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24)
신인인데 천만배우 124화
수혜
그 후로는 정말…….
하아. 무영은 한숨만 내쉬며 땀을 닦았다. 화장실 거울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평소와 같이 평온했으나, 손만 덜덜덜 떨려왔다.
“얘가 왜 이래.”
마치 남의 팔이 붙어 있는 것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마음을 계속 다잡지만, 이상하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래도 역시 그런 건가 보다.
“……음.”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 찍힌 낙인 같은 거.
나이테가 새겨지듯, 겉은 단단해졌다 하더라도 속에서는 여전히 흔적을 가진 거다. 좋든 싫든, 지금의 그를 이루고 있는 과거니까.
“괜찮아요? 하무영 씨?”
“네? 아. 네네. 좀 놀라서요.”
화장실 문으로 유사하의 경호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유사하는 무영이 모를 말로 그를 도발했다.
회장인 아버지가 어쩌니, 형제 중에 뭐가 저렇니 등등. 그 말을 듣고 격분한 주정단이 유사하의 얼굴을 가격.
“대표님은요?”
“병원으로 가셨어요. 무영 씨 모셔드리라는 지시를 받아서요. 무영 씨도 병원으로 가시겠어요?”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소속사로 돌아가야 해서요.”
근데 신기하게도 딱 한 대 맞자마자 바로 경호원이 들이닥치더라.
그렇게 주정단은 경찰서로, 유사하는 병원으로 찢어진 채 투자 회의는 끝났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경호원을 따라간 무영이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외모. 경호원은 그를 힐끔 보며 대충 대답했다.
“글쎄요. 대표님이 계산 없이 그런 행동 하시는 분은 아니라서. 백군 쪽만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기사 제목이 눈에 훤했다.
마약 혐의인 백군의 주정단이 SJ의 음모론이라며 대낮에 본사 쳐들어가서 대표를 폭행.
이거 말 그대로 자기 목숨줄 자기가 끊은 것 아닌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돈 많으면 뭐하누. 저러고 사는데…….”
폭력을 실제로 목격하니 급격한 현타가 몰려왔다.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는 무영. 이내 익숙해지는 도로를 보며 경호원에게 부탁했다.
“저기,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여기가 빅윈이에요?”
“네. 더 들어가면 차 빼기 힘들거든요. 그럼.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무영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소속사로 올라갔다.
태석이 형 스케줄 끝날 때까지 여기서 좀 기다렸다가, 다 같이 밥 먹고 촬영가면 될 것이다.
무영이 문을 열자, 꽤나 당혹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네네. 그럼 바로 다음 주에 오디션이죠?”
“시놉시스랑 제작기획서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아아. 네. 그때는 괜찮을 것 같은데.”
뭔데?
무영이 멀뚱멀뚱 문 앞에 서 있자, 나금동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그 혼자서 전화기와 휴대폰을 번갈아 받고 있었으니. 고경민이 태석과 함께 일을 보느라 손이 없는 것이다.
“무슨 일 났어?”
바빠 보이는 나금동과 달리, 보라는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까딱까딱, 기분 좋은 듯 발끝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일찍 왔네? 투자 회의 뭐 있다며.”
“그렇게 됐어. 근데 사장님 왜 저렇게 바빠?”
“마약 연예인 A씨, 차예솔이래.”
“응. 들었어.”
“차예솔이 하고 있거나 하려고 했던 작품들이 공중에 붕 떠서, 다시 캐스팅 들어가나 봐. 걔는 몸도 하나면서 뭔 일을 그렇게 벌린 건지. 그 몸으로 마약까지 했으니 진짜 대단하다.”
차예솔이 하차하기로 한 작품들이 다음 적임자를 찾아 떠난 것이다.
보라 역시 흥행은 못 했지만, 여러모로 화제였던 [카페에 오세요>로 얼굴은 알린 상태.
“덕분에 땡큐지.”
휴대폰으로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메일로 넘겨진 시놉시스를 쭉 훑어보는 보라.
오디션을 봐야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진 게 어딘가. 예상치 못한 수혜에 무영이 웃었다.
“오오. 그거 좋네.”
“근데 넌 왜 그래? 역시 배고파서 그렇지? 초콜릿이라도 하나 줄까? 당 떨어지면 힘들어.”
보라가 가방을 뒤적이며 물었다.
그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태석과 고경민. 역시 싱글벙글 즐거워 보였다.
“형들은 왜 또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요?”
“방금 드라마 미팅하고 왔는데, 느낌이 좋아서. 차예솔 걔가 분 애들 중에 박동운이라는 배우가 있다네? 수사 진행해 봐야 안다지만, 거론된 마당에 불안하지.”
“그것도 뉴스 났어요?”
“아니. 이건 방송가만 알걸?”
정말 말 그대로 ‘연예계 마약 스캔들’이구나.
사건이 크게 터졌음을, 무영은 그제서야 조금 실감했다. 하도 얽히고 얽힌 사람들이 많아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들어가는 것이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차예솔이랑 주정단 이름은 터졌는데, 다른 연예인들 이름은 전혀 보도가 안 되고 있잖아.”
보라의 예리한 지적.
전후 사정을 다 아는 무영만 은근히 알아챈 사실이었건만, 역시 똑순이네.
백군 조지기에 포커스를 둔 SJ 측의 의도가 여실히 들어가 있었다.
“소속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양이지. 아무튼, 무영이도 어떻게, 좋은 자리 들어오면 꿀인데.”
“저요? 아니요. 저는 넵플릭스 들어가야 하잖아요.”
다른 역할이 나더라도, 무영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사실 꽃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지 않는 이상, 할 이유도 없고.
“어? 이게 뭐야?”
휴대폰을 보던 보라가 의아한 듯 놀라며 무영을 돌아봤다.
“너 오늘 SJ 엔터 갔다며?”
“응. 갔다 왔지.”
“근데 거기서 백군 전무가 난입해서 대표 폭행했어?”
“응. 눈으로 봤는데.”
엄청난 뉴스에 다들 하던 행동을 멈췄다.
지금 얘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인기 연예인 A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한민국을 뒤집기 일보 직전이었다.
* * *
[백군 엔터 회장 아들 주정단, 마약 혐의로 소환된 와중 SJ본사에서 난동 피워…….]-미쳤나봐. 대낮에 사람을 패? 약 한 거아님?
-도핑테스트 필요없음. 저게 바로 양성이다.
-정신병이나 심신미약으로 빠져나가려는 속셈 같은데, 어림 없지. SJ에서 강경 고소 걸었더만.
-경찰서 간 김에 마약 조사도 받아라ㅋㅋ
-미친 새끼네 진짜.
[차예솔 소속사 실링액터스, 공범 명단 중 절반 차지. 대체 뭐 하는 곳인가?]타닥.
[실링액터스와 백군의 수상한 계약.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영화 [하늘의 습격>?]타닥.
[특징주, 백군엔터 드디어 하한가 랠리 멈췄다. 지금이 투자 적기?]-기자쉐이야 얼마 처 받고 이딴 글 쓰냐.
-회장이 자식 농사 망한 걸 왜 내가 주식 농사로 받아야 하는 건지…….
-그래서 차예솔 영화는 어떻게 됐대요?
-논의 중이라고만 뜸.
-그걸 어떻게 상영함?ㅋㅋ지금이라도 팔고 나가셈. 당분간 이 회사 쪽으로는 오줌도 싸지 말고.
타닥.
아주 난리가 났다.
파고드니 실링액터스와 백군엔터 사이의 유착관계까지 터지면서 성상납 의혹까지 일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둘 다에게 치명타임은 분명했다.
“보자보자…….”
무영은 기사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사실 방아쇠를 잡아당긴 게 본인인지라, 한 줄기 기사라도 나지 않을까 궁금, 걱정되었거든.
“깔끔하네.”
“응? 뭐가?”
멍하니 창밖을 보던 보라가 되물었다. 태석은 맨 뒤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자고 있다.
“기사를 깔끔하게 잘 쓰셨다고.”
그런데 그 어딜 봐도 무영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BG라인 애프터 파티 역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무영에게 오는 연락도 없었으며, 당시 참석했던 수많은 셀럽 중 한 명 정도로만 치부되었다.
‘대박. 유사하 대표님 진짜 실력 좋네.’
그뿐인가.
SJ 엔터에서 난동 피웠을 때 옆에 똑똑히 있던 자신의 존재 역시 사라졌다. 무영은 홀로 감탄하며 정보의 바다를 둥둥 떠다녔다.
“아, 참. 그거 들었어?”
“어떤 거요?”
“실링액터스. 거기 실장 박문철이도 구속된다더라. 그쪽은 마약이 아니라 성상납 혐의던데.”
고경민이 백미러로 무영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맨 처음 그의 선택지 중 하나였지 않은가.
실링으로 갈 것인지, 빅윈으로 갈 것인지.
무영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네요. 빅윈 오길 잘했어요. 그쵸?”
“그렇지. 암암.”
넙죽 드리는 칭찬에 넙죽 기분이 좋아진 고경민.
의기 뿜뿜하는 표정으로 핸들을 돌려댔다.
끼익!
그들은 드디어 촬영장에 도착했다.
경기도 광주의 한 펜션.
산 등지와 마주 본 희고 반듯한 건물이었다.
특징이라면 커다란 거실 창문으로 하늘이 그림처럼 보인다는 거지. 그래서 바로 촬영장으로 선택된 거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무영이팀 도착했네요!”
“팀장님! 오늘 해 몇 시에 뜬다 했죠?”
“이거 선이 너무 짧은데, 어떻게 할까요?”
조감독과 같이 콘티를 보던 배 감독이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저번 강물 씬과 마찬가지로 일출이 중요해서 다들 정신없이 바빴다.
“다들 잠깐 이쪽으로.”
그의 손에는 손때가 가득 탄 종이가 들려 있었다.
“마지막 장면 말인데. 수정이 좀 필요할 것 같거든.”
“네? 왜요?”
설마 또 제작비 때문인가?
“투자 비용이-”
맞네. 맞아.
아이고. 진짜 그놈의 돈이 웬수다.
이번에는 얼마나 필요할까?
“인상되어서, CG를 더 쓸 수 있을 것 같거든.”
“네? 인상이요?”
“응. 원래 타오르는 걸 표현 못 할 것 같아서 씬을 나눈 건데, 그럴 필요 없어졌어. 롱샷으로 쭉 가도 될 것 같아. 이게 원래 썼던 엔딩. 그리고 이게 무영 씨가 본 거.”
그는 두 종이를 빠르게 읽어갔다.
감독의 설명을 들으며.
“잠에 푹 빠진 뱀파이어가 동이 트는 것을 모르고 가루가 되는 장면. 중간에 잘라서 바닥에 흩어진 가루를 동료들이 발견하면서 끝나잖아요?”
“네. 그렇죠.”
“근데 거기에 뱀파이어가 몸부림치는 장면을 추가하려고. CG 때문에 포기한 건데. 컷만 안 나누는 거니까 연기는 똑같이 하면 돼.”
너무 오랫동안 자지 못했다.
실로 처음이라 느낄 만큼 편안하고 안락한 잠에 빠진 뱀파이어는, 일출에 몸이 타들어 가지만 깨지 못하고 그대로 타버린다. 호상이라면 호상이겠지.
“아아. 오케이. 알겠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투자비가 추가됐대요?”
“요즘 백군 난리잖아. 반사이익이지.”
백군의 주가가 하한가를 치는 동안, SJ는 상한가를 내달리고 있었다.
경쟁 시장이던 곳에서 정확히 누가 1등인가를 가려내는 사건이 터졌으니.
“분장하고 나와줘. 선생님들은 먼저 도착해서 뒤뜰에 계셔.”
펜션이라 정원도 멋들어졌다.
벽을 따라 돌아가니 작은 텃밭을 앞에 두고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강성배 선생님과 진림 선생님. 잡지 읽듯 대본을 읽고 있었다.
“어어. 무영 군.”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컨디션은 어때? 마지막은 아니지만, 마지막 장면인데.”
장면은 마지막이지만, 아직 일정이 좀 남았다.
중간중간 날씨나 외부 여건으로 미뤄진 촬영 일정이 꽤 있었으니. 무영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최곱니다.”
“좋군. 준비하시게나.”
“네. 선생님.”
그래. 좋지.
백군도 그렇고 실링도 그렇고, 죄다 폭삭 망하기 일보 직전이니까.
“아차.”
무영은 작은 방에서 분장을 받으며 유사하에게 문자했다.
[대표님. 얼굴은 좀 괜찮으세요? 근데 저희 영화 제작비 추가됐던데. 이거 설마 대표님이 해주신 거예요?]띠링.
[코 수술이라도 할까 했는데 다행히 멀쩡하네요. 제작비는 제가 아니라 회사에서 의논 후 결정한 거예요. 막강한 경쟁작을 침수시켰으니, 우리 보트에 모터 달만 하잖아요? 백군 쪽에서 대작 나온다고 그 기간엔 다른 곳도 다 사렸거든.]차예솔이 참여한 그 ‘대작’은 영화관에 걸리기도 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소문으로는 중국이나 러시아 어디에 넘긴다는데…… 그것도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군요. 아무튼 감사요. 덕분에 감독님이 원래 하고 싶었던 연출로 가신대요. 그리고 제 이름 기사 안 나게 해줘서 감사합니당.] [그건 당연한 건데.]만약 하무영이 끼어 있다는 걸 알면…… 괜히 역풍 맞을 수도 있었다. 마약을 함께 한 건 아닐까? 유사하가 심은 스파이? 이쪽도 대가를 받았나? 등등등.
실제가 아니더라도, 괜히 본질을 흐릴 만한 꼬투리는 안 주는 게 맞지 않는가.
[촬영 잘해요. 우리 천만 가봅시다!] [넵. 열심히 할게요. 그럼 들어가세요~]거기까지 문자가 끝나자, 분장 역시 끝났다.
거실로 나가니 이미 준비를 마친 동료 배우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진탕 벌어진 술판과 널브러진 가재들.
“자. 한숨 자 볼까?”
“누워, 누워.”
배우들은 거실 한복판에 자리를 잡으며 누웠다. 그런 그들 가운데 셔츠를 걸치고 눕는 무영.
“음. 강성배 선생님 다리를 조금만 이쪽으로.”
“네네. 딱 좋습니다.”
“일출 15분 남았습니다!”
“동선 마지막으로 맞춰볼게요.”
무영은 가만히 누워 떠오르는 해를 쳐다봤다.
산 너머로 점점 새어 나오는 아침.
무영은 눈을 감았다.
뱀파이어의 마지막 나날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