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33
외전 21화
소라니.
불과 2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이런 어이없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소?”
“소!”
“음메~ 그 소?”
“아니, 몇 번을 말해요? 서울에는 소 없어요?”
검은 수염의 날카로운 질문에 백야는 조금 주눅이 들었다.
“아니야. 있긴 한데… 실제로 본 적은….”
서울 촌놈은 소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자존심은 지켜 냈다.
“TV에서 본 적은 있어. 어떻게 생겼는진 알아.”
“그럼 빨리 얘네 집 소 찾아 주세요.”
“으응…. 그런데 나는 분실물이 있다고 전달받았거든. 소가 아니라 그걸 찾아 주러,”
“그게 초롱이라고요.”
“초롱이…?”
“아, 소요! 소! 형 바보예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백야를 바보라고 놀려 대기 시작했다.
“나 바보 아니야.”
“우와~ 바보가 말도 한대요~”
“스읍!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혼나요. 아저씨 화나면 진짜 무서워. 알아?”
“아저씨도 아니면서 계속 아저씨래. 바보다 바보~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몰라.”
“알아! 나 열, 스무 살이거든?!”
“열, 스무 살은 뭐야? 120살이야?”
까르르-
슬쩍 한 살을 올려 말했지만 잼민이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린 뒤였다.
발끈한 백야가 버럭 하자 아이들은 더 흥미를 느끼고는 더욱더 짓궂게 백야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깊게 한숨을 쉰 백야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민지야. 소를 학교에서 잃어버린 게 맞아? 혹시… 타고 온 거야?”
그 순간 경멸에 찬 검은 수염의 눈이 백야를 노려봤다.
“이 형 진짜 바보 아니야? 소를 어떻게 타요. 내가 뛰는 게 더 빠르겠네.”
“…….”
나도 알아, 이 새꺄.
학교 분실물이라길래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건데. 말을 꺼내기 무섭게 극딜 당했다.
상처받은 백야는 눈으로 심한 욕을 했다.
* * *
방과 후.
작은 섬마을에는 초롱이를 찾기 위한 수색대가 꾸려졌다.
팀원은 고학년 여섯 명과 백야였다. 팀장은 당연히 백야….
“야. 너희는 저쪽으로 가 봐. 나는 민지랑 바보 형 데리고 다닐 테니까.”
가 아니라 검은 수염이었다.
마을 지리를 잘 몰라서 자신이 대장을 하겠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따라와요.”
어디서 삽을 주워 온 검은 수염이 바닥을 탕탕 내려치며 앞장섰다. 반기라도 드는 즉시, 저 삽이 제 머리를 후려칠 것만 같았다.
“으응….”
“야, 김민지. 내 손 잡아.”
“웅.”
반려 소의 집사인 민지는 훌쩍이며 그 뒤를 따랐다.
‘이게 맞나…?’
검은 수염의 뒤를 따라 팔자에도 없는 등산을 하는데, 순간 백야에게 현타라는 게 찾아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와서 옆집 꼬맹이의 소나 찾아 주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느껴진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백야가 조금 뒤처지자 금세 검은 수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빨리 와요! 이제는 걷는 거도 못 해요?”
“가고 있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못마땅한 얼굴로 뒤를 따르던 백야는 어느새 뒷산 초입에 들어섰다.
‘영화 같은 데 보면 외지인을 산속으로 유인해 몰래 파묻어 버리곤 하던데. 설마…?’
검은 수염이 무서웠던 백야는 민지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기며 걸음을 늦췄다.
“저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백야가 검은 수염의 손에 들린 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산.”
“어, 그래….”
커플이 참 싸가지 없고 좋구나.
민지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이맘때의 여자아이들은 낯을 심하게 가리기 때문이었다.
반팔을 입고 있는 아이들과 달리, 긴팔 셔츠를 입은 백야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더워…. 여자애가 있어서 단추를 풀 수도 없고.’
잠시 걸음을 멈춘 백야는 안경을 벗어 셔츠 소매로 땀을 닦았다.
안경을 벗는 순간만큼은 눈에 뵈는 게 없어지기에 백야는 민지가 자신을 놀랜 얼굴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다시금 안경을 고쳐 쓰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민지가 고개를 홱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어. 아저씨 열심히 가고 있어.”
순간, 제 발 저린 개복치는 또 잔소리를 들을까 싶어 과한 동작으로 두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검은 수염의 손을 놓아 버린 민지가 백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빠. 제가 잡아 줄게요.”
여자애라 그런지 검은 수염보단 심성이 고운 듯했다.
“우와~ 정말? 고마워. 그런데 아저씨라고 부르면 되는데.”
“오빠.”
“으응….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처음 받아 보는 호의에 감격한 백야는 제게 내밀어진 고사리 같은 손을 덥석 잡았다.
감히 짱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콰과가강!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끄앙!”
깜짝 놀란 백야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자, 어두운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수염이 보였다.
산속이라 해가 빨리 지는 듯, 아이의 얼굴엔 그림자가 제법 드리워져 있었다.
“왜 그래?”
툭!
대답 대신 삽을 바닥에 내리꽂은 검은 수염은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자, 민지와 제가 잡고 있는 손이 보였다.
“아~”
이내 시선의 의미를 잘못 깨달은 백야는 남은 앞발을 내밀며 해맑게 물었다.
“너도 잡을래? 우리 같이 가자. 산길이 생각보다 험하네. 아저씨가 도와줄게.”
제 앞으로 내밀어진 앞발을 노려보던 검은 수염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삽을 홱 던져 버렸다.
그리곤 민지에게 말했다.
“야, 김민지. 너 왜 내 손 안 잡고 그 형 손 잡아?”
“뭐가? 내 마음이야.”
“그럼 나는?”
“너는 여기 많이 와 봤잖아. 오빠는 처음이라 길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검은 수염은 민지의 입에서 나온 호칭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빠? 저 바보는 아저씨지!”
“아니야, 오빠야.”
잘생겼으면 다 오빠라는 사실을 검은 수염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여기, 의도치 않게 꼬맹이들의 사랑싸움을 1열에서 직관하게 된 백야는 퍽 난감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이좋던 두 사람이 싸우게 된 이유가 아마도 저 때문인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눈새라도 지금 끼어들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그래도 바보라니.’
듣는 바보 서운하게….
이번에야말로 혼쭐을 내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검은 수염이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단 채 뛰쳐 내려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대장이 팀원을 버리고 탈주했다.
* * *
“민지야~ 백야 씨~”
“아이고~ 일 났네, 일 났어. 군인 청년이랑 민지가 초롱이 찾으러 산에 올라갔다가 여즉 안 내려오고 있디야.”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외지인과 민지를 산속에 두고 내려온 검은 수염은 산길 초입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시 올라가야 하나? 민지도 산을 잘 모르고 그 바보도 모를 텐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두 사람 걱정에 검은 수염이 막 산을 다시 오르려던 때였다.
반대편으로 수색을 떠났던 친구들이 나타나며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을 찾았다.
“어? 대장, 이제 내려온 거야? 초롱이는 우리가 찾았어! 저쪽에 있더라고.”
“이놈의 시키가 박 씨 아저씨네 풀을 다 뜯어 먹었어! 민지 큰일 났다, 이제.”
“그런데 민지랑 바보 형은?”
울먹이던 검은 수염이 사실대로 말하자, 소식이 어른들의 귀에 들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잠시 후, 랜턴과 호롱불을 든 마을 어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색대가 꾸려졌다.
퇴근했던 학교 선생님들까지 죄다 불려 나와 새로 온 사회 복무 요원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시키는 일마다 이렇게 못할 수 있지?’
혹시 교환되냐고 국방부에 문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생들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는 군인 청년을 찾으러 모두가 양팔을 걷어붙인 그때였다.
부스럭-
가끔 산짐승이 튀어나오곤 하는 수풀 더미가 흔들렸다.
“어이! 김 씨! 거기 조심해!”
“이리 나와!”
어른들이 수풀을 경계하며 보기만 해도 섬뜩한 농기구를 겨눴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
부스럭-
수풀은 점점 더 크게 흔들렸고, 이내 앙증맞은 대가리가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우와~ 빛이다! 민지야, 살았어!”
내려오는 길에 안경을 분실한 백야는 봉인되어 있던 얼굴을 드러내며 마을 사람들을 단숨에 홀렸다.
“저게 누구여…?”
“어머. 어머. 좀 나와 봐.”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남편을 홱, 밀쳐 낸 교장 선생님 외 8명이 수풀 더미를 향해 돌진했다.
“괜찮으세요?”
“혹시 산신령…?”
이렇게 누추한 곳에 이런 귀한 얼굴이라니. 산신령이 민지를 데리고 내려온 거라 믿는 눈치들이었다.
한편 눈이 보이지 않는 개복치는 타고난 절대음감으로 상대의 목소리를 캐치해 냈다.
“이 목소리는… 교장 선생님?”
“어머. 저를 아세요?”
“선생님, 저 백야예요. 제가 산에서 안경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잘 안 보이긴 하는데….”
백야는 교장 선생님이 아닌 허공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백야 씨라고요? 새로 온 사회 복무 요원?”
“넹! 아, 그리고 죄송해요. 초롱이를 못 찾았어요. 내일 출근해서 다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아니요. 초롱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앞으로는 백야 씨 얼굴만 신경 쓰도록 해요.”
“…넹?”
백야가 아방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기저기서 거센 숨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수풀 더미에서 건져진 민지는 부모님께 호되게 혼이 나는 중이었다.
“엄마가 초롱이 데리고 학교 가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5시 넘으면 산에도 올라가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으아앙!”
민지가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의 뒤에 숨어 있던 검은 수염은 이미 단단히 혼이 난 듯,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으로 민지를 힐끔거릴 뿐이었다.
그때 행정실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백야가 민지의 부모님 앞에 멈춰 섰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심려를 끼쳐드렸어요.”
태어나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민지 어머님은 잠시 넋이 나갔다. 그러다 이내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내며 모두를 용서해 주었다.
“오호호. 괜찮아요~ 무사히 내려왔다는 게 중요한 거죠.”
“민지 너무 혼내지 말아 주세요. 제가 앞이 안 보여서 오히려 민지 발목을 잡았어요. 저 때문이에요.”
대충 작고 흐린 형상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은 백야는 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민지야, 너무 고생했어. 고마워. 그리고 아저씨 때문에 혼나게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민지는 쑥스러운 듯 엄마의 뒤에 숨으며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를 지켜보는 검은 수염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