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27)
신인인데 천만배우 127화
잘 가시오
왜, 왜 선생님이 여기 계세요?
-무영아? 괜찮아?
무영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매니저가 마이크를 잡았다.
물을 가지러 나가려던감독 역시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부스 유리벽에 딱 붙어 눈을 비비는 무영.
“어······.”
-어?
그의 시선을 따라 감독과 매니저 역시 고개를 움직였다. 하지만 뭐, 아무것도 없는데?
“어, 얼음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아. 그래. 안쪽은 좀 덥지?
“네. 그렇네요.”
별거 아니었구나.
난 또 뭐라고.
감독은 방긋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복도에 서 있던 강성배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아. 세상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람. 무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멘붕에 빠졌다.
그런 그의 속을 알랑가 몰라. 강성배는 유리문 쪽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껄껄댔다.
-문 열릴 때까지 안 기다려도 됐겠구먼!
그리고 스윽, 벽을 통과해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무영은 주저앉은 채 손 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하아.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세요?”
속닥속닥.
매니저 형이 듣지 못하게끔, 아주 조용히.
강성배는 의자를 끌어다 앉더니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렇게 됐네!
그렇게 됐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슬픈 말이었다.
무영은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아내며 물었다.
“많이 아프셨죠?”
-괜찮았어. 수술 중에 잘못된 거라. 그나저나 무영 군. 역시 특별한 사람이 맞았네. 반짝이는 빛 따라 왔더니 자네가 있어. 허허허.
빛을 따라 왔다라.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애초부터 귀신이랑 이러쿵 저러쿵 말을 나누지도 않았고.
“빛이요? 혹시 꽃가루 같은 빛?”
-그래. 꽃가루. 딱 맞는 설명이구먼.
무영이 멍하니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불투명도 95%. 스쳐 지나가듯 보면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정도로, 평소와 같았다. 그래서인지, 무영은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자네도 보이는가?
“네? 저요?”
-지금 사방으로 날리고 있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스 공기 중으로 꽃가루가 반짝거렸다. 이건······.
무영의 것이면서 동시에 강성배의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 겹처서 그런가, 무영은 혼란스러움에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선생님도 이게 보이신다는 거죠?”
-그렇다네. 난 저승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죽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기현상(奇現象)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역병> 촬영 때도 천장의 스모그를 잡귀가 보고 도와줬었지.
‘혹시 나도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아니면 연기를 함으로서 인물의 삶을 사니, 진짜 하무영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
뒤죽박죽.
온갖 가설이 재빠르게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영문을 모르겠는 이 상황에, 강성배가 끌끌거리며 무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뭔지 모르겠지만, 딱 하나는 본능적으로 알겠네. 나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해야 할 일?”
그의 말을 듣자, 무영은 감독이 끄적이던 테이블 위의 종이를 떠올렸다. 선생님의 후시녹음!
“노, 녹음. 66번 녹음을 새로 하면 어떨까 고민하셨어요. 감독님이.”
-아아. 오토바이 소리 잡혔었지? 기억나네.
강성배가 뭔지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리 봐도 이질감이 없단 말이지.
짙은 색으로 인해 진짜 살아 있는 사람과 진배 다를 바가 없었다. 무영은 한숨을 내쉬며 선생님께 물었다.
“근데 녹음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글쎄. 자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선생님도 없는데 저 혼자서 어떻게······.”
그러자 강성배는 무영의 귀에 뭔가를 속닥거렸다.
연륜이라 해야 할까. 그는 말도 안 되는 꼼수를 내놓았다.
-성대모사 한다고 해봐.
“에이. 선생님. 그건 좀 아니다.”
-뭐 어때. 딱 한 마디인데. 좋았다!
선생님이 부탁하듯 무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어서 따라 해보라는 듯 눈빛이 초롱초롱.
-좋았다!
“조, 좋았다?”
순간 입에서 낯선 목소리가 나왔다.
화들짝 놀라 제 입을 손으로 가는 무영. 강성배 선생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잘하네!
“선생님 정말 실례지만, 처음으로 귀신 되신 거 맞죠? 어떻게 아셨어요?”
신체를 접촉했을 때, 원한다면 빙의한 것처럼 목소리가 남의 것으로 나가는구나.
무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자, 강성배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본능. 그래서 위대하지.
달깍.
“무영아. 여기 얼음물.”
그때 문이 열리며 고경민이 컵을 내밀었다. 그러다 구석에 쪼그려 앉은 무영을 보고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 있어?”
“네? 아뇨. 그냥. 이 자세가 편해서.”
“바닥 더러워. 의자에 앉지.”
의자에는 강성배 선생님이 앉아 계셔서요.
무영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서 컵을 받았다.
“바로 다시 들어가면 될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무영은 쭈뼛쭈뼛 헤드셋을 다시 쓴 다음, 뒤를 돌아봤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자네 할 일 하게나! 말하지 않아도 딱 그 시선이었다.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할게요.
“……네. 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무한 반복.
너무 많이 말해 혀가 꼬일 지경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강성배가 천천히 손바닥을 치며 박자를 맞춰줬다.
-그게 아니지. 여기서 잠깐 쉬고, 하나, 둘!
“……응응. 아니야. 그런 뜻은 아니었어.”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하는가 보다.
수십 편의 연극과 수천 번의 공연 경험으로 도돌이표 찍듯 연기하는 것에 이골이 난 분이었다.
단박에 오케이 사인이 내려왔다.
-오! 딱 맞네. 무영아. 됐다. 수고했어.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헤드셋을 벗으려는데, 강성배가 신경 쓰여서 발을 못 떼겠다. 무영은 부스 문을 열고서 물었다.
“감독님. 66번 씬이요.”
“응? 강 선생님 파트?”
“네. 그거 제가 한번······ 해볼까요?”
어이없는 말에 세 남자가 띠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예능 나가서 장기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영화 아닌가? 작품이란 말이야.
“무영아?”
고경민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눈만 웃었다.
실언하지 말고 빨리 퇴근하자는 듯이.
하지만 무영은 그의 어깨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다시 물었다.
“······선생님 수술하셨으니까, 못 딸수도 있잖아요. 그, 상황에 따라서. 그러니까 대비용으로 샘플 하나 갖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 진짜 잘하거든요.”
“아니. 그래 봤자 성대모사지. 무영아.”
제발. 헛소리 그만~
고경민이 눈을 재빨리 깜빡이며 애원했다.
껌을 씹던 음향감독님이 허허 웃으며 배 감독을 돌아봤다. 그 역시 난감한 얼굴.
“한번 들어보실래요?”
무영이 목을 가다듬으며 왼손을 가볍게 뒤로 넘겼다.
손끝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성배의 혼(魂)이 주는 감각이었다.
-좋았다!
“좋았다!”
짧고 굵게 딱 한마디.
별 기대 없이 듣던 음향감독이 껌 씹던 것을 멈추었다.
“방금 뭐냐?”
“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강성배 선생님 목소리가 어땠더라?”
음향감독 외 두 사람은 강성배의 목소리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음향감독은 다르다.
반 평생 소리로 먹고 사는 그였기에, 갑자기 결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알아챘다.
“무영아. 다시 해봐.”
“다시오? 크흠. 이게 목을 좀 긁어야 해서. 아아.”
그리고 다시!
“좋았다!”
“거참. 희한하네. 야. 너 재능 있다? 완전 선생님 목소리인데? 눈 감으면 구분 못 할 것 같아.”
진심이었다.
무영의 입에서 나오니 긴가민가한 거지, 듣기만 한다면 구분이 불가능 할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또 해봐. 또. 이야. 신기하다.”
“감독님. 그러지 마시고 샘플 작업을 하시죠?”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음향감독이 무영을 채근했다. 그는 배 감독을 돌아보며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따놔도 좋겠는데?”
“······진짜 그렇게 똑같아요?”
배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이거 잘못하면 비웃음만 산다고.
안 그래도 한국은 후시녹음을 별로 안 좋게 치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지. 어쭙잖게 편집하면 그 무슨 개망신인가.
“한번 비교해 볼까? 무영아.”
“네에.”
음향감독의 지시에 무영이 몸을 빙글 돌려 다시 부스로 들어갔다.
화면에는 85번 씬 대신 66번, 강성배의 얼굴이 재생되었다.
-오오. 이렇게 편집되었구먼.
“선생님도 보셔야죠.”
그의 중얼거림에 노인은 웃기만 했다.
다시금 맞잡는 두 손.
음향감독님의 지시가 들려왔다.
-목소리 들리지? 싱크 안 맞아도 되니까 연기해 봐.
“네. 알겠습니다.”
비틀비틀.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아스팔트 위를 위태로이 걷는 도둑. 그는 몽롱하게 잠에 취해 계속 걸었다. 화면을 따라, 무영도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좋았다!”
물론 강성배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만세!
-오케이. 이제 나와봐.
음향감독은 무영이 방금 녹음한 것과 비편집본의 강성배 목소리를 동시에 틀었다. 물론 구분은 되어야 하니까, 0.5초의 차이만 두고서.
“자. 뭐가 진짜 강성배 선생님 목소리게?”
“어. 음. 먼저 나온 거요.”
“아닌가? 오토바이가 좀 뒤에 들린 것 같은데.”
‘부아앙’ 거리는 잡음이 들려왔지만, 너무 짧은 터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배 감독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인정했다.
“오케이.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결과지.”
짧게 지나가는 단 한 마디의 대사.
그들이 고민할 정도라면 전혀 문제없을 게 분명했다. 이건, 선생님 가족이 와도 몰라. 절대 몰라.
“그럼 오늘 마저 하고 들어갈게요. 다시 마이크 켜주세요.”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부스로 들어섰다.
아아, 목과 몸을 풀며 방긋 웃는 강성배 선생님. 무영은 한숨을 나지막이 내쉬며 그에게 속삭였다.
“연기도 선생님이 하세요. 전 목소리만 빌려드릴게요.”
-그래. 진짜 내 마지막 연기가 되겠구먼. 하하.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무영이 다시 눈물을 찔끔거리자, 강성배가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왜, 병실에서 그랬잖은가? 영원의 잠 뒤에는 내가 원하는 세계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무섭지 않네. 이렇게 연기도 하고, 돌아가면 필시 나만의 세계가 있을 거니까.
무영은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물로 목을 단단히 축이고, 헤드셋을 꼈다.
-무영아. 시작할게?
“네. 준비됐습니다.”
두 손을 꼭 붙잡은 무영과 강성배.
노인은 화면을 잡아먹을 것처럼 살펴보며 연기를 펼쳤다.
제 자리에서 뛰고, 차를 피해 비틀거리며 걷고, 열과 신이 뻗쳐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좋았다!
“좋았다!”
딸깍.
-오케이. 한 번 더 갈게요. 조금 천천히.
“네에.”
도둑의 환희에 찬 감정이 강성배를 타고 무영에게까지 흘러내렸다. 연신 함께 손을 잡고 번쩍! 둘은 목이 찢어지라 대사를 외쳤다.
“좋았다-!”
-오케이. 컷. 지금 딱 맞아. 됐다.
몇 분이나 했을까.
겨우 떨어진 오케이 사인에 무영이 자연스레 강성배를 돌아봤다. 노인은 포근하게 그를 안아줬다.
-고마우이. 자넬 만나서 참 좋았어.
“저도요. 선생님.”
달깍.
“아, 참. 무영아. 오늘 들어가면서······.”
그때 문이 열리고, 고경민이 들어오자 무영은 시선을 돌렸다. 간단한 귀가 일정을 듣고서, 다시금 왼쪽, 강성배를 바라보려는데······.
“······선생님?”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혼자였다는 듯이.
다만 그가 몰고 왔던 꽃가루만이 아주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무영은 벽에 등을 기대고 스르륵, 주저앉았다.
‘선생님. 말해주세요.’
선생님이 보신 영원의 세계는 어떠한지.
띠리리- 띠리리-
동시에 울리는 모두의 휴대폰.
외투에 넣어둔 무영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
“이게 뭐야.”
메시지를 확인한 세 사람이 황망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었다.
[부고(訃告) 고(故) 강성배 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빈소는 서울대사랑 장례식장 1호. 발인은······.]“무영아! 지금 문자-”
고경민이 다급하게 그를 부르다 멈췄다.
무영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방금까지 함께한 친구를 눈앞에서 잃은 것 같았다.
“무영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문대며,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확인 사살하듯 듣고야 말았다.
“선생님 돌아가셨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