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2)
신인인데 천만배우 12화
공짜는 없다!
“우환이 있나요?”
순진무구한 무영의 질문.
모자와 마스크 사이, 흐리멍덩한 스토커의 눈이 찡그려졌다. 갑자기 웬 생뚱맞은 말인가 싶어서.
“지금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지?”
그녀는 이죽거리며 카메라 화면에 담긴 엔빈의 모습을 넘겨봤다. 그런 취급이라면 통하지 않는다. 벌써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으니까.
“그런 거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요.”
허나 무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낯선 스모그가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어야지 않겠는가. 혹여 당사자를 넘어 자신에게까지 오는 불행이라면 어쩌려고?
“저리 가지?”
“음. 잠깐만. 보자…….”
무영은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목과 등에 얽혀 있는 스모그를. 등을 벽에 대고 있어 형체가 뭉그러진 상태다.
“흐음.”
그리고 한껏 진중하게 그것을 관찰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스토커의 얼굴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얘 왜 이래?’
남자가, 정확히는 잘생긴 남자가 자신을 이렇게 뚫어지라 본 게 처음이다. 몇 날 며칠을 쫓아다녔던 엔빈마저 혐오감에 시선을 흘렸으니.
“저리 좀 가지?”
“그쪽이야말로 가만히 있어 봐요.”
무영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세심하게 훑었다. 그럴수록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스토커.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다행인 건, 마스크 덕분에 티가 안 난다는 거다.
‘형체가 분명…….’
한편 무영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것이 사람의 모습인 것을 깨달았다. 아까 서 있을 때 봤던 첫인상이 맞았던 거다. 누군가 등에 업혀 있는 듯한.
-어…….
“헐.”
그때였다. 스모그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스모그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나타날 뿐.
‘그렇다면 잡귀?’
잡귀 역시 어지간하면 기척을 내지 않았다. 내는 놈들은 대부분 한이 깊거나 본인이 죽었는지 모르는 경우. 어떤 상황이든지 귀찮은 건 마찬가지였다.
“왜, 왜 그래?”
여자 역시 당황하며 슬쩍 몸을 뒤로 뺐다.
혹시 눈곱이라도 낀 걸까?
-어진아…….
“어진아?”
“……!”
무영은 잡귀가 하는 말을 무심코 따라 했다. 반응으로 보아 스토커의 이름이겠지. 스모그는 계속해서 여자의 목을 조르고 졸랐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집으로 가.
“집에 가라는데요? 정신 차리고.”
“누, 누가?”
“그쪽 뒤에 매달린 게.”
여자가 굳었다. 장난치는 건가 싶지만, 무영의 표정이 과하게 진지했다. 잡귀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았거든.
-그렇지 않으면……다 타버릴 거야.
“안 그러면 다 탄대요. 근데 뭐가?”
“너도 미친 새끼구나?”
무영이 혼잣말하자, 여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름 정도야, 매니저와 엔빈에게 주워들었을 것이다.
-집…… 이 타고 있어…….
“헐랭. 님 집에 불났대요.”
스토커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그녀는 아예 무영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
“서랍장 두 번째에 넣어둔 현금 사천만 원이랑 뭐요? 분홍색 상자 안에 있는 물건? 그 남자 영상 담아둔? 아아. 그런 건 USB라고 해요.”
멈칫. 여자가 소리 없이 기함하며 무영을 쳐다봤다. 신용불량자라 손에 들어오는 건 죄다 현금화시켜 놓고 있던 그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USB의 존재!
“너, 너, 너 그걸 어떻게…….”
“홀라당 타기 전에 빨리 가보죠?”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어딘가로 전화했다. 바로 본인의 집 근처에 있는 치킨집.
“거기 상동 오치킨이죠? 혹시 사랑빌라 쪽에 불-”
뭐라뭐라, 멍하니 듣던 여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으앗. 깜짝이야.”
그리고 목에 맨 카메라를 붙잡고 정신없이 복도를 내질렀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검은 스모그에서 흐릿한 형상이 떨어져 나왔다.
“오. 그렇구나.”
잡귀와 스모그가 한데 얽혀 있었던 거였어. 흐릿한 색의 영혼이 무영 쪽으로 꾸벅 인사했다. 외모가 꼭 닮은 거로 봐서, 아마 엄마겠지.
“검은 스모그는 여전히 붙어 있어요.”
달려간다 한들, 어쩔 도리가 없을 거다. 싹 다 타버려서 알거지 되거나 아니면 화재로 다치거나. 뭐가 되었든 불행은 그녀를 덮칠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 영상이라니. 반응으로 봐선 엄청 중요한 것 같지? 흐음. 혹시 엔빈?’
스으윽.
잡귀는 제 딸을 쫓아가려는 듯 벽을 통해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무영. 옷을 여미며 일어서려는데.
끼익.
엔빈이 문을 열었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와 조용한 복도를 번갈아 본다.
“너 뭐 했어?”
별거 안 했다.
진짜 귀찮은 잡귀들에 비하면.
그냥 말을 전달해 준 것뿐이니까.
하지만…….
“알고 싶어?”
딱히 말해줄 이유가 있나?
* * *
엔빈은 능청스러운 대꾸에 말문이 막혔다.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알고 싶지!
“빨리 말해.”
방금 그 스토커뿐만 아니다.
활동하면서 어지간한 똥물은 다 묻혀 봤어도, 사생만큼 본인을 힘들게 하는 게 없었다. 혹시 비법 같은 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냥 집에 가라고 했더니 말 잘 듣던데.”
“그걸 지금 믿으라?”
“믿기 싫음 말고. 근데 우리 이렇게 반말하니까 되게 친한 사이 같다. 그치?”
무영은 가방을 제대로 메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순진무구한 웃음과 함께 남기는 작별 인사.
“그럼. 이만.”
“이게 진짜.”
엔빈은 아예 몸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무영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네.”
“제대로 말해봐. 세세하게, 대체 어떻게 저년을 쫓아낸 건지. 이십 년 넘게 이 업계에 있던 회사 사람들도 처음 본다며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사생이야.”
“베테랑들도 못 했던 걸 내가 했다?”
“그래. 그러니까-”
“그런데 공짜로 알려달라?”
무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가가 필요하다는 뜻. 엔빈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매니저에게 손짓했다.
“형!”
“어어?”
“내 지갑 가져와.”
돈.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한 해에 벌어들이는 액수만 해도 수십억이었다. 숨 쉴 때마다 통장에 꽂히는 것들이니까. 앞으로 편한 생활을 위해서라면 꽤 큰 거금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
“저기. 난 돈 달라고 한 적 없는데.”
매니저가 헐레벌떡 가방을 통째로 들고 오자, 무영은 벽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아니. 뭐. 돈 있으면 좋긴 하지. 근데-”
뭘 바라는 걸까.
엔빈의 머릿속으로 온갖 가정이 펼쳐졌다. 혹시 소속사를 소개해 달라는 걸까? 그래서 다른 작품 연결?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나 잘린 거 취소해 줘.”
“잘린 거? 이 웹드라마?”
엔빈은 어이없게 되물었다.
방금 자신의 플랜에 비하면 더없이 초라한 요구 아닌가. 소속사 파워라는 말이 왜 있는데? 주연급이 캐스팅될 때마다 꼽사리로 끼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바보인가?’
아니면 아직 이쪽 시장을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뭐. 어쨌거나 엔빈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좋아.”
“그리고 아까 나랑 직원분들께 사과.”
“사과?”
“마음대로 잘라 버렸잖아. 캐스팅은 회사가 했는데. 이런 걸 월권이라 하지? 보통?”
문이 열려 있었다.
게다가 매니저를 비롯해 회사 직원들이 전부 둘을 주시 중인 상태.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광경인지라, 다들 집중도가 장난 아니다.
‘미쳤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사생 쫓아내는 것도 방법이 있어?’
‘엔빈이 사과를……? 대박!’
각각의 포인트에서 경악하며 숨을 죽인 채.
특이 조미영은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당돌해. 하무영이라 했지?’
엔빈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넘겼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기가 잘못한 건 인정하는 바다. 스토커로 예민해진 바람에 평소보다 과한 행동이 나간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어.”
“으응. 괜찮아. 나도 네 연기 보고 비웃어서 미안.”
마치 초등학생 둘이 사과하듯.
둘은 기계적으로 사과와 용서를 주고받았다.
엔빈은 뒤를 돌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지나쳤습니다.”
“아, 아니요. 그럴 수도 있지.”
“하하하. 맞아. 괜찮습니다.”
직원들까지 어색하게 하하 호호.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도덕적인 대화가 오갔다.
엔빈은 등을 빙글 돌리며 무영을 향해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이제 되었냐는 듯.
“그리고 마지막.”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대본 연습 잘하기.”
“……!”
조미영이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세상에. 무너지는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이 바로 저기 있었구나. 하무영이란 이름으로!
“난 첫 작품이고, 이게 아주 중요해. 그러니까 협조 좀 해줬으면 좋겠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거면 내가 도와줄게.”
“무슨 도움.”
“대사 호흡법이나 연습 상대, 기타 등등.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뭐든지.”
“하! 너 첫 작품이라며. 난 벌써 세 번째야.”
“그래? 잘 됐다. 그럼 더 잘하겠네! 촬영 잘 마무리하면 그때 알려줄게. 스토커랑 무슨 대화했는지.”
“장난해? 그 전에 또 나타나면?”
“음. 내 생각엔 당분간 조용할 것 같아.”
“……장담해?”
장난질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잠깐의 침묵. 엔빈이 눈썹을 한껏 찡그렸다.
“응. 장담.”
하지만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쁜 무영 아닌가. 엔빈의 험악한 목소리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때, 복도 끝에서 경찰 둘이 올라왔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아. 네네! 여기인데요.”
매니저와 직원들이 둘에게 다가가며 손을 들었다. 무영은 은근슬쩍 엔빈의 등을 회의실로 떠밀었다.
“자. 그럼 우리는 들어갈까?”
“리딩을 계속하자고? 이런 분위기에?”
“시간은 채우고 가야 프로지. 하는 데까지 하고, 안 되면 연락 줘. 난 학생이라 시간 많거든. 찾아갈 수 있으니 따로 하자.”
‘얘는 지금 내가 연예인이란 걸 자각 못 하나?’
엔빈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말하는 뉘앙스가 무슨 대학교 연극 동아리 같았으니. 감독과 작가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자자. 그러면 아까 하던 곳부터 후다닥 합시다.”
“시간 얼마나 남았죠?”
“한 시간 정도요.”
“그럼 2화랑 3화 손님분들만 할까요? 무영 군은 엔빈 씨 따로 만날 것 같으니까.”
“내가 왜 얘를-”
엔빈이 반박하려고 하자, 무영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
어차피 사생 쫓아내는 얘기를 들으려면 한 번 더 만나긴 해야 했다. 그게 작품이 끝난 뒤든 아니든. 엔빈은 매니저 번호를 적을까, 잠시 고민하다…….
“유출하면 죽는다.”
“오오. 연예인 번호다.”
자신의 개인 폰을 눌러줬다.
진짜 미친놈. 살다 살다 이런 캐릭터는 또 처음 본다. 짜증 나면서도 이상하게 밉지는 않은. 무영은 휴대폰으로 엔빈에게 문자했다.
띵.
[하무영. 잘 부탁해. 그런데 너 스토커한테 영상 같은 것도 찍혔어?]“영상? 몰라. 맨날 카메라 들고 다니니까 당연히 있겠지.”
“흐음. 그렇구먼.”
“그럼 시작합니다? 엔빈 씨.”
“네. 가겠습니다. 이제 말 걸지 마라.”
엔빈은 무영에게 눈짓하며 대본에 시선을 돌렸다. 아까보다 훨씬 괜찮아진 발음 처리. 무영은 얌전히 앉아 리딩 현장을 지켜봤다. 그리고 문밖.
‘아오 씨! 나도 하무영 연기하는 거 보고 싶은데.’
다음 스케줄 시간이 된 조미영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하무영. 그 이름 석 자를 계속 되뇌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