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49)
신인인데 천만배우 149화
시골
잠깐의 인사가 오고 간 후, 드디어 미팅 겸 리딩이 시작되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감독의 얼굴이 밝았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감독 우창민입니다. 이거, 정말 만나게 되어 반갑고 잘 부탁합니다. 우리 좋은 작품 한번 만들어 봅시다.”
제작사 직원 측으로 빠진 강옥경 팀장은 입구 쪽에 서서 우아하게 박수 쳤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힘찬 반응을 보여줬다.
짝짝짝-
“잘 부탁드립니다!”
“오른쪽으로 돌까요?”
“네. 그럴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배우들의 공식 인사.
무영 역시 가운데 끼어 그들에게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이내 모두 대본을 꺼내고, 감독이 살짝 긴장한 투로 말했다.
“먼저 이번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CG 작업이 절반 이상인지라 거기에 맞는 연기를 좀 부탁드릴게요. 다들 베테랑이시니까 잘하시겠지마는. 하하.”
감독의 말에 무영 역시 애교 있게 부탁했다.
“저도 이렇게 CG 많은 건 처음이라서요. 다들 많이 도와주세요.”
하지만 그 누구도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처음이었거든.
그나마 [거리의 햇빛>으로 뱀파이어 역을 해본 무영만이 경험이 있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이거 어떡하지?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네.”
“좀 많이 다른가요? 선배들 얘기 들어보니 그냥 똑같이 하면 된다고는 하던데.”
다들 걱정 반, 기대 반인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감독이 파일을 꺼내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 세트장 설계도를 보여줬다.
건물 하나를 기점으로 일어나는 일인지라, 한번 만들어 놓고 뽕 뽑을 듯이 계속 쓸 예정이었다.
“와. 예쁘다.”
붉은 벽돌에 넝쿨이 정감 가는 낡은 건물. 묘하게 분위기 있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디자인 같았다.
“근데 건물색이 다르네요? 소설 표지는 회색이던데.”
“각색을 좀 했어요. 미장센 쪽으로도 색 있는 게 예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오래된 느낌 주려면 이게 나을 것 같아서.”
“여긴 어디예요? 서울은 아니죠?”
“서울에는 못 짓지. 저기, 양평 외곽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촬영 스케줄 잡으면 연박으로 몰아서 찍어야 할 것 같아요. 그쪽 근처 숙박 시설이랑 제휴해서 씻고 쉬는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예 가라로 건물 하나를 세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민 모임 장소가 되는 일 층과 주인공들이 사는 탑층은 그대로 지었고, 이 층만 복도 세울 거고 삼사 층은 비워둘 겁니다.”
“숙박 시설 안 가고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하하. 그건 안 돼요. 물 안 나와.”
물이 필요한 장면은 스태프가 뒤에서 호스를 연결해 흘려보내 줘야 했다. 다들 사진을 돌려보며 기대되는 표정을 지었다.
“시골이겠네요?”
“그렇죠. 원작가님이 고향을 염두에 두고 쓰셨더라고요. 마침 좋은 땅 만나서 후딱 임대해 버렸죠. 넵플렉스에게 이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네요.”
감독의 장난스러운 말에 강옥경이 기품있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손짓하며 미팅을 이어가란 신호를 줬다.
“아무튼, 촬영 기간이 짧은 만큼 다들 힘내서 집중적으로 해봅시다.”
“네. 좋습니다! 기대돼요!”
“진짜 MT 가는 것 같다. 하하.”
“거기 슈퍼 같은 거는 있어요?”
“그것도 지을 거예요.”
한참을 세트장으로 떠들던 사람들. 감독이 시계를 확인하며 딴 길로 샌 대화를 잡았다.
“아무튼, 그 CG 작업이 좀 고생일 것 같다. 그리고 곧 날이 풀리겠지만, 시골인지라 여러모로 애로 사항이 있을 것 같아요. 매니저분들께 잘 전달할 테니 준비 단단히 해주세요.”
“넵. 알겠씁니당!”
“기합이 잘 들어갔네, 진서.”
김진서는 방긋 웃으며 감독을 따라 대본을 넘겼다.
“그리고 현장 가면 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미리 언질해 놓겠습니다. 1화 21번 씬이랑 22번 씬은 계단 공사 마무리에 따라 좀 미뤄질 수도 있어요.”
“언제쯤 되는데요?”
“재촉은 하고 있는데, 아마 일주일 넘게 걸릴 것 같아요.”
감독이 난감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공사 마감 일정을 받아두었건만, 그 지역에 비가 며칠 내내 오는 바람에 딜레이되고 말았다. 최대한 빨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안전제일’.
틀린 말도 아니어서 뭐라 못 하겠다 이거지.
“그리고 다음은…….”
감독은 특정한 몇몇 씬을 꼽아가며 연출 디렉팅을 공유했다. 배우들이 펜을 빠르게 놀리며 감독의 말을 받아적었다.
“-해서 일단 이 정도만 확인해 두고. 궁금한 거 있으신 분?”
“저요!”
무영이 이때다 싶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첫 촬영은 언제인가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감독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다음 주 주말부터 시작합니다.”
* * *
“와- 날씨 죽인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밴에서 내리는 무영. 어디 놀러 가는 것처럼 화사하고 밝은 옷차림이었다.
그를 따라 내린 매니저가 코를 감싸 쥐었다.
“어이고. 소똥 냄새.”
“구수하네요. 이게 바로 시골인가?!”
“시골 처음 와?”
“네. 처음이죠. 올 일이 뭐 있나요?”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것도 아니요, 휴일에 그를 데리고 체험하러 갈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차라, 무영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했다.
“소똥! 오오오! 텃밭이다! 고추!”
“무영아. 이쪽이다. 이쪽.”
“대박! 경운기!”
그런 그의 옷자락을 끌고 진정시키는 매니저였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무영이의 뒷모습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는 고경민. 이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장소 하나 기깔나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대?”
드넓은 평지와 저 멀리 그림처럼 둘러싸인 산. 그뿐인가. 인가도 별로 없는 오지 중의 오지인데, 분위기는 또 따뜻했다.
“안녕하세요오!”
“아, 무영 씨!”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했지?”
“길이 좀 험하긴 하더라고요. 아! 여기 음료수 사 왔어요. 다들 하나씩 드세요.”
그리고 사진으로 봤던 붉은 벽돌의 건물.
여느 때와 비슷하게 어수선한 촬영 현장이었지만, 특별한 물건이 있었으니.
“크로마키!”
녹색의 천 따위가 돌돌 말려 현장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뿐인가. 요상한 헬멧과 쫄쫄이, 그리고 밴드 같은 것이 잔뜩이었다.
“뭐가 되게 많죠?”
“앗. 깜짝이야.”
뒤에서 갑자기 속삭이는 목소리. 김진서였다. 그녀 역시 가벼운 옷차림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초콜릿을 와작거리고 있었다.
“하나 먹을래요?”
“넹.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조연출과 뭔가를 상의하러 떠나고, 두 사람은 촬영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초콜릿을 나눠먹었다.
“다들 되게 바쁘시네요. 그쵸?”
“시골이라 저녁에 해가 일찍 진대요. 조명 켠다고 해도 내부 촬영이나 가능하지, 바깥은 무리라고 해서 빨리한다고 그러시네요.”
“아하. 그런데요. 우리 언제까지 말 높힐까요?”
“지금까지만 할까요?”
“음, 좋지.”
무영은 장난스레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또래에 유찬이로 한번 본 적이 있는 터라, 애매하게 안면이 있었던 게 문제였다. 호흡 맞춰야 하는데 계속 이런 상태일 수는 없잖아?
“오늘 괴수는 녹스지?”
“응. 그렇다고 하더라.”
그리고 다시 초콜릿 와작와작.
순록과 비슷한 거대한 괴수였는데, 주인공과 그 일행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놈이었다.
슈퍼 주인을 잡아먹고, 일행들에게 세상이 멸망했음을 알려주는 역할.
처음엔 한 놈이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떼거지로 나타나 마을을 이동한다. 아마, 사바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겠지.
“유찬이가 네 칭찬 엄청 많이 하더라.”
“진짜? 뭐라고?”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 이길 수 없을 거래.”
그의 말을 전하는 김진서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극찬을 들은 무영이 부끄럽게 인중만 긁적거렸다.
“대박.”
“많이 도와줘. 난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
상승세로 쭉쭉 올라온 그녀였다. 기세가 꺾이지 않고 계속 쐐기를 박아대는 게 중요했으니. 무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졌다.
“나도 중요하지. 안 중요한 작품이 없어. 파이팅해 보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팔뚝을 크로스했다. 보이지 않는 열정이 활활 타오를 때. 그들 앞으로 쫄쫄이 입은 남자분이 터덜터덜 걸어갔다.
“……?”
머리에는 긴 뿔이 달린 헬멧을, 쫄쫄이에는 관절마다 점이 찍혀 있었다.
“와우.”
녹스 역 하실 배우분인가 봐.
빈둥한 몸에 털뭉치까지 듬성듬성 붙여서는, 해탈한 채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머리가 무거워 보이니, 무영은 후다닥 달려가서 목을 받쳐주었다.
“괜찮으세요? 오늘 녹스…….”
“아?”
남자와 눈이 마주친 무영. 굉장히 익숙한데, 시커멓게 칠한 물감 때문에 누군지 잘 모르겠다. 둘 사이의 침묵을 깬 것은 그 남자였다.
“무영 씨!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어어…… 우, 우, 우-”
“운정길이!”
“맞다! 운정길 아저씨!”
휘익-
무영이 놀라서 박수를 짝-! 치자 그의 머리가 뒤로 휘청거렸다. 놀라서 다시 잡아주는 무영.
“앗, 죄송해요. 아저씨! 근데 진짜 오랜만이네요!”
[역병> 촬영할 때 만났던 보조출연자 아저씨 아니신가. 갑자기 땜빵난 단역 대신 처음으로 대사를 읊어 봤다는 아저씨. 고되고 힘들지만, 연기하는 것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아저씨.“무영 씨 주인공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네. 좀 멀쩡한 모습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가 헬멧을 받쳐 들며 웃었다.
“에이. 뭘요. 지금도 충분히 멋지세요.”
무영 역시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함께 웃었다.
“그때 대사 한 줄 읊은 게 아, 마약이야 마약. 도저히 못 끊겠더라고. 그래서 독립영화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보니 이쪽 길로 오게 됐네. 그래도 짬이 있어서 그런가, 소질이 좀 있었어.”
2년이라는 시간. 어떻게 보면 참 짧지만, 또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바뀔 만큼.
무영이도 그랬고, 운정길도 그러했다.
“무영 씨 잘되는 거 보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진짜로. 나 그때 무영 씨가 준 커피 아직도 갖고 있잖아.”
“네? 커피요?”
“왜에. 이히준이가 마시라고 줬던 거.”
“아하아하.”
솔직히 기억 안 난다. 하지만 뭐 중요한가?
무영은 아저씨와 함께 조잘조잘 떠들며 회포를 풀었다. 조연출이 스탠바이를 부를 때까지 말이다.
“촬영 들어갈게요. 준비되신 거죠?”
“아, 예예! 됐습니다!”
“감독님! 준비 끝났답니다!”
운정길은 뒤뚱뒤뚱,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뒤집어쓴 채 현장으로 달려갔다. 광활한 평지를 배경으로 그가 섰다.
“녹스가 발을 딛는 장면 하나. 그리고 다리 따라서 전체 샷 하나. 이어서 목 돌려서 건물 쪽을 바라보는 장면 하나. 이렇게 세 개 이어서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무영은 쪼그려 앉은 채 현장을 구경했다.
감독님과 열성적으로 동선을 맞추는 운정길. 새삼 도전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떠올리게 했다.
인생을 바쳐가며 선택한 거니까.
“스탠바이!”
감독의 지시에 맞춰 엎드린 다음 손을 앞으로 뻗대는 모습. 순록과인 괴수인지라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무영아. 너도 분장해야지.”
“백수인데 뭐 할 거 있어요?”
“얌마. 그래도 화장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빨리 이쪽으로 와. 구경 그만하고.”
에잉. 구경 더 하고 싶은데!
매니저의 채근에 무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안녕하세요오.”
여기 주민분이신가 보다. 다 어르신들뿐이야.
무영은 넙죽 인사하며 웃어 보였다. 밤늦게까지 촬영할 건데 편의 봐주시는 고마운 분들 아닌가.
“뭐 하냐?”
“네? 인사요.”
“그러니까 어디에다.”
하지만 그런 그를 의아하게 돌아보는 매니저. 무영이 눈을 꿈뻑거리며 사람들이 있는 곳을 다시 쳐다봤다.
“와우.”
……감쪽같이 사라졌다.
훤한 대낮에 저렇게 몰려다니는 것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그가 입만 쩝쩝 다시며 간이 분장실로 향했고, 오후 느지막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무영이 바라본 그 방향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