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57)
신인인데 천만배우 157화
보물상자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무영과 김성목의 싸인이 걸려 있는 카운터.
몰래카메라에 나왔던 그 가게 앞문에 ‘영업 끝’이라는 팻말이 걸렸다. 글자가 의미하는 것과 달리, 안쪽은 손님으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했지만.
“자자! 우리 한 잔씩 채웁시다!”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감독이 소주잔을 들며 외쳤다. 이미 가득 찬 소주가 누런 불빛을 가득 담았다.
“무영아. 한 잔 줄까?”
“저어는-”
“내일 스케줄 있어서 못 먹는대.”
“아 그래? 아쉽다아.”
“한 잔만, 딱 한 잔만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무영은 조명 감독이 채워주는 술잔을 들고서 웃었다. 후시 녹음과 CG라는 거대한 산이 남았지만, 어쨌거나 현장 촬영만큼은 잘 매듭지었다.
모여야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부랴부랴 뒤풀이를 잡은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감독은 오른손을 뻗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 옆에는 강옥경 팀장 역시 앉아 있었다.
“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와아아아! 감독님 한 말씀 하신다!”
“산에서 뛰고 굴에서 구르며 건물을 가꾸었던 우리 배우들과 제작팀! 잘 따라와 줘서 고맙고, 마무리가 남았지만, 마무리 역시 문제없이 잘 될 것임을 믿고!”
이제 막 술을 따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취하신 것 같다. 무영은 싱긋 웃으며 밑반찬을 주워 먹었다.
‘음. 몰래카메라였을 때랑은 비교가 안 되네.’
입에서 사르르 녹는 음식들. 확실히 맛집 맞다. 쓴 소주가 들어오기 전, 미각을 달짝지근하게 달구었다.
“그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와아아아! 저희도요!”
“주연배우 무영이도 건배사 하지?”
“네? 저도요?”
“그럼! 오늘 회식도 쏘는데!”
“돈 쏘는 사람이 해줘야 제맛 아잉교!”
“좋다! 무영이도 건배사 해봐!”
감독은 숟가락 꽂은 병을 무영에게 건넸다.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무영.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손을 들며 건배사를 기다렸다.
“음……. 많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작팀과 배우팀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배우 구실을 한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고, 언제나 즐겁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유일한 건물주> 대박을-!”
무영이 선창하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짠!
기분 좋게 울리는 잔 소리.
무영 역시 주위에 앉은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드세요!”
상품권이 요긴하게 쓰일 듯하다.
다들 저녁이라도 굶고 왔는지, ‘고기랑 술 추가요!’ 소리가 끊이질 않았거든.
무영은 술을 먹는 대신, 소주병을 들고 테이블을 돌아다녔다.
“작가님, 한 잔 받으세요. 좋은 대본 정말 감사합니다. 영광이었어요.”
“어머, 무슨 소리. 내가 더 고맙죠.”
“나도 한 잔 주라, 무영아!”
“음향 감독님은 특히나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안주도 드릴게요. 아- 하세요.”
“아하하하! 나는 맥주!”
그리고 스태프들 한명 한명과 얘기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언젠가를 기약하며 끝을 맞이하는 것이다.
“크아! 맛나다!”
고기와 함께 넘어가는 술이 달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고, 이내 가게 안은 불판처럼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음. 이제 슬슬 사올까?’
술자리에서 초코우유가 빠지면 섭하지.
한참 무르익어 다들 얼굴이 벌겠다. 손이 부족할 게 뻔하니, 고경민을 찾았건만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어디 가?”
끼익-
그를 따라 진서가 따라 나왔다. 무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위를 둘러볼 뿐.
“매니저 형이 없네.”
“아까 전화 받으러 나갔어. 왜?”
“초코우유!”
“……같이 가자. 편의점 길 건너면 있더라.”
“오키오키.”
새벽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가끔씩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택시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근데 너 강보라 씨랑 진짜 친구야?”
“보라? 응. 왜? 소개해 줄까?”
열애설이 두 번이나 났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모르는 일 아닌가. 진서는 무영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쏴아-
빨간불 앞에 선 두 사람. 택시 한 대가 시원하게 지나쳐갔다. 무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새벽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무영아.”
그녀가 부르자, 무영이 고개를 돌렸다.
“만나는 사람 없으면, 나랑 만날래?”
훅 들어온 진서의 고백. 술기운을 빌려 쏟아낸 진심이었다.
무영은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인지하고 소리쳤다.
“헐!!”
“야!”
너무 놀라 토끼 눈이 되어 뒷걸음질 치는 행동까지, 완벽하다. 그 모습에 진서가 소리치며 웃었다. 대체 뭐냐고, 저 반응.
“나 너 마음에 들어.”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본인은 알랑가 몰라. 무영이 자신이 꽤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만나고 싶어. 이번 작품이 끝나도 계속.”
무영은 눈만 끔뻑이며 진서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벌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1초를 쪼개고 쪼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가 먼저 한 말은-
“고마워.”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그런데…….”
그런데. 진서는 살짝 떨리는 심장을 애써 모른 척하며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모든 게 술 때문이다. 술 때문에 충동적으로 고백했고, 술 때문에 울컥 뭔가가 올라왔다.
“지금 나는 누구를 만날 생각이 없어. 일하면서 얻는 행복 자체만으로 버거워서, 또 다른 행복이 밀려오면 숨 막혀 죽고 말 거야.”
“뭔데 그 이상한 말은.”
두 사람이 동시에 싱긋 웃었다.
“진서야. 너무 고마워. 나 누구한테 고백받은 적 처음이야.”
“뭐? 말도 안 돼.”
배우 하무영이 아닌 인간 하무영이 좋다는 말, 실로 처음이었다.
연애의 감정으로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무영은 진서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고마워. 덕분에 이런 기분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네 말에 내가 조금은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진서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속으로 멍충아, 멍충아라고 몇 번 불렀지만, 진짜 이렇게 둔할 수가. 세상에 너 같은 남자가 몇이나 되겠니? 그녀는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넌 원래 대단하고 멋져.”
“와하하하. 대박.”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해. 내가 좋아한 남자니까 그에 걸맞게끔. 알겠어?”
“오오예. 알겠습니다요.”
“마약 하지 말고 병크 터지지 말고.”
“하하하. 너도너도.”
진서는 무영의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왈칵 눈물이 흐를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흐르지 않았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라는 거절 답변 덕분이겠지.
“그동안 고마웠어.”
“나도. 오디션 건승하길 바랄게.”
그 순간, 파란불이 켜졌다.
무영이 앞을 돌아보자 진서가 등을 돌렸다.
“초코우유는 네가 사와. 차이고서 같이 편의점 들어갈 기분은 안 든다. 그리고 앞으로 일에는 지장 없도록 하자. 너나 나나, 프로니까. 알지?”
“진서야.”
발걸음을 재촉하며 멀어지는 진서. 무영이 그녀를 가볍게 불렀다. 그리고 확신하듯 소리쳤다.
“넌 잘될 거야! 진짜로!”
꽃가루가 그걸 알려줬거든.
진서는 고개만 빼꼼, 뒤로 돌더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다시 식당 건물로 들어갔다. 아마 편의점에 들렀다 가면 없을 것이다.
무영은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보다가 불이 깜빡이자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대-박.’
하무영 인생 첫 고백.
모두가 인터넷상으로 사랑한다 외치지만, 이렇게 실제로 교류하는 사람이 말한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내가.’
굉장히 놀라운 감정과 경험이라고, 무영은 편의점 앞에 서서 가만히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깨달았다.
‘새로운 기분과 감정이다.’
그간 심해에 묻혀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이다.
아마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또 다른 비밀스러운 감정을 겪게 되겠지. 보물상자가 열리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세상을 더 밝게, 넓게 보는 것 같았다.
‘그럼 연기할 때도 보다 깊게…….’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을 터.
무영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편의점 문을 열었다.
무심하게 앉아 있던 알바생이 그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
띠링-
“어? 하무영 씨? 어쩐 일이세요?”
무영은 상기된 얼굴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아주 기분 좋게 질러 버렸다.
“초코우유!! 다 주세요!”
* * *
“술을 안 마셔도 날을 새면 피곤하다.”
“그게 어제 얻은 교훈이냐?”
“경험이죠. 경험.”
무영은 반쯤 뜬 감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고경민은 자신을 데려다주고 귀가했건만,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다시 출근할 수가 있지?
나이도 무영이가 어린데.
“형은 안 졸려요?”
“난 사실 어제 중간중간 잤어. 차에서.”
“아, 그래서 안 보였구나.”
무영은 기지개를 켜며 이불을 걷었다.
예상대로, 편의점에 다녀오자 진서는 자리를 뜬 상태였다.
많이 취했지만, 인사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고 갔노라, 그는 스태프들의 말로 그녀의 마지막을 그려야 했다.
“씻고 나와. 도시락 사 왔으니까 먹고 바로 출발하자. 먹으면서 이것도 좀 보고.”
고경민이 백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스케줄 때 짐이 많으면 쓰는 가방인데, 오늘은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대본이에요?”
“회사에서 일차로 추렸어. 네가 하고 싶은 거 할 거 아는데, 어지간하면 여기서 골라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위에서 내려오네.”
“위가 어딘데요? 유사하 대표님인가?”
무영은 웃으며 가방을 뒤집었다. 우르르 쏟아지는 대본집. 그는 눈을 비비며 똑바로 훑었다. 우선 꽃가루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보자, 보자…….”
“무슨 신점 보는 것처럼 봐? 대본은 펼쳐야지. 표지만 봐서 알아?”
“알죠. 느낌이 딱 오거든요.”
없나?
무영이 아쉬운 기색으로 뒤적거리는 순간이었다.
아주 기묘한 현상을 보고 말았다.
사락-
“엥?”
스모그와 함께 어우러진 꽃가루.
어둠 속의 반짝이라, 마치 작은 우주가 펼쳐진 듯 보였다. 언제였더라? 이런 걸 비슷하게 본 적이 있었는데.
“K사 드라마?”
꽃가루면 꽃가루지, 스모그는 또 뭘까.
혹시 쪽박 아니면 대박이라는 걸까?
아니면 얻는 것이 있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는 걸까.
무영은 말 없는 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고경민은 그의 손에 들린 걸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
“그거 괜찮지. 제작사도 괜찮고, 자본력도 좋아. 작가도 네임드. 김온성 작가거든. K사 박수연 피디랑 거의 영혼의 단짝처럼 붙어서 일하는데, 그간 대박 친 게 꽤 되지. 제일 최근에는 [바람의 야망>으로 재작년에 27% 히트 치고. 흥행보증수표야.”
고경민은 회사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무영에게 알려줬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사극이라던데.”
“네. 그중에서도 퓨전사극이요. 제목이…….”
[칼날의 궤(軌)>중종과 조광조, 두 남자의 얘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맨 앞장에는 작가가 적은 간단한 줄거리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어느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신하들의 등에 업혀 왕이 된 남자 중종.권신들의 기세에 눌려 왕권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조광조를 만나 개혁을 꿈꾸게 된다.
이상적인 세상, 왕도 정치의 구현을.
두 사람의 믿음과 신뢰는 견고했으나, 권력의 무게는 견디지는 못했다. 함께 겨눴던 칼날이 궤를 달리해 서로의 목을 노리기 시작하니…….
대나무처럼 뻗어가는 조광조와 그것이 하늘에 닿을까 염려한 중종. 믿음과 배신, 그리고 하나의 이상.
휘몰아치는 두 남자의 갈등이 그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시선을 담는 얘기네요.”
중종이 조광조를, 조광조가 중종을.
역사의 한가운데서 그들이 고수해야 하는 시선을 담아내는 작품이었다.
중종과 조광조의 피 튀기는 갈등이 극의 재미 요소가 될 것이다.
“괜찮은데요?”
괜찮을 뿐인가?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하나, 고경민의 낯은 썩 밝지 않았으니.
“음. 좋지. 다 좋은데-”
아마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조광조 역으로 거론되는 배우가 차은성이야.”
“차은성? 와! 진짜요?”
미친! 엄청나다! 탑 중의 탑이잖아? 고작 2년째인 무영과 달리 십 년 가까운 시간을 정점에서 달리는 사람이었다. 외모와 연기력, 그 어떤 것도 빠지지 않고.
“차은성 모르는구나?”
“대한민국 사람은 그분 다 알죠.”
“성격 엄청 더러워.”
“넹?”
“완전 개 양애취라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