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98)
97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Re (10)
* 네 번째 시도
– 한가인
하늘에서 빛이 내리쳤다. 한순간에 전신이 터져나가는 격통!
눈은 볼 수 없던 색을 보기 시작했다.
귀는 들을 수 없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오감을 넘어선 육감, 육감을 넘어선 칠감이 끝없이 깨어나며, 인간의 뇌가 처리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가 쏟아졌다.
…
몸서리치는 고통 속에서 깨달았다.
강림이란 곧 ‘탈각’임을.
당신은 5세 이전의 과거를 기억하는가?
성인이 된 이후로도 유아기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유아 시절의 우리는 기어 다니기 힘들게 만드는 미끈거린 바닥에 원한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맛없는 이유식을 먹이는 부모님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돌이켜보면 실로 하찮은 일이 아니던가?
설령 그 당시의 감정을 녹화한 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성인이 된 우리는 그저 웃음 한 번으로 넘기며 내가 참 귀여웠구나 하고 잊을 것이다.
이처럼, 유아기의 나와 현재의 나는 흡사 껍질이 깨지기 전후와 같다.
사람은 성장 속에서 자아를 깨우치고, 유아기의 껍질 밖으로 나와 이성을 얻은 후에는 그 이전의 일을 가볍게 여긴다.
… 나는 유아기가 지난 이후로 ‘다시금’ 내 껍질이 깨져감을 느꼈다.
이제부터의 나는 한가인이지만, 또한 한가인이 아닐 것임을 알았다.
*
– 하늘의 아들
눈을 떴다.
과거, 호텔에서 처음 ‘주’로부터 힘을 전달받을 때 느꼈던 초감각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가볍게 대지를 박차자, 몸이 창공을 향해 치솟으며 지표면이 으스러졌다.
별 전체에 가득 찬 공기가 마치 물처럼 내 움직임을 방해했다.
세상이란 참으로 작고 답답하구나.
어찌 인간은 이렇게 자그마한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가?
아무래도 좋다.
나는 껍질을 벗었으니, 과거의 비루함에 슬퍼할 까닭이 없음이야.
사도를 어떻게 처리할까?
싸움의 어려움 따위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가짜 신의 사도라 해봐야 고작해야 조금 큰 벌레가 아닐까? 풍뎅이 정도로 쳐주자.
다만, 빙의 능력은 좀 귀찮긴 하다.
막을 방법들이 몇 가지 떠오르긴 했지만, 그냥 간단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하늘로 손을 뻗어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이윽고, 지상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떴다.
하늘의 첫 번째 태양이 만물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애의 태양이라면,
오늘 이 땅에 일어선 두 번째 태양은 만물의 오염을 정화하는 분노의 태양이리라.
분노의 태양에서 뻗어 나온 열선이 한순간에 마을을 불살랐다.
반경 수 km의 모든 인간이 타죽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 어디선가 하찮은 잔재주로 숨어있던 사도가 나타났다.
“넌 대체 뭐냐? 어떻게 사람이 이런 힘을! 교황청이 천사라도 소환했단 말이냐!”
어이없는 이야기다.
“교황청 따위가 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냐?”
사도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버러지와 귀찮게 술래잡기할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근처의 모든 인간을 불태웠다.
남은 육신이 없으니, 이제 그 추레한 세계에 있는 비천한 몸으로 돌아가리라.
타오르는 세상을 일별한 후, 뒷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속 한편에 남아있던 ‘사람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 인간의 삶이란 어찌 이리도 나약하고 추레하다는 말인가?
눈이 있으나 장님과 같고, 귀가 있으나 귀머거리와 같다.
삼라만상의 변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삶이란 그 자체가 비극이다.
…
불쾌한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 지상으로부터 3만 km.
인간이 만들어낸 위성이 날 주시함을 느꼈다.
교황청이 세계를 감시하는 데 쓰는 인공위성인가?
불쾌하다. 주제에 무엇을 본다는 것인가?
손을 움켜쥐니, 벼락의 힘이 깃들었다.
—우르릉!
지상에서 천공을 꿰뚫는 벼락이 위성을 터트렸다.
*
뒷산의 문을 통과하자 신을 잃고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가 나타났다.
넘어가자마자 사방에서 촉수들이 달려들었다.
뜯어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이계의 생물들이 모여있었다.
“이건 뭐냐? 환영식이라도 해주는 거냐?”
어디선가 우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아! 제발 좀 죽어다오. 신이시여! 제게 힘을 주소서!”
“너도 참 웃기는 놈이구나. 병아리를 세상 가득히 모은다고 호랑이를 죽일 수 있겠냐?”
손짓 한 번에 이계의 하늘에 두 번째 – 아니, 여기선 첫 번째네.
이 허접한 세계는 태양 같은 것도 없어?
불타오르는 광구에서 뿜어져 나온 열선이 순식간에 이계의 생태계를 갈아엎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이거 꽤 재밌는데? 몸이나 풀고 싶어졌다.
다른 손을 휘저어 지상부터 하늘의 구름에 닿는 검을 불러냈다.
검을 휘저으며 즐겁게 놀다 보니, 주변에 생물이고 지형이고 남아있는 게 없었다.
이 정도면 대충 성소도 다 파괴한 상태겠지?
사도는 저항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도망도 가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십니까?”
“이제 네 말이 좀 공손해졌구나.”
“진실로 하늘에서 난 분임을 알았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제가 모시는 분께 칼을 들이대시는 것입니까?
교황청이 불러낸 존재가 아님은 믿겠습니다.
그들이 당신 같은 분을 불러낼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지금이라도 칼을 거두시면 신께서도 용서하실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네 주제에 날 벌할 능력이라도 있고?”
“…”
“즐거웠다. 그래도 아프지 않게 보내주마.”
“…당신이 대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격 높은 영혼을 여럿 바쳤으니, 제가 모시는 분의 탄생이 다가왔습니다.”
“아, 짐작은 했는데 그건 좀 짜증 나게 됐네.”
“그러니, 제발 칼을 거두시고 -”
—써걱!
더 대화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나저나, 짐작은 했지만 결국 나방의 탄생을 막진 못한 모양이다.
애초에 호텔 참가자들이 이미 너무 많이 죽었다.
한참 먼 곳에서 제례 의식과 무관하게 죽은 아리, 송이는 제물이 되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이 문제다.
승엽이나 엘레나는 저택에서 마물에게 죽었으니 틀림없이 제물이 됐을 것 같다.
그 외에 몸을 빼앗긴 묵성, 은솔도 제물 판정일 가능성이 크다.
호텔 2회차인 아리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머지 참가자들도 범속한 인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영혼의 격이 올라간 상태.
일반적으로는 이 시점에서 해결은 불가능하겠지. 탈출이 최선이다.
하지만,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결이 왜 불가능하단 말인가? 악신이 태어났으니까?
신이라 해서 다 같은 신이 아닌 법.
병아리의 눈엔 갓 태어난 코끼리도 신처럼 보이겠지만, 코끼리의 세계에선 갓 태어난 코끼리는 그냥 아기일 뿐.
심지어 죽은 신의 유해와 비천한 필멸자를 빨아먹고 태어난 신 따위가 어찌 제대로 된 신이라 할 수 있으랴!
*
이계에서 빠져나와 지구로 돌아오자, 저택 인근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저택 인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파동.
조만간 고치가 나타나겠구나.
아직 고치가 소환되지 못한 걸 보니 좀 더 나은 계획이 떠올랐다.
여차하면 나방과 싸울 생각으로 오긴 했지만, 굳이 나방이 될 시간을 줄 필요가 있을까?
나방보다야 어미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눌러 죽이는 게 더 쉬우리라.
계획을 진행하기 전, 만약을 대비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무릎 꿇었다.
‘주’께 아뢰나이다.
당신의 아들이 위험한 길에 나서고자 하니, 빛을 내리소서.
…
“어? 어라? 뭐죠?”
“뭐, 뭐냐?”
“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깨어난 유송이, 차진철이 당황하는 사이, 아리는 날 유심히 바라보았다.
“우리를 부활시킨 거야?”
“그래. 그리고, 예의를 지키거라.”
“… 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부활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기적이 하늘의 딸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군요.”
잠깐 사이에 날 바라본 송이와 진철은 아예 넋이 나간 채로 주저앉았다.
아리는 덜덜 떨면서도, 나름대로 기개 있게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광경이 재밌어서 물었다.
“내가 너희를 왜 살렸다고 생각하지? 참고로, 부활은 내게도 상당한 힘을 소모한다.”
아리는 말 없이 주변 상황을 살핀 후, 대답했다.
“곧 고치가 나타나겠네요. 당신은 아마 태어나지 못한 자와 한판 붙으러 가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를 패배를 염두에 두시는군요.”
눈치가 없진 않다.
“그래. 비록 태어나지 못했다고는 하나, 신은 신.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고, 사실 질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내가 당하더라도 놈에게 타격을 입힌다면, 놈의 탄생은 늦어질 것이다.”
“그리고 밖에 있는 우리는 탈출이 되겠군요.”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돌아서서 지하로 내려가기 직전.
아리는 갑자기 허리를 굽히더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당신이 이번에 해결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의 힘씩이나 끌어 쓰시면서, 애벌레 한 마리를 못 이기면 망신 아니겠어요?”
공손한 태도가 아니라 싸가지 없는 태도였네.
지금의 날 보고도 저런 어이없이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저 애도 참 대단하구나.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지하로 내려갔다.
*
푸르게 발광하는 책.
아하, 이게 바로 이 방의 유산인가?
보아하니 태어나지 못한 자가 사도에게 내린 마도서인 모양이다.
슬쩍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대단한 물건 같지는 않은데, 나름대로 편리한 기능은 있었다.
이 정도면 호텔에서 그럭저럭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득한 목소리가 머리를 찌르듯이 들려왔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아직도 그걸 따지십니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널 내 종으로 삼겠다!’
그 말과 함께 악독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책으로부터 뻗어 나왔다.
물론, 별건 아니었다.
“하하! 아직도 미련이 남으셨군요? 하지만,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갑니까?”
‘내가 직접 죽여주마!’
*
탁한 공간이다.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며, 세 번째 시도 때의 일을 돌이켜봤다.
나방은 기형 날개를 재생성하기 위해 고치로 들어갔고, 우리에게 네 번째 시도를 허용했다.
… 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나방이 스스로 고치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린 탈출할 방법이 없었는데.
날개를 다시 빚어서 신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어차피 호텔 내부에 갇힌 상황인데, 신세계 창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행동은 마치 자신이 호텔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다섯 번째 시도가 아니기 때문인가?
그럴 리가 없다.
103호에서 송이는 첫 번째 시도에서 바로 유산을 얻었는데, ‘삼키는 자’는 분명 호텔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시도가 되어야 호텔을 이해하는 것은 대적자이지, 죄수가 아니다.
죄수는 처음부터 자신이 호텔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애벌레는 자신에 호텔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까?
그것 말고도, 아까의 기묘한 대화.
지나치게 유치한 대화가 아닌가?
저 애벌레는 신이라기보다는 무슨 화난 어린아이처럼 외쳤다.
… 모르겠다.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었음에도, 이 호텔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멀찍이서 애벌레가 기어 오는 게 보였다.
현재의 싸움에 집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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