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16)
신인인데 천만배우 116화
소속사란
경기도 외곽의 계곡 근처.
물과 산이 만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숨겨진 명당이 있었다. 해가 어둑어둑한 게 좀 아쉬울 뿐.
외딴 민박집 하나를 거점으로 촬영장이 꾸려졌다.
“밥 먹자 그랬다고?”
“응. 근데 시간도 안 나고, 다이어트해야 해서 거절했지. 어때? 빠진 거 좀 티 나?”
무영은 지난주에 있었던 자선 파티 얘기를 들려주며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밀가루를 끊어서 그런가. 피부가 뽀얀 것이 어쩜 더 말갛다.
“수척해지긴 했네.”
“사실 2㎏ 정도 빠졌어. 조금 더 하면 될 듯.”
“건강 조심해. 태석이 오빠가 도와주는 거지?”
“응. 근데 사실 수분 빼는 거라. 안 먹으면 되더라.”
혼자서 배를 문지르며 만족스러워하는 무영. 건강 갉아먹어 가며 만드는 몸이었건만, 그래도 작품을 위해서라면 이 또한 즐거운 모양이다.
보라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왜 그래?”
“아니. SJ 엔터 투자 대표나 되는 사람이 시간 남아돌아서 밥 먹자 했겠어? 뭔가 볼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첫 만남에 초대장 준 것도 그렇고.”
“우리 열애 해프닝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화제성 어쩌구 광고비가 저쩌구 하면서 되게 좋아하셨거든.”
“장난해? 그럼 나는?”
“아하. 그러게.”
스캔들 혼자서만 났니?
그게 진짜 의도라면, 같은 소속사에 같은 출연진인 보라에게도 언질이 왔었어야 했다.
없다는 건 분명 SJ가, 유사하가 무영에게 다른 용건이 있다는 건데…….
“그날 촬영장에 나만 있어서 그런가?”
과자 봉지 냄새를 킁킁거리는 무영. 입맛만 계속 다시며 집었나 놓았다를 반복했다. 보라가 한숨을 내쉬며 그걸 가져왔다.
‘얘가 알 턱이 없고, 찾아봐야겠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도는 건,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소속사 인수’ 뉴스였다. 영화 배급 및 제작에 이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손을 뻗친다더니만.
‘혹시 영업 때문에 그런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요즘 연예계에서 제일 뜨거운 감자는 무영이었으니까.
“……너.”
“역시 먹으면 안 되겠지?”
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눈을 흘겼다. 그의 시선은 과자에 고정되어 있어서 보지 못했지만.
“나 오게 해놓고 가버리면 진짜 알아서 해.”
“엥? 내가 어딜 가는데?”
“자자. 둘 다 준비됐어요?”
마침 타이밍 좋게 끼어드는 조감독.
동시에 스태프들까지 우르르 쏟아지니, 무영과 보라는 뒷얘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촬영에 들어갔다.
“계곡은 바로 앞이죠?”
“응. 근데 조명 끌어다가 올리는 게 일이라서 생각보다 깊게 못 들어갈 것 같아요. 동선 보면 저쪽이 112번 씬. 바위 넘어서 113번. 그리고 계곡입니다.”
“닭은요?”
다 같이 도시를 떠나온 밤.
오랜 시간 피를 못 빤 뱀파이어는 동호회 사람들을 먹는 대신, 닭장의 닭을 잡아먹었다.
그걸 들키자 산으로 도망가고 사람들은 그를 부르며 쫓아오는 장면이지.
“준비됐지.”
“우와. 리얼하다.”
모가지가 반쯤 비틀린 닭 사체 모형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보기 역해하는 보라와 달리, 무영은 장난감을 갖고 놀 듯 그걸 가볍게 흔들었다.
“오늘 달이 참 크고 좋구먼.”
“그러게요. 이런 날만 기다렸습니다.”
평상에 앉아 대본을 훑어보던 강성배 선생님. 그의 말에 감독과 스태프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달이 손에 닿을 것 같다.
“무영이랑 태석이가 오늘 고생 좀 하겠어.”
“후반부니 열심히 해야죠.”
여름 날씨라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짧은 장면이지만 입수가 예정되어 있었으니. 촬영 감독이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달 영상은 땄거든요. 바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출까지 논스톱으로 갈게요.”
“그래요. 성강아. 커피 한잔 다오.”
“조명 감독님. 3번째 조명 자꾸 나가는데요?”
조감독의 스탠바이 신호가 떨어지자, 다들 분주해졌다.
당 충전을 위해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구는 강성배 선생님. 이내 태석과 진림 선생님 역시 분장을 마치고 모였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
“스탠바이!”
“레디! 액션!”
실제로 쓰던 닭장이라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를 것 같았다. 무영은 미리 준비된 사체 모형을 앞에 두고서,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렸다.
쯔읍- 쯥!
실로 기괴한 입소리.
걸신들린 것처럼 쭉쭉 빨아먹는 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였으니. 음향감독은 당장에라도 헤드셋을 벗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거기 뭐예요?”
이윽고, 소리를 듣고 나오는 동호회 사람들.
손전등이 뱀파이어의 등에 닿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환한 빛에 모든 것이 밝혀졌다.
창백한 피부. 피와 침으로 진득해진 깃털. 번득거리는 눈…….
“히익!”
트럭 운전사가 기겁하자,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거렸다. 밤에 갇혀서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는 존재. 스스로 잊고 있던 그 사실이 떠올랐으니.
타앗!
“잠깐!”
“어딜 따라가? 미쳤어?”
“이거 놔봐요! 지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뱀파이어.
비밀을 알고 있던 간호사가 그를 쫓아가려 했지만, 트럭 운전사가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완강히 손길을 뿌리치고 그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오케이 컷!”
그 뒤는 말 그대로 고생길이었다.
어둡고 깊은 산속을 달리고 또 내달리는 배우들.
조명이 길을 밝혔지만, 태양만 할까.
바스락!
“허억! 허억!”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에 치이며, 비탈길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땀과 흙은 둘째치고 벌레가 어찌나 많은지.
“무영 씨. 괜찮으면 다시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레디! 액션!”
타닥타닥!
“허억, 허억!”
그는 피로 얼룩진 입가를 닦으며, 해가 떠오를 때까지 숲을 헤맸다.
감독이 시계를 확인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이 서서히 터오고 있었으니.
“계곡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밤 동안 계속된 숲속 장면. 드디어 그날 스케줄의 하이라이트였다.
“하루에 딱 한 번 밖에 못 찍는 장면이라, 무영 씨. 잘 부탁할게요.”
“넵. 감독님. 저도 잘 부탁합니다.”
일출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NG 없이 가자, 라는 심정으로 그는 제자리에서 몸을 풀었다.
“후! 하! 하하하!”
그런 무영을 걱정스레 지켜보는 동료 배우들. 무영은 괜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한 다음, 연출부에서 지시사항을 전해 들었다.
“걸터앉아서 일출 보는 컷 하나. 그리고 물에서 찍는 컷 하나인데, 물속으로 들어갈 때는 왼쪽 보면서 가줘야 해요.”
“이쪽을 이렇게요?”
“응. 그리고 저기 바닥에 홈이 하나 있거든요. 몸이 자꾸 뜨면 거기에 발을 걸어서 균형 잡아줘요.”
“아하. 알겠습니다.”
안전사항까지 꼼꼼히 체크한 다음, 그가 자리에 앉았다. 산등성이 너머로 햇빛이 새어 오고 있었다.
“레디이-! 액션!”
감독의 목소리 역시 쉰 상태.
찌르듯 내리는 스탠바이에 모두 마지막까지 정신력을 끌어모았다. 숨을 헐떡이며 뭍에 앉은 뱀파이어가 일출 쪽을 바라봤다.
‘아름답다.’
처음 보는 맑은 하늘. 몸이 점점 타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거세지는 숨결 속에서 그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하아, 하아.”
멱살을 잡아끌며 헐떡였다.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로 인해 사방이 반짝거렸고, 그럴수록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벅-!
덥다. 온몸이 뜨겁고 이글거렸다.
뱀파이어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천천히 목까지 잠기는 계곡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곳은 물이 검게 보였다.
‘그날 기억과 같다.’
인생 첫 기억인 검은 양수. 뱀파이어는 지금 자신이 보는 하늘이 마지막 기억이 되리라 직감했다.
얼굴마저 점점 뜨거워지니, 얼마 안 가 그는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야 하겠지.
“야-! 이 X발!”
그때, 어디선가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
뒤따라 그를 찾아 헤맨 호스트와 간호사였다.
태석이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건져냈다.
“으아아악-!”
햇살에 괴로워하는 그를 도와주는 것은 간호사. 담요로 그의 몸을 덮어주며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아악!”
“이런 젠장!”
뱀파이어가 엎드린 채 절규하자, 태석 역시 해를 가려주기 위해 몸을 덮었다. 뭉쳐서 끌어안은 세 사람. 달달 떠는 뱀파이어에게, 두 사람은 연신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흐윽…….”
고통만 담았던 절규에는 흐느낌이 묻어났고, 카메라는 굳건한 보라와 태석의 얼굴을 담았다.
롱샷으로 그들을 찍던 카메라가 점차 해를 향해 초점을 옮겼다.
‘여기서 페이드 인 들어가면-’
화면이 환해지며 장면 전환이 들어갈 것이다. 현장 모두가 숨죽이며 감독의 컷 사인을 기다렸다. 이내, 뷰파인더에 햇살이 반짝이는 순간.
“오케이! 컷!”
“우아아.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끝났네!”
“진짜 고생했어요! 다들!”
“한 번에 가서 다행이다. 진짜.”
로케에 밤샘, 그것도 야외촬영이 끝났다.
홀딱 젖은 무영과 태석에게 스태프들이 담요를 덮어주었고, 강성배 선생님과 진림 선생님 역시 등을 토닥여주며 격려했다.
“고생했어요.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치?”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인간과 처음으로 감정을 교류한 순간.
뱀파이어의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장면이자, 촬영팀에게는 염려했던 스케줄이었다.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는 기쁨에 다들 가볍게 껴안으며 자축했다.
“무영아. 감기 들겠다.”
“괜찮아요. 종일 뛰어다녔더니, 몸에 열이 올라서요.”
“혹시 모르니까 감기약 먹고 푹 쉬어.”
몸보다 만족스러운 작업물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가 평소와 다르게 다이어트로 컨디션 난조였다는 것과, 새벽의 계곡물은 생각보다 차고 강했다는 것이었다.
* * *
“에엣취-!”
“괜찮아? 약은?”
“먹었죠.”
고경민은 운전하면서도 걱정스레 그를 힐끔거렸다.
로케 촬영하고 나서 좀 비실대더니만, 결국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내일 스케줄 쭉 뺄까?”
“네? 하하. 그 정도는 아닌데요.”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사람도 있나.
무영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면 잠시 링거라도 맞으러 가자. 몸이 재산인 애가 그렇게 아프면 어떡하니.”
고경민의 강력한 권유에 무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생처음이었다. 병원에서 링거 맞는 거. 그만큼 튼튼하게 살아왔던 그인지라, 좀 낯서네.
“하무영 씨 접수 도와드릴게요. 보호자 분?”
“아. 네. 무영아. 여기 잠시 있어.”
간단한 진찰 후 링거 맞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하무영 씨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아아. 저 기억 안 나시는구나. 에브리데이 연예부 기자 박강훈이에요. 저번에 인터뷰도 했었는데.”
그렇게 말하지만, 워낙에 많은 인터뷰를 했던지라 기억에 또렷이 남지는 않았다. 무영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네. 저야 뭐.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아. 감기에 걸려서요. 링거 한 대 맞으러 왔어요.”
“감기요?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하하. 그러게요. 야외 촬영이 있었거든요.”
무영의 말에 기자의 눈이 반짝였다.
뭔가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눈빛.
“촬영하다?”
“네. 근데 별거 아니에요. 약 먹으면 되는데 매니저 형이 꼭 링거 맞자 해서. 하하. 앗. 저기 온다. 그럼, 기자님.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는 무영.
고경민과 함께 복도를 꺾어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기자가 히죽거렸다. 뭔가 좋은 기삿감을 찾았다는 듯.
“누구야?”
“몰라요. 어디 기자님이래.”
“흐음.”
고경민이 뭔가 꺼림칙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눈에 밟힌다 이거지.
하지만 이내 병원의 소란스러움에 그 감각은 묻혔고, 몇 시간 후 기사를 통해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무영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병원행] [과도한 촬영 스케줄이 원인? 소속사는 대체 무얼 하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