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24
외전 12화
일 년에 딱 한 번만 발급한다는 ‘사랑의 쿠폰 북’ 올해의 주인공은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아닌 지훈이었다.
“이게 뭐야?”
“백야 쿠폰이에요. 이거 쓰고 싶을 때 저한테 주면 제가 해 주는 거예요. 형아 집에는 이런 거 없어요?”
한가네에선 ‘안마 쿠폰’과 ‘뽀뽀 쿠폰’ 그리고 ‘소원 쿠폰’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작년에는 아빠 복숭아가 백연에게 웃돈을 주고 뽀뽀 쿠폰을 구매하려다 백야에게 걸려 경고를 받은 적도 있었다.
“우와~ 이런 걸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너무 고마워. 형도 선물 준비했는데.”
“정말요?”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훈의 옆에 놓인 종이봉투를 바라봤다.
“아가야, 혹시 블록 좋아해?”
지훈이 가져온 건 파란색 슈퍼카 블록이었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점원의 말에 냉큼 구매한 것이었다.
“우와! 근데 저 아가 아닌데? 저 샛별초 4학년이에요.”
“4학년?”
이번엔 지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생각보다 아이의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그럼 백연 씨는 대체 몇 살에 아이를 낳은…?’
지훈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야는 선물이 마음에 드는 듯 폴짝 뛰어 지훈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형아~”
지훈이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백연을 올려다보는 얼굴엔 난감한 기색이 드러났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백야가 내민 고가의 선물 때문이었다.
“저… 그런데요, 백연 씨. 저는 이 쿠폰만 받을게요.”
“아니에요. 받아 주세요. 저희가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그날 지훈이 발 벗고 나서 주지 않았더라면 백야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 데이트하는 거로 대신, 헙.”
말실수를 한 지훈의 눈동자가 2차 지진을 일으켰다.
“데이트요?”
“아니, 그러니까….”
벌떡 일어난 지훈이 뚝딱거리며 해명하자 백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제가 불순한 의도로 그런 건…. 아니, 사심이 담겨 있던 건 맞긴 한데, 그래도 저는 정말 진심으로….”
“뭐가 진심이에요?”
이렇게까지 놀릴 생각은 없었는데, 지훈이 고장 난 모습을 보자 백연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시선을 맞춘 그녀가 배시시 웃자 지훈의 얼굴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죄송해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장난감 상자 뒷면을 읽던 백야는 고개를 홱 들어 누나와 지훈을 번갈아 봤다.
“형아, 왜 그래요?”
참새 같은 목소리에 힐끗 시선을 돌리자 저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백야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은 지훈은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들었다.
“사실 첫눈에 반했습니다.”
“네?”
“3년 전에 슬기랑 일하던 카페에서 처음 뵀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지훈의 급발진 고백에 이번엔 백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3년 전?
저희가 처음 본 게 스터디에서가 아니었단 말인가.
지훈이 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기가 맞지 않아 조금 혼란스러웠다.
“몇 번 보지도 않은 사이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무례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고, 아니면 무섭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럼 슬프겠지만…. 그래도 저 정말 노력 많이 했거든요.”
“군대도 다녀오고 잊어 보려고 정말 별짓을 다 했는데 마음처럼 잘 안 돼서….”
“그래도 아드님을 찾는 건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고…. 그러니까 지난번 일은 전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당장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고, 딱 세 번만 만나주실 수,”
가만히 지훈의 고백을 듣던 백연은 처음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잠시만요. 아들이요?”
“네. 왜, 마음으로 낳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물론 백연 씨랑 아이가 허락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고백하는 건 아닙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이 남자…. 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상상까지 마치고 온 것 같았다.
그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백연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배, 백연 씨…?”
예의가 아니란 걸 알지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방적인 감정일 거라 단정 짓고 말하는 것도 귀여워 죽겠는데, 생각보다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으로 낳다니 누구를요?”
“아이요.”
지훈의 시선이 백야를 향하자 이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갸웃?
‘귀여워…!’
백야의 갸웃 공격을 당한 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짚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리던 백연은 지훈의 얼굴을 잡아 저를 보게 만들었다.
“백야가 제 아들이라고요?”
“네에…. 아, 아닌가요?”
“대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셔야 그런 결론이 나오죠?”
백연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빤히 바라봤다. 그에 고장 난 로봇은 더욱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 그때 카페에서 아드님이라고…. 절대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았어요. 카페에서 우연히 슬기랑 대화하시는 걸 듣고 그때 혼자 깨달은 거라.”
“카페요? 저희는 카페에 간 적이 없는데?”
“아니에요. 3년 전에 오셨어요. 그때 아드님께서 초코아이스크림을 저한테 한 입 주셨는데. 마침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듣다 보니 지훈이 어떤 오해를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백야를 향한 극존칭이 우스웠던 백연은 손을 놓아주며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백야는 제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에요. 그래도 마음은 너무 감사하네요. 저런 아들이 있어도 제가 좋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렇죠?”
“네…. 에?”
지훈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들이 아니야?
왜?
지훈이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베이비 개복치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백연이 백야를 부르자, 백야가 귀를 쫑긋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애기야,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집에. 왜?”
“그럼 나는 누구야?”
“누낭!”
백연이 백야를 향해 팔을 벌리자 복숭아 한 알이 까르르거리며 굴러와 안겼다.
“……누나?”
한참 뒤에야 제가 어떤 오해를 한 건지 깨달은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12년 후.
“연아, 아침 먹어야지.”
“으응….”
“안 먹을 거야?”
“이따가….”
주말 아침.
사랑이가 생겨난 후로 부쩍 아침잠이 늘어난 백연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칭얼거리는 백연의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한 지훈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부엌 테이블에는 주인을 잃은 아침 식사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었으나, 백연 없이는 저도 입맛이 없어 그대로 지나쳤다.
쉬는 날이지만 훌륭한 일 중독인 그는 곧장 서재로 향했다.
잠옷 차림으로 책상에 앉은 지훈은 펜을 들어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볼펜 심이 다 닳았는지, 얼마 안 가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서랍을 열어 리필 심을 찾는데 그의 손에 작은 상자가 닿았다.
“어?”
반가운 물건을 찾은 지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상자 안에는 어린 시절 백야가 써 준 지훈의 생일 카드와 첫 만남 때 받았던 사랑의 쿠폰이 들어 있었다.
남아 있는 쿠폰은 빨래 개기, 안마, 심부름, TV 그만 보기 쿠폰이었다.
옛날 생각이 난 그는 흐뭇한 미소로 핸드폰을 들었다. 짧은 통화음 끝에 말간 얼굴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백야 : 엥? 영통?]“애기 뭐 해~?”
눈을 깜빡이는 백야의 옆으로 뿌리가 자란 은발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청 : 모야. 제우스 주니어?] [백야 : 너 우리 형 자꾸 이상하게 부를래?] [청 : Hi!]청은 백야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하. 청이는 오늘도 기운이 좋네.”
[백야 : 너 저리 가.] [청 : No. 나는 햄스터 껌이야.]끄응.
제게 기대는 덩치를 솜 주먹으로 밀어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야 : 저리 가라고오~] [청 : I love you too.]청이 윙크를 하며 장난을 치자, 참다못한 개복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청 : 으악!]청이 비명과 함께 소파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틈을 타 방으로 도망쳐 온 백야는 문을 잠근 뒤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백야 : 하. 쟤 진짜 말 안 들어. 그런데 왜 전화했어?]아래에서 위를 향한 카메라 각도 덕분에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나왔지만, 백야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냥~ 뭐 하나 싶어서. 혹시 바빠? 나 너한테 이거 쓰려고 하는데.”
지훈이 ‘심부름 쿠폰’을 흔들자 백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백야 : 어? 그거…!]“알아보겠어?”
[백야 : 그걸 아직도 갖고 있었어?]“당연하지. 유효 기간은 따로 안 적혀 있던데…. 그럼 아직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지훈의 능청에 백야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백야 : 응. 써도 돼. 어떤 심부름 시키려고?]“글쎄~ 라면 사 오기? 밥 먹었어?”
[백야 : 아니, 아직. 청이랑 뭐 시켜 먹을지 고민하던 중이었어.]“그럼 우리 집에 라면 먹으러 올래? 사실 라면은 핑계고, 오면 형이 더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백야 : 우와! 나 갈래.]지훈의 꼬심에 개복치는 1초 만에 홀라당 넘어갔다.
[백야 : 누나는?]“아직 안 일어났어.”
[백야 : 아직도? 누나 원래 엄청 일찍 일어나는데. 사랑이가 잠이 많나?]“그런가 봐. 이러다 나중에 사랑이도 미끄럼틀에서 자면서 내려오는 거 아닌가 몰라.”
지훈이 갑자기 백야의 흑역사를 언급하자 앞발이 코를 쓱 문지르며 머쓱해했다.
[백야 : 아니, 언제 적 이야기를…. 지금 바로 갈게. 택시 타면 15분 정도 걸리겠다.]그런데 그때, 백야의 몸이 흔들리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
[청 : 햄스터야! 내가 잘못했다! 이 문 좀 열어 조. 갈 거면 나도 가져가. 응?] [백야 : 야. 너 엿들었어?] [청 : No. 그냥 내 귀에 들린 거야…. 나도 가져가아아. 제우스 주니어, 나도 맛있는 거 좋아해요.]문 너머로 들려오는 절절한 고백에 지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와. 청이 숨넘어가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문을 벌컥 열자, 청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발목을 붙잡았다.
[청 : 나도오오.] [백야 : 무슨 나도야.] [청 : 나를 두고 갈 거면 밟아라!]백야가 뒷발을 들자 청이 손을 뻗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청 : Nonono. Stop! 햄스터 나 없으면 눈물 날걸?!]인정하긴 싫지만 맞는 말이라 백야는 반박하지 않았다.
[청 : 나 한국에 햄스터밖에 없어. 왕따야. 그러니까 햄스터가 책임져.] [백야 : 네가 왜 왕따야? 자발적 아싸지.] [청 : 아싸? 오. 그거 좋을 때 하는 말이잖아. 햄스터 사실은 나 책임지고 싶었구나?]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는 집사는 자신을 가져도 좋다며 백야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그 모습에 약이 오른 햄스터는 앞발을 들며 와락 달려들었다.
[백야 : 넌 주거따!] [청 : 으악!]헛발질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핸드폰은 검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수화기 너머로 청의 비명이 들리더니, 이내 백야의 웃음소리와 함께 항복을 선언하는 간절한 외침이 울렸다.
보이지 않아도 청에게 간지럼을 당하며 바닥을 굴러다닐 백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종료 버튼을 눌렀다. 마음으로 낳은 아들에게 먹일 식사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