다행히 가인이의 의견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알렉산드르와 결착을 내긴 해야 합니다. 한판 붙는 것도 방법이죠.”
그렇다면 ‘어떻게?’를 논의할 차례.
“기습과 유인, 둘 중 하나를 고민 중이군요?”
“맞아. 알렉산드르는 마왕 가인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온 상태야. 엘레나가 최초의 소원을 자각한 덕에 알렉산드르의 대략적인 위치도 알아냈지.”
인천 외곽에 알렉산드르 세력의 아지트가 있다.
그 장소를 오늘 새벽 급습하는 게 기습 계획이다.
가인이가 곧 고개를 저었다.
“기습 계획은 무리입니다. 상대가 준비한 아지트에 들어가는 꼴이잖아요?”
“상대는 우리가 덮친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우리에 대해선 모르지만, 관리국이 자신을 기습할 가능성은 항상 고려했을 겁니다. 온갖 보안 시스템이 아지트 일대에 가득하겠죠.”
알렉산드르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적진이다.
당연히 24시간 긴장 상태로 대응 중일 테고, 아지트 주변도 보안이 철저하겠지.
“유인이 좋겠네요. 아지트에서 끌어냅시다.”
이럴 때는 마치 사장님 컨펌을 받는 부하 직원이 된 느낌이라 재미있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인이 정도면 우리 사장님 맞긴 해.
“그러면 바로 영상 찍자.”
아지트에서 은거 중인 알렉산드르를 어떻게 끌어낼까?
다행히, 관리국이 정답을 보여줬다.
“하하, 제가 찍는 거죠?”
“당연하지.”
유인 작전 속임수의 핵심.
알렉산드르는 악마가 만든 가짜 마왕이 죽었음을 모른다.
이 사실은 심지어 나탈리아도 모른다.
엘레나가 가짜 마왕을 죽이기 전에 나탈리아를 혼절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알렉산드르는 마왕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존재다.
그리고 우리 쪽에 마왕이 있지.
악마가 만든 인형 따위보다 훨씬 더 ‘진짜’가 있다.
곧, 가인이가 카메라를 보며 위엄있게 말했다.
“대마법사, 그대가 내게 보인 ‘환대’는 즐거웠다. 제자의 솜씨가 나쁘지 않았 —”
“컷! 컷!”
엘레나가 황급히 끊으며 말했다.
“그 느낌 아니에요!”
마왕 가인과 장기간 대화해 본 사람은 우리 중 엘레나뿐이다.
“그러면?”
“훨씬 싸가지없게!”
“…”
“버러지 같은 인간 필멸자가 감히 내게 오라마라해? 이런 느낌으로.”
“… 마왕이라는 친구 성격이 좋진 않았구나.”
가인이가 머리를 긁적인 후, 훨씬 ‘싸가지없는’ 말투로 말했다.
“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내가 널 찾아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그쪽에서 와야지.”
“반말은 아니에요. 말은 존대인데, 듣고 있으면 혈압이 오르는 말투.”
“…”
“알렉산드르 경, 진짜 열심히 살아오셨군요? 1,000억 모으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저는 태어날 때부터 10조 있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어때요?”
“그게 대체 무슨 느낌입니까…”
“다시!”
간단한 촬영이 끝난 후, 영상이 알렉산드르 측에 전달했다.
알렉산드르를 속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가 하는 게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는 ‘정말로’ 마왕이 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르는 죽으나 사나 이쪽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새벽.
— 부우웅!
최소 10대가 넘는 차가 경기도 인근의 폐공장으로 모여든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알렉산드르가 수행원을 이끌고 나타난 것.
차에서 노인이 내리자마자 아리를 보았다.
“지금 바로 기습은 어때?”
아리는 3초가량 전방을 주시한 후, 지그시 고개를 저었다.
“주변 공기가 묘하게 굴절되어 있어. 환상을 덧씌운 모양인데.”
“저 노인이 진짜가 아니야?”
“진짜는 수행원으로 위장하고 있나? 모르겠어.”
이 지점에서 살짝 감탄이 나왔다.
전투를 준비할 때, 가인이가 예측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
“기습 작전의 약점은 우리가 적진에 가야 한다는 것. 이게 너무 큰 문제라 기각입니다. 하지만, 유인 작전도 약점은 있죠.”
“어떤 부분?”
“상대도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측합니다. 만반의 대비를 하고 올 겁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르가 보인다고 바로 공격하지 마세요. 진짜가 아닐 수 있으니까. 공격은 실체가 드러난 다음부터.”
*
폐공장의 중심부.
알렉산드르가 당당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주군, 당신을 모시러 왔나이다.”
곧, 어둠 속에서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께서는 2층에 계십니다.”
“그래? 바로 가지.”
“아직은 무리입니다. 마왕께서 제법 화가 나셨거든요.”
“혹시, 요전의 사고 때문인가?”
요전의 사고란, 최초의 소원을 각성한 엘레나가 즉각 나탈리아를 제압하고 가짜 마왕을 죽인 일을 말한다.
알렉산드르는 그날의 진상을 모른다.
전투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터졌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겠지.
“아니요. 그날의 일은 간단한 여흥이었으니, 별일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당신의 거짓이죠.”
그 말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 거짓?”
기다렸다는 듯, 엘레나의 말투가 바뀌었다.
“이쯤 하자. 하수인과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네가 가짜임을 모를 것 같아?”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곧바로 ‘거짓말 탐지’가 발동하며 엘레나의 눈동자가 섬연한 황금빛으로 빛났다.
“기어이 전쟁을 벌일 셈이로구나…!”
엘레나가 입가를 비틀며 손을 들어 상대의 몸을 가리켰다.
“크아악!”
즉각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휘청이는 상대.
실제로는 불길한 상상을 사용 중이겠지만, 숨어있는 알렉산드르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겠지.
마왕이 엘레나에게 정체불명의 초능력을 내렸구나!
물론, 엘레나의 기억에 따르면 마왕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마왕은 ‘누구에게 무언가를 준다’라는 개념이 없는 존재 아닐까?
— 다각!
기다렸다는 듯, 후방에서 들려온 소리.
“그쯤 하시오.”
곧, 수행원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사과하지. 오랜 세월 관리국과 겨루다 보니 편집증이 생겼소이다.”
엘레나의 시선이 새로운 사람을 향했다.
“그러면, 그쪽이 진짜 알렉산드르 경?”
“그렇소.”
YW9peUx5cktZYXhyU2hzY1VsMkQ0ZlJyS0lLdWNxRWNaOGlRZ3RUL2tKZWdqWVVtZzNCYzV6R3MydW8xaUpUVA
이번에는 엘레나의 눈이 빛나지 않았다.
‘공격은 실체가 드러난 다음부터!’
그리고, 이게 우리의 공격 개시 신호였다!
“이얍!”
— 쩌어억!
선공은 아리부터.
진즉 ‘존재감 없는 소녀’를 사용한 채 폐공장의 어둠 속에 숨어있던 암살자.
아리의 손에서 검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보이지 않는 참격이 알렉산드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아악!”
비명 지르며 몸이 반으로 갈라진 존재.
하나, 죽은 자는 알렉산드르가 아니다.
누군가 알렉산드르를 붙잡고 아리의 참격을 피해내자, 뒤에 있던 자가 대신 맞은 상황!
“Берегись! (피하십시오!)”
1회차 때 확인된 사항.
알렉산드르 본인에게 위기 감지 능력 따위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1회차의 알렉산드르가 관리국의 기습에서 살아남았음을 안다.
*
“당연한 말이지만,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주의할 점을 말해줄래?”
“알렉산드르는 개인이 아닙니다. 그는 러시아의 대권을 잡은 독재자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권력자죠.”
“그 말은 주변에 능력자가 많다?”
“별의별 해괴한 놈들이 수행원으로 따라왔을 겁니다.”
“으음…”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관리국이 알렉산드르를 죽이려고 최소 몇십 년은 노력했을 텐데, 다 실패했잖아요?”
*
이 정도에 당황할 우리가 아니다!
세상을 위협했다는 대마법사가 한 방에 죽으면 이쪽이 실망이라고?
“으랴앗!”
— 라아아아…!
곧바로 날카로운 손톱이 전신을 긁는 듯한 불쾌한 바람이 일대를 휩쓸었다.
진철이가 별 조각을 소환한 채 접근!
부등변다면체의 타격이야 범위가 좁으니 피할 수 있지만, 별 조각의 힘은 폐공장 범위에선 피할 장소가 없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긴 해.
별 조각이 알렉산드르 수행원 쪽에 더 가까이 있으니까, 그쪽이 먼저 쓰러지겠지.
“Блээээ! (으웩!)”
삽시간에 거품을 문 채 쓰러지는 수행원들.
개중 몇몇이 총을 들어 진철이에게 사격했지만, 소용없었다.
— 팅! 티딩!
이미 진철이 앞에 부등변다면체로 만든 격벽이 형성된 상황!
총알은 투명한 벽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별 조각의 파동은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
“Что за ужас…! (이 무슨 끔찍한…!) ”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르의 수행원 반 이상이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1분 이내에 전투가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위 상황을 뒤집으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수행원들이 문자 그대로 갈려가면서 알렉산드르에게 30초를 벌어준 셈이라고?
“… 어처구니없군.”
나직한 ‘한국어’와 함께 알렉산드르의 손에서 흉측한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즉각 진철이가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초마법이다!”
주저 없이 피리를 소환해 전방의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또, 진철이는 내가 달려올 줄 알았다는 듯 별 조각을 역소환했다.
여기까지도 가인이가 예측한 전개였기 때문이다.
진짜 신기하지 않아?
*
“기습해서 바로 끝내긴 어려울 겁니다.”
“네가 3번째 문장을 써도 안돼?”
“여러 번 쓸 수 없는 힘이니, 아껴둡시다.”
“좋아. 그러면?”
“수행원들이 목숨 걸고 버티면서 시간을 벌겠죠. 우리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관리국이 기습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시간을 번다…”
“결국, 알렉산드르는 초마법을 씁니다. 여기까진 막기 어려워요.”
알렉산드르는 어떻게든 초마법을 쓴다.
훨씬 오랜 세월 준비한 관리국도 막지 못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러면 초마법에 어떻게 대응하냐의 문제네.”
“3대 초마법. 트라우마 구현, 드림랜드, 구원. 이 중 가장 위대한 마법인 구원은 잊어도 됩니다. 전투용 마법이 아니니까. 트라우마 구현을 주의하세요. 아마 그것부터 나올 겁니다.”
“피리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
— 라아아…!
피리에서 정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을 감싸 안았다.
마치, 거울이 뿜어내는 광기를 안식의 피리가 방어하는 형상.
피리의 힘으로 트라우마 구현을 막을 수 있을까?
동료들 상당수는 가능하다고 봤다.
심지어 트라우마 구현을 경험해 본 진철이조차도.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
*
“글쎄, 모릅니다.”
“으엣? 모른다고? 진철이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형이 마법사는 아니잖아요? 트라우마 구현의 원리를 모를 텐데.”
“그건 그렇네.”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둡시다.”
*
초마법, 트라우마 구현과 피리의 힘이 충돌하는 즉시 깨달았다.
트라우마 구현은 두 가지 효과가 중첩된 힘.
첫 번째는 피격자의 정신을 뒤틀어 가장 끔찍한 생각에 집착하게 하는 것.
두 번째는 그 끔찍한 생각을 현실로 끌어내는 것!
첫 번째 효과는 피격자를 정신병자로 만든다.
1회차에 투쟁에 미친 광인이 되었던 차진철이 대표적.
“누님, 막은 것 같습니다!”
“…”
“정신이 멀쩡하네요. 그러면 —”
피리는 초마법의 첫 번째 효과를 방어했다.
그래서 동료들은 정명한 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아니, 아니야!”
하지만, 두 번째 효과는 방어 불가!
— 스아아아…!
“어억! 저거 뭐야?”
폐공장의 어둠을 단박에 몰아내는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즉시, 모두의 마음속에 가인이의 경고가 떠올랐다.
*
“끄응… 가인이 네 말대로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트라우마 구현을 막지 못했다면?”
“기괴한 괴물이 나오겠죠. 누구의 트라우마에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마음 편히 생각하세요. 초마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위대한 자를 구현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어떻게 할까?”
가인이의 다음 지시는 지극히 명쾌했다.
“형, 혹시 일점사라고 들어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