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29)
신인인데 천만배우 129화
팀장님 때문에
그리고 마주한 풍경. 여타 기존의 오디션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압도적으로 관계자 수가 많았으니.
아까 뭐랬더라?
어디 팀장, 부장, 과장 등등 죄다 모였다고 하더만, 진짜 어림잡아 열 댓은 훌쩍 넘어 보였다.
“어이고. 하무영 씨네?”
“다음이 하무영이에요?”
“아아. 강옥경 팀장님이 추천한?”
그들은 긴 ‘ㄷ’ 자 형 테이블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렸다. 강옥경은 잘 해보라는 듯이, 무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기억해 줘요. 나는 하무영 씨의 팬이고, 배우를 존중하는 사람이에요. 기획과 투자는 회사가 하지만 제작은 우리가 합니다. 컨펌만 나서 진행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업계 최고로 대우할 거예요.”
“오오. 그거 기대해도 되나요?”
“그러니까. 이깁시다. 여기 있는 인원수만큼 내정자가 있어요.”
속사포처럼 소곤소곤. 그러고서 테이블 중간 자리로 가서 앉았다. 뜻밖의 말에 무영이 놀라며 그녀를 시선으로 쫓았다.
‘내정자가 있다고?’
바로 무영 자신처럼.
그는 강옥경의 추천을 받아 온 투자책임팀의 내정자였고, 아까 차승온은 콘텐츠사업팀 추천을 받아 온 내정자였다.
바깥의 수많은 배우 역시 이곳 누군가의 콜을 받았겠지.
‘아닌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음. 글쎄. 아마 없을 것이다.
성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이곳, 회사에서 오디션은 작은 전쟁터였다.
자신의 안목으로 데려온 배우가 뽑혀야 하고, 그 배우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내는 것.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아군이라곤 강옥경밖에 없다.
장점이 아닌 단점을 찾으려는, 아주 박 터지는 오디션이 진행될 참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 후, 의자를 찾았다.
하지만 의자 다리도 안 보이는군.
“아. 미안하지만 서서 진행을 해도 될까요?”
“네?”
한 관계자가 눈치를 채고 부탁 같은 제안을 했다.
“풀샷으로 잡히는 CG와 액션씬이 많아서 전체적인 피지컬 느낌을 좀 보고 싶거든요. 프로필은 여기 기재한 그대로죠? 요즘 하도 거짓말하는 애들이 많아서. 하하.”
“무영 씨는 키가 더 큰 것 같은데?”
“네. 그건 작년 거라.”
뒤로 스크린이 주르륵 내려왔다.
뭐랄까…… 오디션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같네.
회사 상사들 앞에 선, 신입이 기획안을 발표하는 느낌적인 느낌. 공간이 회의실이라 더 그런 듯싶다.
지잉-
“자자. 그럼, 반갑습니다. 하무영 씨.”
가운데 앉은 남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정식으로 오디션의 시작을 알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진행하는 역할임은 분명했다.
“필모를 보니까 [역병>, [너는 별, 나는 별> 그리고 다수의 CF 출연 등이 있네요? 돈 많이 버셨겠다.”
“현재 [거리의 햇빛>이라는 영화 작업 중에 있습니다. 하반기에 개봉 예정이고요.”
“아하. 그렇군요. 데뷔하자마자 백상 신인상도 받으셨다? 그쵸? 드라마 부문에는 공동 노미네이트.”
“네. 영광스럽게도 [역병>을 통해 받았습니다.”
“연기력은 뭐, 워낙 들리는 말이 많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고?
무영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그저 환경이 낯설어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아니다.
들어가야 할 [유일한 건물주> 작품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잖아? 캐릭터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초반이라 그렇겠지?
“하반기 스케줄은 어떻게, 좀 맞춰집니까? 영화 개봉하면 이것저것 바쁠 것 같은데.”
“네. 시간이야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좋네요. 그런 마음가짐. 하하.”
“근데 생각보다 너무 건장해 보이네.”
“화면에 크게 잡힐 것 같죠?”
마치 상품을 보는 것처럼, 그들은 앉아서 뭐시라 저시라 떠들어댔다. 무영은 강옥경 쪽을 슬그머니 쳐다봤다.
‘미안합니다.’
살짝 눈을 찌푸리며 그렇게 전하는 강옥경.
무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무미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꽃가루 따라 왔으니 열심히 해보자. 음. 그래.
“하무영 씨.”
“네?”
“필모 중에서 이렇다 할 액션은 별로 없네요?”
“[역병>에서 군중 씬이나 맞는 씬이 좀 있긴 했습니다만, 말씀하신 액션의 범주가 와이어 타고 날아다니거나 액션스쿨을 통해 준비되어야 하는 거라면 경험이 없다 할 수 있겠네요.”
무영은 계속해서 쏟아지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대부분 일정 조율이나 경험에 관한 물음이었다.
“……그래요. 좋습니다. 그래도 대사는 한번 읽어 봐야죠? 김 팀장?”
드디어 받게 된 대본.
사실 대본이라기엔 두어 장짜리 종이였지만.
무영은 재빨리 그걸 훑어보며 정보를 확인했다.
‘은둔형 외톨이 주인공이 낡은 건물을 상속받고 지루한 생활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건물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고…….’
건물을 거점으로 일어나는 생존물이었다. 오호라. 이거 좀 재밌겠네. 혹시 소설이 원작인가?
무영이 지원한 배역은 당연히 주인공, 김기도 역이었다.
“대사 한번 쳐보겠어요?”
“네. 흐음!”
목을 가다듬으며 재빨리 문맥을 읽어냈다.
건물의 힘으로 신이 된 사나이. 그의 말이 곧 법이요 진리였으니. 마이크도 잡지 않은 목소리가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그만! 한 번만 더 이런 소란이 일어날 시!”
“아이고, 깜짝이야.”
배 속에 마이크라도 있나?
성량이 어쩜 저렇게 좋아?
무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한껏 엄숙한 분위기로 관계자들 얼굴을 한 번씩 훑었다.
“모두 추방하겠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만큼은 폭력과 거짓, 음해 따위는 없어야 해요. 아시겠어요?”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연기 잘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젊은 나이치고 굉장한 카리스마 아닌가.
꼬투리 잡으려고 비웃음을 장전하고 있던 몇몇 사람 역시 놀라서 멈칫거렸다.
“저는 이 건물의 주인입니다.”
단상도 뭣도 없이 그저 서서 치는 대사.
손을 놀리거나, 자세가 어색할 법도 한데 무영은 꼿꼿했다. 순식간에 몰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런가. 그들은 정말 극 중의 세입자가 된 것 같았다.
저기, 건물주 김기도의 일갈을 두려워하며 듣는.
“그리고 당신들은 내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꼬우면 꺼지세요. 안 말리니까.”
아주 짧은 대사였다.
무영이 방실 웃으며 삿대질 찌르던 손을 내렸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강옥경 팀장. 가볍게 박수 치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역시 연기 잘하시네요. 연극 하셨어요?”
자기가 데려온 배우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아니요. 선생님이 연극판 출신이셨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죠.”
“본인 연기만의 장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음. 저는 아무래도…….”
무영은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본인 연기의 장점?
“고민이 너무 긴 거 아닙니까? 하핫.”
얼빠져 있던 한 남자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장점이 그렇게 없냐는 뉘앙스로. 하지만 무영은 단호박으로 대답했다.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씀드릴까 싶었어요. 차라리 단점을 꼽으라면 꼽겠네요. 연기 경력이 이제 겨우 2년 차라는 것? 덕분에 현장에서는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강옥경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꽤 감탄했다.
아직 대학생이라 면접 보러 다니진 않았을 텐데, 대답이 기똥 찼다. 정석적인 대답 아닌가.
단점을 인정하되 외부적인 요소로 인해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는 기대까지.
“아. 2년 차. 그래. 신인이긴 하네. 그래서 그런가 연기가 좀 아쉬워.”
“……?”
“……!”
한 남자의 중얼거림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강옥경과 마찬가지로 투자 담당 팀장 중 한 명인 박 팀장이다.
‘양심 없네. 방금 저걸 보고?’
‘박 팀장님 어지간히 벨도 없구나.’
‘저쪽은 대체 누굴 데려왔기에 저래?’
“대본을 숙지할 시간만 더 주신다면 보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연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흡인력이거든요. 어떤 상황이든지, 그게 현실이라 믿게끔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작품인지라, 그런 부분이 중요하다 생각되는데요.”
무영의 똑 부러지는 말에 박 팀장이 비아냥거렸다.
“시간이 무한정이면 다- 잘해요. 한정되어 있으니 실력자가 필요한 거고.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없으면 못 보여주는 건데?”
강옥경이 뭐라 실드를 치려고 할 찰나.
무영이 웃으며 되물었다.
“보여드리면 저 뽑아 주실 거예요?”
“하하! 할 수만 있다면. 근데 난 잘 모르겠어.”
어떤 명연기를 펼쳐도, 그는 별로라며 지적해 올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 강옥경은 입가를 매만지며 짜증을 삭혔다.
‘쓰잘데기 없는 데 에너지를 쓰네.’
그녀는 자신 있었다.
다른 어떤 배우보다, 하무영의 현재와 미래가 빛날 것이라고. 강옥경이 뭐라 다시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가만히 서 있던 무영이 책상 끄트머리를 짚으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아무리 깊게 들이마셔도 트이지 않는다는 듯 답답하게. 폐 가운데 필터라도 끼인 것일까. 호흡이 점점 불안정해졌다.
“하무영 씨?”
“하하. 어디 아픈 연기 하려고?”
걱정스레 그를 부르는 강옥경과 달리 박 팀장은 눈에 훤하다는 듯 웃어 젖혔다.
아무리 지랄 발작을 떨어 봐라! 내가 꼼짝하나!
“……괜찮습니다. 저……가끔 이래요.”
“어디 불편해요? 안색이…….”
“아…….”
무영은 가슴팍을 쥐며 조금씩 앞으로 고꾸라졌다. 천천히 풀리던 다리가 어느 순간 맥을 잃고 완전히 자빠졌다.
쿠웅-!
“어머!”
손끝부터 발끝까지 미세한 떨림이 계속되었다. 흰자가 뒤집히며 순식간에 새파래지는 안색. 입에서는 괴상한 신음과 함께 침이 뚝뚝 떨어졌다.
“커억……. 어어억…….”
“저, 저기 박 팀장님?”
옆에 있던 직원이 그를 불렀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눈치. 박 팀장은 당황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팔짱을 꼬았다.
‘뭐, 뭐야. 쟤. 갑자기?’
머리로는 연기인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혹시나? 하는 불안이 계속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들 박 팀장의 눈치만 보며 무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도, 도와, 도와…….”
“무영 씨!”
보다 못한 강옥경이 자리를 박차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녀를 따라 일어서는 몇몇 사람들.
“크어억-! 컥!”
“숨! 숨 좀 쉬어 봐요! 밖에!”
“의무실 가서 사람 좀 데려와요!”
“119! 119!”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달려가서 무영의 상태를 확인했다. 초점 없는 동공과 함께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사지. 마치 전기라도 통하는 것처럼 온 몸이 빳빳해졌다.
“뭐, 뭐야. 진짜야?”
그제서야 박 팀장도 슬그머니 걱정되어 무영에게 다가갔다. 말도 안 돼.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티, 티, 팀장님…….”
왼쪽 눈만 겨우 검은자가 돌아왔다. 천천히, 박 팀장을 향해 손을 뻗는 무영.
“팀장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뭐? 내가 뭐?”
누군가의 말에 박 팀장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받거나 뭐 그런 걸로 발작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왜 화를 내세요? 그냥 하는 말인데?”
“할 말이 있고 아닐 말이 있지!”
여차하면 자신한테 덤탱이가 쓰일 분위기였다.
말도 안 된다며, 길길이 날뛰는 박 팀장. 직원이 고정하라며 겨우 말렸다.
“팀장님. 하무영 씨가…….”
달달 떨리는 무영의 손이 여전히 허공에 있었다. 박 팀장은 마뜩찮아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X발, 여기서 헛소리 하면 진짜 곤란한데.
‘혹시 나 때문이라고 하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개복치도 아니고 연예인 한다는 애가 멘탈이 무슨-’
“티, 티, 팀장님 때문에 맞아요…….”
“뭐?”
그러자 무영이 그의 넥타이를 화악-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언제 발작했냐는 듯 평온한 미소. 넥타이로 입가의 침을 닦으며 방긋거렸다.
“연기인 걸 알면서도 속을 정도니까, 이제 인정해 주시나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