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42)
신인인데 천만배우 142화
의혹
무영은 SJ이앤엠 건물 앞에 서서 고개를 하늘 끝까지 치켜들었다.
이전의 빅윈 건물은 빨간 벽돌색에 여기저기 담쟁이 넝쿨이 걸려 있었는데, 여기는 거울 같은 유리창에 하늘이 비쳐 푸른 빛이었다.
간간이 걸려 있는 구름은 덤이고.
“뭐 해? 안 들어가?”
“건물 구경이요.”
“몇 번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고경민이 차에서 짐을 빼며 웃었다.
연말연초의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흐른다더니, ‘그날’ 유사하와 식구가 된 날 이후로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 하겠지.
지이잉-
“어서오십오.”
“안녕하세요.”
띡.
여느 회사처럼 로비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무영은 카드키로 안쪽에 출입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나쁘지는 않은 기분.
띠링-
“저희 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무영 씨.”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 역시 두 명이나 더 추가되었다. 직원 누나는 무영을 알아보고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에요? 스케줄은 다 끝났잖아요.”
“아. 들어가는 길에 선물 가져가려고요.”
팬들이 보내준 편지와 선물.
DM으로 보내주는 사랑의 말도 좋지만, 역시 최고는 수기로 적은 것이었다. 무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선물더미를 찾았다.
“사무실 안쪽에 모아뒀어요. 가져올게요.”
역시 널찍한 게 좋긴 좋다.
그 전에는 개미 콧구멍만 해서 바로 눈에 쏙 들어왔는데.
무영은 창가에 붙어 건물 내부를 구경했다. 거대한 원통이 뚫린 것처럼 중심부가 훤히 잘 보였으니.
“나도 이런 건물 갖고 싶다. 대-박.”
“차곡차곡 모아라. 너라면 할 수 있어.”
“에이. 거짓말.”
“진짜. 잘 나가는 연예인들 건물 하나씩 끼고 있잖아. 충분히 가능하지. 헛짓거리만 안 하면 말이야. 정산받은 거 잘 갖고 있지?”
매니저의 말에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통장에는 지금 14억이란 숫자가 박혀 있었다.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활동만 계속 이어간다면 재방료나 2차 러닝개런티 등이 계속 들어올 터였다.
나이가 어린 만큼, 당분간 돈 걱정은 진짜 끝났다고 볼 수 있지.
“사기꾼도 많이 들러붙을 거니까 조심하고.”
고경민은 짐을 풀며 걱정스레 말했다.
애가 부모도 없이 혼자 사는 것도 위태롭건만, 그 큰돈까지 지고 있으니…….
툭, 하고 치면 중심 못 잡고 쓰러질 것 같아 불안해 죽겠다.
“걱정 마세요. 저 그런 거에는 빠릿빠릿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잖아.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하라는 뜻이야. 사기가 그냥 괜히 사기인 줄 아니.”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거든요.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걸 더 잘해야 한다 해서.”
“누가 그래?”
“대기업 창업주 자서전에서 봤는데용.”
“……그럼 그게 맞다.”
정확한 출처가 나오자, 고경민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돈 갖고 있다는 거 말하지 말고!”
“에엥. 다들 알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도 절대 믿지 마!”
“형은요? 형도요?”
“당연하지. 짜식아.”
무영은 그냥 웃기만 했다. 뭐랄까. 약간의 자신감? 꽃가루가 알려주는 길도 있지만, 그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만 있다는 게 하나의 능력처럼 여겨졌거든.
성인 이전의 팔자가 더러운 만큼,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누군가 평생에서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악연을 겪어 봤으니,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에고고-”
그때 직원이 안쪽 사무실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나왔다. 무영이 재빨리 달려가 그녀를 도와줬다.
“우와. 많다고는 들었는데.”
“하나 더 있어요.”
“헐. 진짜요?”
“이건 선물만 있는 박스고, 안쪽은 편지만. 따로 분리해 놨으니 편할 거예요.”
무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 각 잡고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주차장으로 같이 내려가요. 들어줄게요.”
“제가 들어도 되는데.”
고경민이 선물 상자를, 직원이 편지 상자를 들자 무영은 덩그러니 놓인 백팩만 맸다.
7층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리는 순간.
“어?”
사락거리는 반짝이가 무영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안쪽에는 이미 사람이 만원이었다.
고경민이 난감하게 중얼거렸다. 세 사람 타기에도 벅차 보이는데, 짐까지 가득이니.
“다음 거 탈까?”
하지만 무영은 홀린 듯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당황한 고경민과 직원.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형. 먼저 주차장 내려가 있을 게요.”
“무영아? 하무영!”
띠링-
문이 닫히고 무영은 연신 공중에 떠다니는 꽃가루를 따라 눈을 굴려댔다. 분명 여기 안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저기, 하무영 씨?”
“네?”
그를 부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무영이 고개를 돌렸다.
두꺼운 돋보기안경, 라면처럼 고불거리는 붉은 머리…….
“연채 작가님?”
띠링-
“내릴게요. 잠시만요.”
“아앗. 네넵.”
일 층에서 내리는 사람들에 휩쓸려 엘리베이터 밖으로 토해지는 무영.
연채가 우왕좌왕하며 그를 따라 내렸다.
“작가님!”
밝은 곳에서 제대로 보니, 확실히 연채였다.
본투리 SNS 모델 촬영할 때 만났던 그 사진작가님. 무영은 굉장히 반가워하며 그녀와 손을 맞잡았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네에. 저야 뭐, 항상 똑같죠. 영화랑 드라마 너무 재밌게 잘 봤어요. 무영 씨, 잘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좋네요.”
학교 복도에서 만난 절친처럼, 둘은 연신 손을 방방 흔들며 반가워했다.
여전했다, 그녀의 반짝이는 손바닥은.
“앗. 뭐가 묻었나요?”
무영이 제 손에 묻은 꽃가루를 보며 웃었다.
“아니요. 그냥 습관이에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 그때 ‘오늘대학’ 찍었는데, 작가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대학’ 잡지에서 보였던 반짝이, 그리고 거기서 일한다는 연채가 보여준 꽃가루.
분명 같은 결인지라 거기서 찍으면 다시 연채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진짜요? 거기서 찍으셨어요?”
“네. 사진이 잘 나오긴 했지만-”
연채가 없으니 뭐 이렇다 할 반응이랄 것도 없었다.
대학교 내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을 뿐.
그녀는 난감하게 웃기만 했다.
“전 무영 씨 때문에 오늘대학 그만뒀는데.”
“네? 저 때문에요? 왜요?”
유리창 아래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자, 연채의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 발갛게 올랐다.
“그때 저한테 성공할 거라 하셨잖아요. 수전증으로 카메라도 못 잡는 애한테.”
가만가만 기억을 곱씹는 무영.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손에서 꽃가루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잖아.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듯 휴학하고, 그럼에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장비 가방만 들고 뛰어다니던 애한테- 그게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아세요?”
방황했던 몇 개월간의 고민이, 누군가의 진중한 위로에 눈 녹듯이 사라졌었다.
“그래서 다 관두고, 조수 일은 물론 오늘대학도 관두고 학교로 돌아갔어요. 가서 공부 마저 하고, 졸업했죠.”
“그러셨구나.”
“지금은 여기 SJ이앤앰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어요. 그때 무영 씨 찍었던 스틸컷, 포트폴리오로 올릴 때마다 점수가 좋더라고요.”
“도움이 됐다니 정말, 정말 기분 좋네요.”
“저도요.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헤헤. 두 사람은 다시 짝짝꿍 손을 잡고 흔들었다.
“소속사가 이쪽으로 온 거 맞죠?”
“네. 여기 3층.”
“SJ이앤엠에서 사진 찍는 일은 다 제가 끼거든요. 우리 잘하면 자주 보겠어요.”
“혹시 고용주가 유사하 대표님?”
“뭐. 실질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죠.”
무영은 문득 유사하의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야 이 눈으로 직접 가능성을 본다지만, 그는 정말 뼛속까지 사업가인가 보다. 어떻게 연채를 알아보고 채용했을까.
“이제 수전증도 없어요.”
“조금 흔들려도 연채 작가님 사진은 다 멋있어요.”
찌잉. 위로를 넘어 감동이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고경민과 직원이 무영을 발견했다.
“무영아. 뭐 해?”
“형! 여기 연채 작가님. 여기서 일하신대요. 대박이죠?”
“응? 으응. 아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야, 오랜만입니다.”
고경민은 연채가 누구인지 기억 안 나는 게 분명했다. 흔들리는 동공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상태를 알려주었으니.
무영이 시계를 보며 연채에게 말했다.
“작가님. 저 그럼 먼저 가볼게요. 우리 또 만나요.”
“네네. 저도 일이 있어서.”
그녀는 열린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며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다. 서로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하는 두 사람. 고경민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무영에게 물었다.
“누구라고?”
“왜요, 있잖아요. 본투리 SNS모델 촬영 때.”
“……아아아! 맞다!”
“기억 안 나시죠?”
“응. 모르겠네.”
“됐어요. 누나, 상자 저 주세요. 괜히 밖에 나가지 마시고 올라가세요. 추워요.”
무영은 직원에게서 편지 상자를 받은 다음 어서 올라가라며 손짓했다.
“그럼 조심히 가요!”
“네. 들어가세요.”
SJ이앤앰에서 다른 배우들을 케어하다가 내려온 직원이었다.
물론 매너 좋고 착하신 분들도 많지만 무영처럼 한점 그늘 없이 맑은 아이는 처음이었으니.
‘아. 복지 좋-다.’
직원은 멀리 사라지는 무영의 뒷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하하하. 이게 뭐야.”
[내가 눈치없이 일찍 태어났다. 무영아, 오빠라고 불러도 돼? 사실 나한테 엄마 아들이 있긴 하거든. 그래서 오빠라는 단어가 발작 스위치인데, 너라면 내 심장이 발작해도 괜찮아.]사락.
[어제 [거리의 햇빛>을 극장에서 다섯 번이나 봤어요.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게,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특히 처음 도입부에서 무영 씨의 표정 연기는 영화가 끝났을 때 여운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었어요.]사랑 고백부터 영화 감상문, 의미 없는 뻘글까지.
다양한 팬들의 사랑이 다양한 형식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져 있었다. 무영은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지를 읽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같이 좀 보자.”
“아 안 돼. 지킴이 분들이 나한테만 쓴 거란 말이야.”
“얼씨구. 좀 보자아-”
“싫다고! 어여 가!”
준호가 편지를 훔치려는 듯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헐레벌떡 편지를 그러모으며 방으로 도망치려는 무영.
그때, 바닥으로 떨어진 베이지색 편지 한 장.
“하무영 띨띨아. 이거 떨궜다. 나 보라는 거지?”
무영이 눈을 흘기며 종이를 받아들려고 한 순간.
스윽-
“어어?”
“어? 왜?”
종이에서 물기가 스며들 듯 검은 스모그가 배어 나오는 게 아닌가. 뚝뚝 떨어지는 연기는 바닥에 닿는 순간 증발해 사라져 버렸다.
“왜 그래? 문제 있어?”
준호가 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되물었다. 무영은 씰을 뜯지도 못 한 채, 가만히 들고서 생각했다.
“이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래. 팬이 보내준 건 필사까지 할 기세더만.”
“아니. 그게 좀.”
읽어? 말어?
팬이 보내준 거긴 하지만 검은 스모그가 나오는 종이라니. 영 찜찜하잖아.
무영이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네. 형.”
무영은 편지 봉투를 팔락이며 대답했다.
“저 이제 팩 할 건데요.”
모레 있을 연예가세상의 인터뷰.
그 때문에 집에서 팩 좀 하라고, 고경민이 신신당부했던 차였으니.
-아니, 무영아. 지금 큰일 났다.
“뭐가요?”
-학교 폭력 게시글 올라왔어.
학교 폭력?
무영은 멀뚱멀뚱 생각하다 절-대 아니라는 듯이 부정했다.
“저 애들한테 맞은 적 없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