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371
제371화
“그게 그러니까, 잠깐 화장실에 들르려고 나왔다가 길을 잃어서…. 제가 정말 길치거든요.”
껄끄러운 상대와 마주친 초록은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아, 네에…. 그럼 안녕히.”
백야는 고개를 숙이고는 초록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한 계단 밟기 무섭게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같은 회사 동료이기 전에 자신이 선배인데, 길을 잃었다는 후배를 두고 홀로 벗어나기엔 마음이 영 불편했다.
“대기실이 어디신데요?”
“그냥 초록색 파티션….”
“아.”
막 데뷔한 신인이라면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무조건 파티션 신세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곳은 방송국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찾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저 따라오세요.”
딱한 사정에 기꺼이 친절을 베풀기로 한 백야는 초록을 지나쳐 앞장섰다.
“감사합니다.”
등 뒤에 대고 꾸벅 허리를 숙인 초록은 세 걸음 간격을 유지하며 백야의 뒤를 졸졸 따랐다.
싸늘한 정적.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코너를 돌며 요리조리 미로를 빠져나가는 햄스터는 앞장서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초록색 파티션이 보일 무렵, 세이렌의 매니저가 초록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초록아! 내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갑자기 없어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죄송해요. 길을 잃어서….”
“그런데 백야 씨는 왜…?”
세이렌의 매니저가 황당하단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그에 백야가 어색하게 설명했다.
“계단에서 만났어요. 헤매고 계시길래….”
“아.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초록을 챙기며 얼른 백야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낌새를 보아하니 친분이 있는 사이 같은데, 이제 막 데뷔한 초록에게 백야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건 서로에게 좋을 게 없었다.
백야도 얼른 돌아가고 싶은지 인사하며 미련 없이 뒤돌았다.
비즈니스 그 자체였다.
* * *
먹이를 찾아 방송국을 어슬렁거리는 기레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름 김은신.
그는 며칠 전 신생 언론사에 입사한 신입 기자로 특종을 건져 보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청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방송국 스태프인 척 변장한 그는 선배들이 알려 준 뒷문으로 잠입에 성공한 참이었다.
특종을 건져 초고속 승진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복도를 거닐던 그는 매니저와 함께 있는 밤톨 머리를 발견했다.
‘어? 쟤는….’
전 연습생 폭로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룹의 멤버였다.
‘데이즈 백야!’
SNS에서 청과 단아가 사귄다는 외국 팬의 글 하나만 보고 방송국행을 감행한 그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휴식기에 방송국을 왔다고? 굳이?’
1군 남자 아이돌 그룹의 열애설만큼 자극적인 게 없다는 걸 아는 은신은 행복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백야는 인기 멤버가 아니던가.
데이즈는 디X패치에서도 전담팀을 꾸려 따라붙을 정도로 각종 언론사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막상 선배들의 말을 떠올려 보면….
“데이즈? 야, 말도 꺼내지 마.”
업계 소식에 의하면 디X패치가 첫 타깃으로 지목한 건 민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들인 게 무색하게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사 먹는 사진만 건지고 허무하게 끝났다고 한다.
회사, 연습실, 숙소만 반복하는 그가 유일하게 들르는 곳이 회사 앞 카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걔는 찌르면 피 대신 레모네이드가 나온다더라.”
선배 1은 말만 들어도 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 전 연습생의 폭로 영상으로 뭐 하나 건지나 싶었으나, 그마저도 억울한 누명이었다고 한다.
ID와 디X패치 사이에 협상이 오가는 중, 많은 언론사에서 몰래 민성의 뒤를 밟았으나,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는 미담에 결국 취재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그럼 다른 멤버는요?”
“나는 잠깐 나율무를 따라다녔지.”
끈질긴 잠복 끝에 율무의 뒤를 밟는 데 성공한 선배 2.
그는 데이즈의 첫 번째 콘서트 날, 야심한 시각에 숙소를 나서는 율무를 발견했다고 한다.
“볼캡에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하고 나오더라고. 그때가 새벽 1시였나?”
이건 무조건이다.
선배 2는 200%의 확률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게 틀림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 간 줄 아냐?”
“어디 갔는데요?”
“헬스장 가더라.”
“…헬스장이요?”
그놈은 아주 대단한 녀석이라며 선배 2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해외 스케줄을 마치고 귀국한 날에도 홀로 숙소가 아닌 헬스장으로 향할 만큼 운동에 진심인 놈이라고 했다.
선배 2는 율무에게 완전히 질려 버린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매품으로 한유연이 있지.”
유연도 율무 못지않게 운동 중독이라며, 헬스장 앞에 죽치고 있으면 못해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볼 수 있을 거라며 주소를 공유해 주었다.
“그 팀엔 외국인 멤버도 있잖아요.”
가족이 해외에 있으니까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을까?
나날이 늘어 가는 한국어 실력만 봐도 그에게 애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청을 언급하는 순간 선배 3이 한숨을 쉬었다.
“은신아. 그 녀석은 말이야…. 미쳤어.”
“네?”
“햄스터에 미친놈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햄스터를 키운다고 했던가?
햄야를 떠올린 은신이 고개를 주억이며 아는척했다.
“본 적 있어요. 털 무늬가 신기하던데.”
“털? 너 지금 어떤 햄스터 말하냐?”
“햄스터요. 데이즈가 키운다던….”
선배 3은 아니꼽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 햄스터가 아니야.”
“그럼요?”
청은 작고 귀여운 사물을 모두 햄스터라고 부르는 버릇이 있는데, 처음엔 그 햄스터가 연인을 부르는 애칭일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햄스터 줘야지.
햄스터랑 해야지.
햄스터도 좋아하는데.
“그놈의 햄스터, 햄스터, 햄스터!”
이제는 햄스터의 ‘햄’자만 들어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는 선배 3은 햄스터 PTSD를 호소하며 괴로워했다.
비슷한 유형으론 에임의 대환이 있었는데, 이쪽은 청과 반대로 자신이 애정을 주는 모든 사물에 백야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했다.
반려견, 감자, 복숭아 열쇠고리 등. 이쪽도 어지간히 제정신은 아니라고 했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가, 정서적으로 좀 불안한 것 같아.”
“아…. 그럼 지한은요?”
이번에는 선배 4가 고개를 저었다.
“걔는 틀렸어.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아.”
선배 4는 작년 겨울쯤 그의 외출을 포착했으나 집게로 눈 오리만 만들고는 다시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니까?”
선배들의 말만 들어 보면 정상적인 멤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 백야는요? 인기 멤버라 파급력도 제일 셀 것 같은데. 백야만 건지면 특종 아니에요?”
은신의 철없는 소리에 선배 1, 2, 3이 동시에 콧방귀를 뀌었다.
“너 걔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냐?”
“이놈 어떻게 입사했지?”
“왜…. 아, 제우스요?”
제일 허술해 보이지만 백야야말로 멤버들 중 제일 까다로운 상대라며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에이~ 재벌이면 화제도 되고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작년에 디X패치에서 남자 배우랑 금성 부사장 스캔들도 터뜨렸잖아요.”
“그거랑은 조금 달라.”
백야의 뒤를 밟으려고만 하면 이상한 사고가 생긴다던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시야를 가린다고 했다.
디X패치가 유일하게 건진 거라곤 대환의 뒤를 밟았다가 우연히 건진 사진이 전부라고 했다.
백야랑 밤 산책을 하는 대환.
백야랑 아이스크림을 먹는 대환.
백야랑 어깨동무를 한 대환.
백야를 숙소까지 바래다주는 대환.
“제우스에서 몰래 사람을 풀어서 백야 뒤를 봐준다는 소문도 있어.”
“에이~ 제우스가 할 짓이 그렇게 없어요? 그리고 절대 여자친구가 없을 리 없어요.”
은신은 믿지 않았다.
어리고 잘생긴 데다 인기까지 많은 친구들이었다. 더군다나 동물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연예계 아니던가.
“제가 사고 한번 제대로 쳐보겠습니다!”
그렇게 호기롭게 타깃을 백야로 정하긴 했지만, 건강 악화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아이돌의 뒤를 밟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거처를 옮겼는지 멤버들과도 따로 생활하는 것 같다는 말에 백야는 포기하고 다른 멤버로 눈을 돌린 참이었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기회다.’
은신은 잘하면 오늘 특종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매점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사장님, 샌드위치는 없어요?”
“아이고. 다 팔렸는데 어쩌나. 아팠다며? 요즘 안 보이길래 애기 건 따로 안 빼놨는데.”
“힝. 괜찮아요.”
“이제 다시 방송하는 거야? 못 본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아닌뎅. 저 살쪘는데…?”
백야가 양 볼을 조몰락거리며 습관성 끼 부리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탁월했다.
‘어차피 청이랑 단아 때문에 MC 대기실로 가야 했는데.’
위치를 몰라 막막하던 참이었는데, 두 사람을 따라가면 청 또한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백야와 덕진이 매점을 나오자 대충 껌 하나를 계산한 은신도 얼른 따라붙었다.
“백야 님, 며칠 전에 초록 님 유앱에….”
초록?
거리가 있는 탓에 대화가 끊겨서 들렸지만 초록의 이름 하나만큼은 똑똑히 들었다.
‘세이렌이랑 뭐가 있나?’
백야가 얼굴을 붉히며 덕진의 팔을 때리는 걸 보니 반응이 과했다.
‘저 반응은 뭐지?’
보통 강한 부정은 긍정인… 미친!
데뷔와 동시에 1위 후보에 오른 대박 신인 걸그룹과 백야라니.
‘미쳤다. 이건 된다.’
특종을 예감한 은신은 입을 틀어막으며 환호했다.
그리곤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밟는데, 웬걸? 하늘도 그의 편인지 백야가 갑자기 매니저와 찢어지는 게 아닌가.
비로소 혼자가 된 타깃은 봉지 하나를 손목에 낀 채 쫄래쫄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끼익, 달칵-
하이에나는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무방비한 상태의 햄스터를 쫓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할렐루야! 5층에 다다랐을 때쯤 초록이 등장했다.
‘미쳐써어어억! 와악!’
계단을 오르는 내내 작은 기척에도 뒤를 돌아보며 경계하더니 역시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초록이 정면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 벽에 몸을 붙여 숨은 은신은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리를 옮기려는 것 같았다.
‘미쳤다. 디X패치도 못한 걸 내가 하는 거야.’
백야와 초록이 비상구를 벗어나자 얼른 계단을 오른 은신은 서둘러 두 사람을 다시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