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50)
신인인데 천만배우 150화
실수
간이로 세워진 분장실. 스태프는 물론이고 배우들과 그 식구들의 짐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장을 받는 무영. 거울로 뒤편에 서 있는 고경민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래요? 저 뭐 실수했어요?”
“응? 아니.”
아까부터 자꾸 의심쩍은 눈초리로 무영을 뜯어보고 있었으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뒤통수가 따끔따끔거렸다.
‘쟤 진짜 이상하단 말이지.’
말은 대충 둘러댔지만, 고경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멀쩡한 대낮에, 공동묘지를 향해 인사한 걸 안 순간부터.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무영이 여태까지 했던 요-상한 행동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거지.
‘[거리의 햇빛> 촬영할 때도 혼자 고사를 지내지 않나, 신들린 것처럼 찍어대는 것도 죄다 맞고, 공포 예능 나가서 그 반응에, 그 활약…….’
점점 해가 지고 있었다.
무서운 거라면 [서프라이즈 TV>도 못 보는 고경민이건만, 바로 옆에서 함께하는 배우가 저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저기 무영아.”
“넹?”
그는 쿵쿵 뛰는 심장을 겨우 붙잡으며 무영을 불렀다.
“너, 너 혹시 귀신, 아니지?”
“……?”
너무 당황해서 ‘보는 건’이란 말을 빼먹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무영과 스타일리스트가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어이없는 표정이 압권인 코디와 무덤덤하니 눈만 깜빡이는 무영.
“으흐흐흐- 티가 났어요?”
무영은 장난스레 손을 들어 보이며 대꾸해줬다.
“실장님도 참, 아직 대낮인데 너무 썰렁하다.”
“그쵸? 형이 가끔 저래요.”
“무영아. 눈 감아봐.”
그리고 별안간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분장을 이어갔다. 무영은 만족스럽게 거울을 보며 얼굴을 확인했다.
“음. 오늘 화장 잘 먹네요.”
“언제는 안 먹는 날도 있었니.”
스타일리스트는 웃으며 대꾸한 후, 천막을 걷고 나갔다. 무영이 옷을 갈아입어야 했으니까. 그가 웃옷을 훌렁 벗고 고경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
정신 빼놓고 뭐 하세요?
“뒤에 옷 좀 주세요.”
“아아. 미안.”
“이상하네. 진짜.”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파란색 추리닝으로 환복했다. 이번 작품이 좋은 게, 의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첫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이거 하나로 쭈-욱 갈 예정이거든.
“무영아. 너 혹시 귀신 보니?”
“네? 아아. 네.”
지퍼를 쭈욱 올리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꾸하는 무영.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고경민은 자연스레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
“그냥, 헛것이 좀 보여요.”
근데 이쪽 업계에서는 흔한 일 아니던가?
무당과 연예인 팔자는 한 끗 차이라는 말도 있잖아.
무영이 헤헤 웃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왜,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보셨잖아요?”
아하.
그건 또 맞는 말이라, 고경민은 입을 다물었다.
기현상에 대해서는 죽어도 말 안 할거지만, 이 정도쯤은 뭐. 상관없지 않을까? 그리고 말해도 온전히 다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봐봐. 경민이 형 눈썹 휘어진다.
“안 믿으시네에.”
“너 지금 연기하는 거지?”
“하하하. 대박!”
“뻥이네 뻥. 이눔의 짜식. 형은 지금 뒷골이 서늘한데, 너는 장난이나 치고.”
“우아아앗! 하하하!”
고경민이 혼쭐내려는 듯 소매를 걷자, 무영이 후다닥 천막 밖으로 도망쳤다.
“어?”
그런데 아까보다 훨씬 많아진 구경꾼…… 귀신들.
여전히 이쪽을 향해 고개를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표정이 무뚝뚝하니, 노(怒)기를 품고 있었다. 한껏 적대적인 시선.
‘왜 그러시지?’
무영이 그들을 향해 가려는 순간, 따라 나온 고경민이 그의 뒷덜미를 가볍게 잡았다.
“어딜 도망가시려고?”
“네? 아니-”
“촬영 들어가야지. 일할 거 다 하고 놉시다? 예?”
“혀엉. 저 노는 거 아닌뎅.”
촬영 현장 구석에 녹스 연기를 마친 운정길이 주저앉아 있었다.
헬멧을 벗자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땀방울. 검게 칠한 분장이 얼룩져 엉망이었다.
“아저씨, 끝나셨어요?”
“으잉. 일단 단독 씬은. 이제 같이해야지.”
“나머지 녹스도 다 맡으시는 거죠?”
“그럼. 아무래도 그게 싸고 좋으니까.”
운정길이 장난스레 속삭였다. 건물을 짓는 데 돈 다 써서, 주조연 외의 인건비는 그야말로 허리띠 졸라매는 수준으로 아끼려는 듯했다.
“무영 씨, 진서 씨! 이쪽으로.”
“네에. 드디어! 첫 씬!”
“운정길 님은 얼굴 분장 다시 받고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연출이 바쁘게 상황을 진행시켰다. 그들이 처음으로 찍을 장면은-
“11번 씬부터 들어갈게요. 기도랑 가람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둘이 어색하게 인사하다가 기도가 뒤쪽에서 달려오는 녹스를 발견. 놀라는 표정까지 잡고 컷 전환 들어갈게요.”
“그다음 12번도요?”
“응. 같이 건물로 달려서 도망가는 것까지.”
운정길과 진서, 무영 셋이서 찍는 장면이었다.
대략적인 동선과 연기 디렉팅을 받은 두 배우가 합을 맞추며 운정길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세요?”
“네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 저기 근데 슈퍼는 어디 있어요? 저 뒤쪽 민박집에서 왔는데, 슈퍼 근처에 있다고 해서.”
“슈퍼요? 아아. 근데 거기 슈퍼라기보다 상회에요. 쌀 팔고 콩 팔고, 뭘 사려는지는 몰라도 바깥에 나가야 할걸요?”
무영과 진서는 대사를 하나씩 짚어가며 연습했다. 시간이 금인 촬영장이다 보니, NG 없이 한번에 가는 것이 두 사람의 목적이었으니.
“아. 그래요?”
대사를 치던 진서가 무영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무영의 연기를 수도 없이 돌려봤다. [역병>부터 [거리의 햇빛>까지. 리딩 때도 눈앞에서 직접 봤고, 지금도 대면하고 있지.
연기, 잘하더라.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잘 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할 만큼 재능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솔직히 유찬이 말하는 ‘천재’까지는 잘 모르겠거든. 극찬에 공감할 만큼 인상적인 뭔가는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좀 달라지려나?’
데뷔때부터 대중들을 사로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사람이니, 그만한 매력이 있긴 있겠지. 아직 그게 뭔지 모를 뿐.
‘얼굴만으로 뜬 케이스는 아니니.’
잘생기긴 했어. 눈 마주치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때, 무영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그녀의 뒤쪽에서 뭔가 범상치 않은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
순간 화들짝 놀란 진서가 뒤를 돌아봤으나,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시원하게 트인 밭만 있을 뿐. 그녀는 감탄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깜짝이야.”
“응?”
“진짜 뒤에 뭐 있는 줄 알았잖아.”
얼굴의 근육이고, 눈동자의 흔들림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이다. 진서가 신기하다는 듯 다시 앞을 보고 대사를 읊었다.
그런데…….
‘왜죠?’
무영은 진심이었다.
뒤쪽에서 귀신 떼거지가 천천히 다가오는 걸 봐버렸거든. 마치 부당한 일을 당한 농민들처럼, 장엄하고 분노에 찬 표정들.
“아…….”
사람들 틈에 섞이면 무영이 좀 헷갈리긴 하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저들이 별다른 액션만 취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누구 하나 저승길 동무 만들 것 같잖아?
“스탠바이할게요!”
“네! 무영아, 가자.”
마뜩찮지만 어쩌겠는가.
무영은 진서의 뒤를 따라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과 반사판이 들리고, 슬레이트 치는 스태프가 감독의 신호를 기다렸다.
“자, 가겠습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별로 어려울 것 없는 대사가 오고 갔다. 그저 무난하게, 거리낄 것 없이 물 흐르듯.
“오케이, 컷!”
하지만 귀신들이 이상 행동을 본 무영인지라, 100% 집중할 수는 없었다.
김진서 역시 그런 그의 상태를 어렴풋이 알아챘다.
“괜찮아? 왜 그래?”
애가 영 집중을 못 하네.
만약 이게 실력이라면 적잖이 실망할 참이었다. 무영은 가만히 서서 멍 때리더니,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응? 왜요?”
“오늘 촬영 몇 시까지 해요?”
“밤까지 풀인데?”
온갖 귀신들은 다 봐온 무영이었다.
어느 신체 부위가 없거나, 장난질 치거나, 사무쳐서 떠도는 놈들까지 다양하게. 근데, 이렇게 화난 떼거지 귀신들은 처음이거든.
게다가…….
‘이거 스모그 맞지?’
그들의 살기(殺氣)가 옅은 스모그까지 만들어내는 참이었으니. 이대로 촬영을 계속한다면 필시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저기, 무영아?”
진서가 집중 좀 하자는 뜻으로 그를 채근했다. 무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머리만 긁적거렸다.
그때였다.
쿠웅-!
“아이고! 조심!”
“괜찮아?”
“여기 좀 도와주세요.”
“누가 친 거야? 가만히 있던 게 왜 쓰러져?”
“아닌데, 아무도 없었어요.”
쌓아뒀던 카메라 케이스가 와르르 쏟아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빈 케이스긴 했지만, 단단한 철제인지라 무게가 꽤 나가는 물건이었다.
“왜 그러세요?”
무영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쪽으로 다가가자, 스태프들은 별일 아니라며 웃었다.
“바람이 불었나.”
“옆에 있었으면 큰일났겠네.”
“조심 좀 합시다. 첫 촬영부터 피 보지 말고.”
“많이 쌓지말고 옆으로 둬요. 옆으로.”
하지만 무영의 물음은 스태프를 향한 게 아니었다.
무뚝뚝하게 정색하고 옆에 서 있는 귀신에게 향한 거지. 가만히 있는 물건을 왜 쓰러뜨리냐고?
“자아. 스탠바이 다시 갑시다.”
“넵. 여기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다들 잠깐의 헤프닝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자잘한 사고가 일어나는 것 아닌가.
“우앗! 잠시만요. 여기 끈 풀렸다.”
“어어어! 잡아줘요! 잡아!”
“아니,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뒀어요? 넘어지면 어쩌려고? 막내야아! 너 자꾸 실수할래?”
“저 아닌데요.”
“감독님. 갑자기 조명 안 켜지는데요?”
“한 번만 봐주세요!”
한 씬 찍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현장은 정신이 없다 못해 어수선함의 극을 달렸다. 첫 촬영부터 영 김빠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진서는 머리를 넘기며 표정을 관리했고, 무영만 멀뚱히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 날이 아닌가 보다.”
“으응. 좀 그렇네…….”
사실 무영의 눈에는 더 대환장파티였다.
귀신들이 온갖 수작질을 부리는 게 눈에 보이니, 눈이 핑핑 돌 지경.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아니면 오늘은 물론이고 앞으로 촬영도 장담 못 하니까.’
세트 건물을 여기다 갖다 박았는데, 옮길 수도 없잖아. 그는 진서를 지나쳐 번잡한 현장 이곳저곳을 살폈다.
분명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이거 고사(告祀) 안 지내서 이런가? 하하.”
그때 누군가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감독 우창민은 해외에서 영상을 공부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인지라 현장 의 무속신앙 따위는 믿지 않았다. 덕분에 촬영 전 고사도 패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첫 날부터 삐걱대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으려고 그러나 봅니다아.”
“아니, 근데 이거 끈이 왜 끊어진 거야? 대체?”
“그러니까요. 멀쩡하던 게.”
우창민 감독이 어이없게 웃으며 장비를 점검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무영. 이내 그를 똑바로 노려보는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저희가 뭐 잘못했나요?’
속으로 그렇게 묻자, 노인은 말없이 등을 돌려 임시천막으로 향했다. 그러자 바쁘게 현장을 뒤집어 놓던 다른 귀신들도 일순 행동을 멈췄다.
“……?”
노인을 따라 천막 뒤쪽으로 고개를 내민 무영.
뭔가를 발견하고, 멈칫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마이갓이다 진짜.”
그리고 큰 소리로 감독과 스태프들을 불렀다. 세상에 일을 이렇게 처리할 수가 있나, 싶은 목소리.
“감독님! 조연출니임! 아무나 빨리 좀 와주세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다급한 그의 부름을 듣고 가까이 있던 스태프 몇 명이 뛰어왔다. 무영은 골 때린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우리 고사 지내야겠는데요?”
그는 저것 좀 보라며 고갯짓했다.
천막을 세운 끈이 묶여 있는 긴 돌덩이. 세월의 흔적에 무뎌지긴 했지만…….
“저거 비석이잖아요.”
누군가의 무덤이 있다는 표식이었다.
분장 대기실로 세운 임시 천막을, 누군가의 몸 위에 올린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