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20
외전 8화
* * *
핸드폰을 돌려준 그는 도망치듯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아이도 많이 컸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찾을 수 있을 만큼 백연을 똑 닮은 아이였다.
“하아…….”
3년을 방황했는데, 한 번의 마주침으로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 지훈이었다.
백연이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숨이 멎을 뻔한 그는 아직도 심장이 멎어 있는 듯했다.
“김지훈. 정신 차려, 미친놈아.”
전속력으로 달려 자신의 차에 몸을 숨긴 그는 머리를 퍽퍽 내려치며 괴로워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의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지훈이 운전대 위로 풀썩 엎어지자 클랙슨이 눌리며 큰 소리를 냈다.
빠앙!
“앗, 깜짝이야…!”
놀란 그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창밖을 살폈다. 다행히도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 제일 크게 놀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입술을 삐죽이며 울상을 짓던 그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야, 뭐 해? 술 사 줄게.”
[……술? 야. 너 지금이 몇 시인 줄은 아냐?]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막 잠에서 깬 듯 잠겨 있었다.
“3시. 왜? 조금 빠르긴 한데 괜찮지 않나?”
[아……. 이 미친 새끼.]한국은 오후 3시.
하지만 뉴욕 시간으론 새벽 2시였다.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골 때리네…. 너는 무슨 술 사 준다는 말을 그렇게 설레게 하고 지랄이야…. 그리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데리러 오는데.]“그러니까 어딘데.”
[인마, 미국이다! 미국! 그래. 뉴욕까지 데리러 와라! 이 새끼야.]아, 맞다. 얘 미국 갔지, 참?
지난주까지만 해도 함께 공연을 보러 다니던 친구라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걸 잊고 있었다.
지훈이 머쓱한 웃음을 흘리자 수화기 너머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웃어? 지금 잠 다 깨워 놓고 웃음이 나오냐?]“미안. 너 불면증이라던 거 생각나서 전화해 봤어. 서프라~이즈.”
[아, 개 짜증 나.]“미안. 다시 자라.”
[잠 다 깨워 놓고 다시 자라고? 너 지금 병 주고 약 주냐? 내가 어떻게 잠들었는데!]“미안하다고~ 그럼 어떡해. 자장가라도 불러 줘? 잘 자라 우리~”
뚝-
전화는 허무하게 끊어졌다.
다시 혼자가 된 지훈은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누구를 불러내지.’
그러다 무심코 돌린 시선 끝에 또 한 번 백연을 발견했다.
“헉.”
당황한 지훈은 차에 선팅을 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큰 덩치를 숨기기 위해 운전대 아래로 몸을 구기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그에게 현타라는 것이 찾아왔다.
‘나 왜 이러고 있냐.’
모태 솔로는 이런 제가 너무 싫었다.
* *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다음 날부터 지훈은 도서관을 과감히 포기했다.
동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녀를 마주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대폭 줄여 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부탁이라는 것을 드려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도 얻었다.
새벽같이 등교했고, 빈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옥의 시간표를 만들었다.
백연을 마주친 날이 수강 정정 기간의 마지막 날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훈의 시간표를 본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게 비슷했다.
“너 조기 졸업하려고?”
하나같이 조기 졸업이 목표냐고 물어왔다.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1학년 2학기를 보내던 중, 그는 친구의 권유로 영어 회화 스터디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또 백연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첫날엔 제가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못 했어요.”
“한백연 님 맞으시죠? 괜찮아요. 저희도 이제 두 번째인걸요.”
“동생 아픈 건 좀 어때요? 괜찮아요?”
“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동생이 태어날 때부터 조금 약하게 태어났는데 갑자기 열이 나서…. 다음부터는 빠지는 일 없게 할게요.”
동생?
백연의 사정을 아는 지훈은 그녀의 아이가 많이 아팠구나, 생각했다.
“자리는 빈자리 앉으셔야 할 것 같은데. 여기 두 분은 잠시 담배 피우러 나가신 거라.”
“네. 감사합니다.”
하필이면 지훈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 나란히 앉게 됐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지훈은 제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내가 어떻게 피해 다녔는데….’
지훈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들이마시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우연이 계속 반복되면 운명이라던데. 이쯤 되면 정말 운명인 것도 같았다.
‘그래. 한 번 다녀왔으면 어떠한가. 애가 있으면 어떤가!’
시작도 못 해 보고 접어 버리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차이더라도 고백은 해 보자.’
그러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잘 된다면?
부모님께서는 저의 뜻을 항상 지지해 주니까 집안의 반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훈은 아닌 척 김칫국을 원샷 했다.
“저… 괜찮으세요?”
그때, 다시 한번 귓가에 상투스가 울렸다.
심장을 간지럽히다 못해 망치로 내리쳐 버리는 이슬 같은 목소리에 지훈의 얼굴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저,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고장 난 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
의아해하는 백연의 모습을 본 모임장이 지훈을 대신해 설명해 주었다.
“낯을 많이 가리신대요.”
“아…….”
“그런데 그러고 보니 저희 스터디에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두 분이 다 계시네요. 하하! 이게 무슨 복인지.”
“그게 누군데요?”
백연이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저분이 그 유명한 경영대 남신이잖아요.”
“정말요? 아~ 저분이시구나.”
백연도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사슴과 강아지를 반씩 섞어 놓은 듯한 외모는 눈이 높은 백연의 기준에도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네. 그리고 여기 미대 여신님도 계시고.”
낯부끄러운 칭찬에 백연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화장실로 도망갔던 지훈이 돌아와 다행이었다.
“오셨네요. 경영대 남신.”
“네? 저요? 아니에요. 남신은 무슨….”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부인 의사를 표한 지훈은 자리에 앉아 핸드크림을 꺼내 들었다.
꾸욱-
화장실을 다녀온 뒤로 줄곧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백연을 의식하느라 악력 조절에 실패했다.
그는 손등 위로 수북이 쌓인 내용물을 보고 동공을 떨었다.
“이, 이게 왜 갑자기….”
손을 떨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똑 부러지게 생겨서 은근 허당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편 지훈은 수치심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나이 김지훈!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남성이었다.
“저… 핸드크림 바르실래요? 너무 많이 나와서.”
손등을 내밀며 적당한 핑계를 만든 그는 팀원들에게 자연스레 핸드크림을 권유했다.
스터디 구성원은 남자 넷에 여자 둘로 남성의 비율이 조금 더 높은 편이었다.
당연히 남자들은 관심이 있을 리 없었고, 그나마 반응해 줄 사람은 백연과 다른 여성 학우 둘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학우가 냉큼 긍정 의사를 보였다.
“저요! 안 그래도 손이 건조했는데.”
“네. 필요하신 만큼 덜어 가세요.”
지훈이 손등을 내밀자 여학우가 손가락으로 크림을 살짝 떠 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어디 거예요? 향 너무 좋다~”
여자는 지훈에게 관심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힐끔 지훈의 손을 본 백연은 그의 손가락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여학우의 행동을 이해했다.
‘여자 친구가 없나? 의외네.’
백연은 핸드크림에는 관심이 없는 듯 속으로 시시한 생각이나 하며 고개를 돌렸다.
톡톡-
그러자 굵은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며 백연의 관심을 끌었다.
“바르실래요?”
지훈이 손등을 내밀며 권유했다. 조금 많기는 하지만 대충 펴 바르면 문제없어 보일 만큼의 양이었다.
그러나 눈이 마주쳐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수락해버리고 말았다.
“아… 네. 주세요.”
백연이 핸드크림을 가져갈 생각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여기요.”
그런데 직접 크림을 덜어 백연의 손등 위로 얹어 주는 지훈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
“너무 조금 드렸나?”
그러더니 한 번 더 떠서 두 번에 걸쳐 나눠 주었다.
백연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지훈이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수줍은 듯 당당하게 웃는 그의 미소는 순수 그 자체였다. 그에 백연은 당연히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스터디를 끝내고 모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였다.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지훈은 수줍은 얼굴로 백연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백연 님. 혹시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첫날에 저희끼리는 번호를 다 교환했는데, 백연 님 것만 없어서요.”
거짓말이었다.
모임장이 파 놓은 단체방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누군가와 번호를 교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첫날 참석하지 못한 백연은 지훈의 말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는 김지훈이에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드디어 뵙네요. 저희 동갑이죠?”
화르르.
지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백연이 제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저를 아세요?”
“경영대에서 유명하시다고 들었어요.”
3년 전, 저희가 카페에서 만난 적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그건 친구들이 장난으로….”
지훈은 쑥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백연은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왜요? 잘 어울리는데.”
“감사합니다.”
짝녀의 칭찬 한 번에 고장 나 버린 지훈은 인사를 하며 스태프 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긴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히며 들어갔던 문을 열고 나왔다.
“푸흡.”
“아, 아니. 저는 여기가 나가는 문인 줄 알고. 제가 지금 급하게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모든 동작이 뚝딱거리는 게, 같은 스터디의 여학우를 대하는 태도와 저에게 보여 주는 모습이 너무 달랐다.
지훈이 저에게 호감이 있음을 눈치챈 백연은 눈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살짝 터치했다.
“네. 얼른 가 보세요. 늦으시겠다. 출구는 저쪽이에요.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스치듯 닿은 손끝이었지만, 그 감각이 미치도록 선명하게 남은 지훈은 카페를 나서자마자 벽을 짚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는 게, 정말 급하게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