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07
제407화
* * *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가요대축제까지는 6일이나 남아 있었고, 오후에 멤버들끼리 유앱을 켜기로 약속한 것만 제외하면 스케줄이랄 것도 없었다.
그에 백야는 오랜만에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멤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기 위함이었다.
[나 : 오늘 시간 되는 사람?] [신재현 : 나는 여자 친구 보기로 했는데. 백야 왜?] [김유경 : 지금 멕이는 거?] [김유경 : 너까지 나 여친 없다고 이러는 거면 속상하다 정말] [김유경 : 신재현 배신자 새끼] [나 : 신재현 여친 생겼어?] [나 : 와…….]‘배신자 새끼.’
한 명의 모솔 동지가 떠나 버린 상황에 백야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꼭 움켜쥔 앞발이 부르르 떨렸다.
[나 : 김유경 만나자] [김유경 : 백야ㅠㅠㅠ 나 놀아 주는 거야?] [신재현 : 야 나는?] [김유경 : 배신자는 꺼져 (입 모자이크된 강아지 이모티콘)] [나 : 맞아] [김유경 : 근데 너 오늘은 스케줄 없어? 막 나와도 됨?] [나 : 잠깐 정도는 괜찮아]자신도 끼워 달라는 재현을 무시한 두 사람은 약속 시간을 정했다.
그리곤 멤버들에게 외출 계획을 알리고자 밖으로 나섰다. 바깥엔 유연이 냉동 닭 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었다.
“아침 먹게?”
“일찍 일어났네. 너도 먹을래?”
“아니. 유연아, 나 잠깐 친구 좀 만나고 올게.”
“지금?”
크리스마스라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을 텐데 이런 날 나간다고? 라는 얼굴이었다.
“친구가 꼭 오늘 봐야 된다고 해서.”
용건이 있는 건 백야 쪽이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누구.”
“유경이. 저번에 콘서트 때 봤지? 내 고등학교 친구. 인사했잖아.”
“아. 그분.”
유연도 기억하는지 그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백야랑 똑같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가?”
유연은 백야 혼자 나가는 게 영 불안한 듯 떠보듯 물었다.
“아니야. 친구가 숙소 앞으로 데리러 온다 그랬어. 이따 애들 깨어나면 대신 말 좀 해 줘.”
“알겠어.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응.”
“근데 그러고 나갈 건 아니지?”
유연은 삐딱하게 선 자세로 백야의 차림을 천천히 훑었다.
패션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착용 중인 모자를 제외하고도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들고 있는 모양새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거 다 하려고?”
“혹시 몰라서.”
한겨울에 선글라스가 웬 말이며, 모자에 마스크까지 들고 있는 백야였다.
“너무 과하잖아.”
과한 차림은 오히려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요즘 세상이 좀 흉흉한가. 그런 꼴로 돌아다니다간 오해받기 딱 좋다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리 와 봐.”
아직 한 번도 개시하지 않은 목도리를 가져와 백야의 목에 둘둘 감아 준 그는 하관을 적당히 가리도록 연출해 주었다.
그리곤 안경과 모자를 눌러 씌워 얼굴을 자연스럽게 가렸다.
“목도리 절대 풀지 말고.”
“이거 네가 이번에 새로 산 거 아니야? 나는 그냥 하던 거 하면 돼.”
“팬들의 눈썰미를 얕보면 안 된다고. 익숙한 물건은 피하는 게 좋아.”
멤버들 중 가장 잘 돌아다니지만, 목격담이 없기로 유명한 멤버다운 노하우였다.
그때 백야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유경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도착한 거 아니야? 가 봐. 너무 늦게 들어오진 말고.”
“응. 4시 전엔 들어올게.”
백야가 신나게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섰다.
* * *
“김유경!”
차에 올라탄 백야가 모자를 벗으며 활짝 웃었다.
“와이 씨. 한백야! 이게 얼마 만이냐. 나 어제 너 나오는 거 가족들이랑 다 같이 봤어. 존멋~ 춤 언제 그렇게 늘었냐?”
“나 이제 좀 추잖아.”
백야가 가슴을 펴며 우쭐거렸다.
“어쨌든 대상 탄 거 축하한다. 어제는 두 개나 받는 거 보고 진짜…. 엄마가 베란다에 현수막 건다는 거 겨우 뜯어말림.”
백야는 잘했다며 유경에게 엄지를 들어 주었다.
“근데 너 이제 운전도 할 줄 알아? 좀 멋있는데?”
“에헴. 이 형님은 한 번에 붙었다는 거 아니겠냐. 신재현은 한 번 떨어짐. 움하하핫!”
유경이 얼굴 위로 브이를 하며 자랑했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
“나 멤버들 선물 좀 사려고.”
“선물?”
유경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오늘 크리스마스잖아. 그리고 며칠 뒤면 우리 데뷔일이기도 하고. 미리 준비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어.”
“그렇지. 네가 좀 바쁘냐.”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하나 골라. 선물해 줄게.”
“됐거든?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선물 같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백야가 타박하자 유경은 금세 태도를 바꿔 굽신거렸다.
“혹시 얼마까지 되나요?”
“상관없어.”
“크으으~ 역시 대상 가수. 클라스 지렸다.”
유경이 감탄하며 돌아봤다.
그런데 초보 운전 주제에 앞을 안 보고 자꾸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차가 조금씩 비틀거렸다.
“야, 앞에 봐. 앞에.”
“어어. 미안. 이제 집중할게.”
백야는 조수석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으며 가장 가까운 쇼핑몰을 불렀다.
“삼성. 그냥 코엑스로 가.”
“오케이~”
“핸들 똑바로 잡고 앞에 보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쇼핑몰에 도착한 백야는 엄청난 인파에 한 번, 쇼핑몰 곳곳에 붙어 있는 저희의 광고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야……. 너희가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보다. 네 얼굴이 안 붙어 있는 데가 없는데?”
식품, 통신사, 전자 기기, 의류, 명품, 금융 등. 가는 곳마다 데이즈의 얼굴이 도배되어 있었다.
“여기가 데이즈의 나라입니까.”
“조용히 해.”
쑥스러운지 옆구리를 찌르며 주의를 준 백야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너 절대 들키면 안 되겠다. 방금 상상해 봤는데 너무 끔찍한걸.”
“알아.”
“저기 선글라스 파는데… 하나 끼고 시작할래?”
유경이 쇼핑몰 초입에 위치한 선글라스 팝업 스토어를 가리켰다.
화려한 색상과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자전거 고글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미쳤어? 따라와.”
아이돌 가오가 있지….
저건 패션 고자의 기준에도 탈락이었다.
유경의 손목을 잡아챈 백야는 비교적 인파가 드문 명품관 쪽으로 향했다.
명품관은 초입부터 서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기류 같은 게 있었다.
유경이 눈알을 굴리며 백야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좀 떨어져.”
“너 이런 데 자주 오냐? 난 좀 쫄려서 잘 못 걷겠어.”
“오버하지 말라고.”
“오버 아니야. 그리고 너 잃어버리면 어떡해. 미아 방송도 못 하는데.”
자신은 슈스를 지켜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며 유경은 더 바짝 붙어 왔다.
하는 수 없이 혹 하나를 달고 쇼핑을 하게 된 백야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의미 있는 선물을 해 주고 싶은데.’
딱히 생각해 둔 건 없었다.
숙소에 차고 넘치는 게 옷이었고, 멤버별로 명품 엠버서더를 맡고 있는 데다, 다들 고가의 물건엔 관심이 없는 편이었으니까.
고민하던 백야는 마침 눈에 들어온 유명 향수 스토어를 가리켰다.
“저기 가 볼래?”
“그래.”
유경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향기가 났다.
“안녕하세요. 저… 선물하려고 하는데요.”
“어느 분께 하실 건가요?”
“친구요.”
“선물 받으실 분께서 즐겨 쓰시는 향이 따로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어울리는 향으로 고르려고요.”
점원은 시향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며 코너로 안내했다.
“보통 이렇게 세 가지를 많이들 찾으시기도 하고 선물도 많이 하세요.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점원이 떠나가자 한결 편안해진 백야가 목도리를 살짝 내렸다. 유경은 바로 앞의 향수를 집어 이미 시향을 하는 중이었다.
“오. 냄새 좋다.”
“나도.”
백야가 얼굴을 내밀자 코끝에 시향지가 가까워졌다. 은은한 꽃향기와 포근한 코튼 향이 나는 깨끗한 향이었다.
“이름이 우리말로 순수한 첫사랑이래. 완전 유연 님 찰떡 아님?”
유연은 첫사랑 기억 조작에 최적화된 얼굴을 가졌다며 유경이 적극 추천했다.
백야도 같은 의견인지 고개를 주억이며 유연의 것으로 해당 향을 골랐다.
이어서 다른 멤버들의 것도 고른 백야는 결정을 마치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곳에서 유경이 관심을 보이던 향수도 함께 포장해 달라고 하자, 옆에서 유경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야, 아니야. 나는 안 사 줘도 돼. 난 이런 거 뿌리고 갈 데도 없고.”
유경은 손사래까지 쳐 가며 거부했다.
“아니야. 같이 와 줘서 고마워서 그래.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면 뿌리든가.”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데….”
한 병에 4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향수였다.
“내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재현이도 같은 거 해 주면 좋아할까? 이게 인기 제일 많은 거라고 하셨잖아.”
“야, 걔도 없어서 못 쓰지…. 진짜 고마워. 나 이거 진짜 아껴서 쓸게.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큰 경사가 있을 때만.”
“그냥 막 써.”
피식 웃은 백야는 포장된 물건을 받아 가게를 나섰다.
가는 길에 유명한 햄버거 가게에서 테이크아웃을 한 두 사람은 유경의 차 안에서 간단한 점심도 해결했다.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사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모처럼의 휴일에 쇼핑몰에서 매니저 형들과 모임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민폐는 사절이었다.
“미안. 다음엔 좋은 데 가서 더 맛있는 거 먹자.”
“뭐래. 나 이것도 진짜 먹어 보고 싶던 거야. 나야말로 오늘 이렇게 호강해도 되나 싶다, 지금.”
“이게 무슨 호강이야. 차 안에만 있는데.”
“야. 앞에 한강도 떡하니 보이는 게 경치만 좋구만. 게다가 네가 선물도 사 주고 맛있는 거까지 먹여 주는데 이 정도면 호강이지.”
유경이 감자튀김을 세 개씩 집어 먹으며 씩 웃었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짓이 너랑 친구 한 거야, 인마. 너는 좀 안됐지만.”
저처럼 평범한 놈이랑 친구여서 불쌍하다는 말에 백야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뭐래…. 다 각자만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곧 있으면 유경보다도 아무것도 아니게 될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진심이었다.
유경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자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 힘내 보자.”
백야가 주먹을 내밀자 유경이 가볍게 부딪쳐 왔다.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더 힘들 것만 같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많이 정리된 듯 이제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돼 다행이었다.
“야. 근데 너는 인간적으로 그만 힘내도 되지 않냐? 이번 노래 무슨 빌보드 차트에도 올라갔다며.”
“맞아. 신기하지 않아?”
“나중에 막 빌보드 대상도 받는 거 아님?”
터무니없는 상상에 백야가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유경의 입으로 감자튀김을 대충 쑤셔 넣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빨리 먹어. 나 슬슬 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오랜만에 봤는데 벌써? 이제 가면 또 언제 보는데?”
유경의 말에 갑자기 목이 멘 백야는 입술을 짓씹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아마도 1월 6일?”
“그때가 무슨 날이길래 날짜까지 알고 있냐. 신재현 생일인가? 아닌데, 걔 생일 더 늦을 텐데.”
유경이 의아해하자 백야가 담담하게 말했다.
“골든 레코드 하는 날이거든.”
“그럼 너 바쁜 거 아니야? 끝나고 쫑파티 뭐 이런 거 하지 않나? 이번에도 대상 받을 거 아니야.”
“……그런가.”
“당연하지.”
“그래도 너희 보러 갈게.”
“엥?”
미소 짓는 백야의 얼굴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