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01)
신인인데 천만배우 101화
시너지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온갖 사이드메뉴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메뉴판 보지도 않고 ‘쉐프가 추천하는 거 다 주세요’라던 준호. 저러다 돌아가서 한 대 맞는 건 아닌가 몰라.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하지만 그건 무영이 알 바 아니다.
그는 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연신 입에 넣어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거리의 햇빛> 대본.
“넌 그럼 거의 캐스팅 확정인 거네?”
“감독님이 집 앞까지 오셨는데 우연히 만났거든.”
“찾아왔는데 우연이 아니지. 필연이지.”
“아무튼 그렇게 됐네!”
그리 대꾸하며 다시 고기 한 번 콕!
보라는 음식을 입에 거의 못 대며 꾸물대기만 했다. 옆에서 고기를 썰어주는 준호가 물었다.
“작품 하고 싶어서?”
“어? 으응…….”
“무영이가 다리 놔주면 안 되나?”
안 될 거 뭐 있나?
무영은 괜찮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캐스팅은 감독님 몫이지만 소개쯤이야 뭐. 어떤 역할 하고 싶은데?”
여자 역은 간호사와 트럭 운전사. 이렇게 두 개인데, 트럭 운전사는 나이가 중년 여성인지라 안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간호사.”
“역시. 그것밖에 없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누가 채갈까 안절부절못하며 계속해서 글자를 눈에 담는 보라. 우리끼리만 있는 룸인지라 자리가 편한 게 다행이다.
“그럼 너 학교랑 병행하게?”
“응. 영화는 그래도 괜찮아. 드라마는 진짜 힘들었는데, [역병> 때는 할 만했거든. 이번 거는 주로 밤에 많이 찍을 것 같기도 하고.”
주연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촬영 기간이 두어 달 정도라 하는 것 보니, 촬영 여건만 맞춰지면 작업 자체는 무리가 없을 거다.
“그러고 보니 시간 진짜 빠르네. 벌써 개강할 때가 다 됐어.”
곧 있으면 3월. 1년이란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짧은 그 기간에 담긴 일들은,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멋지고 황홀했지만.
“학교 가면 애들이 많이 알아보겠다?”
“안 그럴 것 같은데. 나 완전 아싸잖아.”
“……뭐라는 거야. 기만자 새끼.”
준호가 짜증 난다는 듯 그의 접시에 놓인 고기를 뺏어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준호가 먹던 음식을 제 앞으로 끌고 오는 무영.
두 사람은 급식실에서 장난치던 것처럼 왁자지껄, 소란을 떨어댔다.
지이잉. 지이잉.
“어? 잠만. 매니저 형이다.”
무영이 휴전을 선언하며 손을 들었다.
“네. 형. 아아. 진짜요?”
뭔가를 들으며 보라를 힐끔 쳐다보는 무영. 보라는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아. 태석이 형도 한 다고요? 잘됐다. 그런데요, 형. 보라 알죠? 네네. 준호 여자친구. 보라도 오디션 보고 싶다 하는데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몇 마디가 오고 가고, 무영의 입에 미소가 방긋 걸렸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뭐라셔?”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냉큼 물어보는 보라.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처음 보는 표정이다. 시니컬한 성격 어디 갔나 몰라.
“나는 거의 99.9% 출연 확정. 다음 주에 감독님이랑 제작사랑 마지막 미팅하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 도장 찍을 건데, 우리 회사 소속 배우 중에 태석이 형이라고 있거든. 형은 호스트 역에 지원해서 오디션 볼 거래.”
“태석? 아아. 그 근육 엄청 많으신 분?”
“너도 같이 껴서 가면 될 것 같아. 형이 미리 말해 놓는다는데?”
그 말에 보라가 천천히 입을 벌리며 기뻐했다. 뭐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뿜어내는 기운이 확 달라졌다.
“고, 고마워.”
“영화 볼륨이 작아서 그런가 봐. 감독님도 이게 데뷔작이고.”
“데뷔작이라고? 설마.”
그런데 이런 시나리오를 썼단 말이야?
죽은 남편 대신 트럭을 몰게 된 아주머니. 마초적인 외향과 달리 속은 부드러운 호스트. 속옷만 훔쳐 파는 속옷 도둑. 그리고 보라가 한눈에 반한-
“다이어트해야겠다.”
“또?”
허언증 있는 간호사. 얽히고 얽힌 네 명과 그들의 중심에 있는 뱀파이어. 사건의 얼개가 촘촘하니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
“이것만 마지막으로 먹어. 아-”
“아-”
준호는 그런 보라를 안쓰럽게 보며 고기를 먹여줬다. 어라, 그거 무영이 고긴데!
“다음 주 언제인데? 밤낮도 바꾸고, 다이어트도 하고, 좀 신경질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겠어.”
“신경질적인 건 안 만들어도 될걸?”
따악!
준호의 깐죽거림에 보라가 딱밤을 날렸다.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하던 무영.
“다음 주 수요일. 나는 학교에서 출발할 것 같아.”
* * *
서연대학교.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주간인지라, 학교는 평소보다 한적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복도에 서 있는 무영.
“헐. 하무영 아니야?”
“어디?”
“저기, 키 큰 남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시선이 쏟아졌다. 에어팟만 아니었으면 ‘네, 저 맞습니다!’ 하고 인사해 줬을 거다.
“하무영!”
“어? 왔어?”
그때, 과대와 그 무리가 무영의 팔을 치며 불렀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 반갑기만 하다.
“월클 슈스~”
“아. 뭐래. 빨리 족보 주세염.”
“그래. 중고 1학년아. 선배가 하사하는 거니까 잘 보고 공부해야 한다.”
한 학기 휴학해서 여전히 1학년인 무영과 달리 그들은 2학년이었다. 덕분에 전공 족보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지. 무영은 고맙다며 웃으며 인사했다.
“수업은 다 끝났어?”
“그러면 우리 밥 먹자.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데 있거든. 거기 진짜 맛있음.”
물어보고 듣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역병>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신드롬 일으킨 [너는 별, 나는 별>까지! 하지만 무영은 시계를 확인하며 안타깝게 웃었다.“나 바로 가봐야 해. 일 있거든.”
“일? 또 작품 들어가?”
“응. 그렇게 됐어. 그래도 이번 학기는 꼬박꼬박 나올 수 있으니까 자주 보자.”
“잠깐!”
그러자 과대가 손으로 그의 앞을 비범하게 막았다.
그뿐인가. 무리 역시 차차작-! 날렵하게 가로막았다.
“뭐 해?”
“알려줄 것이 있다. 나는 2학년 과대고, 얘는 이번 연도 학생회장. 얘는 총무. 그리고 얘는 부국장이여.”
엥? 무슨 일이래? 왜들 감투 하나씩 달고 있어?
무영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뭘 뜻하는지 아는가, 친구여?”
“끼리끼리 해 먹었어?”
“임마! 누가 뭘 해 먹어. 다 투표로 뽑힌 거라고!”
“앗. 실언했네요. 죄송.”
“학과 행사가 모두 우리 소관이며, 우리는 그걸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뜻하지. 암.”
그리고 슬그머니 그의 손에 들린 족보를 턱으로 가리켰다.
“김창오 교수님 깐깐한 거 알지?”
“모르지. 안 들어봤는데.”
“깐깐해. 그리고 필수로 들어야 하는 [문화의 기초> 역시 신입생들의 눈물로 바다를 이루지. 원한다면 족보는 물론이고, 과제까지 도와주겠소. 그러니-”
“오! 이거, 뭔지 알겠다.”
“MT 가자! 축제 나와줘! 제발!”
“오예! 좋아! 진짜 재밌겠다!”
비범하게 한 부탁과 달리 대답은 너무도 가벼웠다. 김이 쭉 빠질 정도로.
과대와 무리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진짜?”
“나 1학년 때 제대로 한 게 없잖아. 꼭 해보고 싶었어. 근데 촬영이랑 겹치면 못 하고, 대신 시간 비면 꼭 갈게. 와. 진짜 재밌겠다.”
술게임, [너는 별, 나는 별> 멤버들이랑 했을 때 얼마나 재밌었다고! 무영이 콧김을 내뿜으며 기대에 눈을 반짝였다.
그때, 고경민의 전화가 들어왔다.
“어? 야. 나 진짜 가야겠다.”
“어? 어어.”
“그럼 다음에 봐! 거기 식당 좌표 찍어주고!”
무영은 손을 흔들며 계단을 후다닥 뛰어내려갔다. 오고가던 사람들 모두 무영을 힐끔거리며 속닥거렸으나, 그는 알지 못했다.
“와. 쟤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다행이다. 여전히 사람 좋아.”
“솔직히 저 정도면 거드름 좀 피워줘야 밸런스가 맞는 거 아니냐? 완전 하하 유니버스네.”
“잘생기고 인기 많은데, 쟤만 몰라.”
그들은 웃으며 고개만 절레절레.
그러는 와중, 무영은 정문에 도착한 고경민의 차에 올라탔다. 뒤에는 태석과 보라까지 함께 타고 있었다.
“무영이!”
“형! 안녕하세요. 보라 하이!”
즐거워 보이는 태석과 달리 보라는 좀 긴장된 모습이다. 마포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손끝만 뜯어대니.
끼익-
“다 왔다.”
“여기에요?”
진짜 작은 건물이네.
몽네뜨도 작다 싶었는데, 여기는 더 작아.
안으로 들어가니 데스크도 없고 바로 사무실이었다.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며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하무영 씨. 태석 씨. 그리고 보라 씨 맞으시죠? 얘기 들었습니다. 저는 총괄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은 안쪽에 계시고요, 잠시만요. 사장님!”
“오오! 예예! 안녕하세요!”
그의 부름에 후다닥 어디선가 나오는 남자. 사장 직함을 단 것 치곤 굉장히 젊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작은 회의실. 거기엔 배철민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자마자 한 명씩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대본을 각자 앞에 놓고, 본격적인 미팅에 들어갔다.
“혹시 대본 중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을까요?”
적나라한 베드씬은 없다만 뱀파이어인지라 코어한 장면 몇 개가 들어가 있었다.
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무영이 깔끔하게 되물었다.
“없어요. 없는데, 촬영 순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저 25번 씬 진짜 기대되거든요.”
모두가 첫 ‘어둠’에 대한 기억을 나눌 때 회상되는 장면. 뱀파이어는 끈적한 검은색 액체가 가득 찬 곳에서 수십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나중에야 그게 존재 모를 모태의 양수인 걸 알았지만, 당시의 그는 절망과 분노, 한탄, 괴로움 속에서 온갖 분을 삭혀야 했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라요.”
반질거리는 검은색 잉크 혹은 기름인지 뭔지 모를 끈적한 곳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는 뱀파이어. 기름에 절은 까마귀처럼 온 절규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 저도 그 장면 정말 좋아합니다.”
“아. 그리고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89번 장면에서요…….”
무영의 서문을 시작으로 감독과 배우의 캐릭터 분석이 들어갔다. 옆에서 그걸 흥미롭게 듣는 태석과 보라. 감독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태석 씨와 보라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 이게, 쌔리 박는 듯 싶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저는 이 캐릭터가 고수하는 의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투리가 심하시네요?”
“고, 고칠 수 있는데-”
“아뇨. 개성 있고 좋습니다.”
감독의 말에 내심 다행이라며 한숨을 삼키는 태석. 보라 역시 자신이 분석한 캐릭터를 나누며 역할에 열정을 보였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간호사의 심리적 불안 증세가 제일 잘 나타난 부분이 아닐까…… 감독님?”
그런데 갑자기 울먹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독.
보라가 당황해하며 그를 불렀다.
“왜, 왜 그러세요?”
“아니. 죄송합니다. 이게, 제 시나리오 보고 다들 하고 싶다 하시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아서요. 믿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감독 만나 고생하실 거 생각하니…….”
스물여덟에 겨우 입학한 예술 전문 대학. 꿈을 찾겠노라 떠난 길이건만, 서른이 되어 겨우 첫 작품을 완성했더라.
그런데 무영과 다른 배우들이 이렇게 호응을 해주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에이. 감독님. 뭐가 별 볼 일 없어요?”
무영이 그의 손을 토닥이며 웃었다.
사람이 참 여리네. 어떻게 이런 사람한테서 그런 스토리가 나왔나 몰라.
“저는 시나리오 보고 고른 건데!”
무영이 위로하자, 제작사 사장이 난감해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감독은 태석과 보라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만, 연기는 직접 봐야지.
“자자. 그러지 말고 우리 간단히 리딩 한번 해봅시다. 세 명이서 동시에 나오는 부분이 있죠?”
“네. 74번이요.”
“좋습니다. 한번 부탁드릴게요?”
그의 제안에 무영과 태석, 보라가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은 태석과 보라와 각자 연기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세 명이서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서로의 시너지가 어떨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