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if the world's ended, I still want to eat ric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예전에 성찬도 애완동물을 키워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생명을 키우는 일인데, 신중해야 할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혼자 살았지.’
그런 고민을 단박에 깨버린 것이 저 녀석이다.
‘귀엽다…… 빅시 반응을 보면 감염된 녀석은 아닌데.’
겁을 먹었는지 삐죽삐죽 돋친 솜털.
작고 메마른 몸뚱이에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눈동자.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은 훈장인 양, 온데간데없는 왼쪽 앞발.
‘다리가 없잖아?’
성찬이 눈을 둥그렇게 뜬 채 화면을 노려봤다.
‘잘못 본 게 아니야, 진짜 다리 한 쪽이 없어.’
그렇다면 저 상태로 도대체 며칠이나 버틴 것인가.
“오구, 귀여워라. 이제 귀가 펴지려고 하네. 완전 애기잖아.”
[쟤 앞발 하나가 없어.]“어, 진짜네? 어떡해……!”
방금 전까지 미소를 띠던 하윤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자 눈시울을 왈칵 붉혔다.
“……감염된 아이는 아니겠죠?”
[그건 아닌데, 몸이 약해 보이니까 조심해서 만지는 게 좋지 않을까.]색색 숨을 내쉴 때마다 언뜻 드러나는 갈비뼈가 더욱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엄마는 없는 건가?]“네, 얘 혼자였어요. 엄마도 없이 어떻게 여기서 지냈어, 응? 다리도 없는데…….”
오묘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성찬이 말했다.
[쟤, 우리가 데려가자.]“정말요?”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치료를 해준다고 해도, 그건 죽는 날을 늦춘 것밖에 안 되지.’
괴물에게 감염이 되든, 굶어 죽든, 사실상 비슷한 결말이었다.
“다행이다…… 그냥 내버려두기 너무 마음 아팠는데.”
“내가 안고 있을게, 겁먹은 것 같아.”
고양이를 옮겨 받은 세희가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찬호 아저씨는, 괜찮으시죠?]“나야 별 상관없으니까, 애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
그 말에, 성찬은 얼른 빅시에게 고양이의 치료에 대해 물었다.
[단순한 영양소 결핍으로, 특별한 치료는 필요하지 않다입니다.]“그럼 다리는 어떡하지? 방법이 없나?”
[의족을 사용한 치료가 가능하다입니다.]“아아, 의족이 있었지 참.”
의족이라면 그리 복잡한 치료 과정은 아닐 테다.
‘난 또 없는 다리를 쑤욱 자라나게 하는 줄 알았네.’
녀석에게 희망이 있다는 확답도 얻어냈으니, 고양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또한, 개조도 가능하다입니다.]“뭐?”
빅시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졌다.
***
“아프겠다……. 언니, 얘 이름은 뭐야?”
“이름? 이름은 아직 없는데.”
“그럼 내가 지어줄래!”
“그래, 소윤이가 지어주자. 대신 지금은 보기만 해야 돼. 저 고양이는 아직 아파서 만지면 아야 하니까, 알겠지?”
“나 기다리는 거 잘해! 알겠어!”
그렇게 소윤은 침실로 우다다 뛰어가더니,
“소윤이 뭐 해?”
“고양이 보기.”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빼꼼 내밀어 고양이를 훔쳐봤다.
“그냥 앞에서 봐도 되는데.”
“고양이 아야 해서 안 돼.”
성찬은 그런 모습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일단 계속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돼요, 전 저 아이 먹을 것 좀 찾아볼게요.”
“아, 언니. 나도 도울게.”
데려온 고양이는 적당히 데워둔 수건 위에서 골골대며 웅크려 있었다.
나노 머신 주사가 꽂힌 채로 말이다.
‘항생제랑 구충제의 효과를 낸다고 했지?’
간단한 치료가 끝나면 기다리고 있는 주사가 하나 더 있었다.
‘진성찬과 단식의 조합만큼이나 안 어울리는, 고양이와 개조.’
그런 성찬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빅시는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전투 보조의 역할을 할 수 있다입니다.]고양이가 전투 보조를 한다.
‘무슨 소환 술사도 아니고, 저 쪼끄만 애가 괴물을 물어뜯으면서 싸운다는 거야?’
고양이를 흘겨본 성찬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렇다입니다.]그러나 이어진 빅시의 대답에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조그만 고양이가 무슨 수로 괴물에게 대항한단 말인가.
‘개조라…….’
성찬은 기본적으로 빅시를, 나노 머신의 효과를 믿었다.
단순히 상상이 안 될 뿐이었다.
‘이 고양이가 정말 괴물과 싸워줄 수만 있다면, 사냥조의 부담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을 텐데.’
밥도 밥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괴물을 사냥하는 게 우선 아니었던가.
“까라면 까야지, 뭐.”
“주사를 또 놔야 돼요?”
“아픈 애니까.”
예측은 거기까지.
앞으로는 대응의 영역이었다.
‘이왕이면 밥은 많이 안 먹는 식으로 변했으면 좋겠는데…….’
개조 주사를 투약하자, 세희가 접시를 달그락대며 다가왔다.
“애완동물 사료가 있던데, 그거랑 물이랑 잘 개어서 주면 될 것 같아요. 근데 집에 이게 왜 있어요?”
“아, 그거…….”
“아저씨, 그러고 보니까 애완동물 키운 적 없다면서요?”
“……편의점에서 가져온 거야. 일단 며칠 동안 고양이 밥은 그걸로 때우자고.”
잠시 과거의 비참했던 기억이 떠올라 정신이 아찔해진 성찬이었다.
“먹은 건 아니죠? 저거.”
“고양이 치료도 다 했겠다, 이제 우리 일 해야지. 나갑시다.”
하윤의 음흉한 눈초리를 애써 무시한 성찬이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먹었네.”
“먹었구나…….”
***
찬호는 점심도 거른 채 깊이 잠들었다.
‘피곤하시겠지, 이틀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을 텐데.’
걱정되던 저수지 문제도 일단락되었고, 신현역 대장으로부터 특별한 시그널도 없었다.
‘이제 며칠은 조용히 포인트 모으면서 농사나 지으면 되겠지.’
성찬은 드론을 높이 띄워 논의 전체적인 구조를 내려다봤다.
‘벼농사만 지을 것도 아니니까, 영역을 분리해서…….’
용도에 맞는 토지 사용을 위해서였다.
‘논이 하도 넓으니까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겠지만.’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관리하기도 쉬울 것이다.
“모가 꽤 많이 자랐어요! 2~3일 뒤면 본격적으로 모내기 시작해도 되겠는데요?”
[벌써 그렇게 자랐어요?]“네, 진짜 빠르다. 여기 비닐하우스 천장 좀 열어주세요, 환기해야 하니까.”
하윤은 비닐하우스 앞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와, 실제로 농사짓는 건 처음 봐요.”
[너도 이쪽 동네 살았으면서 왜 모르는 척이야.]“그야 지나다니면서 가끔 논만 봤지,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단 말이에요.”
대화를 옆에서 듣던 세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세희 씨, 지금 저 멀리 수로에서 물이 내려오고 있거든요.]“아아, 네.”
[미리 준비 해놓을 거 있어요? 모내기하기 전에.]“물꼬를 터서 써레질만 하면 되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니…… 뭔가 멋있다.”
멋쩍게 웃는 세희를 뒤로한 채, 성찬은 새 발전기 설치 준비를 마쳤다.
‘최대한 높은 건물에서 떨어진 논에 만들어두면, 일조량도 충분하겠지.’
우선 제작할 분량은 큼지막한 패널 세 개.
‘발전기 하나에 4만 포인트쯤 하는데, 지갑 사정이 쪼들려서…….’
언젠가 넓은 논을 전부 태양열 발전기로 메꾸고 나면, 건물 몇 채 운용하고도 전기가 남을 것이었다.
‘가만 보자, 원래 계획은 요새 2층에 발전기를 설치하는 거였는데.’
최근엔 웨이브도 잠잠하고, 덕분에 2층은 썰렁한 채였다.
[두 분 다,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비닐하우스 안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있는 세희와 하윤이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자기 필요한 거요?”
“으음……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2층을 무슨 용도로 쓸지 고민 중이라서, 의견 있으면 반영하려고.]잠시 정적이 흘렀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썩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냥 잠깐 창고로 쓰는 건 어때요? 아저씨 뭐 만들 때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미리미리…….”
[오…… 그거 좋은데?]잠깐이 아니라 아예 그런 용도로 써도 될 정도였다.
‘잡동사니만 욱여넣는 창고가 아니라, 무기고로.’
무기고.
무력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면 하나쯤 구비해둬야 하는 시설이 아니던가.
활이나 검, 도끼 같은 무기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전투에 도움 될 물건을 채워둘 수 있을 터.
‘파티션을 나눠서 언제든 필요하면 가져다 쓸 수 있도록.’
웨이브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물건을 만드느라 허둥지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무기고로 만들자, 2층은.]“무기고요?”
[활 말고 다른 무기도 쓸 때가 있긴 하겠지.]***
날이 어두워졌다.
부화기에 넣어둔 계란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게 병아리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이상하네.’
오늘 식사 재료는 계란 4알과 레토르트 미트볼.
“메뉴는 계란볶음밥, 어때?”
“오…… 볶음밥, 새롭네요.”
“볶음밥? 진짜?”
먹는 이야기에는 빠지지 않고 달려오는 꼬맹이다.
“소윤이 볶음밥도 좋아해?”
“이마아안큼!”
양팔을 들어 파닥대는 소윤을 식탁에 앉힌 성찬이 식기를 달그락거렸다.
“야, 하윤아.”
“네?”
“그…… 오늘은 같이 먹을까? 세희 씨랑 찬호 아저씨랑.”
성찬이 머리를 긁적이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하자, 하윤이 성찬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아저씨…… 은근 귀여운 면이 있네요.”
“뭐가, 너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하니까 그러는 거지.”
“흐흐…… 부끄러워 하긴.”
어쩐지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뻘쭘해진 성찬이었다.
“그럼 저 찬호 아저씨랑 언니 불러 올게요.”
이윽고 하윤이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앉으세요, 금방 준비 되니까.”
“웬일이야? 갑자기 마음이라도 바뀐 거야?”
찬호의 물음에, 성찬이 웍을 달구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밥 식으면 맛없잖아요.”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에 파기름, 계란 노른자, 소금과 후추를 잘 섞어준다.
‘기름을 여러 종류 구비해놓길 잘했네, 지금은 파가 없으니까.’
그리고 웍이 적당히 달궈졌다 싶을 때.
촤아악—!
노른자와 잘 섞어 황금빛이 도는 밥을 투하한다.
“좋은 냄새 난다.”
“오늘은 볶음밥이야?”
“그렇다네요.”
그리곤 화력을 키워 재빨리 밥을 볶아주는 것이다.
‘기다란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어줘야 밥알이 잘 분리되지.’
갓 지어진 밥이 잔뜩 머금고 있는 수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며, 희끄무레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고추기름도 좀 넣어주고.’
성찬이 손목을 재빨리 꺾으며, 소위 ‘웍질’을 시작하자 식탁에 앉아 있는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완전 프로네.”
사실 이 정도는 요리 한 번쯤 해봤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인데.
‘다들 먹을 줄만 알지, 응? 직접 요리도 해보면서 식사의 소중함을 알아야…….’
그럼에도 웍을 휘젓는 손놀림은 가볍기만 했다.
‘딱 좋네, 뭉친 밥알도 없고.’
동시에 전자레인지에서 조리를 마쳤다는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됐어요, 볶음밥 재료가 계란밖에 없어서 초라하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죠, 뭘!”
“나, 나 빨리 주세요!”
“소윤아, 밥상에서 그러는 거 아니야.”
성찬은 식탁을 포크로 두드리며 군침을 흘리는 소윤에게 가장 먼저 볶음밥을 덜어줬다.
“……우와, 엄청 맛있어요!”
“이거, 계란밖에 안 넣은 거 아니었어요?”
“먹을 때마다 놀란다니까, 참 신기해…….”
다들 저마다의 감상을 남기는 와중에도, 일정한 박자로 신기한 의성어가 들려왔다.
“합챱챱챱…….”
“사람한테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나?”
“아저씨는, 애한테.”
소리의 주인은, 아예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소윤이었다.
“소윤아, 천천히 먹어야지. 여기 물.”
“우음! 다 먹었다!”
입 주변에 밥풀을 덕지덕지 묻힌 소윤의 미소를 보자, 성찬이 절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 정소윤이. 맛있냐?”
“네! 배불러어…….”
그러면서도, 녀석은 포크로 미트볼을 하나 집어 야무지게 깨물었다.
‘벌써 미지근해졌네.’
밥상이 차려지고 수분이 지나서야, 성찬은 첫 숟갈을 들 수 있었다.
“아저씨도 얼른 드세요, 식겠다.”
“어, 그래야지.”
몇 년 동안 미지근한 밥은 입에도 대 본 적 없는 성찬이었지만.
‘……그래도 맛있네, 뭐.’
그리 기분 나쁜 식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