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60)
신인인데 천만배우 160화
붙어!
섬세하다,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담담한 말투에 잔뜩 눌러져 있는 감정의 골이 그대로 느껴졌기에. 그저 내레이션에 불과했지만, 무영은 한껏 몰입하며 집중했다.
‘어느 날’을 내뱉는 순간에는 반짝- 저 먼 과거를 끄집어내듯 시야를 멀리 보기도 했고, ‘왕이 되었다’ 부분에서는 속눈썹이 파리하게 떨리기도 했다.
“왕은 하늘이 내려준다 하였거늘, 어찌 나는 신하의 등을 밟고서 자리에 오른 것인가? 한낱 인간의 힘으로 세워진 왕이라, 그 얼마나 허무하고 맹랑한 것이냐?”
목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발성이 중요했기에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평균 이상은 하겠지만, 무영이는 조금 달랐다.
그 자리에 모인 연기자 모두, 무영의 미색에 어떤 매력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발음도 단정하니 좋고.’
‘우아하면서도 근엄한 느낌이 잘 사네. 괜찮군.’
‘음. 호흡도 안정적이야.’
베테랑끼리 모인 자리라 척하면 척이었다.
중견배우들은 헛헛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나누었다. 말 안 해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나는 땅에서 올라간 자였다. 피로 적셔진 계단을 밟고서 하늘에 닿고자 발버둥 치던 어리석은 자. 그런 내가, 조선의 왕이었다. 내가 바로 저들의 주군.”
허탈하면서도 자조적인, 그러나 그 틈새에 녹아든 욕망까지 생생한 대사 처리였다.
사극 톤 역시 완벽했다. 집중을 깨트릴만한 요소는 티끌도 없었다.
‘이 새끼…….’
차은성만 빼고.
이제 겨우 2년 차에서 사극은 처음이라며?
‘좀 치네?’
어벙해 보여 영 못 미더웠는데, 솔직히 좀 놀라고 말았다.
백상이랑 청룡에서 상 받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신인의 수상이 곧 연기력을 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인기나 흥행 혹은 발전 가능성 그리고 운과 기세 따위가 복합적으로 얽혀 주어진다고 생각했으니.
자신도 신인 때 괴발개발이었건만,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다시피 했거든. 그래서 더더욱 기대 안 한 건지도 모른다. 쟤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듯.
“전하.”
그때, 내레이션이 끝나면서 대신이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무영이 시선만 살짝 틀어 그를 돌아봤다. 뻣뻣하게 긴장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나른한 자세였다.
“전하. 큰일을 성취하고자 거사의 시작을 신수근의 처단으로 시작하였나이다. 하나 지금 그자의 친딸이 궁정에 들어서려 하니, 궁곤(壼宮중전)으로 삼는다면 종사에 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하니-”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었고, 중종 부인의 아버지였다. 반정으로 왕이 된 그가 제일 먼저 쳐내야 하는 것은, 조강지처인 자신의 부인이었다.
아. 이 얼마나 못나고 한스러운 사내인가.
하지만 왕위라는 거대한 영광 아래 모든 것은 하찮을 뿐이었다. 신하가 세워준 왕일지언정.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야 하옵니다. 사사로운 정 따위에는 흔들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자신을 왕위에 앉혀준 신하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무력감이 온몸을 잠식할 것 같았지만, 왕이라서 그 또한 불허였다.
무영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순간, 욕망으로 반짝 타오른 눈동자는 필시 우연이 아니리라.
“……마땅히.”
“전하.”
“종사의 안정이 지극히 다급하니, 내 그러하겠소.”
그렇게 왕이 된 지 일주일 만에, 그가 처음으로 신하의 채근에 못 이겨 부인을 쳐냈다.
하나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 사람이다, 하고 그렇게 아끼던 조광조 역시 같은 운명을 걷게 될 터이니.
“좋아요. 그렇게만 합시다.”
마지막 시선 처리에 피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선생님들도 많고, 무엇보다 차은성이 버티고 있으니 대놓고 칭찬을 쏟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자’라는 말보다 확실한 표현이 있을까?
“요즘 드라마는 따라가기가 힘들어.”
“네? 어떤 부분이요?”
훈훈한 분위기 속, 계속 진행을 하려는데 한 중견배우가 옆자리 동료에게 넌지시 중얼거렸다. 가까이 앉아 있던 피디가 놓치지 않고 말을 붙잡았다.
“아. 나쁘다는 게 아니고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다른 게 아니라, 1화의 시작이 중종반정부터 시작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보통 역사 드라마는 시간 순서대로 쭉 가는 게 정설이잖습니까.”
아무래도 그게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헷갈리지 않으니. 먼 과거의 얘기를 하는 작품이기에, 최대한 혼선을 줄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아역부터 시작해서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중종이랑 조광조가 6살 정도 차이 나니, 시간순으로 하면 중종 즉위 이전, 조광조 얘기부터 나오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아서요. 허허. 그냥 궁금해서요.”
하지만 [칼날의 궤>는 달랐다.
작가는 중종과 조광조, 두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첫 화에 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저도 신기하긴 했어요. 참 신선한 연출 방식 같아서요.”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까.
잠시 난감하게 고민하던 피디의 안색을 알아채고, 무영이 끼어들었다.
손주가 조잘대는 것처럼 구김 없고 맑은 목소리인지라, 중견배우들 모두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1화가 중종반정에서 시작해 중종의 시선으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성균관에서 조광조 만나는 씬으로 끝나잖아요. 2화는 조광조의 십 대 시절 유학을 배운 상황과 성균관에 들어가는 내용. 그리고 역시 엔딩은 거기서 중종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끝나고요.”
작품 얘기만 했다 하면 눈이 초롱초롱하니, 이거 원.
고경민은 얕은 미소를 지으며 차은성의 눈치만 봤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무표정으로 무영을 쳐다볼 뿐이었다.
“1화의 엔딩과 2화의 엔딩이 시선만 다를 뿐, 같은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둘이 만나 진행되는 본격적인 얘기는 3화부터.
20화 남짓한 여유가 있다 보니, 그때부터 치열한 정세에 관한 에피소드가 쏟아질 예정이었다.
“사극에서는 이런 연출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요. [칼날의 궤>만의 매력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 요즘 트렌드는 젊은 사람이 더 잘 알겠지.”
“에이, 선생님. 제가 선생님만 하겠어요?”
“뭐? 어허허헛!”
“공찬식이 오늘 계 탔네. 무영 씨한테 그런 소리도 듣고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3화에서도 좀 특이한 부분이 있었지. 이것도 요즘 식인가?”
그걸로 시작된 작품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피디가 조연출에게 속삭였다.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어린 왕이랑 대신들 같다.”
“하하하.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네요.”
작품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정사를 의논하는 것처럼 보였다. 퍽 보기 좋다는 뜻이었다.
리딩도 리딩이지만, 이렇게 빨리 유대감을 쌓는 것도 중요했다.
끼익.
“피디님. 기자님 모실까요?”
“아. 그러죠. 선생님들, 잠시만요. 사진 한번 찍어야 해서 리딩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아아. 그래요. 그래. 어디까지 했더라?”
“음. 중간에는 반정 이후 숙청하는 장면이 다수인지라, 바로 34번 씬으로 넘어가죠.”
그들은 정신을 퍼뜩 차리며 대사 읊기에 집중했다.
그림자처럼 스며든 기자가 회의실 곳곳을 누리며 조용히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찰칵.
특히 그의 렌즈가 주로 담는 것은 하무영과 차은성.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옆태가 한 폭의 그림보다 멋졌다. 비주얼 사극이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릴 법한 주역들이다.
“다음은 차은성 씨?”
“……네.”
“이어서 부탁드릴게요.”
드디어 차은성의 차례였다.
무영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봤다. 사실 회의실의 모두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전하. 군주께서는 발걸음을 재촉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바람을 따라 걷되 쫓지 아니하고, 밀지 아니하온 것이 무릇 지엄한 몸가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성리학의 가르침을 몸에서 떼지 않았던 조광조였다. 특히 스승의 영향인지, 어린 나이에 배우는 소학을 기본으로 여겨 매일 들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런 남자가, 성균관 뒤뜰에서 우연히 중종과 마주했다. 바로, 1화의 마지막 엔딩씬이었다.
“아…….”
차은성의 시선이 무영에게 똑바로 꽂혔다.
반항적이던 눈빛 대신 단정하고 담백한 태도였다.
맨 처음, 무영은 솔직히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다.
캐릭터 성격과 배우 성격이 너무 안 맞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나 제작진을 믿었고 그들의 선택은 옳다 못해 완벽했음을 깨달았다.
“와.”
무영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수많은 배우들을 봐왔지만, 어째서 차은성 그가 탑 중의 탑인지 몸소 깨달았다. 성격이 개차반이어도 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고, 제작진들의 픽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도. 확실히.
‘진짜……. 진짜 잘한다.’
이미지의 간극이 커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가?
귀신에 씐 것처럼 단박에 아우라가 바뀔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력에 맞는 대사와 시선 처리는 일품이고, 본능적으로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살벌할 정도였다.
“전하?”
차은성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빨리 대사 치라는 신호였다. 무영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네가 그 조광조인가?”
“그 조광조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사옵니다만, 성균관에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자는 저 하나뿐이지요.”
“……소문대로군.”
임금을 보고서도 첫 만남에 훈계 질을 해대는 꼬장꼬장한 선비. 너무 올곧게 뻗어 대적 되는 자는 죄다 뚫어버리는 강단.
하나, 언젠가 그의 가지가 주군에게 닿을 거라고는, 지금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좋습니다. 와. 목소리가 더 좋아졌네요? 은성 씨?”
“저번 작품 하고서 관리 좀 받았어요.”
“선생님들, 어떠세요?”
“어떨 거 있나? 우리 주인공들이 이렇게 잘하는데. 나는 후배들이 이런 연기 보여줄 때마다 젊어지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우리 젊었을 때 그 느낌이지?”
노장들 역시 가감 없는 칭찬을 쏟아냈다. 피디는 하하 웃으며 두 사람을 돌아봤다.
연기, 비주얼, 제작진과 동료 배우들과의 합 역시 보장되어 있다.
‘별문제만 딱히 없다면…….’
이번에도 대박을 노려보리라.
하무영 쪽은 별걱정이 없는데, 문제는 차은성 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배 배우들이 많다는 것?
소문으로는 사생활도 더럽고 여러모로 들리는 게 많지만, 어차피 대중들은 모를 것이다.
“자. 그러면 잠시 쉬었다가 이어볼까요?”
“그러지요. 커피 한 잔?”
“아. 선생님. 제가 사올게요. 다들 어떤 거 드세요?”
“나는 아아.”
“카페 건물 1층에 있어요.”
무영이 애교 있게 일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돌고 돌아 차은성으로 향하는 시선.
“선배님은요?”
“…….”
하지만 그는 대답 없이 담배갑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찬 바람 쌩 날리며 회의실을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얼굴을 살짝 굳혔지만, 무영은 개의치 않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커피 안 드시나 봐요. 음료 사드려야겠어요.”
딸기라떼에 휘핑크림 잔뜩 올려서 초콜릿까지 뿌려달라 해야지. 음. 그래. 그게 좋겠어. 어디 씅난 얼굴로 빨대 쪽쪽 빨아 드세요.
“다녀오겠습니다! 형!”
“어. 그래.”
무영이 역시 고경민과 함께 회의실을 떠났다. 선생님들이 허허 웃으며 차은성에 대한 첫인상을 떠들었다.
“얼굴값 하는 친구구먼.”
“지랄 맞겠어. 응.”
“우리야 뭐, 그렇다 쳐도 저기 하무영이가 문제네.”
한편, 고경민 역시 차은성을 헐뜯으며 무영에게 쫑알대고 있었다. 사람 무안을 그렇게 주냐면서.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성인지. 쯧. 작품 도중에 사고만 안 치면 고맙다고 절하고 싶네.”
“음. 저도요. 옆에서 같이 절할게요.”
그렇게 대꾸하는 무영이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대본에는 꽃가루와 스모그가 같이 있었잖아? 근데 차은성한테서는 스모그를 찾아볼 수 없었거든.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라나?’
모르겠네, 정말.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페로 향하는 도중. 차은성은 휴게실로 가서 담배를 뻑뻑 태우고 있었다.
“은성아. 괜찮아? 왜, 왜 그래?”
“…….”
매니저의 말에도 묵묵부답.
‘쬐깐한 게 제법이네. X발.’
신선한 충격이자 열등감 혹은 자극제였다. 그는 반도 안 탄 담배를 비벼끄며 웃었다.
“재밌겠네. 어디 한번 해보자.”
“뭐, 뭐가아…….”
옆에서 매니저가 울상인 것도 모르고, 차은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