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6)
95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Re (8)
* 네 번째 시도
– 이은솔
대체 몇 시간 째지? 그냥 하염없이 종만 치면서 ‘파괴 팀’이 제단을 파괴하고 오길 기다렸다.
—타아앙! 타아앙!
진짜 구리구나. 살면서 종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저렇게 구린 종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처음엔 가인이가 못 치는 줄 알았는데, 체력 안배를 위해 서로 순서를 돌리다가 종 자체 문제임을 알았다.
물론, 사악한 힘을 억누르는 종이니 뭐 소리가 맑을 필요까진 없겠지.
건너편에서 쉬면서 커피를 마시던 가인이가 고개를 들었다.
“은솔 누나.”
“응?”
“뒤늦은 생각이긴 한데, 힌트의 의미는 뭐였을까요?”
힌트 [ㅁㅁ로 가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
“그러고 보니 우리 언젠가부터 힌트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네?”
“두 번째 시도 전 까지는 나름대로 고민했는데, 다시 진입해보니 시나리오가 완전히 바뀌었죠.
그 후로는 바뀐 시나리오에 적응하느라 다들 혼란스러워서 힌트는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때 우리가 떠올렸던 후보가 뭐였지?”
“맨 처음에 떠올렸던 건 저택이었죠. 그러다가, 할아버지나 아리가 다른 예시도 많다고 하면서 제시한 것들이 성당, 지하, 호수, 서재 등이었고.”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저택은 확실히 아니네. 저택은 무조건 가야 하는 장소였고. 성당도 아닌 것 같지?
거기 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꽤 얻었어. 호수는 두 번째 시도부터는 아예 문제가 된 적도 없고. 서재도 딱히 갈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고.”
“‘지하’였을까요?”
“지하로 가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 확실히, 우리는 지하에서 마도서를 발견한 후 어떻게든 지하로 가야 한다는 편견이 생겼지.
두 번째 시도에서도 이세현을 조사해서 쉽게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다들 고민도 하지 않고 지하로 갔어.”
“그리고 강제 탈출이 나왔죠.”
“따지고 보면, 첫 번째 시도 때 지하로 갔던 아리는 바로 죽었지. 우린 그동안 지하로 가서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네.
첫 번째 시도 때는 바로 사망, 두 번째 시도 때는 별다른 성과도 없이 강제 탈출. 세 번째는 아예 지하를 가지 않으니까, 상당한 정보를 얻어냈어.
종이 빙의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 저택 뒷산에 악신 탄생 의식과 관련된 성소가 있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지.”
가인이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깨달았다. 힌트의 올바른 해석.
[지하 쪽으로 가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중, 근처에서 우리 말을 듣던 승엽이가 의아하다는 분위기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진철 형, 아리 누나, 송이 누나 셋이서 ‘지하’ 어딘가에 있다는 제단을 부수러 가지 않았나요?”
“…”
“…”
.
.
.
“으아아아악!”
너무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아니! 이거 시발 망한 건가?”
가인이도 욕을 내뱉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망한 거야?”
“누나, 진정하고 좀 생각해 봐요! 지하의 제단, 아무리 생각해도 부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이름부터가 제단인데!”
“잠깐, 잠깐만!”
이세현과 했던 대화를 복기했다.
***
“그 후로, 나는 그분 덕에 모은 재산을 그분에게 다시 바치기 위해 지하에 제단을 건설했다. 주기적으로 성실히 기도했고 -”
“제단?”
“제단이라 해서 뭐 그리 거창한 건 아니란다. 단지 -”
***
“하! 미친! 알았어!”
“뭐, 뭘 알았다는 거죠? 누나?”
“‘사도’는 이세현에게 제단을 건설하라고 시킨 적이 없어! 제단은 이세현이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든 거지. 게다가, 이세현 스스로 말했어. 딱히 거창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사도’가 이세현에게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했다면서요!”
***
“어? 제단 위치는 말로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만들 때 사도께서 보안을 워낙 강조하셔서, 가는 길이 굉장히 복잡 -”
***
“그건 그냥 교황청이 감시하는 세계에서, 악신을 숭배하는 이상한 제단을 만들 생각 하니까 들키지 말라고 한 소리였던 거지!”
절망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지하’의 제단은 악신 탄생 의식과는 상관없는, 이세현 개인이 신앙을 위해 만든 공간! 갈 필요가 없는 장소다.
아니, ‘힌트’에 따르면 갈 필요가 없는 정도를 넘어서 ‘가서는 안 되는 장소’다!
절망적인 깨달음을 얻은 나와 가인이가 말문을 잃을 무렵.
—끼야아아아아악!
저택에서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두 시간 전, 파괴 팀
– 김아리
가는 길 한번 더럽게 복잡하네.
은솔이가 이세현에게 들었다는 ‘보안이 철저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대체 이런 요란한 공간을 지하에 어떻게 만든 거지?
이런 짓을 벌이려면 이세현 이 인간은 돈을 대체 얼마나 많이 번 거야?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무려, ‘빙의 능력’을 가진 사도의 도움을 받은 사업가.
마음만 먹으면 중동의 왕족도 놀랄 만큼의 돈을 얼마든지 벌 수 있었겠지.
분명 출발은 저택이었다.
서재에서 레버를 내리면 마도서가 있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그런 기묘한 설비는 서재에만 있던 게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침실에서 뭘 건드리자 갑자기 침대가 밀려나더니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쪽 길은 서재에서 마도서로 향하던 길과는 달랐다.
지하인데도 공기가 쾌적했고, 어둡지도 않다.
여기저기엔 이세현이 본인의 지문이나 홍채를 인식시켜야만 통과할 수 있는 ‘보안 설비’도 제법 많았다.
서재에서 마도서로 통하는 길과는 완전히 다른, ‘현대적인 분위기’.
생각해 보면, 이세현은 마도서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아무래도 서재에서 마도서로 통하는 길과 침실에서 제단으로 통하는 길은 이용자가 달랐던 모양이다.
마도서로 통하는 길은 이시우의 몸을 빌린 ‘사도’가 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제단으로 통하는 길은 이세현만 주로 사용한 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또 시간이 됐다.
“잠깐. 멈춰주세요.”
일행이 다 같이 멈추고, 나는 이세현에게 다가가서 다시 오래된 피를 통한 암시를 걸었다.
좀 특이하네.
내 암시가 무슨 자아를 완전히 지우는 힘은 아니다.
그래서 이세현이 중간에 나름대로 반항하리라 예상했는데….
이세현은 신기할 정도로 우리의 명령을 인형처럼 따랐다.
어찌나 순종적이었는지, 송이는 내 암시에 대한 경계심을 보였을 정도.
아니, 이렇게까지 강한 힘 아니라고! 나도 신기해!
어찌 됐든, 거의 40분을 걸어간 후에야 우리는 제단에 도착했다.
진철이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대충 명상이나 하면 될 것 같은 공간인데?”
“잠시만요. 제가 좀 살펴볼게요.”
이 자리에서 사악한 힘에 대한 지식이 있는 건 나 뿐.
한참 동안 주변을 살폈다. 나방 비슷한 생물이 조각된 석상, 절하기 위해 마련된 듯한 방석.
기타 몇 가지 조각이나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
“아리야. 이제 알겠어?”
모르겠다. 좀 민망한데?
아무리 봐도 조각이고 그림이고 그냥 평범한 물건이었다.
나방을 모사한 조각은 진철이 말에 따르면 본인이 세 번째 시도에서 죽기 전에 봤던 나방과 닮았다고 하는 걸 보니, 장소는 맞게 찾아온 것 같은데….
이상하네.
그냥 일반인이 주워들은 지식으로 만든 평범한 조각이나 그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초월적인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악한 의식도 어떤 의미로는 현대 과학과 유사하다.
대단한 일을 벌이려면, 대단한 설비가 필요한 법.
악신의 탄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려면, 응당 그걸 위한 거창한 설비가 필요한 법인데.
내가 혼란에 빠져있자, 진철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잘 모르겠는 모양이지? 그냥 별을 쓰자. 뭘 부숴야 할지는 몰라도 별이라면 뭐든지 다 부술 수 있으리라 본다.”
“그건 저도 동의해요. 악신의 날개도 비틀었는데, 아무렴 필멸자가 만들어낸 설비 따위야 무슨 수를 써도 그 별에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송이랑 같이 뒤로 가지 그러냐?”
…
결국 나와 송이는 이세현을 데리고 진철이만 남긴 채 한참 뒤로 물러났다.
아. 뭔가 느낌이 이상해. 이상하게 뭔가 놓친 기분.
송이의 정신 보호를 받은 진철이가 혼자 제단 방에 남은 채로 별을 소환하자, 피부를 찌르는 듯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이 먼 거리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파괴적인 힘.
새삼스럽지만, 저런 황당한 물건을 턱턱 내리다니. 호텔은 정말 미친 것 아니야?
연약한 지구를 지키는 우리 같은 관리국 입장도 생각 좀 해주라고!
진철이가 훗날 호텔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면, 혼자 전술 핵병기 급의 힘을 가지게 된다.
그때는 대체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당장은 나도 이 호텔의 참가자일 뿐이니까.
불길한 파동이 지하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하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는지 이세현이 뒤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듯하다가 – 갑자기 미친 듯이 뛰었다.
???
뭐야 저거!
너무 놀라서 몇 걸음 뛰다가, 아예 날아갔다!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송이도 깜짝 놀라서 뛰었다.
“늦었다!”
이세현의 입에서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벽면에서 무언가를 건드렸다.
—우우웅!
지하 전체에서 섬뜩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악마적인 힘도 아니고, 신성한 힘도 아니고 – 현대 과학의 힘!
어딘가 비밀 통로라도 있었는지 이세현은 휙 사라졌고, 사방에서 금속음이 들려왔다.
아니! 진짜 너무하잖아!
이세현 이 개새끼는 돈이 얼마나 많길래 지하에 이런 미친 장소를 다 만들었냐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시선을 돌리자, 이변을 눈치채고 뒤늦게 제단 방에서 튀어나온 진철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이는 무언가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진철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결단을 내려야겠구나.
신체적인 능력, 유산의 힘을 고려할 때, 이 장소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다.
요원으로서 터득한 지식에 비춰보면, 아무 장소에서 아무 수단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무작정 악신의 탄생을 위한 제물이 될 수 없다.
머나먼 고대부터,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인간들이 복잡한 제례를 거쳤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이런 장소’에서, 사도도 아니고 보안 설비에 죽는다면, 나와 송이의 영혼은 제물로 바쳐질 수 없다.
즉, 내가 죽었다고 해서 즉시 ‘고치’가 소환될 리는 없다.
저택 팀이 잘해주길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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