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54)
신인인데 천만배우 154화
몰래카메라
“오늘 스케주울- 말해주세요.”
목베개를 하고 고개를 뒤로 젖힌 무영. 분명 새벽달 보고 들어왔건만, 다시 새벽달을 보며 출근하는 중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풀로 차 있다나 뭐라나.
“오전에 멜르 화보 촬영 있고 점심에는 용구 L&P 백화점 런칭 이벤트 참석 오후에 [유일한 건물주> 포스터 촬영. 저녁에는 OST 관계자들이랑 미팅 겸 마이크테스트. 샘플링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진행하자 하시네. 아, 그리고 오늘 중으로 건물주 작가님이 보내준 2차 대본 보고 확인 피드백 보내줘야 해. 하기 편한 대사로 알려달라 하시니까. 까먹지 말고 이동 중에 읽어. 그리고 또…….”
끝도 없이 나오는 스케줄. 무영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바로 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케 많아요?”
“조율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늘만 좀 힘들고 이번 주말까지는 텅 비어 있으니까.”
“그 말 들으니 갑자기 의욕이 솟네.”
무영은 설레설레 저으며 휴대폰으로 2차 대본 파일을 찾았다.
촬영 문제로 수정된 부분이 있는데, 작가님이 무영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대사를 봐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었다.
“아, 참.”
비몽사몽한 눈을 비비며 대본을 읽던 무영이 뭔가를 떠올렸다.
“저번에 말한 몰래카메라는 어떻게 됐어요?”
“[너를 찾아줘>? 이번 주 말고 다음 달 중후반쯤에 잡겠다 하네.”
“아. 그렇구나.”
“할 때 되면 알려주겠다 하니 신경 쓰지 말고 오늘 파이팅 좀 해보자. 아, 참. 저녁 미팅은 식당에서 할 거야. 네가 좋아하는 고기.”
“오오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무영은 엄지를 치켜들며 다시 휴대폰에 시선을 돌렸다. 새벽달이 유난히 밝은 게, 꼭 특별한 날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 * *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대한민국 해외 동포 시청자 여러분! [너를 찾아줘>의 김성목입니다!”
빌딩 숲 사이의 작은 공원. 정장에 나비넥타이, 페도라까지 쓴 남자가 카메라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두둥!
입으로 효과음을 낸 남자가 허공에서 북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왼쪽으로 시선을 안내했다.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무영이의 등신대를 보여줬다.
“요즘 정말 대세 중의 대세죠! 정말 사랑스러운 배우, 하무영 씨입니다. 오예에에!”
아무도 없건만, 남자의 텐션은 하늘을 뚫을 것 같이 높았다. 그는 하무영 등신대에 어깨를 감싸며 마이크를 쥐었다.
“여러분. 사랑스러움과 순백의 아이콘인 하무영 씨의 숨겨진 매력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윳빛깔이라는 말이 찰떡처럼 어울리는 이 남자, 과연 숨겨진 매력은 또 어떨까요?”
혼자서 아주 무대를 날아다녔다. 코미디언인 그는 카메라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며 진행을 이어갔다.
“초코우유와 같이 진한 매력일까요? 아니면! 딸기우유처럼 달콤할까요? 제작진의 조사 결과, 하무영 씨가 의외로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고 합니다. 그렇죠? 피디님?”
-ㅇㅇ
-그래서 고생 좀 했지.
자막으로 처리될 피디의 말.
시청자에겐 촬영 고지 자체가 비밀이지만, 나름의 리얼리티를 위해 그들이 써먹는 방법이었다.
촬영 날짜가 두어 달 밀렸다고 고지하는 것.
진짜로 두어 달 뒤, 까먹을 때쯤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무영처럼 페이크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 하무영 씨의 스케줄은 정말 알차다 못해 빼-곡하다고 하는데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로 차 있는 이 스케줄에서 사실 마지막! OST 관계자와 미팅은 거짓말입니다.”
식당과 녹음 스튜디오,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날 이벤트였다.
피곤한 만큼 본성이 쉽게 나올 거라는 생각에, 제작진이 노리고 노린 타이밍이었다.
“함께 동석하는 매니저까지 모르는 이 상황!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하군요. 저희가 궁금한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무영 씨! 당신은~?”
정면 카메라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눈을 희번덕하게 뜨는 MC. 카메라 감독이 놀라서 멈칫거릴 뻔했다.
“정말 순딩순딩 귀염뽀짝남이십니까? 그리고!”
휘익!
한 바퀴 돌던 남자가 이번에는 왼쪽 카메라를 향해 다가왔다.
프로그램 자체가 관찰 형식이다 보니, MC가 책임져야 할 오프닝과 엔딩에서 만큼은 온갖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다.
“모 공포 예능에서 보여줬던 강철 심장! 진짜인가요? 오늘의 몰래카메라를 도와주실 배우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서른 초중반쯤 되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웃으며 인사했다. 무영에게는 음원 관계자로 소개될 사람들이었다. 물론, 실체는 단역 배우들이지만.
“그럼, 성공적인 몰래카메라를 위하여! 아자아자!”
“아자아자!”
“화이팅~!”
시그니처 포즈로 오프닝을 마무리했다. 시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는 터라, 컷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장비를 철수했다.
“오늘 스케일 좀 크다던데, 맞아요?”
“식당도 통째로 빌리고,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도 특수제작했대요. 하하. 다른 건 몰라도 공포 몰카 할 때는 돈이 좀 들어요. 어쩔 수 없어.”
카메라가 꺼지자 한껏 점잖아진 남자. 제작진과 관찰 본부로 이동하며 촬영 일정을 다시금 확인했다.
“하무영 도착까지…… 한 시간 남았네.”
고깃집과 스튜디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는 소형카메라가 사각지대 없이 설치되었고, 식당 주인은 물론 앉아 있는 손님들까지 모두 배우로 채워질 것이었다.
“자아.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속여 봅시다!”
* * *
“으어어어…….”
“괜찮아? 똑바로 좀 걸어봐.”
“짱 힘들어요.”
밴에서 내리는 것도 흐물흐물, 식당까지 걸어가는 걸음도 흐물흐물.
새벽부터 달린 스케줄로 인해 무영의 체력은 0을 찍다 못해 바닥을 뚫고 내려갈 기세였다. 하지만 점점 짙어지는 고기 냄새가 포션처럼 기력을 끌어올려 줬다.
“하아. 나 오늘 엄청 먹어야지. 진짜 다섯 그릇 먹어야지.”
“그래그래. 많이 먹어.”
드르륵-
[오! 지금 들어갑니다! 하무영 씨와 매니저분이 들어가요!]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MC 김성목. 수십 개로 쪼개진 화면으로 무영의 모습이 찍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어! 저기 계시네. 안녕하세요. 무영아, 인사드려. 이분이 프로듀서님. 이분이 음반제작담당 팀장님. 그리고 이분이…….”
[아, 매니저가 지금 우리 배우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매니저분은 가짜 관계자들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전, 스케줄 잡으면서 인사한 적이 있거든요. 물론 그것도 거짓말~! 미안합니다. 매니저 씨. 하하하.]“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앉으세요. 오늘 일 많으셨다고.”
“갑자기 이럴 때가 있더라고요. 고기 냄새 엄청 좋네요. 스튜디오가 바로 옆이라 하셨죠?”
“네. 가까워서 자주 와요. 고기랑 소주 맛집이야.”
“이모님! 여기 고기 5인분 세팅해 주세요.”
무영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연신 반찬을 주워 먹으며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고기와 함께 세팅된 된장찌개와 공깃밥.
[자!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맛집이라고 소개된 식당, 우리 무영 씨 배가 엄청 고플 거예요. 근데 막상 나온 밥이 설익은 데다 된장찌개는 짜고 달고 엉망진창이라면?]와앙-
한입 크게 먹은 무영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눈만 또르르. 천천히 음식을 씹어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번 먹어보지만, 역시 똑같다.
“왜 그래?”
“어…….”
[무영 씨, 당황했습니다! 이거 너무 맛이 없잖아? 자자. 저 표정 좀 보세요, 살면서 이런 건 처음이라는 얼굴이에요!]“뭐가 잘못 됐어?”
이상함을 느낀 매니저 역시 한술 떠보더니,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맛에서 불쾌함을 느낀 건 거의 처음이었다.
“무영 씨. 입에 안 맞아요?”
관계자의 말에 무영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서 드세요.”
그리고 매니저에게 속닥속닥.
“……김치찌개 시킬 걸 그랬다. 여기는 김치찌개가 맛있나 봐요.”
[아아- 우리 무영 씨 말하는 것도 참 착하죠. 자, 이제 슬슬 시동 겁니다. 다음 밑밥 던져볼게요! 배우님들! 시작해 주세요!]“하무영 아니야?”
대각선에 앉아 술을 기울이고 있던 두 남자. 무영의 테이블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다가왔다. 고기를 우물거리던 무영이 눈만 치켜들어 쳐다봤다.
“하무영이 맞지? 반가워! 아, 팬이야!”
“아녀하세여-”
고기로 입이 가득 차서 발음이 뭉개졌다. 남자는 무영의 어깨를 가볍게 쳐대며 연신 걸걸한 인사를 건넸다.
“이야, 신기하네. 이런대서 고기도 다 먹고. 스타들도 사람 사는 것처럼 사네. 응? 이봐, 싸인 좀 해줘. 사진도 괜찮지?”
[무례한 남자의 일방적인 접촉! 과연 하무영의 반응은?]무영은 입만 우물우물거리며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잠깐의 침묵.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배우가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왜인지 모르게 시선을 마주치고 있자니 기가 눌리는 기분.
꿀-꺽!
하지만 무영은 그저 고기를 넘기느라 바빴던거다. 그는 싱긋 웃으며 예의 있게 양해를 구했다.
“물론 해드려야죠. 근데 제가 지금 회사 분들이랑 중요한 미팅 중이라서요. 식사 끝나고 해드릴게요. 종이랑 펜 있으세요?”
“어? 아, 아니.”
“그러시구나. 하긴 평소에 학생 아니면 누가 종이랑 펜을 들고 다녀요. 그쵸? 제 차에 있으니까 괜찮으시면 기다려 주세요. 술 드시는 거 보니 오래 계실 것 같은데. 으음. 여기 고기는 진짜 맛있네요.”
넉살 좋게 달래는 무영.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지 남자는 저절로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본부석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거기서 물러서지 마세요! 가기 전에 고기 먹어봐도 되겠냐고 해보세요! 계속되는 남자의 황당한 무례함! 가봅시다!]“고기가 맛있어?”
“네. 드시고 계시잖아요.”
“우리 건 영 별론데. 한 입만 줘봐.”
“아니, 저기요.”
참다못한 매니저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무영은 요지부동. 가만히 앉아서 쌈에 마늘, 김치까지 야무지게 올려서 남자에게 건네줬다.
“아-”
“……?”
일순 당황한 것은 남자였다. 그의 앞에 다가온 작은 쌈을 보며 주위 눈치를 봤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이 한패였건만, 이상하게 민망한 기분.
“아, 아?”
“하하하하. 장난인데.”
무영은 남자에게 쌈을 줄 듯하더니 제 입으로 쏙 가져와 먹었다. 뻘쭘하게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무영이 뒤쪽을 고갯짓했다.
“아저씨 고기 탄다. 어서 가서 드세요. 싸인 꼭 해드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 참. 팀장님, 저희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그리고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무시했다. 이제 그만 꺼지라는 무언의 동작이었다. 계속 웃고는 있는데, 이상하게 더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가 압권이었다.
[네. 하무영 씨, 단호하게 무례한 남자를 쳐냅니다. 부드러운 미소 속의 강단이 느껴지네요. 자, 우리의 배우 역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대체 뭐야? 저 사람?”
매니저는 씩씩대며 대각선 테이블을 노려봤다. 무영은 테이블 아래로 그의 무릎을 툭툭 쳤다. 그만하라는 신호였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그리고 맞은편의 관계자들에게 사과했다. 긴장한 채로 모습을 지켜보던 그들이 정신을 후딱 차리며 웃었다.
“아니요. 저희야 뭐…… 무영 씨 힘들겠어요.”
“저런 사람 많아요? 별별 꼴을 다 보겠네.”
무영은 고기를 뒤집으며 싱긋 웃었다.
“가끔 있어요.”
별로 내상이 없다는 듯, 그는 평온하게 고기를 구우며 식사를 이어갔다.
[좋습니다. 지금까지 밑밥이 잘 깔린 것 같군요. 이제 본격적인 쇼에 들어갑니다! 하무영 씨는 음식이 형편없는 것과 대각선의 손님이 무례하다는 걸 인지한 상태입니다. 이럴 때 그 남자가 가게에 컴플레인을 건다면?]“아이씨!”
쨍!
대각선에 앉아 있던 남자 둘이 짜증을 부리며 숟가락을 거칠게 내던졌다.
고기를 씹던 무영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것도 아주 과격하게 들어온다면?]“사장!”
“네? 네, 손님!”
“이리 좀 와봐.”
쩌렁쩌렁한 소리에 모두 식사를 멈추고 남자를 돌아봤다. 무영 역시 마찬가지. 입에서 숟가락을 싹 빼고,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우물우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