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351
제351화
백야가 도와달라는 말을 뱉은 순간부터 글자를 휘갈기던 민성이 화이트보드를 들었다.
[뭐부터 도와주면 되는데?]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곳이 평행 우주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중요한 건 저희가 여기에 존재하고, 지금까지 함께 헤쳐 왔고, 앞으로도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거였다.
[하다 보면 분명 다른 길도 보이겠지.]민성의 발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맞아.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네가 이렇게 멤버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나율무가 변수가 된 게 아닐까?”
유연과 지한도 민성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듯 거들었다.
“나도! 여기서 내가 영어 제일 잘한다, 햄스터야!”
청은 언어 능력을 내세워 자신이 저에게 꼭 필요한 인재임을 어필했다.
“개고생한 보람이 있네~ 그동안 말도 못 하고 율무가 얼마나 답답해했는지 알아?”
“고생했다.”
지한이 피식 웃으며 율무의 노고를 치하했다.
두 사람은 연습생 때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낸 친구이자 서로가 인정하는 유일한 라이벌로, 그간 율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럼, 말을 하면 됐잖아.”
반면 유연은 서운함을 감출 수 없는지 뾰로통한 얼굴로 툴툴댔다.
“삐졌어? 미안해~ 얘가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코알못 율무는 억울해용~
필승과 마찬가지로 손목이 묶인 율무는 합장한 채 얼굴의 좌우로 손을 흔들어 댔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방정맞은지….
“형. 저건 이제 풀어 줘도 될 것 같은데.”
지한이 두 사람의 손목을 눈짓하며 민성에게 의견을 구했다.
[풀어줘.]대장의 허락에 지한과 청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의심해서 죄송해요.”
“됐어. 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믿기 어려운 건 사실이잖아.”
“율무! 그럼 율무가 스파이야?”
“그러엄~ 난 이중 스파이였던 거지. 어때. 형 좀 멋있지?”
“모…. 오늘은 인정.”
실없는 대화에 콧방귀를 뀐 필승은 짜게 식은 눈으로 옆을 봤다.
제 앞에서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인상만 써 대던 놈이 멤버들 앞에선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이중인격.”
“네?”
손목을 풀어 주던 지한이 당황하며 시선을 들었다.
“빨리 풀어.”
“아…. 네.”
지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자유가 된 필승은 어깨를 돌리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이곳에 온 뒤로 줄곧 좁은 곳에 갇혀 있었더니 삭신이 쑤시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러분은 제가 백야 씨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꼭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자신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모시도록 하라는 필승의 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멤버들이 난감한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한곳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목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고, 훌쩍, 고마워….”
백야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매번 구박하고 물기만 했는데, 율무가 저를 위해 뒤에서 저렇게 힘써 준 것도.
저라면 믿지 않았을 것 같은 말을 흔쾌히 믿어 준 다른 멤버들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물심양면 저를 위해 준 필승까지.
‘나는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과분한 믿음과 사랑에 백야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 *
“시스템창 떠요?”
“네.”
“그럼 이제 권한을 백야 씨한테 완전히 넘길게요.”
거실에서 마주 보고 앉은 필승과 백야. 그 뒤로 멤버들이 소파에 쪼르륵 앉아 있었다.
“제가 계속 권한을 갖고 있어도 되는데, 그럼 저쪽에서 다시 해킹을 시도할 수도 있어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백야에게 권한을 넘겨 버리면 저쪽에서도 쉽게 대응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게 필승의 생각이었다.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으나 그나마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필승의 집도가 시작됐다.
“회원 아이디 불러 봐요. 정보창 뭐 그런 데 있을 텐데.”
슬그머니 일어난 청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필승의 뒤로 가 기웃거렸다.
전부 영어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화면에 입매가 꾹 다물어졌다.
“필슨. 햄스터 아프면 안 돼.”
“필슨이 아니라 필승이라고 몇 번을…! 하. 됐다.”
“앗. 찾았어요!”
“불러 봐요.”
백야가 부르는 숫자를 입력하자 화면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이제 개발자님은 저 못 도와주시는 거예요?”
“나 못 믿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그냥 꿈에서 똑같은 얼굴을 봐서….”
백야는 필승에게 꿈에서 그와 닮은 사람을 봤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누군가를 죽이려 했고, 저 때문에 꼬였다며 탓하던 것까지 모두 다.
“필슨 쓰레기야?”
“아니라고!”
청의 발언에 필승이 발끈했다.
이놈이랑 대화하면 자꾸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아까 제가 실망이니 뭐니 했던 말은 잊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니까.”
필승은 백야의 꿈속에서 나온 인물이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일 거라고 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천재 사이코패스.
“그리고 나도 저 사탄한테서 벗어나려면 이 방법밖엔 없는 것 같고.”
“과연 그럴까?”
율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저, 저…! 백야 씨, 방금 봤어요? 저놈 눈깔? 제정신이 아니라니까요?”
“필슨, 조용히 해.”
필승은 저보다 한참 어린것에게 혼이 났다.
“그리고 사탄이라니? 내가 왜? 나처럼 착한 애가 어디 있다고. 당백아, 구치잉~”
율무가 입술을 쭉 내밀며 애교를 부리자 백야가 어색하게 받아 주었다.
“응. 율무 착한데….”
“와. 살면서 제가 들은 가장 어이없는 말 중 베스트 1이네요. 됐고, 빨리 이거나 마칩시다. 얼른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죄송해요….”
백야가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필승이 저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백야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필승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권한만 넘기는 거예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백야 씨가 허락만 해 주면 A/S는 언제든 가능하니까 걱정 말고.”
“정말요?”
“네. 제 외계인 친구잖아요.”
“개발자니임….”
백야와 필승이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어디선가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웩.”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유연이었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진행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럼 다 된 거예요?”
“일단은. 그래도 스트레스 관리는 꾸준히 해 줘야 할 거야. 내가 건드린 건 퀘스트 쪽만이거든.”
“쟤 코피 너무 자주 흘리던데. 그것만이라도 어떻게 안 돼요?”
“그건 패시브 영역이라 힘들어.”
개발 소스의 축을 흔드는 일이라 그 부분은 백야가 신경 써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백야는 조금 전에 뜬 마지막 퀘스트를 바라봤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대상 가수 : 그날이 왔다!가수라면 한 번쯤 꿈꿔 보는 최고의 영예, 대상!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당신이라면 식은 죽 먹기겠죠?
대상 수상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어 봅시다! (๑•᎑<๑)ー☆]
하나 남은 칭호 활성화 조건이기도 했다.
필승이 손을 써 둔 탓인지 제한 시간 조건은 물론,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조건도 없었다.
‘그럼 대상을 받기 전까진 계속 있을 수 있는 건가? 만약 올해 대상을 못 받는다면 1년 정도 시간을 더 벌 수 있을지도….’
그러나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냈다.
‘내가 안일하게 굴수록 멤버들도 위험해진다.’
이미 멤버들은 상처를 많이 받았고, 율무는 저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었다.
또 언제까지 필승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한다.’
작년 연말부터 이어져 온 각종 시상식에서 으로 3번의 대상을 수상했지만, 퀘스트가 뜨기 전이라 인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만일 수도 있겠으나 올해 대상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리패키지 활동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쐐기를 박을 수 있을 텐데.’
백야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지금이라면 민성을 제외하고서라도 활동을 감행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방법은 내키지 않았다.
꿈속에서 탈퇴를 운운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야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민성이 얼굴 앞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어, 형.”
[개발자님이 말씀하신 하나 남은 조건이 뭐야? 그걸 알아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화이트보드에 정갈하게 적힌 글씨. 민성을 닮아 동글동글하고 깔끔한 필체였다.
“아…. 대상 수상.”
“대상? 우리 작년에 받았잖아! 그럼 다 된 거 아니야?”
청이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그건 퀘스트가 뜨기 전이라 인정이 안 되나 봐. 새로 받아야 할 것 같아.”
“No problem! 우리 이번에도 성적 좋으니까 당근히 받을 수 있어!”
캘리포니아 긍정충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율무도 맞장구를 치며 백야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한편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민성은 다시금 글자를 끄적였다.
[백야 몸만 괜찮으면 리패키지 활동 나 빼고 하는 건 어때?]민성이 화이트보드를 들자 멤버들은 당황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민성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백야는 단번에 얼굴을 굳히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싫어. 형이랑 같이할 거야.”
[대상 받아야 한다며. 이번 활동 성적이 좋긴 해도 불안해서 그래.]“형이 무슨 걱정 하는진 알아. 그래도 아직 급한 거 아니잖아. 천천히 생각해 보면 돼. 이제 9월이야.”
[시간 그렇게 많지 않아.]저를 바라보는 올곧은 눈에 백야는 감정이 울컥했다.
그래서 그대로 민성을 끌어안아 버렸다. 그가 더는 아무 것도 적지 못하게.
“형은 그냥 몸만 생각해. 다른 생각 절대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