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95
외전 84화
백야의 옷이 쫄딱 젖은 관계로 네 사람은 가까운 지하상가로 향했다.
모자를 최대한 깊게 눌러썼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잘생김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어휴, 저 똥고집. 그냥 차에 있으라니까 기어이 따라오네.”
도련님은 부디 저 녀석 얼굴만 닮아야 할 텐데.
유경이 구시렁거리자 개복치가 홀쭉한 배를 내밀며 으름장을 놓았다.
“뭐! 네 패션 센스는 못 믿어!”
“뭣?! 야, 너보단 내가 낫지!”
“웃기시네~ 재현! 내가 더 낫지?”
“그래! 네가 말해 봐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댔다고, 백야와 유경이 투닥거리면 가운데서 고생하는 건 늘 재현이었다.
한편 멤버의 낯선 모습에 또양이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백야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평소에도 율무, 청과 자주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지금이 좀 더 편하고 막무가내인 느낌?
백야는 자꾸 배를 내밀며 유경에게 자존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럼 유경도 덩달아 배를 튕기며 백야를 튕겨냈다.
“나도 연예인 친구 있어서 들은 게 있거든? 사복도 스타일리스트 손을 거친다며.”
“허! 아니거든? 이건 진짜 내가 골라 입은 거거든? 그 친구 이름이 뭐야!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한때 멤버가 골라준 대로 옷을 입은 적은 있었지만,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
당당한 백야는 배를 더 내밀며 배짱을 부렸다.
“네가 말해준 거거든?”
“내가? 그럴 리 없어!”
“맞거든!”
“아니야!”
“유치해 죽겠네, 진짜.”
두 사람이 부끄러웠던 재현은 슬그머니 지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한은 백야에게 다가가 그의 앞발을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한백야. 그만하고 가자.”
지한은 티 나지 않게 오른편을 눈짓했다. 그곳엔 어린 여학생들이 자리에 멈춰서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가린 얼굴 때문에 긴가민가한지 섣불리 다가오진 않았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유경 씨, 10분 정도 뒤에 차 끌고 5번 출구로 오실래요? 시간 맞춰서 나갈게요.”
“저야 상관없는데……. 얘 옷은 갈아입혀야 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상당한 개복치라 한여름에도 감기에 걸리는,”
“알아요. 대충 입혀서 나갈 테니까 부탁드려요. 늦지 않게 갈게요.”
지한의 깔끔한 정리에 재현은 박수를 칠 뻔했다. 이 무리에 정상은 저뿐이었는데 드디어 새로운 정상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네 사람은 둘씩 나뉘어 지하상가를 질주했다.
다행히 지한이 잘 아는 곳이었는지, 두 사람은 지하와 연결된 쇼핑몰로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너 여기 와본 적 있어?”
“응. 본가가 이 근처라.”
바로 앞에 보이는 매장으로 들어간 지한은 입구에 걸린 신상품을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이거 주세요.”
“에엥? 이건 내 취향 아니…었는데 마음에 들어졌어.”
지한의 싸늘한 눈빛에 백야는 금세 말을 바꿨다.
* * *
잠시 후, 네 사람은 무사히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슬쩍 뒤를 돌아본 재현은 짧은 시간 안에 쇼핑까지 마친 두 사람을 칭찬해 주었다.
“옷 예쁘네? 네가 웬일로 멀쩡한 걸 골랐냐.”
“그으… 래? 지한이가 고른 거야.”
“어쩐지.”
옷은 고맙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던 백야가 떨떠름하게 답했다.
“근데 커플 티네.”
“뭣?!”
“네?”
백야와 지한의 시선이 동시에 아래로 향했다. 색깔이 달라서 방심했는데 프린팅이 똑같았다.
“이럴 수가!”
백야가 자신의 티셔츠를 주욱 잡아당기며 절규했다.
다른 멤버들이었다면 백야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며 난리가 났었겠지만 또양이는 개의치 않았다.
인간보단 로봇에 가까운 그는 백야에게 넌지시 물어볼 뿐이었다.
“내가 갈아입을까?”
지한이 쇼핑백에 든 젖은 티셔츠를 꺼내려 하자 이번엔 앞 좌석에서 잔소리가 쏟아졌다.
“야 인마, 내가 다 상처다! 그냥 입어. 형님 삐지셨잖아.”
“맞아. 살다 보면 남자끼리 커플티 입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물론 나는 안 입을 거지만.
재현은 뒷말을 꾹 삼켰다.
백야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는 걸 깨달았다.
“……삐졌어?”
“별로.”
지한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앞 좌석에서 야유가 들려왔다.
“삐지셨네~!”
“야, 네가 책임지고 우리 형님 기분 풀어드려라.”
“그래, 이참에 재롱 한번 부려봐.”
“무슨 재롱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얼굴을 찡그리던 백야는 지한을 의식하고 다시금 표정을 풀었다.
그러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지한에게 사과했다.
“미안.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알지?”
눈치를 보는 백야는 퍽 귀여웠다. 이 맛에 율무랑 청이가 백야를 가만히 못 내버려 두는 건가 싶을 만큼.
지한이 피식 웃으며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알아.”
그런데 사과를 받아주자 이번엔 더한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 형님, 그건 아니죠! 그냥 넘어가면 어떡해요. 애교 953종 세트는 봐야지.”
“맞아. 이건 저희가 친구로서 인정 못 해요.”
“지한이가 괜찮다는데 너희가 뭔데 이래라 저래야.”
백야가 발끈하며 재현과 유경의 귓불을 잡아당겼다.
“아아…!”
“아야, 아야. 야, 사고 난다! 사고…!”
유경의 엄살에 손을 놓아준 백야는 앞발을 털며 허세를 부렸다.
“까불고 이써.”
근엄한 척을 해봤자 귀여울 뿐이었지만 본인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던 지한은 문득 목적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용인이요. 민속촌!”
민속촌이라면 백야와 율무가 사극 촬영을 할 때 자주 가던 곳이었다.
“예전에 백야가 사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좋아 보이더라고요.”
유경은 원래 여자친구와 함께 가려고 했지만, 최근 실연을 당해 이 녀석들과 같이 가는 거라며 TMI를 늘어놓았다.
갑작스러운 TMI 공격에 또양이의 동공이 요동쳤다.
반면, 이미 유경의 실연 스토리를 열 번도 넘게 들은 재현과 백야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리액션을 할 뿐이었다.
“아이고~ 슬프다.”
“흑흑. 야, 우회전!”
눈가를 훔치며 우는척하던 백야가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로써 유경의 말엔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증명됐다.
“내비게이션을 좀 보라고.”
“어허. 모든 도로는 이어져 있거늘. 도로아미타불~”
유경은 재현의 잔소리를 가볍게 튕겨냈다.
민속촌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한복대여점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야, 우리도 한복 입을까?”
아니나 다를까 유경이 넌지시 제안해왔다.
“오! 저기 프리미엄 한복 대여! 3벌 빌리면 한 명은 공짜래.”
“거, 프리미엄 되게 좋아하네.”
재현은 비아냥거리면서도 이미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선 곳에는 전통 한복부터 퓨전 한복, 테마 한복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어서 오세요~ 남자 넷? 하이고~ 다들 훤칠하니 잘 생겼네. 연예인?”
“하하. 아니에요.”
백야가 아니라며 겸손을 떨었지만, 사장님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닌데, 연예인 같은데~? 아무튼 우리 집 한복 예쁜 거 많아요. 천천히 둘러보고 말해줘요.”
“넹.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배려에 네 사람은 각자 흩어져 원하는 한복을 고르기 시작했다.
재현은 곧장 곤룡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유경은 주저 없이 사또복을 골랐다.
“한백야. 넌 이거 입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옷을 고르던 중, 분홍색 한복을 발견한 지한이 백야에게 한복을 추천해 주었다.
“아니야. 나는 이거 입을래.”
백야는 어디서 허름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옷을 골라왔다.
거지 옷이었다.
“왜 그런걸…?”
“나 이거 꼭 한번 입어보고 싶었어!”
활짝 웃는 얼굴이 너무 해맑아서 지한은 차마 말리지 못했다.
“너는? 다 골랐어?”
“아직.”
“내가 골라줄까? 아까 괜찮은 거 봤는데.”
백야는 화사하고 밝은 옷들을 다 제쳐 두고 개중 제일 시커멓고 칙칙한 옷을 꺼내들었다.
“자객이야! 완전 멋있지!”
확실히 거지보단 나아 보였다.
“네가 입어.”
“아니야. 난 이거 입을 거야. 너 입으라고.”
백야는 검은 한복을 지한의 몸 위로 대보더니, 이내 딱이라며 품에 강제로 안겨주었다.
* * *
분장을 마친 네 사람은 서둘러 민속촌 안으로 입장했다.
붉은색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재현이 뒷짐을 지며 선두에 섰고, 그를 호위하듯 알록달록한 사또복을 입은 관찰사 유경이 뒤를 따랐다.
대열의 후미에는 얼굴을 반이나 가렸지만 호리호리한 슬렌더 몸매를 뽐내는 자객 지한이 조용히 따랐고, 제일 끝에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야가 세 사람을 쫄래쫄래 쫓았다.
“얘들아, 이거 먹고 싶으면 말해. 알겠지?”
백야는 품에 바가지를 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사장님께서 출출할 때 먹으라며 넣어주신 초콜릿 한 움큼이 들어있었다.
커다란 안내판 앞에 멈춰 선 네 사람은 지도와 공연 안내를 보며 대략적인 일정을 계획했다.
“풍물한자락, 삼도판굿, 전통 줄넘기 대회. 이야~ 아주 알차구만? 놀이 기구도 무료래!”
유경은 제가 아니었다면 서울 촌놈들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며 으스대기 바빴다.
“우와! 나 저거! 줄넘기 대회 나가고 싶어!”
백야는 개중에서도 줄넘기 대회가 끌리는지 지한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폴짝폴짝 뛰었다.
[☆전통 줄넘기 대회☆상품 : 쌀 한 가마]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꽤 괜찮은 상품이긴 했지만, 글로벌 아티스트인 데이즈가 탐낼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재현은 설마 하는 마음에 지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숙소에 쌀이 없나요?”
임금님께선 여차하면 큭팡으로 당장 쌀을 주문해 줄 기세였다.
“아니요. 많아요.”
“그런데 쟤는 왜…….”
“우왕! 얘들아, 이천 쌀이래! 엄청 좋은 거 아니야? 이거 명품이잖아~!”
옷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거지 옷을 입더니 진짜 거지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