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369
제369화
* * *
11월.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다.
[ID 신인 걸그룹 ‘세이렌’ 출격] [세이렌 리더 초록 “고대하던 데뷔, 설레고 떨리는 마음”]데뷔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초록은 이제 어엿한 ID의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첫 무대라 떨리고 긴장된 나머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초록아, 너 정말 저녁 안 먹을 거야?”
“응. 먹고 와. 먼저 연습실 가 있을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멤버들과 헤어진 초록은 홀로 연습실로 향했다.
‘체했나?’
먹은 거라곤 방울토마토 몇 알과 물뿐이었는데, 긴장한 몸은 그마저도 버거운 모양이었다.
초록은 찡그린 얼굴로 명치를 누르며 연습실로 향했다.
그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가랏! 댄싱 햄스터!”
고개를 돌리자 유리 너머 연습실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백야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 열려있는 거 모르시나?’
데이즈는 연말 무대 연습이 한창인지 문틈 새로 의 리믹스 버전이 들렸다.
국악 베이스가 웅장하게 강조된 걸 보니 댄스브레이크 구간인 것 같았다.
‘부진아 집중 트레이닝…?’
아무리 봐도 백야를 제외한 멤버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초록의 눈에도 백야는 팀에서 춤 실력이 가장 뒤처지는 멤버였다.
그녀의 눈에도 시원찮은데, 아이돌 메인 댄서 중 원탑이라 꼽히는 유연의 눈에는 어떻겠는가.
역시나 청순한 미남의 눈에선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공개 처형 당하는 중이시구나.’
백야가 불쌍해진 초록은 못 본 척 얼른 지나가려 했다.
데엥-
그때 징 소리와 함께 백야의 손끝이 움직였다.
반원을 그리며 크게 휘둘러진 팔을 따라 데이지 꽃이 수놓인 명주 천이 아름답게 나풀거렸다.
‘뭐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
시선을 사로잡은 몸짓에 초록의 걸음은 묶여 버렸다.
‘왜… 잘 추시지?’
손끝 동작까지 신경 쓰는 디테일은 물론, 강단 있는 강약 조절로 안무 표현력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유려한 몸짓에 넋을 놓고 있던 초록은 백야가 턴을 도는 순간 시선이 스치며 정신이 들었다.
‘헉! 눈 마주쳤다.’
성격 나쁜 치와와가 입질하며 달려오기 전에 얼른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대로 줄행랑쳤다.
* * *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얻어걸린 자를 이길 수 없다.
뽑기 성공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개복치는 안무 연습에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아니. 아니, 어떻게 이래? 너 뭐 했어? 집에서 춤 연습만 했어?”
“집에서 그런 거 하면 누나한테 혼나요.”
“근데 왜 이래? 왜 잘 춰?”
“잘 추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지. 좋은데…. 아니, 이게 말이 돼?”
“되잖아요.”
겨울 앨범 안무 시안이 나왔다는 소식에 연습실을 찾은 백야는 트레이너에게 붙잡혀 왜 잘 추냐는 말만 10분째 듣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댄스 실력이 일취월장해 온 제자를 보며 호랭이는 좀처럼 믿지 못했다.
보통 쉬다가 돌아오면 실력이 퇴색되기 마련인데 백야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난 널 포기했었거든? 죽어라 시켜도 더럽게 안 늘길래 ‘그래. 귀여우니까 괜찮다’라고 생각했어. 대신 넌 노래를 잘하니까. 사람이 다 잘할 순 없는 거잖아.”
“…….”
“근데 갑자기 다른 애가 돼서 왔는데 내가 안 놀라고 배겨?”
“근데요 형. 저 귀에서 피날 것 같아요.”
멤버들에게 말한 것처럼 댄스 스킬을 뽑았다고 말해 줄 수도 없고.
처음엔 성의 있게 대꾸하던 백야도 이젠 시큰둥한 얼굴로 받아치고 있었다.
한편 무해한 얼굴로 호랭이를 사냥하는 햄스터를 보며 유연과 율무가 감상을 늘어놨다.
“쟤 T 맞다니까?”
“이럴 수가…. 애기가 T라니….”
왜지?
대체 뭐가 내 깜찍한 당백이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만든 거지?
충격에 빠진 율무는 심각해졌다.
“저희 연습 안 해요?”
“어? 어어. 해야지…. 얘들아 모여.”
호랭이는 넋이 나간 얼굴로 남은 연습을 이어갔다.
잠시 후, 연습이 종료되자 꼬리가 아홉 개 달린 늑대 한 마리가 그에게 접근했다.
“내 댄싱 햄스터 대단하지?”
“네가 가르쳤어?”
“No. 내 햄스터는 천재라서 갑자기 더 잘할 수도 있어. 자기 전에 나랑 맨날 뽑기 해.”
“뽑기?”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나랑 햄스터 페어 안무 시켜 줘.”
은밀하게 젤리 한 봉지를 내민 청은 호랭이에게 페어 안무를 부탁했다. 부정 청탁이었다.
“페어 안무?”
“응. 옛날에 시윤이랑 연하가 한 거.”
시윤과 연하가 한 안무라면….
입대 전, 10년 차의 농익고도 끈적한 퍼포먼스에 더불어 무대 막바지에 시원하게 등을 노출해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무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린 노무 새끼가 발라당 까져 가지고.’
호랭이가 눈을 매섭게 뜨자 청이 변명하듯 뒷말을 이었다.
“No. 호랭이야 내 말을 들어 봐.”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냥 둘이 하는 거면 돼. 나도 햄스터가 벗는 건 싫어, 변태야.”
청이 두 손을 모아 쥐며 크게 뜬 눈을 깜빡거렸다.
“Please! 내 소원이야. 생일 선물!”
마침 청의 생일도 12월이었다.
마음이 약해진 호랭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백야라면 무리겠지만 지금 실력이라면 무대를 해치진 않을 것 같았다.
“알겠어. 생각해 볼게.”
“아싸! I love you!”
쪽!
기분이 좋아진 청이 호랭이의 목에 매달려 볼에 뽀뽀를 날리고는 떨어졌다.
“야이, 씨! 징그럽게 뭐 하는 짓이야!”
“우하하! 햄스터야, 집에 가자!”
* * *
데이즈는 최근 연말 무대와 겨울 컴백을 준비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백야와 민성의 복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관계로, 두 사람의 개인 스케줄은 여전히 지한과 청의 몫이었다.
회복에만 전념하라는 말에 백수 생활을 즐긴 지도 어언 두 달째. 민성은 최근 고민이 생겼다.
점집을 다녀온 뒤로 얻게 된 고민이었다.
‘아마 못 잡을 거야. 반대편에서 계속 끌어당기고 있거든.’
민성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 탑꾸를 하고 있는 백야를 바라봤다. 집중한 듯 삐죽 튀어나온 오리 입이 시선을 강탈했다.
거기다 저 꼼지락거리는 앞발.
백야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브이로그를 올려야겠다며 콘텐츠를 찾아 열심히 촬영 중이었다.
‘필승이라는 개발자도 백야가 돌아갈 거라고 했잖아.’
백야는 저희와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 불쑥 점술가의 또 다른 말이 떠올랐다.
‘혹시 알아? 예뻐해 주면 안 갈지도 모르지.’
밤톨 같은 뒤통수를 보며 민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도 충분히 예뻐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부족한가?’
저희의 사랑이 부족한 걸까, 고민이 깊어지던 순간이었다. 백야가 뒤를 돌아보며 민성을 불렀다.
“형!”
“어? 왜. 뭐 해 줄까. 뭐 필요해?”
“이거 봐.”
백야의 한마디에 얼른 소파에서 내려온 민성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게 예뻐, 이게 예뻐?”
백야는 파란색 큐빅 하트와 나비 모양 스티커를 고민하고 있었다.
두 개 중 하나를 골라 달라며 앞발을 내밀었다.
“어디에 붙일 건데?”
“유연이 거에.”
백야가 방긋거리며 유연의 포카를 가리켰다.
“음….”
스티커를 고민하던 민성은 기대에 찬 얼굴로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백야를 바라봤다.
그 순간 조금 충동이 일었다.
“네가 제일 예쁜데.”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플러팅에 잠시 멍해진 백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형이 미쳤나?’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당황한 개복치는 깊게 패는 미간의 주름을 막지 못했다.
반면 무슨 생각인지 민성은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아이 예쁘다~”
“…….”
백야의 표정이 구려질수록 반대로 민성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이 형이 너무 심심해서 미쳤나?’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민성은 틈만 나면 백야를 예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는 곧 멤버들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번져 백야가 치를 떠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때는 연말 무대 연습을 하던 데이즈가 저녁으로 피자를 주문한 날이었다.
“제일 큰 거는 햄스터 거!”
집사는 제일 큰 조각을 집어 자신의 반려햄에게 바쳤다. 여기까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백야가 피자를 한입 베어 문 순간.
“어?”
율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백야와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예쁘다.”
율무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너 이리 와!”
“왜에~ 예쁜 애한테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된 거야? 우리 당백이 아이 예쁘다~”
먹던 피자를 내려놓은 백야는 율무를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햄스터 한 마리쯤 따돌리는 건, 식은 죽 먹기인 율무는 피자를 한입에 욱여넣으며 연습실 밖으로 줄행랑쳤다.
“잡히면 죽어!”
“율무는 죽기 시로, 시로~ 우리 애기랑 백년해로해야 하는,”
“꺄악!”
“엇,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백야를 놀리면서 달리느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율무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던 백야는 얼른 걸음을 멈춰 세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율무의 사고와 저는 관련이 없다는 듯 뒤돌아 시치미를 떼기까지 했다.
“나, 날씨가 좋네~”
백야는 밝게 켜진 형광등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