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341
제341화
* * *
“정아 씨~ 귀염둥이 왔어용~”
오디션을 마친 율무는 꽃을 들고 본가를 찾았다.
현관문을 열자 불쑥 나타난 한 아름의 꽃다발에 여성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
“보고 싶었어~”
커다란 덩치가 품에 파고들며 안기자 작은 손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도 우리 율무 너무 보고 싶었어~ 얼른 들어와. 금방 가야 하지?”
“응. 주말에 키티랑 다시 올게.”
어리광을 부리던 율무가 굽혔던 허리를 펴자 시야가 불쑥 올라갔다.
그제야 현관문 끝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성이 보인다.
“아빠아~”
“왔어?”
이번에는 남성의 품에 안겨 들자 옆에서 떨떠름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중인격.’
필승은 악마의 주둥아리를 봉인한 채 눈알만 굴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혀엉…은 잘 지냈지?”
지난번이야 제정신이 아니었다 치고. 차마 부모님 앞에서 필승을 하대할 수는 없었던 율무는 이를 악물며 그를 형이라 칭했다.
“그럼. 잘 지내고 있지.”
“아. 그래?”
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얼굴을 보라.
부모님께서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랬다고 정말 제집처럼 지내고 있는 꼴을 보니 율무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율무의 한쪽 볼이 볼록 튀어나오자 필승은 미소를 거두며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빨리 가 봐야 한다, 그랬지? 방으로 가자. …요.”
필승이 어색한 몸짓으로 율무를 이끌었다. 용건을 끝내고 얼른 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얼굴이 괘씸했다.
“엄마, 나 형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순순히 뒤를 따른 율무는 방문을 닫기 무섭게 표정이 바뀌었다.
“얼굴이 나보다 좋아 보이네? 살 만한가 봐. 부디 그만큼의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악덕 고용주의 살벌한 협박이 이어졌다.
“브리핑해 봐.”
침대에 다리를 꼬며 앉은 율무는 거만한 얼굴로 필승을 바라봤다.
800만 원에 달하는 6K 레티나 디스플레이 위로 어지러운 코드들이 난무했다.
“응. 일단 해킹은 실패했어.”
순간 율무는 제 귀를 의심했다. 필승이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해킹 못 했다고. 섣불리 시도했다가아아악! 잠깐! 잠깐만!”
율무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베개를 집어 들자 필승이 의자 바퀴를 굴리며 몸을 물렸다.
“시X. 해 달라는 거 다 해 줬잖아.”
“아, 아니, 일단 들어 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팔을 길게 뻗으며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한 필승은 식은땀을 흘렸다.
“서, 섣불리 시도했다가 위치가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 타이밍을 찾는 중이라고.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심혈을 두 번만 기울였다가는 백야가 죽을지도 몰랐다.
“내가 다 받아 주니까 아직 사태 파악이 잘 안 되지?”
“아니야. 나 진짜 노력하고 있다니까? 우리는 지금 사이코패스의 손바닥 안이라고.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필승은 처음 해킹을 당한 뒤, 인근 피시방에서 역해킹을 시도했다가 이미 죽을 뻔한 전적이 있었다.
지금의 자신도 충분히 천재적이지만 미래의 저는 경험과 연륜이 더해져 신에 가까운 자라고나 할까?
피시방이 정전되며 데스크톱 본체가 터져 버린 건 물론. 허겁지겁 빠져나오는 길에 오토바이에 치일 뻔하질 않나,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지질 않나.
처음 한두 번은 재수가 없으려니 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일이 계속되자 필승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CCTV 없는 길로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 진짜 불쌍한 사람이야.”
필승이 은근슬쩍 동정 팔이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장난해?”
“너도 그때 내 꼴 봐서 알 거 아니야.”
확실히 필승이 제 앞에 나타났을 때 몰골이 말이 아니긴 했다.
“미리 말하는데, 서버를 아무리 우회한다고 해도 우리한테 남은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지금쯤 그놈의 경계심이 아주 극에 달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덤벼야 된다는 필승은 꽤 진지해 보였다.
“백야 씨 아직 업데이트 안 눌렀지?”
“응.”
율무는 ‘당분간 업데이트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자신의 의견인 척 필승의 당부를 전한 적 있었다.
그가 백야의 앞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백야가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몸이기 때문이었는데.
필승은 자신이 백야를 만나는 순간 제 위치가 발각돼 숙청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핑계로 율무에게 쿠폰 전달을 대신 부탁하지 않았던가.
이는 백야의 비밀을 아는 유연과 지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잠깐만. 그럼 나는?’
그러다 뒤늦게 든 의문 하나.
율무의 미간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근데 나도 너랑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도 알잖아. 그 비밀.”
백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모두 사이코패스의 손바닥 안에 있다면 저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오. 그렇네?”
“오…. 그렇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절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기에, 유연과 지한에게도 비밀로 하고 백야 친구들의 손까지 빌렸다.
‘그런데 뭐? 오, 그렇네?’
율무는 타고나길 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게 필승이었다.
“잠깐, 잠깐만! 진정해!”
첫인상부터 별로였는데 역시 관상은 사이언스였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내가 착한 유연이를 두고 성격 더러운 널 찾아간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입 닥쳐.”
“분명… 아, 그래! 너 그거야!”
율무가 주춤하는 순간 필승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벌레!”
“너 이 새끼, 이리 와.”
쿨 타임이 찼는지 악마의 주둥아리가 기어이 매를 벌고 말았다.
율무가 필승을 잡으려 하자 그는 재빠르게 침대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방 안에 갇힌 신세. 금방 마주한 막다른 길에 필승은 구석으로 몰렸다.
“이게 얻다 대고 벌레래.”
“버그, 버그! 아니, 순간 단어가 그거밖에 안 떠오르는데 그럼 어떡해?”
“뭐 인마?”
“내 말은 네가 저쪽에서 발견 못 한 버그다, 뭐 그런 뜻이지. 네가 벌레 같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율무는 벌레보단 악마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필승이었다.
“권한 되찾자마자 바로 업데이트 배포부터 한 것 보면 저쪽도 많이 급했던 모양인데, 그럼 충분히 실수할 수 있어.”
필승은 율무를 향해 ‘놓친 버그’라고 말했다.
“그냥 보여 줄게.”
그는 제가 백날 떠드는 것보다 코드를 보는 게 이해하기 훨씬 쉬울 거라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액정이 박살 난 핸드폰 하나가 소중히 놓여 있었는데, 언젠가 백야가 유연과 함께 위장 잠입까지 해 가며 찾아온 물건이었다.
“이게 백야를 다른 차원에서 이쪽으로 넘어오게 만든 매개체야.”
그리고 이 안에 든 것들의 데이터는 이곳의 시간의 법칙을 거스른다고 했다.
필승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더니 검은색 화면을 띄웠다.
시스템 권한은 없어도 핸드폰 덕분에 코드는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그는 율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피시방에서 잠깐 코드를 봤었는데, 너희 멤버 두 명의 이름이 오류로 분리되어 있더라고. 그런데 거기에 너에 대한 건 딱히 없었어. 그래서 널 찾아간 거야.”
네가 의심이 더럽게 많은 덕분이라는 말은 생략했다.
그래도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기세가 누그러진 모습에 필승은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이게 아까 말한 실시간 코드.”
다른 창을 띄우자,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들이 실시간으로 기록되며 늘어나고 있었다.
“퀘스트가 뜬 것도 이거 보고 안 거야. 아마 그쪽에서도 같은 화면을 보고 있을걸? 그리고 중요한 건 이거.”
스크롤을 올리며 무언가를 찾던 필승은 영자 사이로 섞인 한글을 가리켰다.
[v.1.5는 새롭게 추가된 기능을 업데이트합니다.– NPC 오류 개선
– 서버 안정화 및 보안 강화]
“NPC 오류?”
“플레이어를 제외한 전부가 NPC. 그런데 여기 보면 지금 그놈이 잡으려고 배포한 버전에는 지한, 유연만 포함돼 있어. 봐, 네 이름은 없지?”
확실히 자신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한테는 잘된 거지, 뭐. 아무튼 이번에 해킹하면 패시브 활성 마지막 조건만 남기고 자잘한 퀘스트는 싹 다 밀어 버리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동안 백야가 퀘스트를 하겠다고 수상한 짓을 좀 많이 하고 다녔던가.
제가 알기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고 들었다.
“그게 가능해?”
“될 거 같아.”
그럼 왜 진작 안 하고 이제 와서?
율무가 다시금 살벌한 눈빛을 보내자 필승은 억울해졌다.
“아니, 내가 짠 코드도 아닌데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미래의 네 짓이라며.”
“오. 그렇네?”
율무는 뒷골이 당기는 게 다시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를 눈치챈 필승은 재빨리 설명을 이었다.
“그래서 그 퀘스트가 뭔진 모르겠지만, 그게 끝나는 날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거야.”
“마지막?”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짓씹으며 화를 식히던 율무는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래, 마지막. 백야 씨한테 듣기론 너희 그룹 원래 다섯 명이었다던데?”
혹시나 걱정할까 봐 말해 주는 거지만, 게임 자체는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하니 저희의 존재가 허상일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세계에서 진짜가 아닌 건 오로지 백야뿐이니까.
“그럼… 백야는?”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아이돌은 아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군인이랬나?”
“걔가?”
율무가 황당해하자 필승도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했다.
“그치. 나도 처음 들었을 땐 비슷한 반응이었지. 아무튼 나랑은 약속한 게 있으니까, 뭐.”
필승은 처음부터 알고 도왔다지만, 율무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놀란 것처럼 보였다.
“무슨 약속?”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면 나한테 찾아오기로 했거든.”
“왜?”
필요하다면 필승이 찾아가면 되는 일 아닌가. 굳이…?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야 우리는 높은 확률로 기억을 못 할 테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