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06)
신인인데 천만배우 106화
플렉스
얼큰하게 취한 이유진 피디가 맥주잔을 기울였다. 포상휴가라 하면 보통 종방 전에 정해지는 게 일반적인데?
무영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다시금 정정했다.
“협찬이라고. 협찬. 애들 모아서 단발성 여행 예능 찍어볼까 하는데, [너는 별, 나는 별> 멤버들이 가면 숙박이랑 비행편 협찬할 수 있다 하더라고.”
“와. 진짜요?”
“어때? 할래?”
예능 여행 프로그램이라 하면 아마 [청춘 발자국>이려나? 무영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로 가는데요?”
“멤버들 확정되면 스케줄 따라서 정해보려고.”
“가면 진짜 막 자유롭게 놀아도 돼요?”
“그럼. 휴가라고 생각해. 휴가.”
비행편이라고 하는 걸 보니 최소 제주도다.
한 번도 하늘을 난 적 없는 무영. 기대에 부풀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자리의 로민에게 애원하듯 설득했다.
“로민아. 우리 꼭 가자? 응? 공짜 여행이 어디야?”
“저도 가능한 되는 쪽으로 볼게요.”
“앗싸!”
기뻐하는 무영을 향해 넌지시 농담하는 카메라 감독님. 그 역시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행기 탈 때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지?”
“에이. 감독님! 제가 그 정도로 촌뜨기는 아니거든요? 대체 언제적 농담이에요?”
“하하! 그렇지? 미안하다. 잘 다녀와. 비행기 이륙할 때 엉덩이 살짝 들어주는 거 잊지 말고.”
“넹? 왜요?”
“그래야 잘 떠.”
“에이-”
“진짜야. 안내 방송으로 나와. 벨트 차면서 엉덩이 살짝 들고 있으라고.”
진지하게 농담하는 카메라 감독님과 미친 듯이 흔들리는 무영의 눈동자. 저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턱이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냈으나, 돌아오는 답이 없네.
“안 들어도 되긴 하는데, 안 그럼 좀 흔들린다.”
“지, 진짜예요?”
“하하하! 얘가 속고만 살았나!”
다들 슬며시 터지려는 웃음을 술로 눌렀다. 농담인지도 모르고 연신 감독님의 주의사항을 경청하는 무영. 그날 밤 참석한 모두, 백상의 승리를 자축하며 끝없이 술잔을 돌렸다.
“마셔어-!”
“부어어!”
“축하한드아. 무영아-!”
“감독님 그 말 벌써 다섯 번째인데요.”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 * *
“진림 선생님이랑 강성배 선생님이요?”
[거리의 햇빛> 리딩이 열리는 날. 무영은 남은 배역에 누가 캐스팅됐는지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진림 선생님은 조연으로만 수십 년, 스크린과 안방을 드나들며 인지도 높으신 분인고, 강성배 선생님은 연극판을 중심으로 반세기 가깝게 연기를 해오신 분이었다.
“그러니까. 신기하지?”
“진림 선생님은 그렇다 쳐도, 강성배 선생님이 영화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나도 그래.”
고경민 역시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무명 감독의 데뷔작치고는 라인업이 꽤나 묵직했다. 그분들도 역시 시나리오의 가치를 알아보고 선택한 일이겠지만.
“우와. 너무 떨리는데요.”
그런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역병> 때는 유나, [너는 별, 나는 별> 때는 연기가 처음인 아이돌 멤버들 위주로 함께했으니까.그야말로 ‘진짜’를 만나는 날이었다.
“리딩하고 식사 자리 있으면 갈 거지?”
“당연하죠. 선생님들이랑 꼭 친해지고 싶어요.”
한두 해도 아니고, 무영의 나이만큼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경력직들 아니신가. 분명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무영이 두근대는 마음으로 콧김을 뿜어내자, 고경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쟤는 참 희한하네. 어른을 불편해하지도 않고.’
좋은 태도였으나, 일반적인 건 아니었다.
세대 차이도 있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옛날 분들이시기에, 불편한 건 당연한 거였다. 고경민 본인만 해도 그렇다. 생각만 해도 좀 부담스러운데.
“우리 가면서 음료수라도 사갈까요?”
“회사에서 준비했을 텐데?”
“그래요? 지금 다 와 가는 거죠?”
“응. 신호만 바뀌면 금방이야. 근데 너 요즘 지갑 자주 찾는다? 자꾸 뭐 사주려고 하고.”
고경민의 말에 무영이 웃기만 했다.
통장에 돈은 계속 꽂히는데, 쓸 곳이 없었다. 집세 나갈 일도 없지 옷이야 본투리에서 매일 신상으로 날아와, 먹는 것 외에는 영…….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저는 이렇게밖에 못 쓰겠어요. 덕분에 준호 살 좀 쪘거든요.”
“매일 배달 시켜 먹어서 그렇지?”
“근데 웃기는 게 시키는 건 전데 준호만 먹어요.”
통장에 아홉 자리 숫자가 찍힐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시콜콜한 무영의 잡담을 들으며 도착한 [거리의 햇빛> 제작사. 역시나 다시 봐도 작은 건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하무영 씨!”
“딱 맞춰서 오셨네요. 신인상 축하해요.”
“앗. 감사합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안쪽으로 들어가자, 태석과 나금동, 보라가 먼저 앉아 있었다.
태석의 스케줄이 끝나고 나금동이 픽업을 해서 온 것이다.
“왔어?”
“다들 일찍 오셨네요.”
확실히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너는 별, 나는 별>은 상업드라마니, 기자는 물론이고 다큐멘터리 홍보까지 찍지 않았던가. [역병> 또한 마이너 영화긴 하지만 출연진과 감독이 빵빵해서 시끌벅적하긴 했다.‘근데 오늘은 자리가 딱 다섯 개뿐이네.’
주·조연 합쳐서 딱 맞게 놓인 의자.
제작사에서 다른 단역들까지 다 수용할 수 없을뿐더러, 비중도 작았기 때문에 이렇게 마련한 듯싶었다.
배철민 감독이 일어서며 그를 반겨줬다.
“오늘 날씨 좋죠?”
“네. 그렇네요. 근데 웬 새로운 대본이에요?”
자리에 하나씩 놓여 있는 새 시나리오. 무영은 가방에서 자신의 것을 꺼내 들었다.
온갖 색깔이 다양한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메모와 손때로 너덜너덜해진 종이.
“전 쓰던 거 봐도 되죠?”
“아. 그게요-”
끼익.
잠시 멈칫거리는 감독. 그때, 두 선생님이 같이 당도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쉰이 조금 넘은 진림 선생님은 트럭 운전사 역할인 중년 여성을. 예순의 강성배 선생님은 속옷 도둑 역할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아하게 인사를 건네는 진림 선생님. 모두 벌떡 일어나 두 분께 고개를 숙였다.
노신사인 강성배가 홀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들 뭐 그래요. 앉아요. 앉읍시다.”
“늦을 줄 알았는데, 딱 맞춰서 왔네요.”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다.
평생 한 바닥을 지켜온 사람에게만 보이는 아우라. 심지가 굳고 단단하며 굉장히 여유로운 느낌이 풀풀 넘쳐흘렀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멋은 또 얼마나 있으신지.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작사 사장이 차를 내오며 리딩을 진행했다.
“그럼 시작할까요? 배철민 감독님?”
“네? 아! 네네! 안녕하세요. 감독 배철민입니다. [거리의 햇빛>을 함께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사람 수도 워낙 없는 데다, 이미 무영과 태석, 보라는 서로 아는 사이지 않은가. 격식 따질 새 없이 태석이 먼저 인사했다.
“태석입니다.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정말 영광입니다. 아, 참! 호스트 역을 맡았습니다.”
“간호사 역을 맡은 강보라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뱀파이어 역을 맡은 하무영입니다-”
무영이 일어나서 인사하자, 두 선생님은 화색을 띠며 웃었다. 안경까지 곧바로 세우며 무영의 얼굴을 똑바로 뜯어봤다.
“알지. 알아. 얼마 전에 백상 신인상 받은 친구 아닌가?”
“네. 맞습니다. 선생님.”
“그래요. 연기 참 잘하더만. 태석 씨도 호위무사로 나온 거 봤고, 강보라 양도 저기 [카페에 오세요>였나?”
진림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며 웃었다.
대배우가 자신들의 최근작을 봤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고 영광이었으니.
“같이 일할 동료인데, 내가 그것 정도는 확인해야지. 안 그래요, 선생님?”
“암. 나도 진림이 덕분에 다 봤어.”
“우와. 영광이에요. 선생님.”
화기애애한 다섯 배우의 인사에 제작사 직원들은 물론이요, 매니저들까지 훈훈하니 웃었다. 옆에서 꼽사리 낀 채로 보던 감독은 두말할 것 없고.
“그럼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이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내가 딱 한 번 보고 오케이했잖아요. 호호.”
“아. 선생님들. 대본은 이걸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응? 왜요?”
선생님들 역시 캐릭터와 작품 분석으로 손때가 가득한 대본을 꺼냈다. 본디 제 것이 제일 맞는 법이거늘. 어째서 새 시나리오를 준단 말인가?
“사실 그게, 수정된 부분이 좀 있어서요.”
“그래요? 어디?”
“71번 씬부터 75번까지. 그리고 127번부터 134번 씬까지입니다.”
“보자보자…….”
그들은 돋보기안경을 꺼내며 대본을 뒤적거렸고, 무영과 태석, 보라 역시 감독의 말을 따라 짚으며 바뀐 부분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제작비 문제 때문에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앞부분은 뱀파이어가 세상에 나와 첫 쾌락을 맛보는 씬이었고 뒷부분은 트럭 운전사의 남편 사고 회상 씬이었다.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요?”
“클럽 씬은 보조출연자 동원이 너무 많이 돼서, 룸으로 바꾼 다음에 바로 마약 쪽으로 가고 트럭 사고도 전면에서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생략하고 소리로만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작비가 딸린다는데 어쩔 수 없지. 다른 배우들 모두 아쉬워하면서도 이해했다.
“바뀐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네. 다행히 절충 가능한 부분이라서요.”
“그래도 좀 아쉬워서 어떡해. 감독님.”
“괜찮습니다. 바꾸면 바꾸는 대로 좋은 장면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배우분들이 워낙 좋으시니…….”
감독의 대답에 제작사 사장이 괜히 헛기침해댔다. 투자받는 것도 그쪽의 역량이었으니, 미안할 만하지.
무영은 두 대본을 펼쳐놓은 다음, 번갈아 가며 틀린 활자를 확인했다.
“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첫 장면은 전경이라 넘어가고요. 맨 처음 무영 씨?”
“아. 네네. 알겠습니다.”
정신을 빼놓고 있던 무영이 감독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두를 떼는 대사.
“또.”
오늘도- 뱀파이어의 밤은 똑같다.
길거리에는 비틀거리는 취객들과 그들이 만든 토사물. 물고 빨며 서로를 갈구하는 술 취한 행인들. 시끄럽고 무례한, 정신 나간 인간들.
“어머. 안녕하세요. 새 얼굴이네?”
“여긴 어떻게 알았대?”
“내가 데리고 왔어요. 길거리에서 비실비실하니, 매일 똑같은 시간 돌아다니기에. 우리 같은 사람인가 싶었지.”
그렇게 리딩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건너뛸 부분은 건너뛰고, 서로 해석과 분석을 거듭하며 중요한 부분은 몇 번이고 되새기며 작품을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다음번에 안 나올 거야. 그땐 진짜 잘 거니까.”
“끄하핫! 잠꼬대 같은 소리 하네.”
“할배. 그렇게 웃지 마. 존나 변태 같으니까.”
“왜. 또 옹석이라 부르지 그러냐?”
다섯 배우의 대사가 치열하게 오고 갔다.
원래 그들처럼 살아온 것 같은, 생생한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몸짓. 캐릭터의 사소한 디테일이 숨어 있었다.
“어허! 거참!”
“이봐요.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라니까?”
“의도가 어찌 됐든, 난 그렇게 들었어!”
일례로 호스트 역을 맡은 태석은 계속해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으며, 트럭 운전사인 진림은 어깨가 아프다는 듯 연신 그곳을 두드려댔다.
콰앙-!
분노에 찬 태석의 주먹이 책상을 짧고 굵게 쳤다.
마치 링 위의 게임이 끝난 것 같았다. 그걸 기점으로 모두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봤거든.
두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안경을 벗었다.
“아이고. 다들 잘하네!”
“그러게. 요즘 애들은 이게 달라.”
둘의 칭찬에 태석과 보라, 무영이 수줍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무줄 위에서 뛰어노는 기분이었다. 끊어지지 않고 팽팽하면서도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재밌네. 잠깐 쉬었다 할까?”
“네. 그러시죠. 선생님.”
두 사람의 요청에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를 타오거나. 각자 그렇게 휴식을 취하려는데…….
“형. 잠시만, 저 좀.”
무영이 고경민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제작사 사장과 감독에게도 눈짓. 네 사람은 작은 방에 모여 무슨 일인가, 무영을 쳐다봤다.
“왜 그래?”
“저기 감독님. 혹시 바뀐 부분이요. 그거 감독님이 정말 그렇게 찍고 싶어서 하시는 거예요?”
“그게 무슨…….”
작고 사소한 부분이었지만, 무영이 처음 반했던 시나리오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뀐 부분이라면 더더욱…… 아쉽다.
“보니까 보조출연자 쓰는 거랑 고물 트럭 한 대 값이면 될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시나리오 수정하는 건 좀 그래서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세 남자가 무영의 말에 집중했다.
“제작비에 저도 돈 조금 보탤게요. 투자, 그거 저도 조금이지만 할 테니까. 우리 찍고 싶은 대로 찍어봐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