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
신인인데 천만배우 1화
살고 싶어
“연예가세상-! 안녕하세요. MC 정이입니다. 오늘은 충무로와 여의도를 거세게 뒤흔들고 있는 신(神)인, 신인 배우! 하무영 씨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MC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앵글이 움직였다. 스무 살 중반은 되었을까.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가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하무영입니다.”
“무영 씨! 요즘 정말 바쁘실 것 같아요.”
“그래도 정이 님 보려고 시간 냈습니다.”
“어머, 세상에. 피디님! 오늘 정이 심쿵사하면 산재 처리해 주세요. 아시겠죠?”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 인터뷰.
“자아. 하무영 씨. 신(神)인 배우라는 별명을 얻으셨는데, 혹시 아시나요?”
“네. 얘기 들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부르는지도?”
MC의 장난 어린 말에 무영이 민망하게 웃었다. 듣기 좋은 저음과 세련된 제스처. 스태프는 속으로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는 칭찬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잘 소화해 낸 게 아니죠.”
-신들린 줄 알았다.
-빙의한 것처럼 미친 연기.
-이게 신인이라고? 말도 안 돼. 신(神)인이겠지.
-하무영은 인물을 현실로 불러냈다. 그가 아닌 다른 배우는 전혀 상상 불가. 대체 불가. 대한민국 연예계에 축복이 내려왔음.
-여러분 놀랄 거 없습니다. 얼굴을 보세요. 저게 인간입니까?
-대학도 서연대라죠. 탈 인간 맞는 듯.
등등등.
네티즌들의 댓글이 화면에 떠오르자, 무영은 아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그 모습을 담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흐뭇하게 웃었다.
“입소문으로 박스오피스 역주행 신화를 만든 장본인이세요. 데뷔작인 [역병>이 400만, [거리의 햇빛>이 700만 관객 동원, 그리고 첫 드라마 주연 [너는 별, 나는 별>이 시청률 32%를 찍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게 모두 올해 일어난 일이라니, 말이 됩니까? 예?”
MC는 흥분해서 큐시트를 날려댔다. 개그맨 출신인 그녀의 시그니처였다. 정말 놀라거나 감탄했을 때만 나오는.
“좋은 작품과 좋은 분들을 만난 덕입니다.”
“겸손하시기까지! 자 그럼 본격 탐구 시간에 들어가 보죠. 무영 씨는 언제 처음으로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습니다.”
“호오. 무슨 계기가 있으셨나요?”
무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았어요.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요.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라면 안 되겠다, 정말 죽겠다 싶었던 어느 날…… 누군가 알려줬습니다. 연기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며.”
그의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추억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시작했죠. 살려고.”
* * *
짜악!
“이 X발 재수 없는 새끼!”
짜악!
“악마 같은 새끼!”
술 냄새가 잔뜩 풍기는 매질. 입가가 찢어지고 코피가 터졌다. 하지만 오늘은 물러설 수 없다.
“어디 다시 말해봐!”
“……졸업하면 나가겠습니다. 엄마가 제 이름으로 남겨준 통장 돌려주세요.”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짜악!
인사불성이 된 저 남자는 내 계부다.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약 5년간 함께한.
그러니까 내게는 살아 있는 지옥 그 자체인 존재.
“지금까지 너 입히고, 재우고, 먹이느라 다 썼다! 어쩔래?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누굴 호구 X신으로 아나.”
그가 내 멱살을 위협적으로 붙잡았다. 머리가 어질거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부모 죽인 새끼 살펴줬더니 어디서 눈깔을 딱 뜨고 돈 내놓으래?”
“……사고였어요.”
“너만 아니었으면 없었을 사고였지. 악귀나 몰고 다니는 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봤다.
잡귀도 잡귀지만 특히나 뚜렷이 보이는 기현상(奇現象). 스모그에 가까운 검은 형체가 떠오를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사달이 났다. 엄마의 죽음 역시 그중 하나.
“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널 왜 거뒀는데?”
계부가 내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토할 것 같다. 귀에서 자꾸 이명이 들렸다.
“그런데 뭐? 졸업하면 나가겠습니다? 까불지 말고 신내림 받을 준비나 해.”
어렸을 때부터 점집을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무당들은 하나같이 고개만 갸웃거렸지.
-신기(神氣)는 있으나 뭔가 결이 다른 아이.
-신기(神氣)는 있으나 모실 신(神)이 없는 아이.
성인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나타날 것이니, 그때까지 지켜보자는 말만 해댔다. 계부는 내 영험함이 폭발하는 것에 기대를 건 셈이다.
“싫어요.”
“뭐이, X발?”
“신내림 받기 싫다고요.”
나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 저항했다. 지금 끊지 않으면 분명 저자는 죽을 때까지 내 목을 잡고 흔들리라. 신당에 묶여 평생 개처럼 살리라.
“그만 하세요. 제발.”
“하! 이놈 봐라?”
퍼억!
계부는 벽에다 내 머리를 찧은 다음, 나뒹구는 소주병 주둥이를 잡아 깼다.
째앵!
날카로운 유리가 어둠 속에서 번득였다.
극도의 공포심 때문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애미나 자식이나, 말 안 들어서 매 버는 건 똑같아요. 무영아. 내가 널 너무 풀어줬나 싶다. 응?”
그가 다가오며 히죽 웃었다.
악마였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반반한 얼굴 좀 긁어줄까? 밖에 못 돌아다니게. 그러면 좀 얌전해지겠어?”
나는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손끝에 느껴지는 재떨이. 덜덜 떨며 그걸 쥐는 순간이었다.
“아.”
나타났다.
검은 스모그가 천천히 피어올라 계부의 몸을 감쌌다. 끔찍하지만 한편으론 황홀했다. 지옥에서 피어나는 유황 연기가 그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서.
“뭐야.”
계부는 바뀐 내 눈빛을 알아채고, 제 몸을 더듬거렸다.
“와, 왔어?”
술이 확 깨는 목소리였다.
그것이 한번 피어오르면 예외가 없었다.
작게는 사고부터 크게는 죽음까지.
그게 어떤 것일지는 나도 모르고.
“X발놈아! 왔냐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계부는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한껏 흥분해서 내게 달려들었다.
“어, 없애 버려! 쫓아내!”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가.
나는 그저 볼 뿐인데.
가능했으면 엄마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다.
“이 재수 없는 새끼-!”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볼 수 있어서 그것들이 오는 건지. 아니면 그저 오는 것을 내가 보는 건지.
하지만 흥분한 계부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은 모양.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나는 재떨이를 휘둘렀다.
퍼억!
“으아악!”
그의 코에서 뭉근한 피가 터졌다. 나는 맨발로 반지하 계단을 뛰쳐 올라갔다.
“거기 서어-! X바알!”
“허억- 허억-”
거리는 적막했다. 계부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만 같아, 멈출 수 없었다.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강했으니까.
“우에엑-”
그리고 도착한 인근 공원.
나는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을 게웠다. 위액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아까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너무 어지럽다.
“젠장.”
몸을 가눌 수 없다.
움직여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흐릿한 시야 속 보이는 공원 시계.
곧 자정이었고, 내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으며, 그 집에서 도망쳐야 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학생.”
그때 누군가 내 눈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성별도, 나이도 모호한 신비스러운 목소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런. 많이 힘들었겠네.”
네. 죽을 것 같았어요.
이제 진짜 죽어가지만.
“인생이 참 박하다. 꼬여도 제대로 꼬였어.”
왜 저만 이런 거죠?
다들 평범하게 잘 사는데, 왜 저만 이래요?
“왜냐하면, 네 몸에는 신(神)이 들어가 있어 그래. 평범한 운명이 받아내질 못하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신(神)?
“살고 싶니?”
당연하죠.
“이대로 살아난다 해도 네 팔자는 변하지 않아. 여전히 지옥 그 자체일 텐데.”
아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X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대신 방법이 있긴 있어.”
가벼운 웃음이 함께 울렸다.
“네 인생 대신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 삶을 빌려 산다는 표현이 맞겠네.”
아까부터 자꾸 아리까리한 말만 하는데, 좀 쉽게 설명해 봐요.
“무영(無影). 누군가의 그림자에 들어가, 네 그림자를 지우란 뜻이란다.”
내 이름 한자 그거 아닌데.
“이번 기회는 생일 선물. 잘해낼 거라 믿어. 게다가 넌 특별한 눈까지 가졌잖니.”
그것 때문에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잖아요.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나는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쳐 버렸다.
* * *
“세상에!”
요란하게 나를 흔드는 청소부. 기겁하다 못해 질색한 표정이었다.
“워째 이런 차림으로 여기서 이래? 이거 구급차 불러야 쓰겠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나름 괜찮았다.
정신을 잃은 그 공원이다.
피로 얼룩진 옷 하며 화끈거리는 상처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누구한테 맞았어? 경찰 부를까?”
“……지금 몇 시예요?”
“여섯 시 조금 넘었지. 아이고. 일단 이거라도 입고 있어. 자자. 이것도 덮고.”
청소부는 제 겉옷을 벗어주며 신문지까지 덮어주었다. 주위에 소복이 쌓인 눈. 죽지 않고 산 게 기적일 정도다.
“으이! 여기 한빛공원인데요!”
바스락거리는 신문지를 내려다봤다. 정신이 멍했지만, 어느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한 문장.
유명 배우의 인터뷰 기사였다.
[연기의 매력? 인물의 삶을 빌려-]“아니. 수랑동 한빛공원이요! 네? 벌써 출발했다니요? 무슨 소리세요? 전 방금 처음 전화한 건데.”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기회. 현실이 너무 싫을 때, 그럴 때면 연기를 한다. 인물과 동화되는 순간, 나는 그들 인생에 숨어들어 스스로를 지울 수 있다.]전기충격을 맞은 것같이 엄청난 전율이 일었다.
의문의 목소리가 했던 말과 똑 닮았으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청소부에게 옷을 돌려줬다.
“학생? 괜찮아?”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어! 잠깐만!”
맨발이지만 상관없었다.
술에 잔뜩 취했으니, 분명 지금쯤이면 곯아떨어져 있을 거다. 이 틈에 짐을 챙겨 나와야 했다. 어디로든 도망치리라. 도망쳐서, 살아가리라.
‘연기하자.’
“허억- 허억-”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타닥타닥!
‘연기를-!’
뜀박질 치는 동안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드디어 길을 발견한 것 같았다. 가여운 나, 하무영을 구제할 길.
“통제하겠습니다. 선 넘지 마세요.”
금세 도착한 집 앞 골목.
경찰차와 주민들이 이리저리 엉켜 소란스러웠다.
엉망진창인 내 꼴을 본 사람들이 흠칫거리며 길을 터줬다.
“왜 저렇게 된 거래?”
“뻔하지. 술 먹고 자빠진 거 아니겠어?”
“어제 엄청 추웠잖아. 눈까지 내리고.”
“그런데 저 꼴로 쓰러졌으니. 쯧쯧.”
“앞으로 넘어졌나? 코가 깨졌네.”
“구급차는 괜히 불렀다.”
수군거리는 인파 틈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대자로 뻗어 굳어 있는 계부의 시체. 경찰이 그 위로 흰 천을 덮었다.
“학생?”
나는 홀린 듯이 앞으로 걸어갔다.
성인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거라던, 무당의 말이 사실이었다.
‘저건 또 뭐야?’
놈의 죽음보다 내 시선을 잡아끄는 낯선 기현상(奇現象). 계부의 시체 주위로 영롱한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스모그와는 정반대의 기운이다.
행운.
나는 직감적으로 그게 무엇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아챘고, 계부의 죽음은 내 인생 첫 행운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