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501
외전 90화
* * *
“봉쥬르!”
야외석으로 나간 백야는 제가 아는 유일한 프랑스어로 손님을 반겨 주었다.
두 남성은 영국에서 왔으며 근처를 지나가다가 카메라가 많은 게 신기해 보여서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백야는 데뷔 3년 차 때까지만 해도 극심한 영어 울렁증을 앓았으나, 빌보드 진출 이후 꾸준한 영어 공부를 통해 기본 회화는 가능한 실력으로 거듭났다.
이는 극성맞은 집사의 대단한 학구열 때문이었다.
잠들기 전 영어 동화책 낭송부터 너튜브 영어 자막 활성화는 기본이었고, 미국에선 무조건 영어로만 말해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까지 만들어 놔 한때는 햄스터를 병들게 할 뻔하기도 했다.
영어 우울증.
듣도 보도 못한 병명에 ‘미국 숙소에서는 영어로만 말하기’는 폐지됐지만, 솔직히 효과는 그중에서 제일 좋았다.
지금 나누는 대화도 그때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 메뉴.”
첫 손님맞이인데도 백야는 테이블 세팅을 능숙하게 해냈다.
“천천히 보고 말해 줘.”
백야는 싱긋 웃으며 손님의 주문을 기다렸다.
메뉴판을 살피던 남자는 백야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했다.
“음…. 불고기 김밥이 맛있어. 그리고 궁중떡볶이도 맵지 않아서 괜찮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하나씩이랑 레드와인 두 잔 주문할게.”
“고마워. 금방 준비해 줄게.”
메뉴판을 회수한 백야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첫 주문 접수에 성공했다.
가게 안으로 돌아온 백야는 커피를 내리고 있는 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몰래 브이를 그려 내며 배시시 웃었다. 마치 ‘저 해냈어요!’라고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곧장 주방으로 향한 백야는 유연에게 주문서를 전달했다.
“주문이요~”
“네가 받았어?”
“응! 나 영어 완전 잘해. 왜 잘하지?”
“공부 열심히 했잖아.”
백야는 신이 나는지 유연에게도 자랑했다. 그리곤 곧장 와인 서빙을 위해 진우의 옆으로 돌아갔다.
“형, 레드와인 두 잔 따라 갈게요.”
“할 수 있겠어? 그거 뚜껑 따기 힘들 텐데. 있어 봐. 내가 이것만 하고 해 줄게.”
“괜찮아요. 저 힘 세요. 조카 태어난 뒤로 운동 열심히 했거든요.”
실제로도 무거운 나무 테이블을 번쩍번쩍 들어 옮기던 백야였다.
빈말이 아닌 듯 백야는 코르크 마개를 능숙하게 따 냈다.
힘을 주는 순간, 걷어 올린 셔츠 아래로 팔 근육이 부풀며 힘줄이 잠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형 얼마나 따라야 되는지만 알려 주세요. 반만 채우면 돼요?”
“반 조금 넘게.”
“넹. 감사합니다~”
진우의 조언대로 레드와인을 준비한 백야는 쟁반에 받쳐 다시 야외석으로 향했다.
“와인 먼저 줄게.”
태어나서 알바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을 듯한 인상인데 능숙하게 해내는 걸 보며 스태프들도 신기해하던 참이었다.
백야가 다가올 때부터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작업 멘트 같은 친구의 발언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경악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영화 대사 같은 건 뭐야?”
“닥쳐. 정말로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
자신을 놀려 대는 친구에게 발길질까지 하며 발끈하던 남자는 순간 말문을 잃으며 넋을 놓아 버렸다.
“세상에. 당신 혹시…?”
더는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백야는 순순히 긍정했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걸?”
백야가 싱긋 웃자 남자는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미친 듯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악! 아악! 미쳤어! 이건 진짜 미쳤다고! 너…!”
친구의 이상 반응에 백야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친구 역시 뒤늦게 데이즈를 알아보고는 함께 비명을 질러 댔다.
난데없는 소란에 주변을 지나던 관광객들은 물론, 진우와 유연까지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뭔데. 너 괜찮아?”
“별일 아니야.”
백야가 어색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하긴. 이 작은 프랑스 마을에서 인하트 팔로워 수 6천만 명이 넘는 세계적인 스타를 만날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저희가 흥분한 사이 데이즈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을 확인한 남자는 어느새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세상에! 당신은 유욘?!”
“제발 우리랑 사진 한 번만 찍어 줄 수 있어? 여기에 있는 음식 다 주문할게. 제발.”
“주문 안 해도 찍어 줄게. 그러니까 제발 조용히…….”
유연은 남자들의 반응이 부끄러운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그 시각 한국에선 대환이 꾸린 원정대가 인천공항에 모였다.
멤버는 대환, 민성, 그리고 유경이었다.
‘염병. 이 개뜬금 없는 조합은 뭐지?’
민성은 조금 현타가 온 듯한 얼굴로 제 앞의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왓! 안녕하세요! 먼저 연락 주셔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반갑습니다. 대환이에요.”
“저는 백야 친구 김유경이라고 합니다. 민성이 형,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한 손에 액션 캠을 든 유경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두 사람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민속촌 상남자에서 서체대 네임드가 된 그는 최근 개인 너튜브 채널 ‘달려라 유갱’을 개설해 찐관종으로 거듭났다.
현재 구독자 수는 5명.
부모님과 재현, 그리고 백야, 율무가 채널의 유일한 구독자였다.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됐는데 콘텐츠가 참 좋더라고요. 민성이한테 말했더니 마침 잘 아는 분이시라길래.”
“맞아요! 제가 백야 베프거든요. 한 명 더 있긴 한데 걔는 좀 재미가 없어서.”
정상인이라는 뜻이었다.
“하하! 친구분 너무 재밌으시다.”
염병. 방금 대화의 어디가 재미있었죠?
민성이 짜게 식은 눈으로 대환을 몰래 흘겨봤다.
“그런데 제 채널은 어떻게 알고 연락 주신 거예요?”
유경은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았다.
“알고리즘 아닐까요?”
“우왓! 제가요?! 대박!”
알고리즘은 개뿔.
저와 유경은 대환의 빅 픽처에 이용되는 것뿐. 이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짜여 있었다.
민성은 이중인격이 의심되는 선배를 몰래 흘겨봤다.
“그런데 저는 아직 영상도 하나밖에 없고 조회 수도 20인데요?”
개중 15번은 유경이 스스로 재생한 것이었다.
“콘텐츠가 너무 좋던데요?”
“정말요?”
‘달려라 유갱’의 유일한 영상은 3분짜리 개노잼 탕후루 먹방이었다.
너튜브 소개에는 ‘일상 브이로그’라고 적어 놓곤 정작 올라온 영상은 탕후루 먹방이라니….
망스멜이 가득했지만 본인만 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상에 달린 유일한 댓글은 재현의 것이었는데, 너무 적나라한 나머지 보는 사람이 다 상처를 받을 정도였다.
– 개노잼. 3분 아끼세요
재현은 아직 채널이 알려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당장 채널을 삭제하라 했으나 유경은 듣지 않았다.
연예인 병은 완치됐지만 헛바람이 제대로 들은 탓이었다.
물론 대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유경을 앞세워 백야를 보러 갈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저한테도 떴으니까 다른 분들 너튜브에도 뜨지 않을까요?”
“우왓!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가증스러운 사람.
어떻게든 유경과 재현, 둘 중 한 명과 접점을 찾아내라며 저를 닦달할 땐 언제고….
민성은 대환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저도 대환의 원정대에 포함된 이상, 백야의 화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자신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대뜸 숙소에 쳐들어와선 솔로 곡을 써 줄 테니 자신의 동료가 되라며 협박하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은 이상해도 그의 곡은 최고였으니 민성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마 사정을 말하면 백야도 분명히 정상 참작해 주리라.
‘아아… 관세음보살.’
며칠 전,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녀온 민성은 스님이 해 주신 좋은 말씀을 떠올리며 멘탈을 다스렸다.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요?”
“넵!”
백야가 에 출연을 결정하던 순간, 함께 있었던 대환은 촬영 장소와 일정은 물론이고, 출연진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아보기 시작했다.
솔로 활동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주려고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 놨더니, 애먼 놈이 자신의 복숭아를 서리해 갔다.
그 순간 대환의 프랑스행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친친여? 아무튼 이거는 언제부터 계획하셨던 거예요?”
“제법 오래전에 계획했던 건데 유경 님이 제 첫 번째 게스트예요. 잘 부탁드려요.”
하필이면 백야가 외국에 나가 있는 바람에 1화부터 해외여행이 됐다며 대환이 난감한 척했다.
“앗. 저야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저 힘쓰는 거 하나는 진짜 자신 있어요.”
돈도 안 내고 공짜로 프랑스까지 가는데 힘쓰는 것쯤이야!
체대생은 가진 게 힘뿐이라며 여행하는 동안은 형님들의 짐꾼을 자처했다.
“아니요. 따로 힘쓸 필요는 없고 혹시라도 백야가 날뛰면 진정시키는 것만 부탁드려요.”
“어휴~ 그건 제 전문이죠!”
대환은 유경의 질문에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대외용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민성은 대환이 친절한 척 굴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 진짜 누구세요?’
아무튼, 친친여.
친구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의 줄임말로 대환이 급하게 기획한 너튜브 콘텐츠였다.
대체 친구도 없이, 친구의 친구와 왜 여행을 떠나는 건지 민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유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민성은 유경을 빤히 바라봤다.
‘쟤는 대체 어떤 소리를 듣고 왔길래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걸까.’
딱 봐도 대환은 폼으로 셀카봉을 들고 있을 뿐, 아마 발로 찍어도 저거보단 나을 테다.
반면 유경은 팔이 아프지도 않은지 처음 봤던 그 자세 그대로 저희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본인 채널에 올릴 영상인가?’
하지만 제가 아는 유경은 백야를 이용해 팔자 한번 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질 나쁜 녀석이 아니었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고로 백야의 지인인 게 들통났지만, 그의 인하트 어디에도 백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달려라 유갱’도 마찬가지였다.
백야와 찍은 영상을 올렸다면 벌써 골드 버튼을 받고도 남았을 텐데 유경은 그러지 않았다.
민성은 기회를 봐서 슬쩍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대환이 제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야, 괜찮아? 어제 잠 못 잤어?”
“어? 아니야. 가자.”
그사이 수속을 마친 세 사람은 출국 심사를 위해 검색대로 향했다.
민성이 유경과 대환의 환장할 것 같은 대화를 들으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때마침 대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잠시만요.”
발신자가 백야인 걸 확인한 대환은 얼른 내용을 확인했다.
대환이 남겨 놓은 까톡 아래로 백야의 셀카가 대문짝만하게 떠 있었다.
[대환 : 도착하면 사진 좀 보내 봐] [대환 : 구경이나 하게] [백야 : (사진)] [백야 : 됐지?]“푸흡. 푸하하하!”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은 셀카였다.
의 촬영지가 프랑스 남부의 무스티에 생트 마리라는 것까진 알았지만, 아무리 대환이라도 정확한 가게 위치까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마을에 도착해서 수소문하면 충분히 알아낼 순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 놓은 것이었는데….
백야가 촬영장 사진이 아닌 자신의 셀카를 보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배를 잡고 박장대소하던 대환은 어느새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진짜.”
“응…. 미친 것 같아…….”
‘무슨 일인데 그래?’
민성은 속마음과 입 밖으로 뱉어낸 말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떨떠름한 눈으로 대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