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21)
신인인데 천만배우 121화
이용
“몰랐어요?”
바보다. 바보.
브륄렘이란 브랜드만 알지, BG라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으니.
무영이 이마를 빠르게 타닥타닥 때리며 끙끙거렸다.
그런 그를 신기하게 보는 모델.
“혹시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아뇨. 토종 한국인인데요…….”
아하. 그녀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그럴 수 있다는 듯 수긍했다. 아직 어리잖아. 충분히 가능할걸? 아마……?
“아무튼, 안쪽은 얼씬도 하지 마요. 그냥 사람들 많은 데서 적당히 놀다가 빠지는 게 좋아요.”
그 순간 뭔가로 뒤통수를 뎅- 하고 맞은 것 같았다. 젠도 그렇고 이분도 그렇고…… 안쪽 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렴풋이 아는 뉘앙스였거든.
“알고 계셨어요?”
“……그럴 리가요. 생각보다 이쪽 업계 만연하거든요. 찌라시처럼 소문도 장난 아니게 돌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우니까 얼씬도 안 하는 게 좋죠.”
“길거리에 똥이 있으면 치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영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경찰에 신고를…….”
그런 그의 손을 가볍게 잡는 여자. 가볍게 고개를 도리질했다.
“경찰이요? 여기 들어오지도 못할 텐데.”
대기업 재벌 2세가 주관하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인가? 방어막이라도 쳐진 것처럼 접근도 못 할 게 분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란, 법 위에 사는 사람이잖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걸렸으면 진짜 피곤해졌을 테니까.”
이런 자리에서까지 막 나가는 놈들이라도, 확실한 목격자가 생기면 곤란할 것이다.
특히나 지켜야 할 게 많은 사람 아닌가. 분명 무영에게도 해가 될 터.
“입 닫고. 눈 감고. 귀 막고. 이해하죠?”
……이해 못 하겠는데요.
무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이 빠져나온 복도를 돌아봤다. 여전히 넘실거리는 검은 스모그. 술이 더 취했더라만, 필시 불이라도 난 줄 알았을 거다.
‘대체 어쩌려고 이런 자리에서 저런 짓을.’
주정단을 스스로 삼켜 먹을 만큼 강한 악운.
무영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깁스까지는 안 간 모양. 바짓단 아래로 단화와 붕대 감긴 봉숭아 뼈가 도드라졌다.
“다리는 좀 어떠세요?”
“생각보다는 괜찮아요. 근데 당분간 쇼는 못 서겠더라고요. 브륄렘만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그러면 진짜 평생 절뚝일 수 있다고 해서.”
원래 그녀가 설 자리였나 보군.
착잡하게 입술을 깨물며 바닥을 노려보는 모델. 그녀는 무영의 뒤쪽으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 저 멀리, 동료가 부르는 중이었다.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무영 씨도 어서 돌아가요. 오늘 파티에서는 좋은 것만 기억하고요.”
“아. 저기-”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알고 있을까?
힘껏 뻗는 다리 앞으로 주정단의 발이 쑥 들어왔던 것을. 방금 대화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영에게 권했던 것처럼, 증거가 없으니 묻고 덮는 거지.
“아. 말도 안 돼.”
무영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다시금 복도를 노려봤다.
저 긴 통로 너머 경호원들만 지나가면 다시 주정단의 범죄와 마주할 수 있다. 사진이라도 찍을걸. 그러면 증거가 될 텐데.
“끄응-”
그는 끙끙 앓는 소리만 내다가, 휴대폰에 들어와 있는 고경민의 문자를 확인했다.
[애프터 파티는 재밌어? 협의한 시간 지났는데, 더 놀 거니? 나 먼저 들어갈까?]무영은 사람들을 헤치며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리저리 치일 때마다 향수와 술 냄새가 코를 훅 파고들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보내는 답장.
띡.
[아니요. 저 지금 내려가요. 재미 하나도 없어.]* * *
“쟤 왜 저래요?”
촬영장 점심 도시락을 먹던 보라가 고경민을 향해 중얼거렸다. 며칠 전부터 정신이 어디 빠져 있는 게, 영 멍해 보였거든.
“모르겠어.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고.”
“야. 하무영. 정신 좀 차려봐.”
“응? 어어. 왜?”
“왜긴? 너 젓가락 반대로 들었잖아.”
보라의 말에 무영이 제 손을 슬그머니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제대로 쥐며 반찬을 집어 먹었다.
“무슨 일 있어?”
“없는디요.”
“그럼 정신 똑바로 차리던가.”
“……예쓰예쓰.”
매가리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
다이어트 후유증인가 싶다가도,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뭔가 있는데……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나.
‘그나마 촬영에는 집중해서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평상시에 나사 풀린 채 다니면 어떡해? 쯧쯧. 저 흐리멍덩한 눈빛 봐라.’
보라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무영의 상태를 뜯어봤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매니저를 향해 물었다.
“형. 있잖아요.”
“응. 말해.”
“재벌이 화나면 어떻게 돼요?”
21살. 성인이지만 사회에 발을 딛은 지 겨우 2년 차. 재벌이 주는 이름의 무게가 쉽사리 닿지 않았다.
그저 상식적으로만, 권력과 명예의 최고봉이려니- 하는 거지. 고경민이 계란말이를 씹다 말았다.
“왜? 유사하가 너보고 뭐라 해?”
“유사하? 유사하가 왜?”
사정을 아예 듣지 못한 보라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휙 돌렸다.
“네? 그분이 왜요? 되게 쿨하시던데.”
“그러니까 왜? 뭔데요. 둘만 얘기하고.”
“그런데 그런 걸 물어?”
“아니! 쫌! 셋이서 대화합시다!”
회사는 유사하만 알지, 주정단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었다. 자선 파티에서 만난 얘길 안 했거든. 굳이 해야 할 필요도 못 느꼈고.
달깍-
“무영 씨. 잠시만 이쪽으로!”
“네에-”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열며 그를 불렀다. 미련 없이 수저를 놓고 일어서는 뒷모습이 영 피곤해 보였다.
보라가 매의 눈으로 그를 살폈다.
“캐릭터 안 맞게 왜 저래? 저럴 애가 아닌데.”
“그러게. 며칠 더 두고 봤다가 영 안 되겠다 싶으면 각 잡고 물어봐야겠어.”
요 며칠간 입맛도 제대로 안 도는지, 살이 살짝 빠졌다. 무영은 셔츠 단추를 풀며 감독에게 물었다.
“이만하면 될까요?”
“응. 잘 말렸네요.”
곧 있을 후반부 상의 탈의 씬 촬영. 그걸 위해서 체중 조절을 했지. 21년 만에 처음으로.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무영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
그리고 단추를 잠그는 그의 머릿속에는 그 말만 맴돌았다. 뒤처리가 영 찝찝하다 이 말이여. 처리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기분이 안 들었다.
끼익-
“형. 이거 끝나고…….”
무영이 대기실 문을 여는 순간.
분장 의자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몸을 빙글 돌렸다. 보라는 신경 쓰인다는 듯 밥만 우물우물, 매니저 역시 젓가락을 놓은 상태다.
“주정단 씨?”
“올라! 무영!”
“여긴 어쩐 일이에요?”
주정단. 마지막 기억의 흐트러진 모습은 어딜 가고, 완벽하게 깔끔한 머리와 옷차림이었다.
보라와 매니저가 어리둥절해하며 무영을 쳐다봤다.
‘이건 또 무슨 일?’
하지만 되묻고 싶은 건 무영이라고.
그가 단추를 마저 채우며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여긴 백군엔터 주정단 전무님.”
그러자 두 사람은 ‘대표 아들!’이라는 말을 떠올렸는지, 동시에 움찔거렸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아니. 회사에 연락했더니 소속사로는 잘 안 오고, 촬영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구경 왔죠. 예민하게만 생각하지 마요. 우리는 투자를 하는 회사니까.”
혹시 알아?
마음에 들면 SJ와 마찬가지로 돈 좀 얹어 줄지.
그의 농담 아닌 농담에 고경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
“어? 어어. 그래.”
무영의 부탁에 두 사람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비서인지, 뭔지 모를 족제비처럼 생긴 남자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타악!
문이 완전히 닫히자, 무영이 소파에 앉았다. 분장실 거울과 마주해 본인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에이. 섭하게. 이렇게 쌀쌀맞게 반응할 게 아닌데. 우리 벌써 두 번째 만나는 거잖아. 아니. 세 번째인가?”
오케이.
감 딱 왔구요. 본능적인 촉이 곤두섰다.
‘그 날’ 프라이빗 파티에서 무영이 본인을 봤다는 걸 알고 온 거다.
지쟈스. 우짜죠?
“두 번째 아닌가요?”
“응? 아닐걸?”
일단 발뺌으로 받아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빤히 시선을 맞추는 두 사람.
무영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잘됐다. 신경 쓰여서 일상생활 불가였다고.
“네에. 그날 봤습니다. 그거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간단하니 전화로 하시지.”
“사실 나는 기억이 없는데, 내 옆에 있던 애 있잖아. 걔가 시력이 너무 좋아. 하하하. 누군지 알지?”
“제가 전무님 애인을 어떻게 알아요?”
“으응?”
너털한 웃음 속에 감춰진 뱀 같은 시선.
한 방울의 거짓이라도 잡아채겠다는, 날카롭다 못해 살벌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진짜인걸. 그쪽 여자친구, 알 게 뭐람.
“왜요?”
“아하. 그래? 아니. 그나마 다행이라서. 좀 추한 상태였거든. 많이 취해서.”
“그런 것 같긴 했어요.”
“이야. 생각보다 이미지가 좀 다르네?”
“살면서 별별 꼴을 다 본 터라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았거든요. 대체 왜 그런-”
뭐라 잔소리를 쏟아내려다 말았다.
친구도 아니고 그쪽 인생 알아서 사세요오.
“됐습니다.”
취했을 때 누군가 들어왔던 것 같다는 애인의 말이 찜찜했다. 혹시 몰라 클럽 CCTV를 죄다 뒤졌더니, 복도에 찍힌 무영과 모델의 모습을 확인. 바로 출두한 것이다. 이번에 아버지가 알면 삼진아웃이거든.
“무영 씨 서연대 재학 중이라면서요? 난 똑똑한 사람들이 좋아. 뭐가 득이고 실인지 계산이 빠릿해서 멍청한 짓은 안 하거든.”
돌려 말해 경고와 협박이었다.
누설하는 순간 인생에 득 될 것이 없다는.
더 나아가 꽤 많은 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손으로 입 꼭 막고 있어요.”
‘아아. 정말 귀찮게들 하시네.’
무영은 입만 쩝쩝 다셨다.
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 아닌가. 가족 없이 혈혈단신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대체 무엇이 벽이란 말인가. 여차하면 미국으로 가버리지.
뭐. 세상 어디 연기 하나 할 만한 공간이 없겠어?
“근데요. 제가 똑똑하긴 한데 빠릿하지는 못 해서요. 지금 저 무섭게 하려고 하시는 거죠?”
그그. 팔 감고 있는 스모그나 좀 어떻게 해보세요.
당장에라도 지옥에 끌려 들어갈 것 같은 모습이니까.
그의 대답에 주정단이 폭소했다.
“푸하하하! 어려서 그런가? 상황 파악이 좀 힘들죠?”
“네에. 그런 것 같아여…….”
그쪽도 뭐가 안 보이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는 길, 차라도 조심하라 덧붙이고 싶었다.
“왜? 유사하가 뒷배 봐준대?”
“유사하 씨요? 그 얘기가 갑자기 왜-”
주정단이 그의 이름을 꺼냈다.
무영이 중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순간.
사락-
“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주위에 빛가루가 내려앉았다.
반짝이에 둘러 싸인 자신을 보는 건 처음인지라, 무영이 신기하게 웃었다.
“아아. 유사하.”
순식간에 롤백하듯, 잠겨 있던 정보가 펼쳐졌다.
SJ와 앙숙 중의 앙숙인 백군. 시기가 겹치는 영화 개봉. 상대는 제작비가 꽤 들어갔고…….
‘누군지 알지?’
옆에 있던 여자의 신상을 묻는 주정단의 질문.
혹시 연예인인가? 그 여자?
주정단이 무영의 이름을 불렀다.
“하무영 씨?”
“네. 전무님.”
“내 얘기 잘 새겨들어요.”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유사하는요. 어릴 때부터 내 밥이었어. 상대가 안 됐다고. 크면서 대표직 다니까 뭐라도 되는 듯 어깨 뻐기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눌러버릴 수 있다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꽤나 진지한 순간, 그의 콧구멍에서 검은 스모크가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
콧수염도 아니고 저게 뭐야?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의 스모그에, 무영이 다급하게 입을 가렸다. 아아. 안 돼. 웃으면 안 된다고.
“웃어?”
“으아아. 죄송해요.”
“미쳤네. 진짜. 혹시 너도 약하냐?”
“무슨 소리세요. 저 감기약도 잘 못 먹는데!”
별 미친 애들 다 보겠다는 듯, 주정단이 벌떡 일어나 그를 노려봤다. 무영 역시 표정 관리를 하며 웃음기를 싹 지었다. 그러나 역시 광대가 씰룩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입에 시멘트 부은-”
“아니. 어떻게 그리 심한 말을!”
“부은 듯이 살라고 X발! 별 이상한 새끼 다 보겠네.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바로 나가리니까 처신 똑바로 해. 알겠어?”
무영은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혀만 끌끌 찼다.
스모그가 점점 짙어지는 게, 죽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구먼.
콰앙!
그가 문을 박차고 나가자, 무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폰을 들었다. 대한민국에 재벌이 지 혼자도 아니고. 에잉, 쯧쯧.
“유사하, 유사하 대표님 번호가…….”
어디 꽃가루 맛 좀 봐라!
“여깄넹.”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